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요코야마 히데오의 추리소설 <교도관의 눈>. 단편 추리소설이 주는 재미와 동시에 한계도 명확하다. 6편 모두 50페이지 내외로 분량도 비슷하다.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괜찮겠지만 낯선 독자에게는 굳이 찾아 읽을 필요까지는 없어 보인다. 요즘은 추리소설이 넘쳐나는 시즌이니까.
표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교도관의 눈>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다른 작품에 비해 더 재밌다기보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초반부가 떠올라서다. 여동생의 성폭행범과 그녀의 오빠가 나란히 앉아 있다. 반장은 송강호에게 누가 성폭행범인지 얼굴만으로 알 수 있겠냐고 한다. 송강호의 눈이 점차 클로즈업 되지만, 결과는 알려주지 않는다. 과연 소설 <교도관의 눈>에서의 곤도 미야오는 범인과 범죄의 실체를 정확히 가려냈을까?
“야마노이 자식, 날이 갈수록 이글거리더군.” p-26
또 한 가지 좋았던 점은 R현경의 기관지 편집일을 하며 범인을 쫒기보다는 경찰 퇴직자의 수기를 받기 위해 경찰을 쫒아 다니는 여성 캐릭터 에쓰코 때문이다. 경찰이야기를 다룬 요코야마 히데오의 <64>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인지 신참경찰 에쓰코를 주인공으로 장편소설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4>가 경찰 조직 내부의 깊숙한 문제를 무게감 있게 다루었다면, 조직 주변부의 사람을 통해 범죄를 해결해나가는 조금은 가벼운 이야기도 재미있을 거 같다. 개인적 생각이다.📖
에디터리로 불리는 이지은 편집자님.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온 지난 15년의 역사가 이 책 한 권에 라고 하면 조금 과장일 테지만, 담담하게 과거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비롯 편집자로서 살아가는 이야기, 고민했던 것들을 나눠준다.
청소년용 철학 입문서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고, 대학 교양수업 부교재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쉬운 애매한 난이도.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왼쪽 메뉴에서 ‘모임 만들기’ 가 사라져서 당황하셨나요?
‘모임 만들기’가 훨씬 업그레이드 되서 ‘모집중’ 으로 새로이 등장하였습니다.
기존 ‘모임 만들기’ 의 경우 즉시 시작, 나 혼자 시작이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함께 읽을 다른 사람들을 모으거나 원하는 특정 날짜에 모임을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다양한 모임을 만들기 원하는 모임지기님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여러 경우의 수를 추가한 ‘모집중’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기존 모임 만들기를 대폭 개편한 것이지요.
물론 세부 설정을 정하지 않고 그냥 ‘빠른 시작’을 선택하시면 예전 그믐의 모임 형태와 똑같은 모임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조건이 너무 많아 복잡하게 느껴지신다면 설정을 고르신 뒤 화면 아래를 살펴보세요.
어떤 경우에 걸맞은 모임을 만드셨는지 도움말이 등장합니다.
만드신 뒤 중간에 얼마든지 조건을 변경하실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최소 5명이 모여야 시작하는 모임을 만드셨지만, 그냥 3명으로 시작해도 괜찮지라고 마음이 바뀌셨다면 설정을 바꾸시면 됩니다.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1대1 문의 이용하여 주세요.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책 읽는 우리들이 더욱더 많아지는 그날까지, 저는 또 새로운 기능을 들고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시장 한 가운데 선 고독한 몽상가’라는 표현에 끄덕끄덕. 한 시절을 같이 보내서 그랬을까, 팬이 아니었는데도 에필로그에 이르니 찡하다. 서양 악기, 전통악기, 록밴드가 결합한 퓨전 오케스트라를 보지 못해 아쉽고.
철학자나 의사의 글과는 다른 울림이 있다. 90대의 작가가 책을 써서 사회 전체에 논쟁을 일으켰다는 사실 자체가 승리이자 성취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될 수 있는 단계는 내가 생각했을 때 이해한 부분 에서부터 수용이 온다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겪어보았을 때 경험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생각으로도 어느 정도 몰입 하느냐에 따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람은 모두 어려서부터 다른 경험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살며 모두 다른 이해 방식을 터득한다
자기만의 이해방식이 모두 다 다르게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의 뇌는 안 좋은 기억 에 대하여 강하게 기억하는데 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더 빨리 잘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걸 찾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찾는 게 대부분 빠르지 않을까 싶다 (생존을 위해 안 좋은 것부터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 경험을 기억해두고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한 육체적 발전을 택하던가 정신적 발전을 택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정신적 발전이라면 그 고통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고 이해해서 어떤 부분으로부터 생긴 고통인지 잘 알게 하고 다음에는 이길 수 있게 하는 발전 아닐까 생각한다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이 여기서 정말 핵심적인 단어인데 우리는 어떤 고통으로부터 분명 어떤 발전을 분명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발전하지 못하는 사람 또한 분명 있고 그 한계점이 온 사람 또한 존재한다고 믿는다
인간에게는 고통이 아주 훌륭한 천적인 듯 싶다 과연 천적 없는 생물이 어떤 발전이 있을지 ..
아무튼 그렇기에 사람은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깊은 관계를 형성하며 더욱더 깊은 이해심을 가질 기회를 가지게 되고 좀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 인간관계가 중요할 수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생각 들게 하였다
나는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고 정말 진짜 못하는 게 있다
하지만 내가 잘하는 것에 대하여 우쭐거릴 필요 없고 진짜 못하는 것에도 우쭐거릴 필요가 없어야 한다
또한 타인의 못하는 것에서 우쭐거려서도 안된다 그것이 사람이라는 존재라 생각한다
우리는 불완전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좀 덜 완벽하다던가 좀 아쉽게 완벽한 사람이라던가 무슨 차이인가
사실 나도 사람 같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말하고 싶은 건 우리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부족함을 수용해서 완벽함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분명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것이 난 타인을 수용하는 큰 걸음이라 생각한다
세상 모두를 담을 듯한 사각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그 안에 모두는 아닐지라도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한 철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 사각 프레임에 누군가는 목이 잘리고 누군가는 다리가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가며 실체는 아웃포커싱의 테두리처럼 흐릿해지고 정중앙의 개인적 욕망만 또렷해졌다.
사각 프레임 안에 무엇을 담을지 또는 무엇을 배제할지에 따라 사진의 느낌은 변한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보며 “예술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일상적인 것에서도 낯설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진을 보며 너라면 담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잘라내고 싶은 건 뭐냐는 질문을 했다. 사각 프레임은 마치 개인의 철학과 가치관의 다른 이름처럼 들린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었음에도 아 직 그 무엇에 대한 답은 잘 모르겠다. 아마 영원히 모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