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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꾸다 (상)

내 이름은 김혜정. 부모님 아니, 할아버지인가? 위 세대 중 누군가가 지어 주신 이 이름으로 사십 년 넘게 잘 살아왔다.

내 친구들의 이름은 선영, 희진, 미정.

우리 엄마들의 이름은 은숙, 현옥, 영숙.

나와 내 친구들의 이름은 우리의 엄마들이 당시 나름 예쁘고 세련되다고 생각했던 이름을 고르고 고른 것일 터다. 70년대엔 혜정, 미진이 요즘의 서윤, 하율이었다.


‘김혜정’은 무난하기 그지없고 어느 무리에서든 튀기 싫어하는 나에겐 찰떡이었다. 누구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묻어가기 좋은 이 평범한 이름이 마뜩잖아지기 시작한 것은 내가 ‘그믐’이라는 독서모임 플랫폼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인터뷰를 비롯 그믐을 알리고자 하는 모든 활동에서 나의 이름은 실로 존재감이 없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 이름은 그 어떤 인상도 남기지 못한다. 뒤돌아서면 0.5초안에 까먹게 되는 이름이랄까?

인터넷에 검색하면 수많은 혜정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역시나 이름 때문인지 딱히 도드라지게 기억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전원일기에 오랫동안 출연한 배우 한 분 정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한 게 분명한 김민정 시인은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이름을 김민쟁으로 바꿨다. 위트있게 '정'을 '쟁'으로 살짝 바꿈으로써 뇌리에 박히는 이름이 되었고 '쟁이'라는 발음을 통해 전문가 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면 나도 김혜쟁? 흠. ㅖ와 ㅐ가 발음이 비슷하여 민쟁처럼 귀엽게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바꿨다간 그냥 따라’쟁이’라고 놀림만 받을 것 같다. 


새하얀 A4지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름을 네임펜(!)으로 적어보았다. 유명인의 이름을 흉내도 내보고 어렸을 적에 예쁘다고 동경했던 이름도 떠올려 보았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쓸 법한 힙한 이름들을 적어보니 쇼미더머니 다음 시즌 참가자명 같은 것들이 몇 개 나왔다. 세 글자 이름은 평범하니 외자 이름이나 네 글자 이름은 어떨까? 성이 김이라 너무 흔하니 아예 성을 바꾸고도 싶다.

좋은 이름을 생각해 내기 위한 시작한 브레인스토밍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온갖 잡념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정신 차리고 A4지를 보니 이름 후보에 김치와 김밥까지 올랐다.


오늘은 이만 하자.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 스티브 존슨

극단 앞에서 예술이 탄생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지. 처음 쇼스타코비치를 기억하던 교향곡 2번과 더불어 드레스덴의 현악 4중주가 좋다. 팽팽하게 당겨진 현을 끊임없이 학대하는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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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를 듣는 우울증 환자는 드물겠지만 작가는 그의 날선 삶과 음악이 주는 위안을 말한다. 도착적 세계 속의 자신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보편 속에 억지로 묻어 넣으려는 시도가 아니라, 함께 노래해도 개별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 합류하고 싶은 합창단을 찾을 것까지야 없지마는, 있다는 사실은 알아야 한다.

유대감
유대감
<행복의 나락>, 스콧 피츠제럴드

개츠비의 파편들. 어쩌면 피츠제럴드의 것이겠지?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고 잡을 듯, 혹은 잡은 듯했지만 결국 놓치고 마는 패턴이 참.. 허무하다기에는 텅 비지만은 않았고, 허전하다기에는 잃은 걸로 끝은 아니고. 결국 쓸쓸 하달 수밖에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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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수만 누리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가장 빛나는 것만 골라내고 어차피 그중 탁한 것이 눈에 띄기 마련이니까. 록산처럼 젊은 날의 사랑만으로 인내할 수는 없겠지만, 맑은 곳에서 침잠을 생각하기보다는 때마다의 흐름에 몸을 맡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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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번역을 왜 이렇게 했을까? (영알못 주의) lees는 오크 통에 남은 와인 찌꺼기 같은 거라는데, 아무리 부정적으로 생각해도 나락보단 그림자나 덫 정도? 하긴 문학적으로는 나락이 멋지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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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덩이에 엉켜들었던 세월이 있다면 서로를 풀어내도 자국은 남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벗은 허물은 다시 주워 입을 수 없고. 우리는 몸 어디에 조금씩 남은 더께를 상흔이거나 추억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겠지.

"오래
"오래
<여자들의 왕>, 정보라

아주 다른 방식의 Happily Ever After.

정보라 작가 책은 단순하게 읽어도 재밌고, 레이어를 떼어 살펴보면 더 재밌다. 의외로 전자가 어려운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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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도 저쪽도 나름의 사연이 있다고 주장하는 일은 피로가 따라온다. 회색분자 같은 유치한 말은 무시해도, 명확한 입장이 없다고 보이는 일은 괴롭지. 양시론의 수렁 앞에서 분명한 설득이 보이는 글이다.

여자들의 왕
여자들의 왕
23-037 |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

문학과지성사 (231003~231005)


❝ 별점: ★★★★

❝ 한줄평: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갈망

❝ 키워드: #소나티네 #살인 #죽음 #욕망 #일탈 #술 #목련 #바다 #정원 #석양 

❝ 추천: 판에 박힌 권태로운 삶에서의 비밀스러운 일탈이 궁금한 사람


❝ 목련꽃은 오늘 밤 활짝 필 것이다. 그 여자가 항구에서 오는 길에 꺾어 온 것을 빼놓고는. 시간은 이 잊힌 꽃봉오리 위로도 한결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


🎼 첫 문장: “악보 위쪽에 뭐라고 써 있는지 읽어볼래?” 피아노 선생이 물었다. (p.7)


📝 (23/10/07)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여름밤 열 시 반』을 읽은 후 바로 이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집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조금 더 좋았다.


  결혼한 이후 아이를 낳고 안주인 노릇을 하며 10년 간 판에 박힌 듯한 일상을 살던 안 데바레드는 집과 반대편, 시끌벅적한 부둣가 근처에서 아이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하는 작은 일탈을 감행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이를 죽인 남자를 목격하게 되고, 절대적 사랑을 갈망하게 된다.


  라메르가의 저녁 만찬 장면을 담고 있는 7장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주인마님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으나 어딘가 매우위태로워 보이는 안 데바레드와, 상상인지 실제인지 모르지만 라메르가의 집 밖에서 배회하며 정원과 바다를 번갈아 바라보는 쇼뱅의 모습이 교차되고 목련꽃이 ‘한 시간 만에 한여름을 겪어낸’ 듯 완전히 시들어버린 모습이 그녀가 갈망하던사랑이 불가능해졌고, 그 저택에서 앞으로도 판에 박힌 삶을 살며 시들시들해져 갈 것임을 암시하는 듯해서 서글퍼지기도 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뜻은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라고 한다. 안과 쇼뱅의 만남을 잘 설명하는 듯하다. 그들의 만남은 결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그저 일상에서 흘러가는 속도대로 진행되고, 안의 아이가 연주하는 소나티네가 책속에서 계속해서 배경음으로 흐른다.


  쇼뱅과의 마지막 만남 후 ‘그날의 종막을 고하는 붉은 노을 속’으로 사라진 안 데바레드. 안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까? 아니면 이미 죽은 마음으로 라메르가에 못 박힌 채 멍하게 살아갈까? 그것도 아니면 죽은 여자처럼 자신을 사랑해서 죽일누군가를 다시 찾아  나설까? 석양의 아름다움보다 석양의 씁쓸함과 고독함을 더 많이 느낀 뒤라스의 소설 두 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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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 도시에서 바람이 그치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게 사실입니다. 전 벌써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안 데바레드는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다.

  “죽은 다음에도 그 여자는 기쁜 듯 미소 짓고 있었어요." 여자가 말했다. (p.59)


| 그 여자는 소나티네에 귀 기울였다. 아이가 빚어내는 음악이 세월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그녀에게로 오고 있었다. 그걸들으면서 기절할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p.72)


| 그 여자는 이번에도 그것을 알고 있다. 가슴 사이에 꽂은 목련꽃은 완전히 시들어버렸다. 한 시간 만에 한여름을 겪어낸것이다. 사내는 곧 정원을 지나쳐 더 멀리 갈 것이다. 그가 지나갔다. 안 데바레드는 가슴에 꽂은 꽃을 비틀어대는 끝없는몸짓을 계속하고 있다. (p.101)


| 안 데바레드의 신음 소리가 다시 흘러나와 더 커졌다. 그녀는 다시 손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는 여자의 행동을 눈으로 좇다가, 결국 고통스럽게 알아차리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손을 들어 그 여자 손 위에 포개놓았다. 그들의 손은 너무도 차가워서 오직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 속에서만 환각으로 서로 스쳐 갔다. 지금과 같이 소망 속에서 말고는 달리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들의 손은 죽음의 포즈로 굳어진 채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그러자 안 데바레드의 신음 소리가 그쳤다.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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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토 칸타빌레
모데라토 칸타빌레
23-036 | 마르그리트 뒤라스, 여름밤 열 시 반

문학과지성사 (231003~231003)


❝ 별점: ★★★★

❝ 한줄평: 나의 것이 아닌 사랑을 좇을 때의 공허함

❝ 키워드: #여름 #살인 #소나기 #폭풍우 #서늘함 #지붕 #기다림 #침묵 #술 #밀회 #새벽 #태양 #잠

❝ 추천: 사랑의 강렬함과 서늘함을 동시에 느끼고 싶은 사람


❝ 밤 열 시 반. 그리고 여름.

   그러고 나서 약간의 시간이 흐른다. 드디어 밤이 찾아 온다. 그러나 오늘 밤 이 마을에는 사랑을 위한 장소는 없다. ❞


⛈️ 첫 문장: “그의 이름은 파에스트라예요. 로드리고 파에스트라.” (p.7)


📝 (23/10/04)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여름밤 열 시 반. 여름의 어느 달인 지에 따라 강렬한 태양열이 남아 후덥지근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기온이 높지 않아서늘한 바람이 불기도 하는 시간. 이 소설은 그런 변덕스러운 여름의 강렬함과 서늘함을 모두 담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살인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살인은 전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소설은 철저히 마리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마리아는 왜 그렇게 ‘폭풍우 속의 살인자’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구해서 프랑스로 데려가고 싶어 했던 걸까? 어쩌면 자신처럼 이미 끝나버린 사랑을 마주한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걸까?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자신과 같이 공허함을 느끼고 그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무언가를 잊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다리기 위해서인지, 혹은 무언가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인지 마리아는내내 술을 마신다.


  기다림, 그리고 침묵. 마리아는 자꾸만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에르와 클레르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또 로드리고 파에스트라, 피에르 모두 상대가 대답을 하길 원할 때 침묵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다림과 침묵은 오히려 긴장감을 계속해서 고조시킨다. 


  하루 사이에 참 많은 일이 벌어졌다.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죽인 두 사람의 시신이 발견된 후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한 저녁 무렵부터, 피에르와 클레르가 비밀스럽게 사랑을 속삭이는 밤, 마리아가 지붕 위의 남자가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임을 확인한 한밤, 그를 차에 태워 마드리드행 국도를 달려 밀밭에 내려두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새벽, 비몽사몽으로간신히 돌아온 호텔에서 잠을 청한 후 맞은 아침, 총으로 자살한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마주하게 된 정오, 마드리드로가는 길에 들른 파라도르에서 결국 피에르와 클레르가 사랑을 나눈 오후, 그리고 마드리드에 도착해 마리아가 피에르에게 그들의 이야기의 끝을 고하는 저녁. 변덕스러운 여름만큼이나 변화무쌍했던 하루의 이야기. 영원한 사랑이란 없는 걸까? 인간은 은밀하고 금지된 사랑에 대한 욕망을 참을 수 없는 걸까? 공허하고 권태로운 마리아의 마음이 전달되어 씁쓸하고 서늘한 여운이 남는다.


———······———······———


| 빗줄기는 가벼워졌지만, 빈 지붕이 비에 젖어 있는 모습만 보일 뿐 마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않는다. 남아 있는 것은 꿈에 그리던 고독의 추억일 뿐이다. (p.24)


| 진흙과 밀 냄새가 복도로 흘러 들어온다. 호텔도, 마을도, 로드리고 파에스트라와 그에게 살해된 사람들도, 베로나에서의 사랑의 하룻밤, 그 마르지 않는 그러나 너무나도 공허한 추억도, 그 냄새 속에 잠겨 있다. (p.53)


| 그녀는 구역질이 날까 두려워 너무 깊이 숨을 쉬지 않는다. 분명 새벽에 마신 코냑의 마지막 한 모금 탓이다. 끊임없이억누르지 않으면 안 되는 흐느낌처럼, 그것은 목구멍 밑에서 치밀어 올라온다. (p.97-98)


| 그들은 길 한복판에서 서로 마주 선 채 움직이지 않는다. 이 사건에 결말을 낼 말이 상대에게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한마디는 누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피에르는 마리아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부른다.

  "마리아." (p.135)


| 마리아는 다시 눈을 감는다. 일이 벌어질 것이다. 30분 안에, 또는 한 시간 안에. 그렇게 되면 세 사람의 애정 관계는 역전될 것이다.

  이번 일만은 확실히 알아두고 싶어진다. 그녀는 자기도 조명을 받을 수 있도록, 베로나에서 어느 날 밤 그녀 자신이 직접그 관계를 만들어낸 그날 이후 그녀가 그들에게 남겨 준 세상에 자기도 입회할 수 있도록, 두 사람 사이에 진행되는 사태를 보고 싶은 것이다.

  마리아는 자고 있을까? (p.152)


| 쥐디트는 자고 있다. 클레르와 마리아는 각각 다른 밤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피에르의 머리에 베로나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와 아내의 방문을 두드린다. 그는 죽어버린 애정을 되살리고 싶다는, 억누를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 마리아의 방에 들어서자 그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애정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 그가 미처 몰랐던것은 그로 인해 야기된 마리아의 외로움, 오늘 밤 그녀로 인해 야기된 그 자신의 미안함,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이 슬픔이얼마나 매혹에 찬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마리아."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아줘." 그녀가 말한다.

  그녀가 몸에 뿌린 향수는 그녀 자신에 대한 그녀의 절대권,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떠나간 그의 배반, 그녀에 대한 그의 동정심, 이런 것들을 담고 있는, 다시없이 소중한 향수였다. 즉 그녀는 사랑의 종말을 예고하는 향기를 몸에 묻히고 있었던 것이다. (p.168-169)


| "어떡하면 좋지?” 그녀가 묻는다.

  "당신은 내 삶이야." 그가 말한다. "한 여자의 단순한 새로움 같은 걸로 내 마음은 채워지지 않아. 당신 없이는 살아갈수 없어."

  "우리 이야기는 끝났어." 마리아가 말한다. "피에르, 이젠 끝났어.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이야."

  "아무 말 하지 마."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피에르, 이젠 끝났어." 피에르는 그녀 쪽으로 다가가서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싼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겁을 내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언제부터?”

  "방금 깨달았어. 어쩌면 오래전부터 그랬는지도 몰라." (p.170)

여름밤 열 시 반
여름밤 열 시 반
738.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애덤 니컬슨)

 아주 강렬한 문학 에세이.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영웅들을 깡패 집단으로 분석하는데, 이는 결코 『일리아스』에 대한 폄하가 아니다. 『일리아스』는 실제로 야만적인 남자들이 벌인 전쟁에 대한 매혹과 환멸의 기록 아닌가. 저자 자신의 강간 피해 경험을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그저 얼얼할 뿐. 서사시가 어떻게 구전됐을지 추측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 문학의 기원, 문명의 효시, 인생의 통찰을 찾아 떠나는 지적 여행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 - 문학의 기원, 문명의 효시, 인생의 통찰을 찾아 떠나는 지적 여행
737.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팻 바커)

 주인공이자 화자는 브리세이스. 연달아 읽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아킬레우스의 노래』와 비교하게 됐다. 나는 이 작품이 더 좋았다. 이 소설에서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보다 어른스럽고 그 슬픔과 분노, 당혹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인간들이다. 브리세이스는 말할 것도 없고. 전쟁도 더 진짜 같다.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26. 끝없는 이야기 (미하엘 엔데)

 지난 회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소개하며 예고한 대로 이번 회 벽돌책은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다. 똑같이 책에 대한 책이고 환상의 세계가 배경인데,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반면 『끝없는 이야기』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보다 복잡하게 얽힌다.

 짧게 줄거리를 요약하면, 책을 읽다가 읽던 책 속으로 들어가 등장인물들과 함께 모험을 벌이는 소년 이야기다. 약골 청소년이 다른 세계에 가서 초능력으로 ‘깽판’을 치는 소원성취 오락물의 쾌감도 담뿍 담겨 있다. 그런데 뒷부분에서는 꼭 그 반대인 주제를 다룬다. ‘픽션에 빠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늘 좋은 일인가, 허구와 현실은 어떤 관계여야 하나’를 진지하게 묻는다. 어떻게 보면 다독가, 애서가를 이렇게 추켜세우고 동시에 이렇게 신나게 놀려대는 소설도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베르톨트 브레히트나 2차 세계대전 뒤 누보로망을 주창한 프랑스 작가들과도 닿아 있지만, 엔데의 소설은 청소년 독자의 눈높이를 유지하면서 여러 층에서 감동적인 서사를 풀어 간다. 국내 번역서를 펴낸 비룡소의 박지은 편집장은 “한 소년이 환상 세계를 구해가는 영웅담이자 치유의 이야기이고 한편으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1984년 영화 《네버엔딩 스토리》는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흐뭇하게 추억하는 작품이다. 주제가도 인상적이고. 그러나 소설의 앞부분 절반만 다루기에 원작의 심오한 고찰은 빠졌다. 엔데가 자기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영화 제작자들을 공개 비난한 것도 이해가 간다.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이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 속의 책을 계속 언급하고 묘사하는 구성이므로 편집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들고 있는 책이 바로 그 책 속의 책이라는 느낌을 독자에게 줘야 하므로. 표지와 디자인, 레이아웃에 공들인 비룡소 번역본은 그런 점에서 아주 흡족하다. 비룡소에서도 처음에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세 권으로 나눠 발간했다가 2003년에 소설 속에서 묘사된 것처럼 한 권으로 합쳤는데, 역설적이게도 700쪽이 넘는 두께가 된 뒤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이 번역했다.


끝없는 이야기
끝없는 이야기
'성북구 한 책 비문학' 최종후보도서 작가와의 만남이 열립니다.

지난 7월부터 9월 말까지, 그믐에서는 성북구 한책 비문학 최종후보도서 4권을 함께 읽는 책 모임을 진행했어요.


▷ 관련 공지사항 : [성북구립도서관x그믐]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최종 후보 도서 4권이 선정되었습니다. 


10월에는 최종후보도서 작가님들과 직접 만나는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있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일정순


① <에이징 솔로> 김희경 작가와의 만남 ( ▷신청 링크)

일시 : 10월 6일(금) 저녁 7시 30분


②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이인규 작가와의 만남 ( ▷신청 링크)

일시 : 10월 7일(토) 오전 10시 30분


③ <동물권력> 남종영 작가와의 만남 ( ▷신청 링크)

일시 : 10월 12일(목) 저녁 7시 30분


최종후보도서 중 한 권인 <같이 가면 길이 된다>를 쓰신 이상헌 작가님과의 만남은 지난 8월에 있었어요, 스위스에 살고 계신 작가님이 잠시 한국에 오셨을 때 강연을 하고 영상으로 촬영했습어요. 10월 20일 성북문화재단 유튜브 채널( ▷채널 링크) 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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