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학 모임 9기 2회] 2026년 2월, 지바 마사야, <현대사상 입문> 모임 후기
2026-03-22 23:34:39
어제 독서모임 아름 비문학 모임 9기 2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번달에는 여섯 분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제가 깜빡하고 사진은 못 찍었습니다.
책의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
작가 소개
지바 마사야(1978~ ). 리쓰메이칸대학 대학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교수이자 소설가. 단편소설 <매직미러>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수상(2021)했다고 합니다.
책 선정 이유
현대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은 데리다, 들뢰즈, 푸코 등 현대 사상을 대표하는 사상가들의 철학을 입문서 수준에서 핵심적으로 정리한 교양서입니다. 이를 통해 학계의 흐름을 이해하고 현대 철학의 주요 쟁점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선정했습니다.
제목, 목차, 머리말(서문) 살피기
1) 제목
- “현대사상(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에 입문하는 책”(11쪽)입니다.
2) 목차
- “지금 왜 현대사상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데리다, 들뢰즈, 푸코, 현대 사상의 원류(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정신분석, 포스트-포스트구조주의를 거쳐 현대 사상을 만들고 읽어낼 방법까지 다룹니다.
3) 서문
- 시작하며에서, “왜 지금 현대사상인가”라는 질문에 답합니다. 현대사상, 즉 1960~90년대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는 복잡한 현실을 이항대립으로 환원하지 않도록 훈련하는 사유입니다. 질서를 세우는 대신, 질서에서 벗어나는 차이와 일탈, 배제된 것에 주목합니다.
비록 과거의 이론처럼 보이지만, 오늘날의 주요 사상(예: 젠더 이론 등)을 이해하려면 그 기초인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알아야 합니다. 포스트구조주의는 상대주의가 아니라, 기성 질서를 철저히 의심함으로써 새로운 ‘함께함’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태도입니다.
구조주의가 세계를 패턴과 구조로 파악했다면, 포스트구조주의는 그 구조의 균열과 변화를 문제 삼습니다. 데리다, 들뢰즈, 푸코는 공통적으로 이항대립을 탈구축하며, 어느 한쪽을 절대적으로 우위에 두는 사고를 유보합니다.
결국 현대사상은 능동성과 수동성이 얽히는 ‘회색 지대’에서 삶의 리얼리티를 사유하려는 시도입니다.
발제 생략
질문 및 논의
녹음한 내용을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요약했습니다.(녹음은 전원이 동의했습니다.)
전체적인 감상평
운영자
최근 몇 년간 읽은 책 가운데, 석학을 제외하면 이 정도의 지적 충격을 준 저자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렵기로 정평이 난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의 핵심을 이토록 명료하고 평이하게 전달한 책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자가 일본 내에서 소설가로도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책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말’이 프랑스 정치철학 전공자의 시각에서 이 책을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해당 부분을 꼼꼼히 읽어볼 것을 권했습니다.
*의 *원 님
들뢰즈의 이론이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데뿐 아니라 문학 비평에도 다양한 함의를 제공한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라캉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는 교육학적 관점에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아이가 극단적인 불안이나 결핍을 경험하려면 양육 환경 또한 그만큼 극단적으로 나빠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또한 정신분석 상담을 받으며 구체적 피드백 없이 방치되는 듯한 방식에 어려움을 느꼈던 개인적 경험을 공유했습니다.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을 중심으로 여성을 해석한 글을 읽고 충격과 불편함을 느꼈던 기억도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로이트 이론을 중심으로 과제를 수행하며 고생했던 딸의 일화를 언급하며, 그 당시 이 책처럼 철학자들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개요서가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평가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 책의 실질적 유용성을 높이 인정했습니다.
명* 님
책에서 다루는 들뢰즈, 데리다, 푸코 등의 철학자들이 20세기 초중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상이 2026년을 살아가는 지금에도 충분히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철학적 개념들을 일본 저자 특유의 간결하고 정돈된 문체로 설명해 주어 이해하기 수월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탁월한 사상가들이 삶의 의미를 어떻게 고찰했는지를 알게 되었으며, 그 깨달음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고 싶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다* 님
라캉의 ‘합일과 분리’ 개념을 현대의 ‘팬덤 정치’ 현상과 연결해 해석했습니다. 거대한 정체성에 합일될 때 느끼는 만족감과, 문학에서 말하는 ‘근원적 그리움’을 접목하여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정치적 올바름(PC) 논의와 관련해, 기성세대가 하나의 중심만을 지향하며 주변부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를 제국주의적 마인드로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차이를 인정한다고 자처하는 우리 세대 역시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공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적절한 지향점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태도를 밝혔습니다.
클* 님
라캉의 이론, 즉 합일에서 오는 안정감과 분리에서 오는 불안감을 다시 짚으면서 “분리가 과연 정말 불안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분리를 결핍이나 불안으로 보지 않고, 타인과의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의 수용’과 연결 지어 재해석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고 평가했으며, 번역자가 추천한 관련 도서를 상반기 안에 읽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우* 님
1장부터 4장까지의 전반부는 비교적 명확하게 읽혀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었으나, 5장 이후는 분량이 짧음에도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고 솔직하게 돌아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방향성에는 깊이 공감했다고 밝혔습니다. 복잡한 철학적 논의를 관통하는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기존의 틀에 갇히지 말고 조금 더 열려 있자”는 긍정적인 제안으로 받아들였으며, 그 결론이 개인적으로 매우 좋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운영자
마지막으로, 현대철학은 과학과도 긴밀한 접점을 갖고 있기에 과학적 토대가 있을 때 철학적 개념이 훨씬 수월하게 이해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저작을 먼저 읽으면 ‘정동’ 개념이 보다 선명하게 이해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도 밝혔습니다. 인간 의식 연구자인 아닐 세스가 말하듯,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형성 중인 과정이라는 점에서, 인간이 수많은 우연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관점은 현대철학의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부록에서 제시한 독서법—'속독하지 말 것', '일단 저자의 논리를 따라갈 것', '모르는 고유명사나 세부 지식은 일단 넘길 것'—에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습니다.
각 장과 관련된 논의
질문 1. 서양 철학을 이해하려면 플라톤부터 시작하는 계보와 지형을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철학에서는 타자(호모 사케르)를 말하지만, 그 타자들은 자신의 언어로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정작 현실에서 극단적인 빈곤이나 배제 상태에 놓인 이들은 자신을 대변할 언어조차 갖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의 독자는 결국 엘리트층이 아닐까요? 들뢰즈가 말하는 ‘탈주’나 ‘소수자 되기’ 역시 중심에 속한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특권적 행위는 아닐까요? 이러한 철학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 채, 일부 지식인들의 자기 위안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요?
답변
혁명이나 거대 담론에 가능성을 걸기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미시적 영역을 다루는 방식이 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전복하는 거창한 이상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이 통제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에서 제도를 개선하고 구조를 수정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실천입니다.
삶과 분리된 채 개념적 사유만 반복하는 철학은 공허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행동과 만나게 될 때, 철학적 문제의식은 제도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수억 원에 달하는 치료비로 인해 부모들이 치료를 포기해야 했던 미숙아 진료 문제는 의료계 학회와 부모들의 지속적인 국회 설득과 사회적 호소를 통해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습니다. 건강증진기금 등의 재원을 활용하여 현재는 보험 급여분이 전액 지원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약자에 대한 연대 의식이 현장 실천과 결합할 때 실제적인 물리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결국 철학이 현실과 단절되지 않으려면,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구체적 행위와 결합되어야 합니다.
질문 2. 푸코가 말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권력에 의해 구성됩니다. 그렇다면 로봇과 AI가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면, 새로운 ‘정상’의 기준은 무엇이 될까요? 미래의 권력은 우리에게 노동 대신 무엇을 요구할까요? AI 시스템의 효율을 방해하지 않는 존재가 ‘정상’이 될 가능성도 있을까요?
답변
첫째, 핵심 쟁점은 자본의 소유와 분배 문제입니다. AI와 로봇이 생산을 전담하게 될 경우,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윤을 누가 소유하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질문이 됩니다. 자본가에게 귀속될 것인지, 국가가 세금으로 환수하여 기본소득 형태로 국민에게 재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거대 담론이 불가피합니다. 일정 수준의 기본소득 체계가 도입될 가능성도 논의됩니다.
둘째,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은 ‘소비 주체’로 재구성될 가능성이 큽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을 가만히 두지 않으며, 생산 대신 소비를 통해 체제 유지에 기여하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셋째, 기후 위기와 식량 문제는 이러한 낙관적 전망을 제약합니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더라도, 환경 악화로 인해 식량 가격이 급등하고 생존 조건이 불안정해질 경우, 소득은 삶의 질을 보장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노동에서 해방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생존 자원의 부족 속에서 또 다른 통제가 이루어지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넷째, 이러한 분배 위기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들의 철학적 통찰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거대 기업의 권력이 정치 권력보다 우위에 서는 경향이 강해, 공정한 분배 질서를 설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됩니다.
질문 3. 푸코는 ‘자기 배려’를 통해 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만약 AI가 인간의 노동과 창작을 대체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쓸모없는 짓’을 하며 살고 싶습니까?
답변
일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존재하는 상태를 희망합니다. 욕망과 목적이 비워진 고요한 상태를 꿈꿉니다.
또 다른 방향은 육체적·정신적 수양입니다. 운동, 등산, 골프 등 신체 활동을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인문학·과학·예술 강좌를 수강하며 지적 지평을 넓히는 삶입니다. 이는 생산이 아닌 성장과 성찰을 중심에 둔 삶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존재이기에, 생산의 압박이 사라질 경우 새로운 형태의 권력 경쟁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사상을 주장하고 추종자를 모으려는 ‘인플루언서’적 질서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끝없이 배우고 탐구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들며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방식입니다.
질문 4. 현대사상의 공통 경향을 ‘이항대립의 탈구축’과 ‘질서로부터의 이탈’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사회·자본·언어의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라면, 질서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까요? 탈구축이 개념적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으려면,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답변
거대한 구조 바깥으로 완전히 이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제도와 자본, 언어 체계 속에서 형성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실천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실천의 가능성은 미시적 영역에서의 재구축에 있습니다. 예컨대, 미숙아 진료비 전액 무료화 사례는 자본의 논리에 맞서 약자를 위한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낸 구체적 실천입니다. 이는 기존 질서를 단순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질서를 세워 나가는 행위였습니다.
반면 교육 현장에서는 자본주의적 질서에서 이탈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드러납니다. 사교육 구조 속에 편입된 학생과 학부모는 이미 체제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훈련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 탈구축은 거대한 혁명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작은 제도 개선의 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탈구축은 구조 바깥으로 완전히 나가는 것이 아니라, 구조 내부에서 균열을 만들고 새로운 합의를 형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철학이 공허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자리에서 기존 질서의 부조리와 부딪히며 약자를 위한 제도를 다시 세워 나가는 실천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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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은 늘 난해하고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학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모임을 통해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으며,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유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그렇듯, 다른 분들께도 독서모임 아름에서의 만남이 조금 다른 시선에서 삶을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모임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