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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시 길로 나와 펄롱은 새로 생긴 걱정은 밀어놓고 수녀원에서 본 아이를 생각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ㅡ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ㅡ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다시
이처럼 사소한 것들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고 펄롱은 검게 반짝이는 강을 내려다보았다. 강 표면에 불 켜진 마을이 똑같은 모습으로 반사되었다.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면 훨씬 좋아 보이는게 참 많았다. 펄롱은 마을의 모습과 물에 비친 그림자 중에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아직
아직
이처럼 사소한 것들
"당신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아일린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거기 있는 애들은 세상에 돌봐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거야. 그 애들 부모는 애들을 멋대로 풀어놨다가, 문제가 생기니까 모른 척 등을 돌려버렸겠지. 자식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무심해서는 안 되는 건데."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 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미시스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펄롱이 아일린을 쳐다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이
"이
맡겨진 소녀
킨셀라 아주머니는 노란 비누와 세수수건, 머리빗을 준다. 물건을 하나하나 모으면서 나는 우리가 함께한 나날을, 우리가 물건을 샀던 곳과 이따금 나누었던 대화를, 그리고 거의 항상 빛나고 있던 태양을 떠올린다.
맡겨진 소녀
"이상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란다" 아저씨가 말한다. "오늘 밤 너에게도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만, 에드나에게 나쁜 뜻은 없었어. 사람이 너무 좋거든, 에드나는. 남한테서 좋은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그래서 가끔은 다른 사람을 믿으면서도 실망할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지. 하지만 가끔은 실망하고." 아저씨가 웃는다. 이상하고 슬픈 웃음소리다. 나는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넌 아무 말도 할 필요 없다." 아저씨가 말한다. "절대 할 필요 없는 일이라는 걸 꼭 기억해 두렴.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많은 것을 잃는 사람이 너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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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킨셀라
킨셀라
922. 인류의 범죄사 (콜린 윌슨)

1990년대 초에 『잔혹』이라는 제목으로 두 권으로 번역되어 나왔고, 당시 번역상도 받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 중에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내가 역사는 발전한다는 믿음과 인간혐오 양쪽을 모두 지니게 된 데에는 이 책이 미친 영향도 좀 있을 것 같다. 『잔혹』은 얼마 뒤 절판되었고, 2015년에 다시 번역되어 나온 『인류의 범죄사』도 지금은 절판. 솔직히 말하자면 콜린 윌슨이 좀 변태라서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좀 변태라서 이걸 읽어냈고.

인류의 범죄사 -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역사
인류의 범죄사 -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역사
921. 아웃사이더 (콜린 윌슨)

세상을 놀라게 한 데뷔작. 콜린 윌슨은 결국 이보다 더 뛰어난 책을 그 뒤로 쓰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핍박을 받고 외롭지만 실은 주변 사람보다 더 우월한 존재이며 남다른 비전을 소유하고 있다고도 믿는다. 뛰어난 책이지만, 책이 거대한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그런 배경도 있었을 거라 본다.

아웃사이더
아웃사이더
24-031 | 이제니,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현대문학 (240205~240222)


❝ 별점: ★★★★★

❝ 한줄평: 시의 제목들을 모으면 또 한 편의 시가 되는 시집

❝ 키워드: 울음 | 슬픔 | 고독 | 물결 | 어둠 | 기억 | 노인 | 죽음 | 빛 | 영혼 | 밤 | 음악

❝ 추천: 음악을 닮은 한 권의 시집을 읽고 싶은 사람


❝ 그리하여 중요한 말은 종이 위에 쓰인 말이 아니라. 쌓이고 쌓이면서 지워지고 지워지는 말들. 그렇게 지워짐으로써 종이 위에 다시 드러나는 말들. 그렇게 말과 말 위로 어떤 겹과 겹을 만들어주는 말들이다. ❞

/ 에세이 | 되풀이하여 펼쳐지는—마전麻田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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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니 시인의 첫 산문집 『새벽과 음악』이 참 좋다는 분들이 많길래 산문집을 읽기 전에 핀시리즈 시인선 013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를 읽어 봤어요. 제 인생 시집 중 한 권이 되었습니다. 📖


✦ 목차를 읽는 순간부터 이 시집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시들의 제목을 쭉 읽다 보니 그 또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 같았거든요. 에세이까지 모두 읽으니 이 시집의 제목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가 정말 와닿았어요. 시집에 실린 시들과 시집 제목이 딱 어울릴 때 더 감동받는 편 🥹


✦ 저에게는 어둠과 고독, 기억과 망각, 밤과 물결, 슬픔과 음악이라는 키워드로 기억될 시집이었어요. 「사막의 말」과 「현악기의 밤」이 특히 좋았는데요. 시를 읽다 보면 모든 시인 각자의 언어는 참 독특하고 그래서 유일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 다름을 명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요.


✦ 에세이 「되풀이하여 펼쳐지는—마전麻田」을 읽으며 시인은 ‘시를 쓰고, 쓴 것을 쌓고, 또 지우고 지우며 그렇게 드러나는 말들을 남기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이지 않는 말의 흔적을 쌓아가는’ 사람의 산문은 어떨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


✦ 밑에 좋았던 시의 제목들을 쭉 써두었지만 사실 거의 모든 시가 좋았어요. 이렇게 마음에 꼭 드는 시집을 만나는 일은 뜻밖의 행운이자 행복 🍀 [📝 2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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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본 것은 철 지난 노래를 부른 뒤의 일이었다. 벽과 벽을 물들이는 것은 꽃과 나무의 그림자였다. 타오르면서 스러지는 것. 우리는 그것을 눈빛과 눈빛 사이의 간절함으로 이해했다.

/ 「헐벗은 마음이 불을 피웠다」 (p.13) 


✴︎

너는 어떤 질문 하나를 남겨둔 채 사막으로 떠나 두 번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깨달음이 후회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 「사막의 말」 (p.15)


✴︎

이 어둠이 걷히면. 이 기억이 스러지면. 어제의 양떼구름을 잊어버렸듯 오늘의 나무둥치의 상처도 잊게 되겠지. 기쁠 것도 슬플 것도. 기억할 것도 잊어야 할 것도. 간직할 것도 버려야 할 것도. 얻어야 할 것도 구해야 할 것도 없다는 듯이. 먼지는 어둠 속에서 별처럼 반짝인다.

/ 「나뭇가지들은 나무를 떠나도 죽지 않았고」 (p.28)


✴︎

  너는 녹아내린 얼음 위에 다시 문장을 새기고 있었다. 읽히지 않는 무늬를 쓰다듬듯 어둠을 만지고 있었다. 투명한 사각형에서 드넓은 표면으로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저편에서 너를 부르고 있었다.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이름을 불러내고 있었다.

/ 「이누이트 이누이트」 (p.33)


✴︎

  너와 나는 재빨리 멀어져 갔다

  서로가 서로의 어둠에 물들지 않도록

  

  각자 등을 돌리고 열심히 걸어갔다

  서로가 서로의 보호막이 되어주려고

/ 「둠비노이 빈치의 마음」 (p.34)


✴︎

익숙하지 않은 배웅처럼 걸음과 걸음 사이에 문득문득 슬픔이 끼어들면서. 너를 너로서. 나를 나로서. 있는 그대로 그 자리로부터 울리면서 물들어가는. 어두운 밤이다. 밤의 노래를 듣고 있다.

/ 「현악기의 밤」 (p.48)


✴︎ 

  공작이 있다. 공작은 오늘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빛을 끌면서 걸어가고 있다. 하나의 영원처럼. 나는 그 공작 앞으로 다가가 구슬 하나를 굴려서 넣어준다. 어린 시절 그토록 꺼내고 싶었지만 꺼내지 못했던 바로 그 유리구슬을.

  

  빛나라고. 

  같이. 더욱 빛나라고.

/ 에세이: 「되풀이하여 펼쳐지는—마전麻田」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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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울고 있는 사람」 ⛤

✎ 「숨 쉬기 좋은 나라에서」

✎ 「헐벗은 마음이 불을 피웠다」 ⛤

✎ 「사막의 말」 ⛤⛤

✎ 「처음처럼 다시 우리는 만난다」

✎ 「보이지 않는 한 마리의 개」

✎ 「나뭇가지들은 나무를 떠나도 죽지 않았고」 ⛤

✎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 「이누이트 이누이트」 ⛤

✎ 「둠비노이 빈치의 마음」

✎ 「마른 잎사귀 할머니」

✎ 「우주의 빈치」

✎ 「높은 곳에서 빛나는 나의 흰 개」

✎ 「현악기의 밤」 ⛤⛤

✎ 「무언가 붉은 어떤 것」

✎ 「모나미는 모나미」

✎ 「달 다람쥐와 함께」

✎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서서」

✎ 「흰 산으로 나아가는 검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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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있지도 않은 문장은 아름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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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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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번개] ‘책의 날’이 4월 23일인 이유! 이 사람들 이야기해 봐요![온라인 번개] 2회 도서관의 날 기념 도서관 수다
🌸 봄에 어울리는 화사한 표지의 책 3
[책증정/굿즈] 소설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을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블라섬 셰어하우스 같이 읽어 주세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이 별이 마음에 들어>김하율 작가가 신작으로 돌아왔어요.
[책증정 ]『어쩌다 노산』 그믐 북클럽(w/ 마케터)[그믐북클럽] 11.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읽고 상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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