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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이문재 시인)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재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갈대 (신경림 시인)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김종삼 생각 (이현승 시인)

김종삼 생각

                             이현승

            

찌는 여름날

멀리까지 가서 자두를 한 상자 사 왔다.

자두 사러 나선 길은 아니었지만

겸해 돌아오는 길에 자두 한 상자를 손에 넣고 두둑해진 날 

 

수줍은 듯 시설도 하얗게 낀 붉은 자두를

오천 원 만 원 하면서 골라 담지 않고 상자째 사서 왔다.

제 주먹만 한 자두를 보고 침은 이미 한 컵씩은 삼킨 아이들이

당장이라도 먹고 싶어 매달려 찔러 보는 걸

집에 가서 먹자고 매운 말로 다그치며 돌아왔는데 

 

다음 날 씻어 먹이려고 열어 본 자두는

반 이상은 썩고 그나마도 다 물러 있었다. 

 

살면서 누구든 이런 날이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썩은 과일을 정성스럽게 모셔 오는 날이,

죽은 사람을 산 사람인 양 업고 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자두를 골라내면서,

썩은 자두의 그 한없는 단내를 맡으며

집은 과일마다 썩은 과일이었는데,

당신 아닌 사람이 집으면 그럴 리가 없다고

타박을 받던 마음 생각이 났다.

나는 사랑도 그런 방식으로 한다 (킴투이)

루ru (킴투이 저)*베트남어로 ‘ru[루]’는 ‘자장가’ ‘자장가를 불러 재워주다’의 뜻  나는 사랑도 그런 방식으로 한다. 누군가를 사랑해도 상대가 내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나는 여럿 중에 하나이고 특별한 역할도 없고 존재감도 없다.나는 그들이 내 곁에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차피 없는 사람은 그리워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없어진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와서 채우고 혹은 언제든 채울 수 있다.사랑이 아니면 적어도 그 사람을 위한 내 감정은 그렇다. 그래서 나는 결혼한 남자 손에 금반지를 낀 남자들을 좋아한다. 그 손이 내 몸을 내 가슴을 어루만지는 게 좋다. 서로의 냄새가 섞인다고 해도 그의 축축한 살갗이 내 살갗에 닿는다고 해도 때로 도치상태에 빠진다고 해도 그 손가락의 반지가 그 반지에 간직된 이야기가 나를 멀리 구석에 어둠 속에 잡아두기 때문이다.남자를 만날 때 느낀 세세한 감정들은 잊어버렸다.  하지만 짧은 한 순간 존재했던 몸짓들은 기억한다. 귀요미, 내 왼쪽 발가락에 자기 이름의 G자를 쓰느라 스치던 손가락. 미하일의 턱밑에서 나의 1번 요추로 떨어지던 땀방울 내가 오목가슴에 대고 중얼거리면 그 소리가 자기 심장에까지 울릴 거라던 시몽의 융곽 아래 움푹한 자리를 기억한다.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로부터는 속눈썹의 떨림이 남았고, 또 누군가로부터는 뻐친 머리카락이, 어떤 이들로부터는 가르침이, 몇몇에게서는 침묵이, 한번은 어떤 오후가, 또 한 번은 어느 생각이 남았다.그렇게 어차피 나는 각각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에 그 모두가 한 남자를 만들었다. 모두 함께 나에게 사랑에 빠지는 법을 사랑에 빠진 여자가 되는 법을 사랑의 환희를 갈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하지만 ‘사랑하다’라는 동사를 가르쳐 주고, 그 의미를 정의해 준 것은 내 아이들이었다. 만일 사랑 하는게 어떤 건지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아이를 낳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사랑하기 시작하면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외숙모 그러니까 둘째 외삼촌의 아내가 그랬다. 방화광처럼 끝없이 가족의 재산을 태워 없애는 도박꾼 아들을 숙모는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건배 (임희구 시인)

건배

                       임희구 

 

뼈다귀탕을 앞에 놓고 잔소리하는

여인의 낡은 눈망울로

잔소리를 다 듣고 앉아있는

사내의 낡은 어깨로

마주 앉아 웃음 짓는 눈가의

잔주름으로

살살 떨리는 손가락으로

소리쳐도 가 닿지 않을

낡은 귓구멍으로

낡은 입술로

꼭꼭 여며 잡아도 금방 헐렁해지는

반쯤 헐린 가슴으로

무한리필 (박상수 시인)

무한리필

                    박상수 

 

너 고기 좋아해?

오늘 하루 두 번이나 만났는데, 그냥 헤어질 수 없었지, 이젠 내가 먼저 가겠다는 말도 못하고…… 아메리칸 레스토랑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네가 갑자기 물었어 고기, 고기라……

회식하고 집에 가다 버스에서 잠든 적이 있지 깨보니 주변엔 아무도 없고, 기사 아저씨도 없는데, 어디서 고기 냄새가 나는 거야 침샘이 폭발했지 내 옷에서 나는 냄새였어

우리는 먹었지 목살이랑, 삼겹살이랑, 계속 가져다 먹었어 먹자 골목에서 네가 찍은 집, 구두 벗고 들어가기 싫다니까 깔깔깔 네가 하이파이브를 해줬지

신을 벗으면 고기랑 너무 멀어지잖아

불판을 여섯 번이나 갈면서, 말도 없이 먹었다 양파, 고기, 마늘, 고기, 쌈장, 고기…… 올릴 수 있는 건 다 올려서 씹었어

들려?

응?

우리 살찌는 소리

정말이네, 털보 아저씨가 미소 지으며 다운패딩 입혀주는 느낌, 그래, 난 좀비 언니들이 떼로 와서 기모레깅스랑 펠트 워머를 같이 입혀주나 봐, 무서워, 우리 얼른 먹어서 이 무서운 것들을 다 없애 버리자

둘이서 오인 분은 먹었나 봐, 된장국에 공깃밥까지 먹으려다 그건 못했지 너는 젓가락을 덜덜 떨며 말했다 못살아, 왜 이것밖에 못 먹는 거야……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그니까, 먹은 것보다 못 먹은 게 무한이라서 무한 리필인 건가, 나도 같이 울었어

모공들이 다 열려버려서, 우린 기름종이를 나누어 가졌지 림밤도 다시 발랐어 그래도 한 정거장쯤은 걸을까? 미안해 얘들아, 천국에 못 간 돼지들, 걔네들이 아직도 붙어 있나 봐, 밤거리를 걸었지만 숨이 차서, 반 정거장도 못 걸었지, 포기하자 다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타자

불빛 찬란한 밤거리

이렇게 달릴 때가 제일 빛나지

다들 걸어가는데 우리만 달려가니까

우리만 앞으로 나가는 것 같으니까

연두부처럼 맘이 풀려서는 내가 물었어

무슨 생각해?

음, 구역질나게 배부르고, ……멍해서, 좋다는 생각

멍한 것 뒤에는 더 멍한 게 있을까 아님 아무것도 없는 걸까, 뭐가 더 좋은 걸까? 우리는 계속 달렸지 입을 벌리고 차창 바람을 먹으며, 에코처럼, 네가 물었어

넌 무슨 생각하는데?

아까 남긴 고기 생각

내릴 때가 되니까 네가 붙어 앉았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뭐라고 속삭였어 분홍색 면봉이 귓바퀴를 들락날락, 근데 무슨 말인지 안 들리잖아, 내 손을 잡고, 빤히 보면서, 네 입술이 움직였지

가지 마

오늘

같이 있자

사는 법 (나태주 시인)

사는 법

                   나태주 

 

그리운 날은 그림을 그리고 

쓸쓸한 날은 음악을 들었다

그러고도 남은 날은 너를 생각해야만 했다

풀꽃2 (나태주 시인)

풀꽃2

                     나태주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연애의 법칙 ( 진은영 시인)

연애의 법칙

                      진은영 

 

너는 나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어제 백리향의 작은 잎들을 문지르던 손가락으로,

나는 너의 잠을 지킨다

부드러운 모래로 갓 지어진 우리의 무덤을

낯선 동물이 파헤치지 못하도록,

해변의 따스한 자갈, 해초들

입 벌린 조가비의 분홍빛 혀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던

하얀 발가락으로

우리는 세계의 배꼽 위를 걷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포옹한다

수요일의 텅 빈 체육관, 홀로, 되돌아오는 샌드백을 껴안고

노오란 땀을 흘리며 주저앉는 권투선수처럼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 (2008년)

사계 (강현욱)

사계

                    강현욱 

 

봄의 그대는 벚꽃이었고

여름의 그대는 바람이었으며

가을의 그대는 하늘이었고

겨울의 그대는 하얀 눈이었다.

그대는 언제나

행복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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