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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

서구인의 눈높이에서 서술한 재패니즈 판타지. 임진왜란 이후의 시대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가상의 역사. 왜 사람들이 이 시대에 매혹되는가 생각해봤는데 검과 총, 서양과 동양, 야만과 문명 등 모든 게 뒤섞여 모호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부분이 크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일본인 특유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혼네本音가 더해지면서 뒤틀리면서도 익숙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니카이도 후미가 <아이러브 유>의 황망한 연기가 아닌 정상적인 연기를 펼친다. 배우에게 망한 시나리오가 주어지는 건 삶을 피폐하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068. 대도시의 사랑법

며칠 전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를 우연히 읽다가 이 책까지 빌려보게 됐다. 심각하거나 슬픈 순간에 나오는 유머 때문에 피식피식 웃게 됐다. 그러다가도 이야기가 끝맺을 무렵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나와 정말 많이 다른 사람이지만,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 그게 정말 신기하고 재밌었다. 글을 읽다가 문득 작가가 궁금해져 유튜브 영상을 몇 개 찾아봤는데 책날개의 사진과 달리 굉장히 귀여우셨다 :))

대도시의 사랑법
대도시의 사랑법
한강공원 나들이

정명섭 작가님이 그믐 로고로 티셔츠와 모자를 만들어 깜짝 선물을 주셨다.

날씨 좋은 봄날, 한강공원에 놀러가서 새 옷 개시. 반팔티랑 모자 너무 예쁘다.

황금손을 가지신 작가님, 감사합니다!

문화일보에 월급사실주의 2024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서평이 나왔습니다.

문화일보에서 월급사실주의 2024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서평 기사를 써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책의 홍보 문구처럼 출근길에 읽다가 울지도 모르지만, 퇴근길에 다시 보면 웃을 수도 있다. 기억할 것은 한 소설 속 대사처럼 우리의 그 모든 매일이 “흔하다면 흔하고 이상하다면 이상한” 것이고, 혹독하지만 그래서 더 숭고하다는 것. 그렇게 믿어야 살 만해진다는 것이다.》

 

#월급사실주의 #월급사실주의2024 #인성에비해잘풀린사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1/0002635426?sid=103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 월급사실주의 2024
번역가의 인생책 함께 읽기 ③ 오프라인 북토크 안내

송은주 번역가와 <클라우드 아틀라스> 함께 읽기 오프라인 모임이 다시 열립니다.


그믐에서는 23년 4월부터 6월까지 <번역가의 인생책 함께 읽기> 시리즈를 세 번에 걸쳐 열었습니다. 그믐에서 책을 읽고 초콜릿 책방에서 직접 만나는 오프라인 자리까지 이어졌는데요, 마지막 모임이었던 송은주 번역가와 클라우드 아틀라스 함께 읽기 오프라인 모임이 당시 책방 사정으로 부득이 진행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열리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재공지 드립니다.


오프라인 모임 안내

-5월 11일(토) 오후 2시 <클라우드 아틀라스> 오프라인 북토크

-5월 11일(토) 오후 5시 <클라우드 아틀라스> 영화 함께 보기

-장소 : 초콜릿 책방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둘 중에 하나만 참여하셔도 되고 둘 다 참여도 가능합니다. 그믐 작년 모임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번 기회에 송은주 번역가님과 함께 새롭게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알아가실 분도 환영이라고 합니다.


보다 자세한 문의는 초콜릿책방 인스타그램 @chocobookcafe 또는 이메일로 일 chocobookstore@naver.com 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송은주 번역가와 <클라우드 아틀라스> 함께 읽기 그믐 모임 링크


지금 다시 계몽

'빈 서판’을 읽고 바로 스티븐 핑커의 최신작 "지금 다시 계몽Enlightment Now”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빈서판’의 내용이 설득력있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스티븐 핑커를 읽게 된 동기는 그의 진화 심리학, 특히 언어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었지만 ‘지금 다시 계몽’은 대단히 정치적 사회적 성격을 띠는 내용이었고 결과적으로 인문 및 사회 과학적 주제로 회귀하게 되었다.

근대 자연 과학의 성취와 함께 근대 서양 철학은 그 내용을 수용하며 새롭게 변한 세계관을 업 그레이드 하기에 바빴다. 당연히, 그 모든 과학적 발전이 근대의 사회, 정치의 형식과 내용을 규정지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스티븐 핑커는 영미권 대학의 인문, 사회 과학 분야의 위기에 대해서 그들이 과학의 성취를 간과 또는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인문 사회 과학과 자연 과학 간의 학제적 융합이 인문 사회 과학의 활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스티븐 핑커를 Public Intellectual(이걸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은 더욱 그런 사회적 명망에 걸맞는 내용인 것처럼 보인다.

책은 크게 3부, 2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계몽주의에 대한 개관, 2부는 계몽주의 내용과 전개 과정 등을 상술하고 있고 마지막 3부는 각 장 이성, 과학,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로 그의 계몽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빈 서판’이 좌파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면 “지금 다시 계몽”은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좌파급진주의뿐 아니라 특히 트럼피즘으로 상징되는 우파 포퓰리즘에 대한 공박이 주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역시 이 두터운 책을 그와 같이 정치적 내용이 전부인 것처럼 소개하는 것은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주 논거로 통계가 주로 사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최근의 데이터 사이언스를 반영하는 서물이기도 하다. 

먼저, 이 책을 읽으며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있어서 적어도 공적, 사회 정치적 영역에서는 과학이 우선권을 행사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더욱 동의하게 된다. 근대 사회를 추동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힘이 서양의 근대 과학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와 같이 종교가 과학의 틈새를 노리며 공격하는 게릴라식 전술로는 결코 과학과의 정규전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적 방법으로 神(신)을 논증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 궁색하며 전지 전능한 신의 입장에서도 굳이 그런 식의 인간들의 힘겨운 증명과 사투를 필요로 할 것 같지 않다. 종교가 과학과의 적대적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옹색한 이유는 그 제도적 종교의 기득권을 지키고 수익을 보존하겠다는 동기가 아니라면 근대의 과학적 성과들을 무시하는 혹세무민이란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의 시대정신은 종교를 지극히 개인적 주관적 영역으로 축소, 침잠하게 만드는 것으로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두 번째 나의 계몽은 '기후 위기’에 대한 관점의 변화다.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와 선사 시대의 빙하기 등은 인정을 해도 역사 시대에 와서의 기후 변화에는 다소 둔감했는데 독서와 정보가 늘수록 ‘기후변화’가 항상 역사의 변곡점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물론, 기후 변동은 인위적인건 자연적이건 인간 삶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설사 그것이 杞憂(기우)라 하더라도 음모론에 빠져서 허우적 대기 보다는 모든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인간의 선택으로 보인다. 물론, 서방의 일부 세력이 기후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인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스티븐 핑커는 거의 7만 명에 가까운 과학자들 중 단 4명만이 인간활동에 의한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의 주범이 아니라는 데이터를 제시한다.

또,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c;유전자 조작 농산물)는 수 많은 환경 단체들의 선전 선동과 다르게 결코 해롭지 않다고 계몽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봐도 그 화학식이 동일한데 그 탄수화물과 지질 등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 찰스 다윈은 자연계에서 생명이 탄생한 이래 끊임없는 변이를 통해 생물이 진화해 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환경 단체는 그 진화의 법직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어리석고 반과학적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또, 1950년대 이후 시작된 녹색 혁명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1960년 세계 인구가 30억 명 남짓이다. 2022년 세계 인구는 80억에 약간 못미친다. 만약 환경 단체의 주장대로라면 그 50억 인구를 절멸시켜야만 한다. 이와 같이 20세기 질소 비료, 유전 과학의 혁명은 한 세기만에 인류의 인구를 기하 급수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질소 비료도 조작된 것이며 인간의 주곡이 된 쌀과 밀 역시 인간 조작의 산물로 인류의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또 좌파들은 양 차 세계대전 등을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자기 파괴를 대표하는 표상으로 공격하지만 천연두 백신을 개발해 3억 명의 목숨을 구해낸 것과 같은 사실은 무시하거나 간과한다고 논박한다. 역사의 功過(공과)는 항상 공평하게 논의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은 언론의 부정적 기사에는 민감하지만 그 賞讚(상찬)에는 항상 인색하다. 언론 비지니스가 이런 인간의 본성을 간과할 리는 없을 것이다. 

스티븐 핑커의 논지가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 사회의 정치 경제적 양극화를 이 계몽주의의 부활로만 해결하거나 설득시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황은 선진 사회의 엘리트와 대중간의 갈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류 엘리트와 주변부 지식인 간의 대결이라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미국 사회가 우파 포퓰리즘에 지배되는 것처럼 한국 사회는 좌파 포퓰리즘에 압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좌파 엘리트들의 활약은 대단히 선정적이고 효과적인 반면 우파 엘리트들의 기생적 본성은 너무나 굼뜨고 게으른 것처럼 보인다. 

스티븐 핑커는 1950~60년대 미국의 평등 지수가 높았던 것은 전시라는 특수 상황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평화의 시기가 오면 불평등 지수는 당연히 증가한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이는 지극히 반계몽적 자가당착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티븐 핑커는 칼 야스퍼스가 말한 ‘軸(축)의 시대(The Age of Axis)처럼 계몽주의 시대를 인류 역사의 또다른 획기적 轉機(전기)라고 파악한다. 계몽주의 시대 이전의 십자가형, 거열형(車裂刑), 화형, 효수형, 팽형(烹刑) 등과 같이 잔악한 형벌이 모두 계몽주의로 인해 폐지되었다는 사실 등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선진국에서도 피지배 계급이 소위 추위, 헐벗음과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미국 1%의 부자들이 전체 GDP의 50%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인류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최초의 경험이다. 역사 속의 어떤 황제와 귀족들이 그 정도 규모의 부와 사치를 누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모든 편중이 그들의 유전자 로또 때문이라고 과학적 진보는 밝혀내고 있다. 이 “유전자 로또”와 “왕권 신수설”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렇게 심각한 불평등을 합리화할 수 없어 보인다. 사회의 모든 부와 권력을 독점한 전 근대의 왕정 혹은 전제정을 몰아낸 계몽주의와 현재의 상황이 뭐가 그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진보’는 불가피, 불가역적 진행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진보는 선택적으로 취사할 수 없을 것이다. 19세기 대중보다 21세기 대중은 정보도 교육도 더 많기 때문에 소련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했다고 해서, 자본주의 사회가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타협하고 베풀었던 모든 시혜를 거두겠다는 발상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밀턴 프리드먼의 ‘기본 소득’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7번 반복한 50년째가 되면 대희년이라고 해서 채무자들의 빚을 모두 탕감해주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가장 중요한 모멘텀으로 이승만과 조봉암이 협력한 “토지개혁”이 있었다.

스티븐 핑커의 “계몽주의”는 낡은 방법을 혁신의 대안으로 착각하는 잘못된 처방처럼 보인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는 고통을 수반하게 마련이라 누구도 쉽게 성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적응이라는 자연 선택의 논리는 국제 질서, 국내 정치 질서에도 여전히 적용 가능한 이론이다. 

‘생성AI와 인문 지식생태계’ 포럼에 참여했습니다.

 

‘생성AI와 인문 지식생태계’ 포럼에서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나오면 소설가들은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이야기들을 해봤습니다. 위의 링크는 제 발표 영상이고, 아래 링크는 장대익 선생님, 이준환 서울대 교수님과 함께 토론하는 영상입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g_wRka8448M

 

https://www.youtube.com/watch?v=9hf7tqot1sA

 

 


인터넷에서의 만남에 대하여.

얼마 전 SNS에서 몇 번 교류하던 중국인이 한국 지방도시를 방문하겠다는 포스팅을 올렸다. 나는 망설이다가 입국일 저녁이 되서야 만나지 않겠냐는 글을 보냈다. 그는 내 고민이 무색하게 흔쾌히 동의했다.


처음 만난 사이에는 말도 통하지 않았다. 내 영어 구사력은 중학교 수준에서 멈추었고, 그도 실전 경험은 부족한게 원인이었다. 다행히 몇 년 사이에 기계번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덕분에 어플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공통점이 찾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이 지역의 유적과 벚꽃을 구경하고 싶어서 한국에 찾아왔다고 밝혔다. 중국에도 벚나무는 있지만 한국만큼 많이 심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가지 놀란 것은 그는 우리의 생각보다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고등학교 때 잠깐 훑었던 책들이 아니었으면 자국사에도 관심이 없는 바보가 될 뻔했다. 하긴 그 정도 관심이 있으니 한국에도 올려고 하겠지만 말이다.


당연하겠지만 내가 본 중국인은 평범한 개인이었다. 인터넷에서 상상해왔던 중국인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과연 한국을 어떻게 봤을까? 그리고 한국인을, 그리고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건 알 수 없었다. 그저 나는 그에게 혹시 중국에 한국인이 찾아온다면 날 생각해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긴 밤
가장 어둡고 깊었던 그 밤을 버티고 몇 개월이 지났다. 놀랍게도 아프기 전보다 훨씬 건강하다. 얼마 전 그런 생각을 했다. 가장 힘들었던 그날 밤을 버티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면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깨고 싶을 때 깰 수 있지 않을까, 병원 복도가 아닌 풍경이 있는 곳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들의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예전처럼 통증 없이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병원에서 받는 스트레스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꼬리의 꼬리를 물었던 바람 끝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 일상에 대해 그리워했다면, 일상으로 복귀해선 오래도록 머물렀던 병원에서의 일이 잔상처럼 맴돌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간호사가 안부를 물었을 때의 당혹감. 주말과 공휴일에도 늘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던 의사가 어느 날엔 한나절 넘게 곁을 내주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고 느꼈던 감사함이 불쑥 불쑥 떠올랐다. 숨을 쉬기 위해 눈을 감고 몸의 힘을 빼기 위해 노력했던 때와 달리 퇴원 후엔 자꾸만 몸에 힘이 들어갔다. 툭, 툭 자신들의 방식으로 진심 어린 조언과 잔소리를 아끼지 않던 이들 덕에 안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재밌게 읽었던 책을 다시 보는 걸 좋아한다. 삶을 다시 살아내는 기분이랄까. 그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이면서 다른 이야기가 되는데 어느 땐 겪어본 경험이고, 어느 땐 예전엔 발견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겪게 한다. 느끼고 경험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경험은 좋은 사람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에도 도움을 준다.

이게 뭐지 싶게 가장 어리둥절하던 때. 생각지도 못했던 희박한 확률을 연속으로 거듭해 맞닥뜨렸던 날들에 그런 사람들을 만났다. 언제건 떠올려보면 감사한 마음을 들게 할 사람들. 시간이 지나 무뎌지더라도 분명 기억 저편에라도 남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들을. 병동을 이동할 때마다 그곳엔 꼭 좋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땐 간호사였고, 어느 땐 의사였다. 분명 당시에도 감사하다고 생각했는데, 퇴원하고 나서야 문뜩 생각이 떠오른다. 사람과 할 일에 치여 피로와 스트레스에 쌓여있어도 내 곁을 지키던 의사가. 수술 후 땀 범벅이 되어 나온 내 환자복 속으로 손을 넣어 바람을 일으키며 땀을 말려주던 간호사의 모습이. 그리고 나를 위험에 빠뜨린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큰 위험으로부터는 지켜줬을지 모른다는 말을 하던 이도. 모든 일에 A가 있으면 B도 있다. 잔소리와 걱정과 위로를 툭, 툭 시간날 때마다 던지고 가던 이로부터 그늘을 찾던 나도.

 

그리고 마침내 지금은 ‘그 밤’이라고 부르는 날을 맞았다. 가장 위험했던 밤이었다. 암사 체험이라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밤은 가파르고 신비했다. 그 밤을 지나 보내고 나서 나는 살아야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에는 확실히 야심처럼 보였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야심은 희망이 되고, 희망은 동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정말 우연히 나는 그 털모자를 떠올렸다.
털모자를 생각하면 어김없이 창피하다. 나는 왜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요는 그렇다. 그리고 그 때문에 여전히 괴롭다. 그 간호사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꾸러미를 받아 들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제때에 제대로 된 고마움이라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집어든 책에서 예전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확인했다. 아프기 전보다 더 단단해져 가는 과정이구나. 누군가 힘들 때 선뜻 자신의 곁을 내주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때 그 사람이 곁에 없었다면 우울 속으로 빠져들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했다. 회복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하는 다짐은 아프지 말자거나 절망하지 말자가 아니다. 아픔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내 아픔에 기꺼이 곁을 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때 그 사람이 곁에 없었다면 어땠을까. 불행한 상상보다 고마움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는 되새김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다만 신이 있다면 인간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을 살리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책을 다시 보는 걸 즐기는 것만큼 고마운 사람들을 반추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통해서 깨달았고, 책을 통해 정리했다. 너무 많이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건강해져야겠다.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시사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시사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미세 좌절의 시대』, 월급사실주의, 그믐, 그 외에 이것저것에 대해 횡설수설했는데 기자님이 잘 정리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박서련 작가님이 운영진으로 참여하셨던 문학 플랫폼 ‘던전’은 문을 닫은 걸로 아는데 기사에 조금 애매하게 표현됐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08/0000034776?s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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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여러분의 마지막 편지는 언제인가요?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안온북스, 2022) 읽기 모임
🍵 따스한 녹차처럼 깊이 있는 독후감
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 5월 7일 그믐달이 뜨는 날, 온라인 그믐밤 채팅 함께 해요.
[그믐밤] 22. 가족의 달 5월, 가족에 관한 책 얘기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1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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