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가 가까워오니 우울증의 기운이 밀려오는 걸 느낀다. 역시 우울증은 일조량과 상관이 있는 거야. 거의 다 극복했다고 여기던 터라 당황스럽고 또 두렵다.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 올해 3월이었다. 3주가량 그 증상이 지속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무슨 동면하는 동물처럼 엄청나게 잤다. 삶에서 도피하고 싶었고, 방법이 술 아니면 잠이었다. 졸리기도 많이 졸렸고,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잠을 일부러 청하기도 했다.
4월에 ‘이래선 안 되겠다’ 마음먹고 동네에 있는 정신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았다. 정신과에 간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우울증의 흔한 증상 중 하나가 불면증이라는 이야기를 그날 듣고 멋쩍게 웃었다.
약의 효과는 지금 생각해보면 애매하다. 다른 정신과 약을 먹어 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만한 경험도 없다. 자살 충동이 누그러들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다행이라고 여겼더랬다. 워낙 기대가 없기도 했고.
그러다 다른 소설가의 우울증 경험을 뒤늦게 전해 들었는데, 그이는 항우울제를 먹고서는 너무 행복해져서 오히려 이래서는 글을 못 쓰겠는데, 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얘기를 들려준 작가가 부럽기까지 했다.
부작용은 약하게 겪었다. 입 안이 뻑뻑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침이 말랐고,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신체에서 분비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게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한다. 안과에 가서 소독제와 일회용 눈물을 한아름 처방 받았는데, 안구건조증으로 안과에 간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약국에서 젊은 약사가 우울증 약을 건네며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하고 위로했다. 그래, 맛난 거 먹는 게 행복이지. 그래서 그 뒤로 한동안 다이어트 걱정 않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었다.
그리고 불과 넉 달 사이에 7킬로그램이 쪘다. 5월 중순만 해도 몸무게가 62킬로그램 남짓이었는데, 9월 중순에는 70킬로그램을 돌파했다. 체중이 70킬로그램을 넘은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올해는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많다.
얼굴도 몸도 동글동글해졌다. 66, 67킬로그램일 때 절식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나 원래 굶는 거 잘하는데…. 의사에게도 이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내가 처방 받은 항우울제인 렉사프로의 부작용 중 하나가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거라고 했다.
정작 병세는 어느 단계에서 더 호전되는 것 같지 않았다. 7월에 한 번, 9월에 또 한 번, 만사 귀찮아져서 1, 2주씩 침대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의사에게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고 좋은 분이었지만, 그 이가 아니라 현대정신의학에 대해 품고 있던 높은 기대가 꺾였다. ‘못 믿겠다’는 아니고, ‘아, 기껏 이거였어?’ 정도.
증세가 나쁘다고 하면 복용량을 늘려주고, 그래도 차도가 없다고 하면 약을 바꾸는 식으로, 땜질 처방을 받는다고 느꼈다. 그러다 요행히 나에게 딱 맞는 약과 투여량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치료가 나의 자가 진단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셈인데, 그 자기 파악에 내가 자신이 없었다. 나 상태가 좋아졌나? 나빠졌나? 잘 모르겠는데.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9월 중순에 항우울제 복용을 내 멋대로 중단했다. 이 경험을 솔직하게 써야겠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런 고백이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독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절박한 마음과 환자 특유의 오기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운이 좋았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서서히 복용량을 줄여야지, 단번에 끊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실제로 나도 얼마 뒤 심각한 공황 발작을 두 번 겪었다.
약을 찬장 안으로 치운 다음날부터 피트니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 무조건 6시 반에 일어나 HJ가 출근할 때 나도 피트니스클럽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하루에 30분씩 달리고, 이틀에 하루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기로. 다른 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것만큼은 지키자고 굳게 다짐했다.
다행히 그렇게 억지로 몸을 밖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 뒤부터 분명하게 차도가 있었다. 그래도 병원에 다니는 걸 멈추지는 않았는데, 운동의 효과 역시 얼마 못가고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병원에 의지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동네 병원은 예약을 한번만 지키지 않아도 환자를 다시 받아주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석 달 동안 병원에 가서는 약 잘 먹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에는 가지 않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약 구매 기록을 의사가 검색할 수 있지 않나 우려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거의 다 나은 거 같으니 약은 그만 먹어도 될 거 같다”고 갈 때마다 이야기했지만 의사는 좀 더 지켜보자며 계속 처방전을 써주었다. 약의 용량은 줄었다.
9월 말에 하루, 10월에 또 하루 공황 발작이 왔다. 갑자기 얼굴 앞에 투명한 벽이 생기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한밤에 집밖으로 나가 근처 개천 다리 위에 한참 서 있다가 돌아왔다. 10월에는 하룻밤에 두 번이나 그랬다.
의사도, 약사도 술을 삼가라고 했다. 그래서 대신 무알코올 맥주를 많이 마셨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하이트제로를 박스째로 주문해서 쌓아놓고 마셨다.
무알코올 맥주는 만드는 방법이 세 가지다. 아예 효모를 발효하지 않는 것, 발효를 한 다음 알코올을 제거하는 것, 발효를 하긴 하되 억제해서 알코올 함량이 1퍼센트 아래인 낮은 도수의 맥주를 만드는 것. 마지막 방법이 무알코올 맥주 중에는 제일 맛이 좋다고 한다. 알코올 함량이 1퍼센트보다 낮으면 무알코올 맥주라고 팔아도 된다.
하이트제로는 비발효 공법 맥주다. 나무위키에는 하이트제로에 대해 ‘맥주고 뭐고를 떠나 기본적으로 맛이 없다’, ‘탄산음료로서도 부적격’ 같은 악평이 적혀 있다. 나는 이게 어디냐, 하고 감사히 먹었다. 진짜 맥주만큼 좋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나는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될 기질이 다분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알코올 맥주가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탄산수 같은 걸로 대신했으려나?
고마운 친구여
지옥 가는 길을 막아줬다오
심심하긴 해요
내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주 원인은 아니겠지만 얼마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하는 요인 중에 일기를 쓰지 않게 됐다는 점도 있다. 30년 가까이 써왔던 일기를 재작년 말부터 쓰지 않고 있다. 타인에게 보여줄 글이 아니니 쓸모가 없다고 여겼고(나조차 다시 읽지 않았다), 바쁘기도 해서였다. 그리고 15개월 뒤에 우울증에 걸렸다.
일상을 혼자 글자로 적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왔는데, 그걸 더 하지 못하게 되어 우울증이 온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맥주를 소재로 일상 에세이를 쓰는 것은 글쓰기에 있는 치유의 힘을 얻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2022년 4월 27일 그믐의 김혜정 대표는 제주문학관을 방문하여 제주도민들과 독서모임이 가진 힘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지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좋아하고, 이 작가의 독서 칼럼을 좋아한다. 내가 은근히 로맨틱한 남자여서 사랑 이야기도 좋아한다. 그래서 매우 취향에 맞는 책이었다. 서태지와 신해 철의 음악이나 노랫말이 아닌 사랑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일이 없어서 고개 끄덕이며 감탄. ‘결국 우리는 사랑 앞에서 버둥거리게 된다’는 표지 문구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