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란책 리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2025-04-06 09:40:43
안 노란책 리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ㅡ 줄리언 반스
열심히 토니의 혼란스러움과 죄책감의 감정선을 따라 읽어 내려갔다가, 마지막 반전을 보고 다시 거꾸로 읽어 올라가야 했다. 오, 다시 보니 토니는 근 60년간 자기 멋대로 해석한 인생을 살아 오고 있었다. 안개처럼 희미한 그의 과거에서 비롯된 토니의 믿음, 토니의 배신감, 토니의 후회와 죄책감이 모두 한순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주인공 토니는 나만큼이나 사람에 대해 눈치가 없다.
말없이 먼산을 쳐다보는 여자친구 앞에서, 자신이 무슨잘못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서 찾아내서 적절히 사과해야하는 남자친구의 심정으로, 나름대로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내서 베로니카의 사정을 추리해보려고 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나의 모든 예상은 빗나가버렸다.
100쪽 정도 전에서 베로니카가 메일로 몇 가지 핵심적인 사실을 토니에게 정확히 써서 보내기만 했다면, 책이 많이많이 얇아졌을텐데… 라는 섭섭함이 있었지만, 이 아침드라마같은 사연들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베로니카의 심정도 너무 이해가 갔다.
그런데 베로니카는 왜 40년 후 에서야, 너무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마음을 참고 토니에게 다가갔던걸까? 내심, 이 사건에 제일 가까웠던 토니가 자신의 복잡한 인생을 이해해주기를 바래서였을까?
하지만 토니도, 독자인 나도 베로니카의 사연에 대해 전혀 이해 못했고.. 베로니카는 토니가 그 동안 자신의 ’뇌피셜‘만으로 잘만 살아 왔다는 사실에 어처구니 없고 진절머리나서 다시 떠나버린 듯 하다.
책을 읽고 나서 내 인간관계에 있어 크나큰 의구심이 찾아왔다.
어.. 걔가 연락이 서서히 끊긴 이유가.. 쟤가 나한테 자주 바쁘다고 한 이유가.. 내 개인적인 여러가지 사연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또한 그 반대도 마찬지가지로, 내가 왜 그녀석을 멀리 했는지, 왜 연락을 줄였는지 그 자식은. 평생. 절대. 눈치 못 채고! 반성없이! 잘 먹고 잘 살거라는 사실도! 나를 괴롭게 했다.
과연 모두가 눈치를 풀가동 해도 오해 없이 살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에 대한 판단은 빗나가고. 왜곡될것이다. 그럼 그 오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반성을 하는 것이, 대체 어디까지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오해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얼굴에 철판깔고 내 맘대로 막 살아도 되는 걸까? (그럼 나 자신은 정말 행복하게 잘 살 것 같지만..)
사람에 대한 판단과 진실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엇나가버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주변 인간관계 사이에서 느꼈다고 생각했던 사랑과 분노, 죄책감 등의 감정들이, 사실 인간관계랑은 별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는 게 아닐까 라는 무력감과 절망감이 찾아왔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감정과 판단은, 그냥 철학적으로 자명하게, 뇌피셜이다. 그런건가? 어쩌면 나는, 그 옛날 학생시절, ’쟨 그냥 싫은 애야‘ 라며 이유없이 다른 친구들을 괴롭혔던 무리들과 별 차이가 없었던 걸까?
우리 인간들 인생의 상당부분인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전부 뇌피셜이고, 관계의 실제에 다다르는 것이 정말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사람들을 보는 것이 확률적으로 ’윤리적 안전빵‘ 일 지도 모른다. 모두를 좋게 보았으니, 싫어한다고 오해해서 생기는 죄, 잘못 등이 그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사람 빼고 나만 이걸 실천하면 좀 억울한 느낌이 드는 건 비정상인걸까?
우리 인생은 전부 뇌피셜이라는 교훈은 뒤로 하고,
아직 내가 눈치가 없어서 잘 파악하지 못한 소설의 의문점이 하나 있다. 베로니카의 가족들은 대체 뭐였을까? 왜 엄마의 일탈을 음침하게 시험하고만 있었던 걸까?
베로니카 시점에서의 인생은 어땠을까?
베로니카 엄마 시점 에서의 인생은 또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