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적할 때 좋은 책들은 큰 위안이다. 그리고 허전하고 집중력도 떨어질 때, 제일 편안하고 즐거운 건 먹는 얘기다. 번역이 나온지가 십 년이 넘어가는 책이지만, 각종 소소한 이야기거리를 즐기면서 세상에 내가 모르는 어떤 맛난 게 또 있나 눈을 좀 번뜩여보기 적절했다.
나이 드니 별 이상한 데서 찡해질 때가 많은데, 벌써 역자의 말에서 찡하고 - 한국의 빵 과자 전래 역사에 비해 역사서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 제과업계에 몸담은 기술인으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다는 이야기 - 기술은 커녕 뭐 제대로 의사소통은 되었겠나 싶은 옛날에 긴 교배를 통해 7쌍 염색체 의 밀을 21쌍 염색체로 탄생시킨 이야기나 - 얼마나 배고프고 필사적이었겠는가 - 사과가 몸에 좋다는 말 한 마디 하는데 시대와 맞서는 용기가 필효했다는 것에 또 찡...밥줄 걸리면 체면이고 자시고 없는 건 시대를 초월한다는 게 좀 슬픈 대목도 있고, 이 책 보기 전에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부세 아 라 렌느도 참으로 먹어보고 싶고...갑갑한 마음을 좀 샤워도 시켜주면서 이것저것 알려준 즐거운 책이었다.
요새 아마추어 콩쿨을 또 준비하기에; 피아노 방송을 보고 있었는데 salon de piano라고 렉쳐콘서트가 있는 kbs 📻 방송이다. 마침 그날의 주제가 친구여서 출연진의 친구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따금씩 연락이 왔었지만 최근엔 거의 연락하지 않은 친구의 부고를 접했다. 연락처 바뀌었을 때 알려주지 않은 적도 있었어서 몇 년 안 본 적도 있었지만 공부만 파던 중학교 때 담임이 지정해주어 짝으로 앉았던 삼십년 친구가 어제 갔다. 야, 우리가 돌도 씹어먹을 나이는 아니어도 그리 일찍 갈 나이도 아니지 않아? 바보 멍충이.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2권. 마시마 마코토에게 이번에도 조금 이상하고 조금 귀엽고 조금 무섭기도 한 의뢰들이 온다. 이시다 이라는 “돈 버는 게 가장 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나 보다. 부럽다. 알라딘에서 이 책 검색하면 을유세계문학전집 『그라알 이야기』 표지가 나온다.
이시다 이라의 데뷔작이며,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아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의 1권이다. 『호모도미난스』에 일본 청소년들의 길거리 싸움이 나오는데, 이 시리즈를 참고하며 썼다.
다른출판사의 김한청 대표는 번역서 출간을 기획할 때 ‘독자를 딱 한 명 꼽는다면 누가 좋을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책인가, 그가 책을 재미있어할까’를 고민한다고 한다.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의 720쪽짜리 저작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를 펴낼 때 그 질문의 답은 대통령이었다. 이후의 확장 독자로는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로마는…』을 다시 펼치니 새삼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를 소재로 한 다른 인문교양서나 영상물처럼 이 책도 로마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정이 시작되는 시기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룬다. 그런데 흔히들 주인공으로 삼는 카이사르가 아니라 키케로와 아우구스투스에 초점을 맞춘다. 게다가 이들을 미화하지 않는다.
독재자의 등장을 막고 공화제를 지키겠다는 키케로의 목표는 왜 실패했는가? 어떤 판단이 문제였고, 어떤 약점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나? 이런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변을 우리 시대의 정치인들이 새겨들으면 좋겠다. 아우구스투스는 어떻게 그렇게 성공적으로 로마를 장악했나? 어떤 가면과 술수가 먹혀들었나? 조직을 이끄는 운영자들이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대목이다.
한편 저자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이런 관성 어린 시도 자체도 경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로마는 놀랄 정도로 현대적인 면모를 갖췄지만, 동시에 현대인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야만적인 관습과 사고방식이 있었던 낯선 땅이기도 하다. ‘로마에 관한 한 편의 이야기 같은 것은 없으며’, 로마인들 역시 로마의 정체를 혼란스럽게 여겼다.
책은 후대의 신화화를 걷어내고 매력적인 이국(異國) 로마와 그곳 사람들을 새롭게 보여준다. 이용하는 자료는 시, 편지, 연설문에서부터 법안과 장부에 이르기까지 로마인들이 직접 남긴 풍부한 기록들이다. 정치인이나 경영자가 아니더라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교양 독자에겐 그런 이유로 충분히 즐거울 책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저자가 왜 현역 로마 연구자 가운데 가장 독창성이 돋보이는 인물로 꼽히는지, 왜 BBC 방송국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는지도 알 것 같다.
김하율 작가의 <이 별이 마음에 들어> 를 그믐북클럽 11기에서 재미나게 읽고 있다. 그믐북클럽은 29일간 그믐에서 정한 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인데 이 책의 경우 무심코 들췄다가 단번에 끝까지 다 읽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신 분들도 여럿이다.
비문학의 경우는 나란히 보폭을 맞춰 읽는 게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문학의 경우는 이런 점이 함께읽기할 때 신중히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다. 사람마다 읽는 속도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 소설은 스토리의 힘이 있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 (이라 쓰고 잔소리? 😂) 없이도 쭈욱 읽어가기 쉽다. 즉, 단순히 책의 진도만 생각한다면 ‘함께읽기’의 도움 자체는 많이 필요로 하지 않은 편.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빠르게 읽고 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비문학에 비해 오히려 남는 것이 없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줄거리가 전혀 기억조차 안 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이때 함께 읽으면서 남겨 둔 기록들이나 단상들을 살펴보면 꽤나 도움이 된다. 또한 같은 책을 읽고 나와는 다르게 느낀 이들의 감상을 읽으면 나는 무심코 넘겼던 부분이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재미있는 함께읽기를 만들기 위해 김하율 작가가 책의 오타를 찾아 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읽어도 나는 절대 못 찾겠다 싶었는데 역시나 눈밝은 멤버가 있었다. 김아톰 님이 바로 그분! 알고 보니 외계에서 이 별에 떨어졌는데 그때 책의 오타 찾는 능력을 부여받으셨다고 (는 내가 지어낸 말이고 😂) 하지만 편집자와 그 책의 저자가 8번을 봤는데 못 찾은 오타를 단 번에 찾아냈다면 실제 (초)능력이라 부를 만하지 않은가.
정답자 선물은 예정에 없었지만 작게라도 보내 드리고 싶어 부랴부랴 택배 준비! 그믐 책갈피와 엽서, 커피 등을 포장했다. 부디 받으시고 잠깐이라도 기분이 좋아지시면 좋겠다. 별에서 온 오타사냥꾼, 김아톰 님 😊
마케팅과 영업 분야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려는 기업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보유하고 있는 자료를 이리저리 주무르면 뭔가 나오겠지, 라는 생각으로 막연히 데이터 분석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기업이 많다고 한다.
이후에 대통령이 될 두 사람이 1996년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맞붙었다. 둘은 서로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선거를 치렀고, 한 사람이 당선되었다가 선거 부정으로 물러났다. 이 소재로 언젠가는 책을 쓰겠다고 벼르던 정치부 기자들 꽤 많지 않았을까. 부지런한 기자가 성실하게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