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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선균 씨가 가다

이게 그럴 일입니까?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ㅡ 오오랜 팬 새벽에 벌떡 일어나 글을 딱.

23-085 | 민구, 세모 네모 청설모

현대문학 (231208~231229)


❝ 별점: ★★★★

❝ 한줄평: ‘꿈이 나를 아무리 깊은 바다로 떠밀더라도 나를 붙잡아줄 것 같은’ 시들

❝ 키워드: 이야기 | 사람 | 행복 | 슬픔 | 꿈 | 동물 | 기억 | 진실 | 미래 | 사랑 | 이름

❝ 추천: 언어유희가 재미있는 시집을 좋아하는 사람


❝ 네가 평평하지 않고 공평하다면

   세모일 수도 있고

   네모일 수도 있고

   청설모일 수도 있지 ❞

/ 「평평지구」 (p.52-53)


———······———······———


✦ 시집을 읽다 보면 언어유희가 재미있고, 또 재미난 상상도 많이 등장하지만, 진지하고 슬퍼지는 순간들도 있다. 화자는 ‘자신의 그릇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종이 접시처럼 볼품없어서 마음 아파하며 크림 컬러의 플레이팅 접시나 바로크 엔틱 찻잔이었더라면 꿈을 크게 가질 수 있었을까’ 자조하기도(「그릇」) 하고, ‘걸을수록 나 자신과 멀어지는 게 좋아 멀리 한강공원까지 나가 나를 유기하지만 잘라서 버린 팔다리와 머리가 어김없이 자신에게 붙어 있어 잔소리에 시달려 한숨도 못 자기도’(「걷기 예찬」) 한다.


✦ 그렇지만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축시 부탁을 받고’ 시를 쓰다 ‘재난문자 같은 시에 축시 마감을 한 주만 미룰 수 없을까’란 엉뚱한 상상을 하며 ‘면사포를 써야 상냥한 말이 떠오를 것 같다’(「축시 쓰기」)고 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외로워서’ ‘몸은 두고 다리만 집으로 와서 집정리도 하고, 가볍게 춤을 추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혼자」)도 하는 화자. 꿈을 자주 꿔서 ‘살아 있는 자들의 무덤, 심지어는 나 자신의 무덤을 보기도 하지만 잠에서 깨면 태연하게 모닝커피를 마시고’(「굿모닝」), ‘몇 날 며칠을 바다에 빠지는 꿈을 꾸지만 쌍무지개 휘어지도록 단단하게 자신을 붙잡아주는 이가 있는’(「햇빛」) 화자. 화자는 웃을 줄 알고, 웃음을 만들 줄도 아는 단단한 사람 같다.


✦ 얼마 전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열린 민구 시인의 낭독회를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봤는데, 시가 유쾌하고 웃긴 것만큼 민구 시인도 참 유쾌하고 웃긴 분 같았다. 이번 시집의 제목 『세모 네모 청설모』와 시집 표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엄청 솔직 담백하게 말씀하시는 게 묘하게 재미있고 유쾌해서 즐겁게 들었다.


✦ 이름과 별명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인의 에세이 「별명」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맹구부터 민민구, 밍크까지. ‘민민구’ 에피소드에서는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별명이라는 걸 마지막으로 가져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안 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름으로만 불린다는 건 그에 걸맞은 관계를 설정한다는 의미’라는 시인의 말이 확 다가왔다. 어릴 땐 별명이 있다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별명을 가졌던 때를 그리워한다니. 참 웃기다.


✦ ‘사랑한다면 벼멸구라도 상관없다’고 하며 누구와도 ‘친구가 될 준비가 됐다’는 민구 시인. ‘별명 없이 이제 이름으로 불리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p.110)는 시인에게 족제빗과 동물 밍크와 민구를 합친 ‘밍구’라는 귀여운 별명을 지어주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일에 치중하면서 살고 싶다’는 그가 멋지고 귀엽다고 말하면 실례일까? 그러나 그건 정말 진심으로 멋지고 귀여운 일이라 생각한다. ‘밍구’의 다음 시집도 벌써 기대된다. [📝 23/12/29]


(*현대문학 핀사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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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걸을수록 나 자신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 「걷기 예찬」 (p.18)


 내 그릇을 본 건 처음이었어


   청소하다가 우연히 꺼내본 그릇

   너무 작아서 웃음이 나왔다

   내 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원형이나 사각형은 아니었고

   강박 때문에 금이 갔으며

   녹슬어서 보여주기 민망했다

  

   크림 컬러의 플레이팅 접시나

   바로크 엔틱 찻잔이었더라면

   꿈을 크게 가질 수 있었을까

/ 「그릇」 (p.40)


❝ 만약 네가 백 년 동안 살아 있다면

   수조를 준비해야겠지

  

   그땐 이 방이 수조 속에 들어가서

   모형 풍차처럼 조그만 기포를 만들며

   내가 너의 마리모가 되겠지

  

   그게 마음에 들었다

/ 「마리모」 (p.66)


 별명이 없다. 이별 인사 없이 떠나버렸다. 이젠 이름으로 불린다. 이름으로 불리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다. 이름으로만 불린다는 건 그에 걸맞은 관계를 설정한다는 의미이다. 즉, 일하자는 거다. 돈을 벌어야 시를 쓰니까 어쩔 수 없다. 그래도좋아하는 일에 치중하면서 살고 싶다. 별명을 불러도 좋은 친구가 그립다. 나를 뭐라고 불러도 좋은 사람들. 나는 친구가 될 준비가 됐다.

/ 에세이: 「별명」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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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 「한 사람」 ⛤

✎ 「멍」

✎ 「걷기 예찬」

✎ 「축시 쓰기」

✎ 「아무도 모른다」

✎ 「그릇」 ⛤

✎ 「굿모닝」 ⛤

✎ 「평평지구」

✎ 「혼자」 ⛤

✎ 「우리 사이」

✎ 「마리모」 ⛤

✎ 「의미 없는 삶」 ⛤

✎ 「포춘 쿠키」

✎ 「새해」 ⛤

✎ 「비수기」 ⛤

✎ 「간조」 ⛤

✎ 「햇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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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 네모 청설모
세모 네모 청설모
23-084 | 정현우, 소멸하는 밤

현대문학 (231219~231228)


❝ 별점: ★★★★☆

❝ 한줄평: 소멸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 키워드: 마음 | 기다림 | 겨울 | 눈 | 밤 | 죽음 | 슬픔 | 울음 | 기도 | 꿈 | 사랑 | 엄마

❝ 추천: 겨울밤의 슬픔이 가득한 시집을 읽고 싶은 사람


❝ 어떤 슬픔은 머무르는 그대로 우리를 살게 하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은 슬픔이 있어, ❞

/ 「소멸하는 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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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을 읽다가 시인이 ‘소멸’에는 ‘사라져 없어짐’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에너지가 합쳐져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내보내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기에 사전을 찾아보았다. ‘소멸’에 ‘반입자(反粒子)와 소립자(素粒子)가 합체해서, 그 정지(靜止) 에너지를 다른 입자의 형태로 방출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존재가 ‘사라져 없어진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꾸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훗날 상실의 아픔을 겪고 슬픔의 시간을 지나가게 될 때 이 시집을 읽었던 일이 떠오르면 좋겠다.


✦ 밤, 그리고 겨울. 뭔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나긴 기다림이 떠오르는 시간이다. 시집을 읽으며 겨울밤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누군가를 애도하는 과정도 그러하지 않을까.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나긴 슬픔. 차갑고 매서운 눈바람이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 쉽사리 녹을 것 같지 않은 마음.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이를 꿈에서라도 만나게 될 때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은 순간.


✦ 그렇지만 ‘어떤 슬픔은 머무르는 그대로 우리를 살게’(「소멸하는 밤」) 해서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소멸하는 밤」)기도 한 것이다. 프로이트의 애도가 대상의 상실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내는 것이라면, 데리다의 애도는 대상을 영원히 기억하고 슬퍼하는 것이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슬픔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에 애도는 끝나지 않고, 또 불가능한 것이 된다. 슬픔이 머무르는 게 꼭 아픈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했던,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기억하고 슬퍼하는 게 애도라면, 그 기억과 슬픔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까.


✦ 시인의 에세이 「슬픔의 반려」에서도 할머니께서 “모든 슬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나온다. 슬픔의 반려(伴侶)는 무엇일까. 언젠가 슬픔을 반려(返戾)하는 날이 오기도 할까. 


✦ 당신은 어떤 것이 ‘소멸하는 밤’을 보내게 될까. 겨울 내내 곱씹어 보고 싶은 그런 시집이었다. [📝 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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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가, 라는 말 대신 차오르고 마는 강수, 슬픔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면 네 눈빛을 하고, 빈 의자에 앉아 창가를 보는사람이 너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열할 수 없는 슬픔은 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꺄, 모든 비는, 두 눈은,

/ 「스콜」 (p.21-22)


❝ 잘 지내? 너무 먼 그곳,

   여기 겨울 볕이 좋아, 

   이건 나 혼자 오래된 이야기.

/ 「물끄러미」 (p.47)


 마음은 떠나도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데

   마음을 가진 인간은 왜 돌아오지 못하지

/ 「민들레」 (p.65)


 사라지는 것들의 소리를 듣고 있다는 일이 경이롭지 않나요.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나요, 꿈 곁을 들어 올리면 내일 꾸어야 할 꿈들이 빛을 향한다, 꿈속에는 빛이 없으면서, 당신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면서.

/ 「하모니카」 (p.108-109)


 “모든 슬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나를 더는 못 보더라도 슬퍼하지 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모든 슬픔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니. 기억난다. 지금까지도. 모든 슬픔이 사라지는 순간이. 촛불이 더 이상 타들어갈 수 없다는 듯이 흔들리는 심지가. 할머니의 꺼져가는 동공 위에 비치는 울고 있는 엄마의 얼굴과 멈칫거리는 내 모습이. 작아진 할머니의 몸을 엄마와 함께 들었을 때, 이리 가벼울 수 있을까. 죽음이 이리 가벼울 수 있구나. 이미 할머니의 몸에서 마음이 떠나갔음을 엄마와 나는 알았다. 밤의 궁전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음을.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저어둠의 궁전으로 우리를 들여보내주지 않을 것임을. 다시는 열어보고 싶지 않은 상자들이 쌓였다. 상자 속에 들어가는 죽음이라니, 이토록 간단하다니, 나의 할머니와 반려동물들은 하나같이 상자 속에 들어갔다. 그래. 묻기 쉬우라고.

/ 에세이: 「슬픔의 반려」 (p.136-137)


 꿈에서 깨었을 때 베갯잇이 눈물로 젖어 있었다. 눈물은 신이 인간에게 슬플 때 춥지 말라고 주는 무엇일까. 눈물을 흘리고 나면 두 눈이 따뜻해지니까, 더는 춥지 말라고, 슬픔에 얼어붙어 있지 말라고.

/ 에세이: 「슬픔의 반려」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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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너는 모른다」 ⛤

✎ 「스콜」

✎ 「소멸하는 밤」 ⛤

✎ 「피에타」

✎ 「물끄러미」


2부

✎ 「수국」 ⛤

✎ 「기일」

✎ 「빛의 다락」 ⛤

✎ 「민들레」

✎ 「몫」

✎ 「조감도」

✎ 「윈터링」 ⛤

✎ 「광합성」 ⛤


3부

✎ 「오목」

✎ 「하모니카」

✎ 「파종」 ⛤

✎ 「겨울의 연서」 ⛤

✎ 「앵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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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는 밤
소멸하는 밤
그믐북클럽 11기를 모집합니다!

그믐북클럽 11기를 모집합니다!

그믐북클럽에서는 그믐이 엄선한 좋은 책을 끝까지 읽고 질문에 대답하며 사유하는 힘을 기르실 수 있습니다. 그믐에서 추천하는 책을 무료로 받아 함께 읽으며,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기 원하시는 독자 20명을 초대합니다.

 

그믐북클럽이 열한 번째로 선정한 책은 <이 별이 마음에 들어>(김하율, 2023, 광화문글방)입니다. 바로 직전의 그믐북클럽 10기에서는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을 읽으며 단편소설 8편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어요. 소설에 대해 커진 우리의 관심을 모아 이번에는 장편 소설을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지난 10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는데요, 일단 이번 작품도 수림문학상이라는 5천만 원 고료의 큰 상을 받은 작품이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또한 이번에도 작가님의 보석 같은 질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지요. 한편 다른 점은 이번에는 작가님과 실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온라인 북토크까지 예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자세한 일정은 추후 공지할게요)

 

아주 두껍지 않은 분량(280쪽)의 흡입력 있는 이야기로 평상시 책 읽기에 익숙지 않은 분들도 빠져들어 읽기 좋아요. 새해, 새 마음으로 그믐북클럽 도전, 어떠세요?

24년에도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야 할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별의 이야기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런 분들과 함께 읽고 싶어요!


• 2024년 한 해를 책과 함께 시작하고 싶은 분

• 장편소설이 주는 긴 이야기의 재미를 찾고 싶은 분

• 수림문학상 수상작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의 흐름을 읽어내고 문제의식을 발견하고 싶은 분

• 그믐북클럽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며 함께읽기를 경험하고 싶은 분 



- 모집 기간: 12월 27일(수) ~ 1월 7일(일) 오후 6시까지

- 모집 인원 : 20명 + a (제공 가능한 책의 숫자가 한정되어 20분에게 증정합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구매하고 북클럽에 참여하시는 것도 대환영입니다.)


그믐북클럽 11기 참여 신청하기  


844. 보이지 않는 지능 (렌 피셔)

저자는 도넛을 커피에 가장 알맞게 적셔 먹는 방법에 대한 연구로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적도 있는 물리학자. 과학 칼럼니스트로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부제가 ‘최상의 해답은 대중 속에 있다’고 해서 ‘민중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분위기인가 싶지만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다중지성은 집단사고나 민주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

보이지 않는 지능(양장본 HardCover)
보이지 않는 지능(양장본 HardCover)
843.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와카타케 나나미의 데뷔작. 작가 본인이 실명으로 등장하며 기업 사내보 편집을 맡아 익명 작가의 글을 매달 연재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왜 이런 형식을 사용했는지도 뒤에 가면 설명된다. 익명 작가의 글은 미스터리 단편이기도 하고 괴담이기도 하다. 귀엽고 재미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23-083 | 이연, 매일을 헤엄치는 법

푸른숲 (231225~231227)


❝ 별점: ★★★☆

❝ 한줄평: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매일 조금씩 나아가기

❝ 키워드: 퇴사 | 나 | 정리 | 도전 | 성장 | 호흡 | 헤엄 | 인생

❝ 추천: 방황을 끝내고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멀리 헤엄치고 싶은 사람


❝ 멀리 갈 수 있겠지.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매일을 헤엄치면 돼. ❞

/ 에필로그 나는 더 멀리 갈 거야. | # 매일을 헤엄치는 법


✦ 겨울부터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 미술 크리에이터 이연의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찬란했던 1년’을 담고 있는 그림 에세이다.


✦ 유튜브 구독자가 아니어서 사실 이연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며 물 밑에 가라앉아 있는 이들이 바닥을 딛고 다시 떠올라 더 멀리, 꾸준히 헤엄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듯한 글이 좋았다.


✦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하나하나 꾸준히 해내다 보면 어느새 내가 있던 자리에서 꽤나 멀리 온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더뎌 보여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도, 매일을 헤엄치다 보면 ”그 안에서 우리는 매일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응원. ‘껍데기를 벗어던진 가장 약해진 그 순간에 비로소 성장하는’ 우리. 어쩐지 나도 멀리 헤엄쳐갈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 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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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데일 카네기가 되어라. 다른 사람의 한계에 신경 쓰지 마라. 너는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될 수 없다.”


  이 문장 속 ‘데일 카네기’에 각자의 이름을 집어넣어도 틀림이 없는 문장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일 뿐이기에 남이 될 수 없고, 그것만으로도 몹시 충분하지만 그 사실을 자주 잊고 산다.

/ 1장 겨울 | 「‘나에게 소속된다는 것’은」


| 내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하다. 흉내를 그만두고 내가 나일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 1장 겨울 | 「‘나에게 소속된다는 것’은」


| 사실 지우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틀린 선을 그었다는 뜻이 아니고 마음껏 틀려도 된다는 뜻이 아닐까? 영원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괜찮아. 삶에서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누리는 것. 이게 지금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 2장 봄 | # 지우개의 의미


| 뭐 어쩌겠어. 겨울이 영영 오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지도, 영생하고 싶지도 않다. 겨울이 있기 때문에 계절이 순환하는 것이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나는 것이니까. 너무 미리 슬퍼할 필요 없이 지금의 찬란한 녹음과 시간을 감사히 여기면 된다. 그게 삶의 허무를 줄이는 일이다.

/ 4장 가을 | 「허무하지만 아름다운 계절」


| “똑같아 보여도, 그 안에서 우리는 매일 달라져 있어.”

  그래, 우리도 매일을 살면서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 5장 다시 겨울 | # 수영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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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그림 에세이
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그림 에세이
일론 머스크

조만간 테슬라 주식에서 돈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
23-082 | 안희연,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난다 (231125~231226)


❝ 별점: ★★★★☆

❝ 한줄평: 겨울 내내 아껴 읽고 싶었던 글들

❝ 키워드: 산문 | 이야기 | 당신 | 기억 | 삶 | 음식 | 물건 | 사랑 | 밤 | 시선

❝ 추천: 시인의 ‘먹고 사고 사랑하는 일’이 궁금한 사람


❝ 달기만 하거나 쓰기만 한 삶은 없어. 달고도 쓴 삶이 있을 뿐이지. ❞

/ 「시칠리아에서 시나몬 스틱까지의 삶」 (p.28)


✦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이 책은 겨울에 읽고 싶어서 남겨두었다가 겨울 냄새가 날 무렵 꺼내 들었다. 한 번에 다 읽을 생각이었는데, 글이 좋아서 아끼고 아껴 읽다 보니 완독까지 오래 걸렸다.


✦ 1부에서는 음식, 2부에서는 물건에 얽힌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3부에서는 좀 더 내밀한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엄마에 관한 글들. ‘엄마’라는 단어는 이유 없이 자주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 보통 아기가 처음 내뱉는 단어는 엄마. 사람과 사랑이라는 두 단어를 연결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도 엄마. 영상이나 음성 녹음을 자주자주 해둬야겠다.


✦ 시인이 쓴 산문집을 읽을 때 또 다른 시를 읽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안희연 시인의 시집도 참 좋았지만,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사랑을 말하는 산문들도 참 좋아서 다른 산문집도 찾아 읽어 보려고 한다. 여름에 읽으려고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아껴두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여름을 싫어하는 나도 조금은 여름이 기다려진다. [📝 23/12/26]


(*<시인이 사랑하는 시인을 읽는 밤—안희연 시인> 행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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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날 머그컵 위로 비쭉 솟아오른 시나몬 스틱은 말했다. 양손에 쥘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게임은 아니란다. 너는 시나몬 스틱의 삶을 위해 시칠리아의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시나몬 스틱에서부터 시칠리아까지의 스펙트럼을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건 얼마나 드넓고 풍성한 시간이니.

/ 「시칠리아에서 시나몬 스틱까지의 삶」 (p.30-31)


| 나는 헤맴에 최선인 사람이고 싶다. 현실은 빈약한데 이상은 턱없이 높아서가 아니라, 적당히 타협할 줄 모르는 까다로운 성미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 자체가 우리를 살아가게 하기 때문에 그렇다.

/ 「신발에 맞는 발을 고르러 나간 언니는 어떻게 되었나」 (p.81)


| 그것은 통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명은 지구에, 다른 한 명은 화성에 있는 두 사람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 내일 로켓을 타고 당신에게 가겠다, 내 목소리 듣고 있냐, 보고 싶고 사랑한다. 이쪽의 고백은 멀고먼 우주를 가로질러 저쪽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말들은 우주의 공허에 잡아먹히고 유성우에 부딪혀 부서지고 흩어진다. 끝까지 살아남은 단어는 오직 이것이었다. ······사랑······

/ 「등뼈를 상상하는 버릇」 (p.136-137)


| 겨울은 오고 있다. 올겨울은 어떻게 쓰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사실은 겨울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언젠가 마음이 동해 내 손으로 직접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드는 날도 올까. 아마 그럴 것이다. 다만 내가 내 몫의 크리스마스트리를 갖게된다면 거기 아무것도 매달지 않으리라. 그저 나무가 오롯이 나무일 수 있게. 사랑이 그저 사랑일 수 있게.

/ 「그 겨울의 끝」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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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 안희연 산문
당신이 좋아지면, 밤이 깊어지면 - 안희연 산문
842. 안락 탐정 (고바야시 야스미)

『앨리스 죽이기』에 대해 독특하다, 황당하다, 뻔뻔하다는 표현으로 감상을 남겼는데, 이 연작 단편소설집에 대해서도 같은 단어들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겠다. 『앨리스 죽이기』만큼 기묘하지는 않다. 수록작들의 수준이 들쭉날쭉한데 「다이어트」가 무척 좋았다. 책 전체의 마무리도 나는 마음에 든다.

안락탐정
안락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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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증정/굿즈] 소설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을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블라섬 셰어하우스 같이 읽어 주세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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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증정 ]『어쩌다 노산』 그믐 북클럽(w/ 마케터)[그믐북클럽] 11.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읽고 상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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