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스포일러 주의)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중후반 난데없는 '쌍둥이' 설정은 좀... 작가가 뒷감당이 안돼 도망가는 느낌이 들 정도인데, 차라리 다중인격으로 가는 편이 낫지 않았을지. 그래서 개개의 심리를 더 파고들다보면 완벽한 살인 알리바이에 닿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상자' 이야기는 인상적이지만, 결국 해피엔딩에 닿는 건 조금 작위적이라는 느낌. 참고로 '스켈리튼 키'는 여벌 열쇠라는 의미.
<데미안>보다 <수레바퀴 아래서>나 <크눌프>로 기억되는 작가와의 거리감을 확 당겨준 책. 워낙 다독가였고 또 언론 칼럼을 통해 많은 리뷰를 남겼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방대한 분야와 목록의 일부를 보여주는 책을 읽다보면, 관심 리스트가 확 늘어난다. 아래는 새로 찾아보려는 책들(연도는 리뷰연도).
- <안데르센 동화> 안데르센, 예나 디더리히스 출판사, 전 4권, 1910
- <단식술사> 프란츠 카프카, 베를린 슈미데 출판사, 1925
- <감정교육> 귀스타브 플로베르, J. C. 브룬스 출판사, 1905.
- <모름의 앎에 대하여> 니콜라우스 쿠사누스, 1920.
- <특성 없는 남자> 로베르트 무질, 1931.
- <현혹> 엘리아스 카네티, 1936.
- <대화 論語> 공자, 리하르트 빌헬름 엮음, 예나 디더리히스 출판사,
이 시인의 또다른 전공이 미술사학임은 몰랐다. 솔직히 예술 쪽은 논문쓰듯 정색하는 전공자보다, 살짝 다리를 걸치거나 관심 많은 비전공자, 특히 문학가가 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처럼 문외한에게는 특히. 작가가 갤러리, 미술관 등에서 교양강의한 것을 묶어서인지, 역시 편하게 읽히고 심지어 10여점 꼭 찾아가서 보고 싶은 그림도 생겼다.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 <티티우스> 미켈란젤로, 1533, 윈저 왕실도서관
- <나의 책> 폰토르모, 1554~1556, 피렌체 국립도서관
- <뒤돌아보는 미인> 히시카와 모로노부, 17세기, 도쿄 국립박물관
- <오달리스크> 들라크루아, 1845~1850,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미술관
- <세탁부> 도미에, 1860~1861, 뉴욕주 버펄로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
- <9월 5일의 구름> 컨스터블, 1822,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미술관
- <흰 구름, 파란 하늘> 부댕, 1859, 옹플뢰르 부댕미술관
- <레이디 릴리트> 로제티, 1867,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 <목이 긴 병> 에밀 갈레, 1898, 일본 요시미즈츠네오 컬렉션
- <입맞춤> 브랑쿠시, 1909, 파리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 <빛의 제국> 마그리트, 1954, 브뤼셀 벨기에 왕립회화관
- <햇빛 속의 여인> 호퍼, 1961, 뉴욕 휘트니 미술관
- <가을의 호랑이들> 피슬, 1980, ???
최은영 작가로는 두번째 읽는 책. 역시 소설집. 책 끝 강지희 평론가의 해설 제목 <끝내 울음을 참는 자의 윤리>처럼, 입술을 꽉 깨물며 굳어 있는 사람을 쳐다보는 느낌이다. 감정의 속도 차, 좀 더 솔직히는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게 당황스럽다. 기질과 기호의 차이일수도, 세대나 성별의 문제일수도. 여튼.
예전에 어느 작가의 말이 ‘글이 착하다’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대략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책은 짧은 소설집. 짧게는 단행본 대여섯 페이지 짜리도 있다. 당연히 대단한 서사나 기승전결 같은 것보다, 어느 인상적인 삶의 한 장면, 이해하지도 받지도 못한 기억 한 조각 같은 이야기다. 에세이 느낌이 강하면서도, 아슴아슴 잡힐 듯 말 듯한 감정들이 이어진다. 앞표지 날개에 프린트된 작가 사진 만큼이나 선한 이야기들이고, 삽화와 잘 어올리는 무던한 이야기다. 이 작가를 알겠다고 하기엔 부족하고, 느낌만은 알 것 같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