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인간이 가장 오래 고민해왔지만 여전히 대답을 얻지 못한 문제인 듯 하다. 인공지능의 출현이 오히려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것처럼, 혹은 인류 역사상 다른 인종은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때가 있기도 했던 것처럼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명쾌하기가 대답하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변화(물리적이든 생각의 측면에서든)에 준비해야 한다고 느끼는 중간자들이 이렇게 책이나 영화나 혹은 학술적으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증오하는 것들이 처음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면, 더 멀리까지 올 수 있다고."(p424)하는 글처럼 '우리'와 다르다고 증오하고 배척하는 그 무엇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부라는 받아들여보자는 뜻에서 말이다.
바둑을 사랑하는 기자의 바둑 에세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관전하며 생각하고 느낀 내용이 3분의 2 정도 되고, 바둑에서 배울 수 있는 리더십과 삶의 자세가 나머지 3분의 1 정도다. 이 9단이 5국 때 멋지게 이기고 싶어 과욕을 부렸다고 분석한다.
조선 선비들은 인격적 귀신을 부정하는 듯했지만 기록도 여럿 남겼고 나름의 귀신론도 몇 가지 펼쳤다. 조선시대 귀신 설화와 담론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지만 연구자인 저자가 현대 한국에서 보고 들은 굿과 무속인 이야기도 재미있다.
82년생 김지영이 우리 시대에 남긴 가장 큰 흔적은 무엇일까? 한국에서만 100만부가 넘게 팔렸는데도 저자의 다른 책이 주목받거나 저자를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없는걸로 봐서는 82년생 김지영이 문학적으로 성취가 뛰어난 책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우리들에게 남긴 최대의 가치는 책의 내용이 아니라 책 자체가 있다고 본다. 하필 이 책이 출판되던 시기는 젠더 문제, 특히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하던 시기였기에 평생 책이라고는 읽지 않은 남성들이 책을 읽고 분노에 차서 리뷰를 올리며 독서 인증을 하는 평생에 다시 보기 힘든 진풍경을 가질 수 있었다.(가끔 책을 읽지도 않고 분노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인신공격 외에는 더 언급할 말이 없다.)
그리하여 82년생 김지영은 일종의 르네상스를 만들어서 한국 남성들에게 서적도 하나의 컨텐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서점을 훝어보다가 82년생 김지영의 남성 버전의 책을 두 번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런 시도는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시도들은 조남주의 사회참가적 시도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훌륭하지도 않은 글솜씨마저도 그대로 이어받아서 원작 그 이상으로 재미없다는 느낌 외에는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느낌은 그렇게 남아있지는 않다.
더욱이 이런 참가자들은 대부분 불편한 진실을 모른채 뒤늦게 뛰어든 상황이었다. 즉 어떤 컨텐츠가 유행했을때에는 이미 그 컨텐츠는 몰락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사실 그들이 그런 책을 출판했을 때에는 이미 김지영은 불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이미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제 슬슬 다른 컨텐츠를 찾아야할 시기에 그들은 외롭게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에서 존재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말았던 것이다.(오프라인 독서모임이나 관련 행사를 참가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독서란 기본적으로 여성이 다수인 행사다. 독서에 평소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20~40대 남성 독자란 그렇게 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텐데!)
물론 어쩌면 이 모든 것이 82년생 남성 작가들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외면을 통해서 남성들은 여성 작가에 비해서 철저히 외면받는 사실을 고발하려는 자기희생같은 것 말이다. 허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고도의 장치를 하려는 사람이었다면 기껏해야 자기 마음에 안드는 책 한 권이 인기를 끄는 것이 불편하다고 불판에 뛰어드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은 이제 어느샌가 신간들의 홍수에 빠져서 우리들에게 더 이상 그렇게 기억되지는 않는 책이다.(알라딘,yes24 중고서점에 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에 대한 옹호과 비판에 대해서 쓸데없이 말하고싶지는 않다. 그러나 긍정적인 영향은 모호하고 모두에게 가상의 아픔과 과장된 아픔을 만들어낸 작품이 과연 미래에도 가치있게 평가될 수 있는지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84년에 태어난 김지영과 김지혁은 부디 젠더 문제에 대한 아픔이 없는 시기이기를 빌며 이만 줄인다.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읽다 보면 조금이라도 반드시 기분이 좋아지는 책’으로 분류하고 싶다. 아주 예쁜 책이기도 하고. 소설, 술, 삶은 모두 적당히 즐기기에는 괜찮은 것들 같다.
‘베이커가 특공대’로 일했다는 혼혈 소년과 어린 시절의 김내성이 평양에서 만나 함께 사건을 수사한다는 설정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 소설가 소설이자 메타픽션이기도. 주석까지 다 읽어야 한다. 윤해환은 조영주 작가의 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