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잼 미스터리는 현실에 있었더라
2025-12-09 07:06:24
아는 것이 적으니 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보고 '세상에 이런 일이!' 타령하는 건 일상이다. 이번에 좀 다른 게 있었다면 표지 보는 순간부터 스스로의 무지에 놀랐다는 것. 아무리 기계치라도 이름을 아는, 이 기술 격변의 시대에 아직도 움직이는 디젤 엔진의 발명자에 대해 아는 것이 이름 뿐이라니. 그리고 책 펴자마자 투척되는 미스터리에 경악과 함께 홀랑 넘어감. 희생자와 용의자들이 죄다 초유명인인 이런 사건을 몰랐다니!
사건 이전에 디젤 이 양반의 매력도 대단하다. 물론, 어디 천 페이지 평전 읽은 것도 아니니 여기 다뤄진 내용만으로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너무나 취향이라 어쩔 수가 없다. 역경을 딛고 성공한 천재에다, 미친 차별의 시대에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인류 전체의 연대에 대한 책까지 냈으며, 직원들에게는 관대하고 '고임금 지급은 선하고 합리적인 처사'라는 사고방식을 가진데다, 미래 기술 예측은 거의 예언자급...이 정도만 해도 차고 넘치는데 심지어 역사가 외모를 공인하기까지 하니 놀랄 노자다. 그에 비해 이젠 이름만 봐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빌헬름 2세...무슨 책을 봐도 언급되면 죄다 까는 내용인데, 책마다 새로운 까임거리가 더 추가되기까지 하니 다른 의미로 정말 인물이다. 한 세기 후 이국 독자에게까지 두통을 안기는 이 판단력 뭡니까. 여기에 록펠러의 피도 눈물도 없는 행보까지 믹스되니, 이미 결말이 정해진 드라마인데도 책장 넘길 때마다 침이 넘어간다.
좀 과몰입하다 보니, '가능한 이론들' 챕터의 마지막 문장에선 놀라 넘어갈 뻔. 앞뒤정황이 들어맞는다 해도 증거가 없으면 그냥 가설이지만, 이게 또 입맛에 착착 맞아 읽으면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한편으로는 이런 옛날 극비문서가 아직도 비공개인가 의아해서 검색하니, MI5 개인 파일은 그쪽 판단에 따라 무기한 비공개도 가능한 모양. 가설이 검증되는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아쉽지만 어쩌리. 아들이 썼다는 디젤 평전을 못 본다는 억울함은 남지만, 여러모로 즐거운 한 권이었다. 《연대》는 다행히 구텐베르크 페이지에 있으니, '그전에도 많았던' 내용이어도 관계 없고 구글 번역에 긁어서라도 꼭 봐야지. 디젤 오오 디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