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변에 위치하지 않은 작은 가게는 누군가의 소개가 없으면 알고 가기 어렵다. 나도 덕분에 방문했는데 가게의 조명도 좋고 음악도 좋고 메뉴도 재밌다.
'소금과 다시마' 라는 이름도 독특하다. '다시마'가 들어간 메뉴가 많았다. 거의 전 메뉴에 소금은 들어갔을테고 : )
주문한 음식 셋 중에 사진에 나오지 않은 콘부파스타가 제일 맛있었다.
가끔 6, 70년대의 서울 사진을 볼 때마다 대체 우리 나라는 어떻게 이런 단기간에 변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지곤 한다. 정부 주도의 밀어붙이기식 계획이나 근면한 국민성 영향도 있었겠지만 다른 나라들이 안고 있는 인종, 민족 갈등이 없어서 모든 에너지를 경제 성장에만 올인할 수 있었던 덕이 엄청 크지 않았을까. 미국이나 유럽이 겪는 인종 갈등, 인도나 동남아, 아프리카의 민족 갈등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면 전쟁 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 같다.
미국에서 생활해 본적이 없는 터라 미국이라는 나라가 안고 있는 그 다양성, 그 안에 내재된 미묘한 갈등은 간접적으로밖에 알 수 없는데 모처럼 이 책을 통해 미국 사회의 모습을 조금 더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재미나게.
500페이지라 적은 분량이 아님에도 가독성이 워낙 좋고, 고작 500페이지 뿐인데도 책 속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꽤나 방대하다. 인종, 계급, 도덕, 윤리.. 그리고 선택들.
다양한 주제를 여러 사건들과 함께 펼쳐 놓았음에도 각 사건들이 모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70년대부터 90년대 후반의 시대 분위기 (가령 클린턴 스캔들 당시 미국 고등학교나 10대 사회의 분위기) 도 잘 느껴져서 한 편의 소설이 아니라 여러 편의 영화나 소설을 본 느낌이다. 그것도 전혀 복잡하지 않고 아주 재미난 추리 소설 + 성장 소설 + 사회고발 소설 +@
무엇보다 동양인에 대한 편견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하구나 싶어 놀랐고 (어쩌면 2023년인 지금도 여전하겠구나),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에두르지 않고 정공법으로 표현한 작가의 선택도 마음에 들었다. 어떤 대사들은 '이걸 진짜 말로 한다고? 그리고 이걸 작가가 대사로 썼다고?' 싶어 당황한 부분도 있는데, 개인적으론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을 더욱 마음에 들게도 했다.
등장 인물들의 선택에 모두 공감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들 것 같다.
이만큼 다양한 주제를 전혀 서걱거림 없이 재미나게 쓸 수 있다면 우리 나라 장편 소설에선 과연 어떤 주제들을 다룰까.. 2020년대의 지금이라면 세대갈등, 젠더 갈등, 그리고 수저론이 담겨 있으려나...
p.104
미아는 거절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거절은 상황을 악화시켜 악감정에 이르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선한 행동으로 믿고 그것을 행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보통 그들을 만류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아는 알았다.
p. 179
부모에게 자식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장소, 일종의 나니아 왕국처럼 지금 사는 현재와 기억 속의 과거와 갈망하는 미래가 한꺼번에 존재하는 광할하고 영원한 장소였다. 부모는 자식을 볼 때마다 그런 곳을 볼 수 있었다. 3차원 입체 영상처럼 자식의 얼굴에 겹쳐지는 아기 적 모습과 어린아이가 되었을 때의 모습과 다 커서 어른이 될 모습을 동시에 보았다.
p.361
"이 일을 생각하면 늘 슬플 거야. 하지만 그게 네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뜻은 아니야. 그저 네가 마음에 간직해야 하는 뭔가일 뿐이지."
p.407
자신은 여자아이들이 반할 유형이 아니었다. 하지만 트립이라니, 그 점은 용서할 수 없었다. 깊고 맑은 호수로 알고 뛰어들었다가 그것이 무릎까지 차는 얕은 연못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 같았다.
p. 457
미아는 잠시 펄을 안고 가르마에 코를 묻었다. 이렇게 할 때마다 펄에게 나는 똑같은 냄새를 맡으며 위안을 얻었다. 문득 미아는 펄에게 집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집은 장소가 아니라 언제나 자기가 곁에 데리고 있는 이 작은 사람이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