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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나태주 시인)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시인)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먹어 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인)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주었다

  

삼백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쉬는 날 (김용택 시인)

쉬는 날

                - 김용택 

 

사느라고 애들 쓴다.

오늘은 시도 읽지 말고 모두 그냥 쉬어라.

맑은 가을 하늘가에 서서

시드는 햇볕이나 발로 툭툭 차며 놀아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시인)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강 (황인숙 시인)

                       ​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은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가을 ( 최승자 시인)

가을             

 

                                      최승자 시인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남편 (문정희 시인)

남   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어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반성 740 (김영승 시인)

반성 740 

                                                              - 김영승 

 

어둠-컴컴한 골목

구멍가게 평상 위에 난짝 올라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옛날 돈 2만원 때문에

쫓아다니며 내 따귀를 갈기던

그 할머니가

어떻게 나를 발견하고 뛰어와

내 손을 잡고 운다 

 

머리가 홀랑 빠졌고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고……

나도 그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맥주까지 마시니 돈 좀 생겨지나 보지 하면서

웃는다 

 

이따가 다른 친구가 올 거예요 하면서

나도 웃었다  

조등이 있는 풍경 (문정희 시인)

조등이 있는 풍경

                                          ㅡ 문정희

이내 조등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80세까지 장수했으니까.

우는 척만 했다

오래 병석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죽었다.

내 엄마, 그 눈물이

그 사람이 죽었다

저녁이 되자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내가 배가 고파지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내 위장이 밥을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 갖다 준 슬픈 밥을 못 이긴 척 먹고 있을 때

고향에서 친척들이 들이닥쳤다.

영정 앞에 그들은 잠시 고개를 숙인 뒤

몇 십 년 만에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니, 이 사람이 막내 아닌가? 폭 늙었구려."

주저 없이 나를 구덩이 속에 처박았다

이어 더 정확한 조준으로 마지막 확인 사살을 했다

"못 알아보겠어.

꼭 돌아가신 어머니인 줄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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