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은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가을
최승자 시인
세월만 가라, 가라 그랬죠
그런데 세월이 내게로 왔습니다
내 문간에 낙엽 한 잎 떨어뜨립디다
가을입디다
그리고 일진광풍처럼 몰아칩디다
오래 사모했던
그대 이름
오늘 내 문간에 기어이 휘몰아칩디다
남 편
문정희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되지 하고
돌아누어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는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반성 740
- 김영승
어둠-컴컴한 골목
구멍가게 평상 위에 난짝 올라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옛날 돈 2만원 때문에
쫓아다니며 내 따귀를 갈기던
그 할머니가
어떻게 나를 발견하고 뛰어와
내 손을 잡고 운다
머리가 홀랑 빠졌고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고……
나도 그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맥주까지 마시니 돈 좀 생겨지나 보지 하면서
웃는다
이따가 다른 친구가 올 거예요 하면서
나도 웃었다
조등이 있는 풍경
ㅡ 문정희
이내 조등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80세까지 장수했으니까.
우는 척만 했다
오래 병석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죽었다.
내 엄마, 그 눈물이
그 사람이 죽었다
저녁이 되자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내가 배가 고파지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내 위장이 밥을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 갖다 준 슬픈 밥을 못 이긴 척 먹고 있을 때
고향에서 친척들이 들이닥쳤다.
영정 앞에 그들은 잠시 고개를 숙인 뒤
몇 십 년 만에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니, 이 사람이 막내 아닌가? 폭 늙었구려."
주저 없이 나를 구덩이 속에 처박았다
이어 더 정확한 조준으로 마지막 확인 사살을 했다
"못 알아보겠어.
꼭 돌아가신 어머니인 줄 알았네."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달리기 버전. 이런 식이라면 매시즌 신메뉴 개발해서 출시하는 60계 치킨처럼 영어 공부 몰입의 즐거움, 디아블로 몰입의 즐거움, 다이어트 몰입의 즐거움 이런 식으로 무한히 책을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귀멸의 칼날 1기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고 극장판인 무한 열차편은 제법 흥 미롭게 봤다가 넷플릭스에 2기에 해당하는 환락의 거리편이 올라와서 보게 되었다. 만화책으로 읽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이번 편에서 주인공 탄지로는 지극히 피학적인 부상을 입는다. 그 부상 부위가 모션으로 이어지는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지니 조금 더 끔찍하게 느껴짐.
노들섬에 푹 빠져서 한 동안 자주 갔다. 그래 봐야 뭐 이 주일에 한 번 정도지만 그래도 바쁜 현대인이 같은 곳을 그 정도 빈도로 방문한다는 것은 큰 애정의 표시이다.
노들섬은 섬 아래를 빙 둘러 한 바퀴 산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두었는데 이 산책길이 정말 좋다. 벤치에 잠깐 앉아서 책도 읽었다. 단, 나무 그늘이 없어 여름철 뙤약볕에 걷기는 좀 곤란하고 흐린 날 가면 침울한 구름과 함께 그 특유의 분위기가 정말 좋다.
호흡에 관한 이야기는 책 전체의 1/6 정도. 나머지는 세로토닌 분비를 위해 껌을 씹자 뭐 이런 이야기들이 채워져있다. 생각해보니 저자의 다른 책도 언젠가 읽은 거 같은데 거기서도 메이저리거처럼 껌을 씹어서 세로토닌 분비를 하자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 듯. 제목이 하버드식 호흡의 기술인 이유는 저자가 하버드 대학교 객원 교수라서. 하버드 종합장, 하버드 크레파스 같은 컨셉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