기쁨과 해악을 두루 선사하는 싸구려 물건들
2025-11-02 07:11:30
'멋진 쓰레기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너무 많아서 그걸로 블로그를 만들어도 될 지경이다.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물욕을 버리지 못하는 슬픈 중생은 제목 보자마자 집을 수 밖에 없고요. 당장 시작 챕터 제목부터 사람 울린다. "우리가 사는 것이 곧 우리다". 책에 대해서는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할 기억은 없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의 의미를 각인시켜 주고 사라져간 소지품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림. 작가님 이런 슬픈 말은 권말에 쓰셔야죠.
사기성 광고나 차별 의식, 소비자 세뇌나 노동자 문제 등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들에 기분이 가라앉지만, 중간중간 삽화나 에피소드들에 폭소가 절로 터지기도 한다. 아무리 백 년도 더 전이라지만 99센트에 장난감 144개 한 팩이라니 장난감 부스러기만 포장한 건가? 할아버지 홈쇼핑 대실패의 추억엔 국경을 뛰어넘어 대공감. 그리고 어느 방면이든 오직 매니아에게만 귀하고 비싼 물건이 있기 마련이지만, 태생이 저렴한 물건을 사면서 그게 비싸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좀 놀라웠다. 과시를 하거나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려면 클래식카나 금괴를 사야되는 것 아닌가...이런 흐름을 이해 못해서 돈을 못 버는 건가 쩝.
"공짜는 현재의 소비를 자극했을 뿐 아니라 미래의 소비를 유도하는 관문으로도 기능함으로써, 어린 세대에게 자신들이 탐내야 할 것뿐만 아니라 어른으로서 탐내야 할 것을 훈련시켰다" 아, 씁쓸하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지만, 그 시절 과자 속 쪼그만 부록들로 얻은 기쁨은 느껴서는 안 되는 감정이었을까. 빵 안에 든 스티커들을 가지고 소소하게 즐거워하는 애들에게 크랩의 악영향을 가르치고 그런 거 사면 안 된다고 막아야 하는 것인가...관련된 사회적인 문제들은 알릴 필요가 있지만, 저가품을 사는 우리의 인생이 크랩이라고 생각하면 많이 슬퍼진다. 물론 그런 거 일절 사지 말라는 말은 본문에 없지만...재미있으면서 마음 매우 복잡해지는 가을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