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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전쟁

저자 제프리 로버츠Geoffrey Roberts는 영국 출신이고 아일랜드의 대학에서 주로 가르친 소련 역사학자다. 또 과기대의 김남섭 교수는 이 책을 아주 깔끔하게 잘 번역했다. 잘된 번역의 책을 대할 때마다 번역자의 노고에 감사하게 된다.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한국 사람에게 소련을 연상시키는 러시아 역사는 냉전 이후에도 일정한 선입관 속에서 바라 보게 된다. 기본적으로 6. 25사변 때문이지만 그 밖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보도에서 서방 언론의 영향에 일방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냉전 구조에만 함몰될 수 없을 만큼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고 러시아와의 이해관계도 깊어졌다. 따라서, 서방의 편향된 대러시아 시각에만 머물러 있을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러시아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시각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스탈린이 한국 전쟁을 사주했다는 事實(사실)은 불변의 史實(사실)이었다. 소련이 6.25 사변을 주도한 마스터 국가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의 성장이 러시아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러시아 또는 소련에 대해 우리 내부가 기존의 관점으로부터 변화된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부터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할 때까지의 소련 역사를 주로 스탈린에 초점을 맞춰 기술하고 있다. 20세기말 크레믈린 정부는 과거 소비에트 시절 대량의 공문서들을 공개하고 보다 풍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 시기의 소련과 스탈린에 대해서 보다 객관적인 역사 서술이 가능하게 되었다. 저자 제프리 로버츠는 대표적으로 이들 러시아 사료들을 바탕으로 스탈린 주도 하에 독일 나찌와 벌인 소위, “大祖國(대조국)전쟁”에 대해서 상술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을 통해 세계2차 대전의 實像(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헐리우드 영화의 세뇌? 속에서 제2차 대전은 영미 연합군과 추축국 독일, 일본의 싸움이란 구도가 지배적인 이미지였지만 실제 유럽에서 벌어진 2차 대전의 주전장은 독일 나찌와 소비에트가 동부 전선이었다는 역사적 眞相(진상)이다.


1941년 6월 22일 시작된 소련과 독일의 전쟁은 그 첫해 소련의 전사자가 5백만 명에 이른다. 전쟁 기간 4년 내내 1천만 명의 전사자 그리고 민간인 사망자 2천만 명을 포함해 3천만 명이 전쟁에서 죽었다.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인구가 1억 7천만 명이었다. 사망자에 더해 부상자를 포함하면 이 전쟁의 참상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큰 시련이었을 것이란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한국 전쟁 당시 사상자는 1천만 명 가량이었다고 한다. 한반도의 사이즈로 따지면 역시 상당한 규모의 전쟁이었다) 소련을 침공한 독일 나치군은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군대였다. 그들의 강력한 기갑부대, 독일군의 엄격한 규율과 독일 군인들 개개인의 탁월한 자질 등에 대해 스탈린은 전쟁 기간 내내 거듭 칭찬하면서 전후 독일의 완전한 해체 또는 약체화를 주장한다.


스탈린은 영미에게 유럽 대륙에서 제2전선을 요청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국은 꾸물대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전선에 참전하는데 이는 수에즈 운하 등과 관련한 영국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은 1944년 여름에나 가능하게 된다. 소련군이 독일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소련군에 의한 强姦(강간)이 수백만 건이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쇼킹이 아닐 수 없다. 독일 나치는 독일 민족의 순수성, 우수성 등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하고 있었는데 승리의 여신은 분명 독일 편이 아니었던 듯 싶다. 아니 여신의 보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이 전쟁 중 동유럽 국가들 중 ‘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폴란드는 전쟁 기간 내내 런던의 망명 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된다. 런던 망명 정부를 중심으로 소련이 반격으로 국면 전환을 할 때 폴란드 국내에서 독일군에 맞서 봉기를 일으키지만 무참히 실패하게 된다. 망명 정부는 폴란드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과의 관계는 원활하지 않았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함께 현재, 유럽의 정치 지형에서 폴란드의 입지는 미국과의 이해관계에 가장 맞닿아 있다고 생각된다. 그 밖에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이 모두 독일과 연합한 추축국으로서 소련과 싸웠던 패전 국가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쿠릴열도 문제가 러시아에게 중요한 것은 블라디보스톡 등으로부터 오호츠크해로의 진입이 차단되어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없게 된다는 데 있었다. 때문에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쿠릴열도는 일본보다는 러시아에게 더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 그곳은 러시아의 팽창을 막아야 하는 또다른 절체절명의 전략 요충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은 러시아, 중국, 한국의 태평양 진출을 모두 제어할 수 있는 전략적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이래 저래 한국은 미국의 안보 우산을 필요로 한다. 


저자 제프리 로버츠는 대조국전쟁을 진두 지휘하며 승리로 이끈 스탈린의 능력과 리더십을 전쟁에 대한 기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종전과 함께 동서 냉전의 심화 속에서 스탈린 체제의 경직화 그리고 그 숙청에 대한 서술은 조금 소극적이다. 종전후에도 스탈린은 영미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이끌고 싶어 했다고 저자는 주장하지만 실제 서방과 제3세계 국가들에 공산주의 체제의 수출을 도모함과 동시에 서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논리는 형용모순처럼 들린다. 


스탈린은 처칠 또는 루스벨트의 관찰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대단히 솔직하고, 명민하며, 겸손한 인격을 갖춘 지도자로서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당연히 소련의 국익을 위해 노심초사한 지도자였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예전에 빌 클린턴이 푸틴을 처음 만난 뒤 대단히 스마트한 인물이라 평했던 어떤 미디어 매체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아마도 스탈린에 대해 궁금했던 것은 푸틴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의 연장선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산주의 사회는 항상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적이고 위협이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그 위협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자유 민주주의적이었고 상대적으로 평등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의 몰락과 함께 자본주의 사회 부자들의 존재론적 위협도 사라지게 되었다. 거칠 것 없이 신자유주의라는 전지구적 세계질서의 방침을 결단하고 실행하게 된다. 물론, 한때 소련이라 불리던 소비에트 제국 역시 러시아 제국의 팽창주의를 계승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는 슬픈 영광에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의 음악, 문학 등 문화에서 느껴지는 哀調(애조)는 그런 역사 때문인 것 같다. 그 슬픔이 빚어내는 찬연한 아름다움은 너무나 극적이고 유혹적이라 차마 떨쳐낼 수가 없다. 

포장되지 않은, 포장할 필요가 없는 상실의 이야기

상실의 기록을 담은 책들은 아주 많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들은 다르고 특별하다. 죽음과 이별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만 그 여로도 고인과의 관계도 다르니까. 어찌되건 절절한 책들은 반드시 한 두 군데는, 너무 똑같은 생각이라 전기같은 충격을 주는 구절들이 있다. 이 책도 그렇다. 그리고 그냥 내 짐작이지만, 치매와 조력자살이라는 특수한 부분이 있어도 사랑하는 이의 상실과 그에 대한 저자의 전혀 아름답지 못한 괴로움과 몸부림이 코로나 직후 울고 싶은 미국 독자들의 뺨을 때린 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자는 남편과 가족들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천사도 아니고 신경질도 낸다. 정신적 버팀목이어야 할 내 남편이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내가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며 챙겨야하는 존재가 되는 것도 모자라 조력자살을 알아보는 과정은 더 험난하다. 피로가 쌓인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게 되고, 노인들이 이런 류의 지저분함에 왜 익숙해지는지 깨닫는다. 간신히 남편을 보내고 난 뒤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와 메스꺼움도 느낀다. 이런 감정들은 사실 사람들한테 내보이고 싶은 부분은 아니다. 더군다나 세상은 깔끔하게 빨리 애도하고, 열심히 살라고 너무 쉽게 말하고, 주체 못 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싫어하니까. 하지만 나의 세계의 기둥이 하나 무너졌는데, 감정의 폭발이나 가끔은 부조리할 정도의 왜곡된 생각을 한 번도 안 할 수도 있을까? 그런 면에서 와닿는 것들이 있는 책이었다.

그냥 우연이지만, 마침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보는 중인데 작품에도 언급이 되어서 순간 더 복받치는 것도 있었다. (한 잔 술과 쉼보르스카면 정말 눈이 안 떠질 때까지 울 수도 있지 않을까)

애도는 사실상 끝나는 일이 없다. 하지만 작가는 남편의 말대로 이 여정을 글로 썼고, 힘든 이야기를 세상과 공유했다. 에이미 블룸의 책을 처음 읽는 일개 독자인 나에게는, 이미 충분히 경이롭다.

사랑을 담아
사랑을 담아
2024.01.08.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모두가 꼭 읽어야 한다. 꼭 알아야 한다.

장애인, 이주민, 아동, 여성.. 팬데믹을 겪으며 수많은 차별과 고통을 당했던 드러나지 않고 숨겨진 이들을 알수있던 계기.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ㅠㅠ


아동. 여성. 파트는 다시 읽어볼 예정.


해결책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래가 나아지기 위한 나아갈 길에 대한 모색 및 제시도 있으면 좋았을텐데 그 부분이 좀 아쉽다. 필진들도 그 부분 부족하다고 언급해서 더 좋았다. 알고 있는 이들. 노력하는 이들. 나아가려고 하는 이들. 정말 멋지다!!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 코로나19 팬데믹, 재난이 차별을 만났을 때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 코로나19 팬데믹, 재난이 차별을 만났을 때
2024.01.07. <레티파크> 유디트 헤르만


짧은 소설안에 평범함과 이끌림이 있다.


물음표가 생략되어있고, 자세한 설명 없이 상황과 감정이 스스륵 지나가지만 그 빈 공간을 내가 채우기도 하고 그냥 넘기기도 해서 더 좋았다고 해야 할까.


침착한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짧은 소설이라 더 좋고 유디트 헤르만 작가님의 다른 소설도 궁금해.

레티파크
레티파크
2024.01.03. <여전히 미쳐있는>


조금 어려운감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60년대부터 차례로 여성.페미니즘. 운동과 흐름에 대해서 조금은 정리할 수 있었고 잘 모르던 단어들(미소지니, 백래시 등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알아갈 수 있는 독서였다!


현대여서 아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니까 더 흥미로웠음!!


읽을 책 리스트 추가추가.


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2024.01.01. <서브 플롯> 황모과


지어낸 이야기인지 몰랐던 서브플롯의 시작과 메인플롯의 진짜 삶. 이야기속으로의 여행.


재미있고 흥미로웠지만 다시 서브플롯과 메인플롯이 교차되면서 (언니.엄마.친구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기억상실) 진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치유하며 사용된 서브플롯과 그 속에있던 인물들이 현실 세계에서 연기자들이었음이 밝혀지고 만남이 나오면서 약간의 혼란과 지루함이 느껴졌다.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은 상태 ;;;



조우리작가의 추천서 : 황모과라는 히든플롯

서브플롯 - 문학에서 발견하는 무한한 좌표들
서브플롯 - 문학에서 발견하는 무한한 좌표들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리뷰

이 책을 열어보기 전에는 최근 워낙 가볍게 읽을 만한 독서에세이나 철학입문서들이 많이 나와서 목차에 나와있는 쟁쟁한 이름들에도 불구하고 그런 종류의 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첫 장부터 이 추리소설 작가와 작품은 친숙하지만 이에 대한 이 책의 작가의 생각은 낯설고 작가가 이 작품과 연관해서 언급하는 철학 개념들은 더 생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실은 예전에 읽었던 현대철학 입문서나 가이드들을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철학가와 관련 논문들을 많이 찾아보기도 해가며 읽느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려 겨우 완독했다.


서구의 모더니즘의 태동에 반발하는 움직임으로 전통적 추리소설이 나왔다면 변증법적으로 이보다 더 나아간 형이상학적 추리소설 등 다양한 추리소설 작품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래서 그런지 추리소설의 시초인 에드거 앨런 포부터 시작해서 차츰 시대를 따라 나아가며 일본 및 우리나라 추리소설 작품들까지 다양하게 다루었다.


추리소설도 서구 근대화에 의해 나와서 그런지 서양 근현대 철학의 개념들을 많이 가져오지만 마루야마 마사오나 최인훈 등 동양의 사상적 토대, 그리고 서양과 다른 유교 및 불교적 사유의 차이, 한글의 원리에 담은 은유 등 단지 서양철학에만 멈추지 않고 분주히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생각이 돋보인다. 그렇다. 추리소설은 변두리에서 시작하고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문학이니까.


이런 틀을 벗어나거나 깨뜨리는 성격 때문일까 보르헤스, 오스터, 에코 등 여러 작가들과 지젝, 들뢰즈 등 여러 사상가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경계선에서 인사이더가 되려고 애쓰지 않고 도리어 밖을 향해 나아가는 당돌한 탐구심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 그런 변두리를 탐험하는 대리만족이 독자를 너무 매혹시킨 나머지 단순 오락이라는 낙인을 받은 추리소설의 위상은 독서인구가 나날이 낮아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낮은 듯하다. 한국 추리소설 자체도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 턱도 없이 낮지만 이런 대접 받는 추리소설에 대해 이토록 깊은 사유를 해보고 또 독자들에게서도 단순히 오락으로 소비하지 말고 생각을 더 많이 해보라는 골치 아픈 작가가 국내에 또 있을까. (마치 훈장님이 생각 좀 하고 살라고!하고 지휘봉으로 머리를 두드리는 듯)


작가 분은 철학 전공으로 너무 박식하고 폭 넓고 깊이 있는 사유를 하다보니 가끔 논지를 따라가기 힘들 때도 있고 심지어 문장에 나온 개념들의 태반을 이해 못 할 때도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이나 문학 평론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마치 당연한 상식인 듯 어물쩍 넘어간다. 다행히 인터넷의 세상에서 관련 사상가의 논문들이나 후에 이어진 글들을 읽으면 문맥으로 얼추 가늠할 수 있기도 했지만 어쩔 때는 이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무슨 의도로 여기서 갑자기 저런 말을 한 것일까?하는 지점들도 있었다. 특히 12장은 다른 챕터들보다 특히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조차 감이 안 올 때도 있던 나에게 가장 혼란스럽고 힘겨운 챕터였다. 반면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서는 별 설명이 없던 반면, 인쇄 측의 실수 때문에 주석이 날라갔다는 4장 빼고는 주석마저도 단순 참고문헌 정도를 언급하는 게 아니라 상세한 코멘트들이 마치 이 자체로도 또 다른 철학 에세이의 토대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책 후반으로 갈수록 내가 받은 인상은 제목에서 호명된 철학가들 외에도 다른 철학가들의 사유와 추리소설 작가의식이 더 돋보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9장 서미애와 칸트에서는 서미애의 소설이 칸트의 초자아보다는 그와 뫼비우스 띠의 대치면에서 나아가는 사드와 더 통하는 것 같고, 10장의 황세연과 슬라보예 지젝에서는 황세연이 지젝보다 지젝과 결별하는 로티와 닮아있다. 8장의 류성희와 한나 아렌트에서는 아렌트의 정치공간보다는 칸트의 취미판단에 더 밀접하고 11장 정유정과 조르조 아감벤에서는 아감벤보다 알랭 바디우의 입장이 정유정의 주제의식을 대변하는 것 같아보였다. 이건 훈장님이 강론하시다 삼천포로 빠지시는 걸까? 얼핏 보면 그렇지만 샛길은 또 다른 길이 되고 길은 모두 서로 통한다.


처음에는 제목에 나온 사상가의 이론만이 작가의식과 관련된 것 같다가도 또 헤겔의 변증법적 합?또는 지젝이 말한 오독을 거쳐야 도달하는 반보다 더 한 반?이 나오듯 결국 다른 사상가의 이론에도 다가가는 반전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전 챕터에서 다음 챕터의 추리소설의 예고편이나 복선처럼 다음 사상가의 생각들이 살포시 엿보일 때가 많았다. 이런 것에서 나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을 때 범인이라고 처음에 다들 의심했던 사람이 red herring이고 결국 전혀 뜻밖의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는 그런 구조가 연상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12장에서 나온 '내포의 누적이 필연적으로 외적 대상 - 쌓인 증거가 필연적으로 범인k를 가리킨다는 것-을 지시한다는 것을 의심하게 한 것처럼 백휴 작가님은 이를 통해 어떤 사유를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실은 이건 우리가 항상 '당연시'했던 관점의 틀을 무너뜨리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진화론과 생명과학의 발전에 의해 우리가 동물이든 인간이든 종에 대한 분류가 무너지고 새로운 눈으로 생물을 바라보게 된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고 친숙한 움벨트(umwelt) 속의 분류에서 벗어나고 그 틀을 도끼로 내리찍기 위해 철학과 문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시된 개인적/사회적 구조를 파헤쳐보면 다른 이면이 있고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조금 더 심층적으로 나아가보라고 권유하는 듯하다.


각 챕터에 나온 작가와 철학가의 매칭이 실은 동어반복인 a=a’가 아니라 변항인 x의 함수 a=f(x)=x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쩌면 백휴 작가는 뜻밖의 인물이 범인인 게 밝혀지는(또는 아예 mystery로 남고 밝혀지지 않는) 것처럼 제목에서 지목된 철학가의 사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초월한 변항의 사유에 바통터치를 하고 더 나아간 독자의 사유도 기대하는 게 아닐까?


개념에 의해 강제적으로 단순히 내포와 외연이 1:1로 대응하는 것보다 무한대로 외연이 증폭될 수 있는 변항감각과 가능성을 내포하는 추리소설 장르를 단순히 오락으로 소비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시선으로 새롭게 바라보길 바라면서 쓴 이 책은 확실히 쉽게 읽히는 책도 심심풀이 땅콩같은 책도 아니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진정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범인을 추리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노력과 고통(?)을 즐기는 이들이다. 그렇게 공 들인 사유만큼 얻어낼 수 있는 짜릿한 반전적이고 변항적인 사유를 위해 오늘도 추리소설 작가들은 머리를 쥐어짜고 독자들과 승부하는 것 같다.


표지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에드거 앨런 포의 The Raven 삽화인데 이에 붙인 시의 구절이 참 좋다.

And my soul from out that shadow that lies floating on the floor

Shall be lifted--nevermore!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게 너무 당연하게 넘겨짚는 생각을 갈까마귀는 부정부사 한마디로 깬다. Nevermore!

어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그런 자동적 조건반사같은 생각을 죽여버려야 하지 않을까?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유정까지
추리소설로 철학하기 -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유정까지
왕조의 이름 뒤에 있는 간절함과 뿜뿜 부심

제목만 보고 뽑았다가 - 가장 많이 쓰이는 한자들에 대한 책이 아닐까 해서 - 표지를 보니 부제가 왕조 이름 12개로 푸는 중국 문화의 수수께끼다. 이건 이거대로 뭔가 있겠지 하고 그냥 읽기로 했다.

한자에 대한 지식도 많지 않고, 특히 몇몇 한자는 아예 나라 이름이 뜻으로 나와있으니까 별 생각없이 넘겼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미친 듯이 예를 따지고 남의 나라 국호까지 참견하던 시절에 무려 나라의 이름을 만드니 정말 두뇌를 풀가동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책이 그렇게 두껍지도 않고 초창기 한자들 그림들도 많이 들어있으며 토막지식이 많으니 재미도 있다. 한수를 넘어 은하수까지 포함하는 한나라, 전혀 예상 외의 뜻이 있는 당나라, 부수 설명하다 줄줄이 나오는 건물 관련 한자들...당연히 옛 사람들의 예 사랑 오행 사랑도 나오고 신기한 것들 많다.

단지...다 그런 건 아니다만 한국에 번역된 중국 역사 서적들은 상당히 감정을 실어 서술하는 책이 좀 많고(거의 매 페이지마다 느낌표가 있던 책도 있었지...) 이 책은 번역자분이 간지럽다고(...) 본문 구절을 빼고 그 부분을 주석으로 넣은 부분도 있을 정도로 중화사랑의 기운이 넘쳐난다. 내가 사학자도 아니다만 몽골인들은 중국인의 DNA를 품고 있었을 거라고 하는 부분 보면 좀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그래도 깨알 지식과 더불어 역자분 말마따나 옆나라에 대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사실 제일 눈이 번쩍 뜨인 건 '정부 기관 공문은 방송체(仿宋體)고 인장은 송체인데 누가 당신에게 내민 공문에서 이게 안 지켜지면 사기다' 대목...그러나 이 책 원서가 2015년에 나왔고 범죄는 나날이 발전하는 걸 고려하면 이 부분도 이제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기억해두는 걸로!

12개 한자로 읽는 중국 - 왕조 이름 12개로 푸는 중국 문화의 수수께끼
12개 한자로 읽는 중국 - 왕조 이름 12개로 푸는 중국 문화의 수수께끼
968. 열정과 기질 (하워드 가드너)

‘창조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20세기에 창조적 거장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의 삶을 살핀다. 가드너가 뽑은 인물 7명은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T. S. 엘리엇, 마사 그레이엄, 그리고 간디다. 활동한 분야나 성격이 제각각인 위인들도 찬찬히 뜯어보면 어떤 공통점들이 확실히 있기는 한데, 내게 가장 인상적인 개념은 ‘파우스트적인 계약’이었다. 이들에게는 위대한 성취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겠다고 단단히 각오한 시기가 있었다.

열정과 기질
열정과 기질
967. 다중지능 (하워드 가드너)

다중지능 이론의 창시자인 저자가 대중을 상대로 쓴 교양서. 다중지능 이론을 제안한 뒤로 벌어진 논쟁과 다중지능 개념에 바탕을 둔 교육 프로그램까지 설명한다. 가드너는 개인이 자기성찰 능력을 지능의 한 종류로 분류했지만 ‘영성지능’에 대해서는 부정한다. 대신 큰 ‘실존지능’을 새로운 지능 후보로 검토하는데, 이는 ‘큰 질문들과 관련된 지능’이다.

다중지능 - 하워드 가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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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책증정] 작가와 작가가 함께 등판하는 조영주 신작 <마지막 방화> 리디셀렉트로 함께 읽기[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책 증정] <고전 스캔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5기 [책증정] 페미니즘의 창시자,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 《메리와 메리》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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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우리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 떠오르는 책을 추천해주세요!
[성북구립도서관] 2024년 성북구 비문학 한 책을 추천해주세요. (~5/12)
세계적 사상가 조너선 하이트의 책, 지금 함께 읽을 사람 모집 중!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5. <나쁜 교육>[그믐북클럽Xsam] 15. <바른 마음> 읽고 답해요
이 계절 그리고 지난 계절에 주목할 만한 장편소설 with 6인의 평론가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2
직장인이세요? 길 잃은 직장인을 위한 책들 여기 있어요.
[김영사/책증정]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커넥팅>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편집자와 함께 읽기[직장인토크] 완생 향해 가는 직장인분들 우리 미생 얘기해요! | 우수참여자 미생 대본집🎈[생각의힘] 어렵지 않아요! 마케터와 함께 읽기 《커리어 그리고 가정》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여러분의 마지막 편지는 언제인가요?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안온북스, 2022) 읽기 모임
🍵 따스한 녹차처럼 깊이 있는 독후감
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딱 하루, 24시간만 열리는 모임
[온라인 번개] ‘책의 날’이 4월 23일인 이유! 이 사람들 이야기해 봐요![온라인 번개] 2회 도서관의 날 기념 도서관 수다
🌸 봄에 어울리는 화사한 표지의 책 3
[책증정/굿즈] 소설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을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블라섬 셰어하우스 같이 읽어 주세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이 별이 마음에 들어>김하율 작가가 신작으로 돌아왔어요.
[책증정 ]『어쩌다 노산』 그믐 북클럽(w/ 마케터)[그믐북클럽] 11.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읽고 상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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