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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고

<기생충>으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한 <봉준호를 읽다>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봉준호 감독이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했습니다. 그 때 한 학생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봉준호는 "부조리라고 생각합니다."고 답했죠. 저는 그 문답이 봉준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그리고 한국사회 --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 를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급과 차별, 그리고 사회 모순을 블랙코미디로 다루는 그의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부조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의 세계관과 역량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날뿐만 아니라 70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부조리라는 주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입니다. <시지프 신화>는 <이방인>으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삼부작" 가운데 한권입니다. 서양 철학 고전에 속하죠. 부조리는 오늘날에도 공감을 일으킬법한 주제이기 때문에 흥미로운 논의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학 고전의 독해는 어렵다보니 북클럽 도서가 아니었으면 읽을 기회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부조리는 무엇인가? 언제 사람들은 부조리를 인식하나?


먼저 책의 핵심 주제인 "부조리"에 대한 제 생각, 그리고 책에서 카뮈의 논의를 요약해보았습니다.


부조리는 "인간의 욕구와 세상의 무질서 사이의 불일치" 정도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혹은 "의도와 현실의 불균형"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죠. 살인범을 무죄로 방면하는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부조리하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악인이 심판받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세상은 그렇지 못하니까요.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인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들 (예를 들어 소아암)을 보며 우리는 부조리하다고 느낍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세계는 그렇지 못하니깐요.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기택은 대왕 카스테라 사업을 시작했다가, "먹거리 X파일"과 같은 악의적인 방송에 의해 시장 자체가 무너지는 바람에 망해버렸죠. 창업이라는 개인의 합리적인 결정이 사회적 유행에 따라서 통제 불가능한 지점에 이르는 점이 부조리하다고 느낄법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그 외에도 전쟁, 빈부격차, 교육 불평등 등등 우리가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 면에서 카뮈가 "시지프 신화"를 부조리에 대한 메타포로 잡은 점은 똑똑하다고 느꼈습니다. 시지프가 형벌을 받은 이유도 부조리하지만, 의미없이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형벌의 내용 자체도 부조리하죠.


그렇다면 부조리라는 감정을 어떻게 사람은 인식할 수 있을까요? 카뮈는 "관심"으로 시작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쳇바퀴 돌듯 월화수목금토일을 살다가 문득 "왜"라는 질문이 시작되고, 거기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면서 자각을 하게 된다고 하죠. 그 결론으로 자살을 하든 원래대로 돌아오든 말이죠.


그 자각에서 시작해서 한 단계 더 내려가면 "낯섦"이 등장합니다. 사실 철학의 개념이라서 간단히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의심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스스로를 객관화시켜보고, 현실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부조리를 인식하게 되죠.


부조리를 인식하고 나면 이에 대한 해결책을 탐구하게 됩니다. 그 시작은 먼저 "이해하는 것" 즉 세계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카뮈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일종의 모순어법인데요, 즉 "모든 것은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불일치"의 순간이 다시 발생한다고 봅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한 논증은 혼란스럽게 쓰여져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처럼 "모순이 없는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다른 이유는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카뮈는 이를 "나는 나 자신에게 영원한 이방인이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카뮈는 과학 이론도 마찬가지라고 보는데요, 과학 이론도 결국은 세계를 메타포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즉 원자-전자 모형을 태양계에 비유해서 설명한 것처럼) 인간은 과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여기에서 부조리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카뮈가 현대 양자역학의 논의들을 안다면 반색하면서 논거의 하나로 이야기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카뮈의 결론은, 이성도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죠. 카뮈는 이러한 비판들, 특히 실존주의를 이야기합니다. 즉 이성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에 대해, 야스퍼스,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셰스토프, 후설과 셸러까지의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이성비판에 대한 내용들을 간단히 소개하고, 공통적인 기류를 이야기합니다. 즉 세계는 비합리로 넘쳐난다는 점이죠. 그리고 카뮈는 이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비합리성, 인간의 향수(노스탤지어), 그리고 이 둘의 대면에서 솟아나는 부조리, 이것이 ... 반드시 끝맺어야 할 드라마의 세 등장인물이다." 저는 이 문장이 카뮈가 부조리에 대해 내리는 가장 명확한 정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서 향수(노스탤지어)는 철학적 개념인데요, 현재의 불만족과 과거에 대한 이상화된 기억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즉 세계는 비합리성으로 가득하지만, 인간은 이에 대한 불만족을 가지고 있으며 이상적인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데, 거기에서 부조리가 탄생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어서 카뮈는 부조리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고찰하며 비판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도피일뿐이며, 희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종교적이라고 이야기하죠. 야스퍼스의 신비주의나 셰스토프의 부조리에 대한 수용, 그리고 키르케고르의 종교에 대한 회귀를 통해 지성을 희생하는 것은 결국 "철학적 자살"이라고 평가합니다. 후설과 현상학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비판하는데요, 하나의 진리가 아니라 다수의 진리가 있다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언뜻 부조리의 정신과 비슷하지만, 추상적 다신교에 그치지 않는다며 일축하죠.


카뮈는 이러한 지점에서 벗어나 부조리란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명철한 이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통일성에 대한 노스탤지어와 무질서한 세계 사이를 묶어놓는 모순이 바로 부조리이며, 카뮈는 이러한 분열 (부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생각하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즉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알아내고자 하는 것이죠.


부조리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나?


카뮈는 부조리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크게 3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자살이죠. 카뮈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희망 없음에 대한 "반항"이 곧 자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즉 나름의 방법으로 부조리를 해소하는 것이죠. 카뮈는 "삶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자살한다"고 정의합니다. 즉 자신의 삶에 대해서 "분리" 혹은 "단절" 되었다고 느끼고, 삶이 부조리하기 때문에 자살로 회피한다는 것이죠.


둘째는 종교입니다. 셰스토프와 같은 실존주의자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신을 받아들이면서 부조리의 소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카뮈는 이를 투쟁을 피하는 회피라고 봅니다.


셋째는 버티기입니다. 책의 마지막에서 이를 반항, 자유, 열정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합니다. 반항은 인간이 자신의 어둠과 서로 영원히 대면하며, 매순간 문제 제기를 하는 것입니다. 즉 포기하지 않고 거부하는 것이죠. 자유는 일종의 환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부조리를 경험하면서 자유를 빼앗기는 순간, 실제로는 자신의 삶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충분히 "낯설게" 느끼며 삶을 확장시키게 되죠. 무엇보다도 죽음 앞에서 자유라는 환상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로 삶에 대한 하나의 태도, 즉 "주어진 모든 것을 소진시키려는 열정"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하는 것이, "열정(passion)"이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게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즉 부정적인 의미에서 부조리를 감내하면서 투쟁하는 의미를 담아야 하는데, 보통 로맨틱한 관계에서 사용되는 열정이라는 단어는 완전한 뉘앙스를 담아내기 힘들다고 봅니다. 컨텍스트상 수난(passion)이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의 나머지 절반에서 다룬 돈 후안주의, 연극, 그리고 정복에 대한 이야기는 제가 시대상의 컨텍스트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서 크게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극을 부조리에 대한 메타포로 설명하며 "나"와 "내가 연기한 인물" 사이의 간극으로 비유한 것은 흥미로웠고, 철학과 소설 파트에서 "예술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부조리한 현상이다"하며 부조리한 예술 작품을 만들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연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흥미로웠습니다만 책 전체의 주제에 살을 붙이는 정도였다고 봅니다.


책의 마무리에서는 유명한 "시지프 신화"를 언급하면서 부조리에 대한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 부분은 철학서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우며, 지속된 형벌을 감내하는 시지프의 이야기를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하면서 마무리짓는 것이 "버티기"에 대한 카뮈의 해석이라고 봅니다.


단상들


몇몇 생각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로, 서양 철학 책 자체가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닙니다. 서양 철학 고전들을 읽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독자가 서양 철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실존주의, 현상주의, 합리주의 등등 큰 철학 사조뿐만 아니라 야스퍼스, 키르케고르, 그리고 후설과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핵심 주장, 그리고 서양 철학의 개념들 -- 현상, 실존, 두터움, 낯섬, 노스탤지어 등등 -- 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관련 배경지식이 없다면 내용 이해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책들은 시대를 지나면서 나이를 먹듯, 책에서 제시하는 예제들 -- 2부의 각종 예술 작품 사례들 -- 을 70년후의 우리가 그 시대의 감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책의 전개 방법과 구성이 난삽한 편이라고 느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철학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배경지식의 요구 수준이 너무 높은 편이고, 반면 엄밀한 철학책이라고 보기에는 개념 정의나 논리 전개 방식, 그리고 저자의 주장이 엄밀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책의 구성이 마음에 드는 편은 아니었는데요, 문제 제기로 시작하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파트는 책 뒤쪽의 "시지프 신화" 파트였는데, 제가 편집자라면 그 부분을 제일 앞에 두어서 문제 제기를 하고, 부조리에 대해서 정의한 다음,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논증으로 논리를 전개하고, 작가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결론 부분에서 시지프 신화를 불러내어서 어떻게 다시 이 신화를 해석할 수 있는지로 마무리했을 것 같습니다.


셋째로, 책에서 다루는 부조리와 자살에 대한 분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뮈는 자살을 살아갈만한 가치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며, 내가 살아도 될 가치가 없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죠. 즉 사람들이 부조리에 대한 하나의 해결 방안으로서 자살을 선택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삶과 가치를 이성적으로 저울질하고, 그 결과로서 능동적으로 자살이라는 결정을 내린다고 보는 것이죠.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노인들이 나이가 되면 자살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문화로 보았다고 하는데, 아마 이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견해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사회 심리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살에는 2가지 요소, 즉 우울증이라는 개인 질병의 요소와 남들을 따라서 자살하는 사회적 전염이라는 측면이 있죠. 이외에도 트라우마 및 가난과 같은 심리 및 경제적 요인도 작용하죠. 둘 다 한 개인의 철학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서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적 자살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의미는 있을 수 있으나, 현실 세계의 자살에 대한 연구와는 많은 면에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카뮈가 태어났더라도 같은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넷째로, 저자의 주장 혹은 결론이 없거나 미약하고, 저자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지는 않았습니다.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으로 카뮈는 크게 3가지를 제시하죠. 첫째는 자살, 둘째는 종교, 마지막 셋째는 이른바 버티기입니다.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버텨가면서 행복하게 살아가자, 하는 면은 니체가 강조한 인간 의지와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과 논리 전개가 다소 미약했고, 현재의 부조리한 삶에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은 "노예 근성을 가지고 오늘에 만족하며 살아라"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회사 및 사회생활을 쳇바퀴돌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조리를 내면화하면서 살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저는 4번째 해결책으로 사회적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뮈의 책은 부조리를 "개인"과 "세계"의 대립을 메인으로 다룹니다. 그리고 세상을 뒤집어 엎을 수는 없으니 그 해결책은 결국 "개인"에게 귀결되죠. 자살하든가, 종교에 귀의하든가, 버티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죠. 세계의 부조리한 모습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입니다. 한 개인 개인이 세계를 바꿀 수는 없어도, 역사를 뒤돌아 보면 개개인들의 노력과 욕망이 모여 세계의 모습을 바꾸어 나가면서 모순과 부조리를 해소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노예제가 없어졌고, 의무교육이 생겨났고,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체계가 생겨났죠. 그런 면에서 개개인간의 연대와 사회, 그리고 세계의 부조리를 탐구하는 철학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무리 및 책 추천


"합리성" 혹은 "이성"에 대한 비판은 사실 철학에서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이에 대해 스티븐 핑커의 <Rationality>를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책의 부제가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죠. "Rationality: What it is, why it seems scarce, why it matters". "합리성"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통계학, 논리학, 심리학 등등의 사회과학으로 재미있게 설명하는 점이 대단합니다. 2024년 6월 한국 번역판이 출간 예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시지프 신화
시지프 신화
안 틀리고 100번

아니 150번을 그것도 안 틀리고 100번 이후에 50번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모두 다르게! 쳐야 하는구나~ 최정상급 피아니스트의 경우 😭 물론 나는 아마추어 듣보이므로 안 틀리고 친 적이 없지는 않은데, 그걸 쌓고 또 쌓아서 십 여 회는 했을 수도 있겠지만 ×10는 더 해야 무대 위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인생수업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 -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인생수업
무수한 이들의 끝없는 열정 백과

하나의 지식을 발견하려면, 집단 혹은 개인의 끝없는 고통이 필요하다. 그 결과를 고맙게도 일반인인 나는 앉아서 몇 번의 검색에 향유할 수 있는데도,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일단 수많은 발견 이야기들이 즐겁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심해 탐험처럼 전혀 모르던 이야기도 있다. 지금의 멕시코에서 조금만 더 바다 방향으로 운석이 떨어졌다면, 지구에 아직 공룡들이 있을 거라는 소설같은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와닿는 것은, 이 많은 사람들의 헤아릴 수 없는 고생의 양이다.


목적은 저마다 다르지만 - 돈, 인류애, 지식욕 등등 -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압력을 뜷고 가려하고, 폭발하는 우주선에서 삶을 마감하는 등 말 그대로 죽을 고생을,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물론이고 언급이 다 안 된 사람들까지 하고, 하고, 또 한다. 그냥도 놀라운데 그 고생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작은 일에 쉽게 짜증내고 우울해지는 최근, 지식과 함께 좀 더 버텨보자는 생각도 선사해준 책이다. 그리고, 집필 당시에 아직 결과를 모르고 기다리던 몇몇 연구들의 결과도 지금 알 수 있다는 것이 괜히 즐겁고 뿌듯하다. 역시 꿀꿀할 때는 책이다.

과학에 더 가까이, 탐험 - 오지에서 미지의 세계까지 위대한 발견 실화 80
과학에 더 가까이, 탐험 - 오지에서 미지의 세계까지 위대한 발견 실화 80
월든 읽는 중
  • 사사로운 일상들에 대해서 자신의 꾸밈없는 그대로의 생각들을 쓴 글이라 오래전에 살았던 소로우인데도 읽을때마다 친한 친구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책이 특별히 좋다
  • 24/2/4
  • p
  • 밤늦게까지 마을에 머물다가 다시 집으로 올 때는, 특히 깜깜하 고 폭풍이라도 불 것 같은 밤에 환하게 불이 켜진 어느 집 사랑방이 나 강연장을 뒤로 하여 호밀이나 옥수수 가루 한 부대를 어깨에 메 고 숲 속에 있는 나의 아늑한 항구를 향해 떠나올 때는 기분이 그처 럼 상쾌할 수가 없었다. 
월든 - 완결판
월든 - 완결판
동아일보 〈내가 만난 명문장〉


동아일보 〈내가 만난 명문장〉 코너에 글을 실었습니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128/123270273/1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신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때까지의 세계사는 바로 이것에 불과한 거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악령’ 중


스물두 살에 이 문장을 접했다. 이철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번역한 범우사판 ‘악령’ 하권에서였다. 이후 25년 넘게 이 두 문장에 사로잡혀 있다고 해도 심한 과장은 아니다. 열린책들판에서 박혜경 한림대 교수는 같은 대목을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자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신을 고안해 낸 것뿐이지. 지금까지 전 세계 역사가 그랬어’라고 옮겼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이 대사는 키릴로프라는 인물이 한다. 그는 무신론자이자 허무주의자로, 객기나 냉소가 아니라 진지한 고찰 끝에 저렇게 말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같은 사상을 지닌 인물을 몇 명 더 창조했는데, ‘죄와 벌’의 스비드리가일로프,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이반 카라마조프 등이다. 그중에서도 ‘악령’의 키릴로프는 자기 신념을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자신에게 자살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무서운 결론을 내리고 그걸 실천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도스토옙스키가 무신론을 반박하기 위해 창조한 캐릭터가 후대의 무신론자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예를 들어 알베르 카뮈의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는 한 챕터의 제목이 ‘키릴로프’다. 카뮈가 이 책 전체에서 다루는 문제도 바로 키릴로프가 매달렸던 그 질문이다. 인간은 왜 자살하지 않고 살아야 하는가? 신 외에 어떤 다른 대답을 댈 수 있는가?


나는 나대로 거기에 답해보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막연하다. 저 두 문장에서 시작한 소설을 써보기도 했다. 살 이유가 없다며 연쇄 자살을 벌이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나, 신 대신 다른 윤리의 기반을 발명하려는 살인자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 아마 앞으로도 몇 편 더 쓰게 될 것 같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 없이 살 수 있는 삶이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동시에, 그 노력이 불러일으키는 긴장 상태가 일종의 축복이라는 생각도 한다.


896. 뒤마 클럽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주인공은 고서적 사냥꾼이고 악마숭배주의자들의 음모가 나오고 분위기는 『장미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데 200만 명이 읽은 베스트셀러이고, 로만 폴란스키가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 읽지 않을 도리가 있나. 그런데 결말이……. 이 책 때문에 『단테 클럽』에 손이 안 간다.

뒤마 클럽
뒤마 클럽
895. 마르크스의 복수 (메그나드 데사이)

무게는 1킬로그램에 가깝고 마르크스의 얼굴이 표지에 크게 그려져 있는 책인데 너무 안 읽혀서 오래 들고 다녔더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내용을 궁금해 했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복수를 했대?” 그런 질문을 받으면 “아직 자본주의가 충분히 썩지 않았대” 하는 식으로 답하곤 했다. 저자가 정치인인 걸 일찍 알았더라면 금방 내려놨을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의 복수 - 자본주의의 부활과 국가사회주의의 죽음
마르크스의 복수 - 자본주의의 부활과 국가사회주의의 죽음
당신이 잘 잤으면 좋겠습니다

불면증에 관한 약제 설명이 좋았다. 벤조디아제핀 수면제 섭취시 치매 발생 확률 높이는 부분도 명료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납득.

당신이 잘 잤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잘 잤으면 좋겠습니다
24-022 | 최진영, 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240204~240205)


❝ 별점: ★★★★★

❝ 한줄평: ‘과거는 꿈이 아니다. 나의 미래는 나.’ (p.97)

❝ 키워드: 죽음 | 이별 | 존재 | 지금 | 시간 | 비밀 | 편지 | 진실 | 행복 | 불행

❝ 추천: ‘사라지는 지금 속’ 나라는 존재 혹은 나의 삶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


❝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 ❞ (p.99)


📮 첫 문장: 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차가운 수요일 오후 2시경, 할머니는 엄마가 쟁반에 차려 온 미음도 약도 마다하고 창을 조금만 열어달라고 했다. (p.9)


———······———······———


✦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 아직 2월이지만 2024 올해의 책 중 한 권이 되지 않을까 싶다.


✦ -, +, ÷ 세 기호를 사용해서 시간대를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과거는 +. 현재는 -. 편지가 등장하는 장면은 ÷. 우리는 ‘0의 자리’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죽음의 순간에는 0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아닐까. 그 와중에 나라는 존재를 쪼개고 나누기도 하며 덜어낼 건 덜어내고 보탤 건 보태며 살아가는게 아닐까. 


✦ 편지를 쓰면 그 편지에 담은 마음들을 받는 사람만 갖는 줄 알았는데, 쓸 때의 마음을 나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에게 주는 나의 마음, 1년 후의 나에게 편지 쓰기를 한번 해봐야겠다.


✦ ‘시절인연’이라는 말처럼 죽고 못 살 것 같던 관계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영원한 게 절대 없진 않겠지만 거의 없다고 믿는 나는 순간의 행복과 관계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의 좋은 순간을 담아 둔 사람을 지운다 해도 그 시절까지 전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태희도 좋았던 순간과 시간의 기억은 잘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 ‘이거 야광이다. / 말해 주려고.’(p.192)라는 별 거 아닌 이 한 마디가 왜 이렇게 눈물 나게 하는 걸까. 어린 태희도, 어른 태희도 모두 꼭 끌어안고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싶었다. 더 이상은 자기 자신을 모욕하지 않고, 참고 견디지만 말고,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 정용준 작가님이 발문을 쓰셨다는 걸 발문 페이지로 넘기면서 알았는데 깜짝 선물 같아서 더 좋았다. ‘이것이 증명인 줄도 모르고, 내가 이미 내가 됐다는 것도 모르고, 꿈을 곁에 두고 사는지도 모르고, 이토록 용감하고 대범하게 사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고 쓴다.’라는 문장이 태희를 보듬어주는 것 같아 참 뭉클하고 따뜻했다.


✦ 종종 재독 하고 싶은 책이다. ‘나의 미래는 나,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으며,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 이런 문장을 만나기 위해 책을 읽는 것만 같다. [📝 24/02/07]


———······———······———


| 나는 썼고 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전부 말했다. 이제 더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 된 거다. 우리는 서로에게 버린 거다. (p.136)


|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섞인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이별할 수도 있다.

  우리는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다. (p.170)


| 한때 나는 우리 모두 지옥에서 왔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행복할 수도 있다. (p.209)


|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p.210)


| 나는 다시 빠르게 일기를 훑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이모와 속초 바다를 보고 왔다’라고 시작하는 일기에서 멈췄다. 그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나는 나만 될 수 있다. 나는 남이 될 수 없다.’ 비슷한 생각을 했었지. 지난 번 카페에서. 1년 후에 정말 그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변치 않은 부분은 존재할 테고,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는 순간 마치 만난 것만 같았다. 문장 속에서. 과거의 나를.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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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는 꿈
내가 되는 꿈
정신머리

온갖 현란한 기교들이 때로는 대만식 카스테라처럼 올드패션에 불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동춘 서커스 관람석에 앉은 으르신 심사위원님들은 좋아라했을지도...

정신머리
정신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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