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4/7/17~25/9/ )
2024-07-17 16:01:44스토너

- 25/9/20
-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후 이 책을 다시 만날 줄이야 다시 만나게 돼서 너무 기쁘다
- 지난 내용 이후를 찾아 읽었다. 윌리엄과 이디스가 결혼 한 이야기. 둘은 낡은 아파트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화가가 살던 아파트를 윌리엄은 낭만적이라 생각했고 이디스는 물감이 묻은 흔적을 꼼꼼히 청소했다. 거의 강박적으로 꼼꼼히. 이디스는 윌리엄에게 감정을 전혀 표현하지 않았으므로 윌리엄은 늘 조심스럽게 이디스를 대했다. 윌리엄은 이디스를 사랑했지만 이디스는 윌리엄의 사랑을 받지 않았다. 윌리엄은 이디스가 자신과의 결혼에 대해 실망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미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윌리엄의 시점에서 이디스를 바라보니 이디스가 표현하지 않는 감정들은 윌리엄에게 영영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았다. 이디스 조차 그 답을 모르기 때문에, 어쩌면 알아도 끝내 표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영영 혼란스럽고 조심스러워야만 했다.
- 이디스의 시점에서 쓰여진, 책 제목이 이디스인 소설이었다면, 이디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을 텐데.
- 이디스는 확실히 윌리엄과의 결혼 후 불행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윌리엄의 탓은 아니다. 윌리엄이 아니라 다른누구였어도 이디스는 불행했을 것이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디스가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고 혼자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디스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본 적도, 배운 적도 없으니까 이디스의 인생은 윌리엄 때문이 아니라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누군가 이디스에게 이야기 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을 할 거고, 결혼을 하면 행복할 거라고. 아마도?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행복이나 기쁨 보다는 단념과 쓰라림을 안고 견디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수용과 인내. 그것이 행복하고 기쁜 일 만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불행을 감수할 만큼 사랑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능력은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디스는 이런 생각을 스스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삶의 불행에 떨어진 것처럼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윌리엄은 이디스가 행복해 하길 원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때도 있었다. 이디스 역시 윌리엄 처럼 자신이 다시 행복을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행복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노력은 모두 헛된 것 들이었다. 이디스는 행복한 사람을 흉내내듯 연기했을 뿐이다. 이디스는 더 불행해 졌고 그로인해 윌리엄 역시 불행했다. 이디스는 윌리엄을 미워하고 원망했을까?
- 윌리엄은 이디스에게 저지른 자신의 만행, 즉 이디스를 사랑하고, 청혼하고, 결혼한 것에 대한 만회를 하기 위해 이디스의 꿈이었던 유럽 여행 비용을 벌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했다. 과연 윌리엄이 이디스를 위해 유럽 여행 비용을 마련해서 둘이 함께 꿈에 그리던 유럽여행을 갔다면 이디스는 윌리엄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행복했을까?
- 이디스는 분명 사랑받고 있었고 불행했다. 이디스의 마음은 굳게 닫혀있어서 윌리엄이 사랑을 보내도 채워지지 않았다.
- 두 사람은 아이를 가졌다. 그레이스 라는 이름의 딸이었다. 이디스는 임신을 하기 위해서만 윌리엄과 관계를 한 것 처럼 두달 간의 기간 동안만 윌리엄과 잠자리를 가졌다. 욕망을 채우기 위한, 굶주림에 가까운 행위였을 뿐 사랑이 담겨있지 않았다는 윌리엄 시점에서의 이야기 였다. 이디스는 임신과 출산을 하는 동안 다시 윌리엄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 삶을 견디는 모습이었다.
- 윌리엄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이디스의 침묵은 폭력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제목이 이디스인 소설을 읽고 싶다. 이디스가 느끼는 불행과 비극이 궁금하다.
- 24/7/17
- ~p104
- 스토너의 어린시절 이야기, 부모님, 자란 환경에 대한 이야기, 공부하게 된 계기,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야기, 이디스와 처음 알게 된 일, 사랑에 빠지던 과정, 청혼하고 결혼하기 까지의 이야기.
- 뒷내용이 궁금하지만 반납시간에 쫓겨 여기까지 읽었다.
- 이디스의 유년기와 이디스가 자라면서 받아온 가정 교육, 도덕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거친 일들로부터 누군가에게 보호받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보호 해주는 사람의 우아한 장식품이 되는 것 말고는 다른 의무를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교육을 받았다는 이야기. 성적으로 뭔가를 금지하려는 의도를 숨긴 도덕교육에 관한 이야기.
-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훌륭한 일꾼으로 거듭나기 위해 길러졌지만 대학을 가 자신의 길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욕망과 열정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기 보다 주어지는 상황의 변화와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유연하고 안전한 선택들로 삶이 흘러갔다.
- 배움의 발견에서 타라가 부모의 세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뿌리 내리려 애쓰던 것과,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유복한 환경에서 쫓겨난 것만 같은 혼란함과 불안함 속에 보낸 시간들이 스토너에게는 없었다는 점에서 스토너의 삶은 단조롭고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고 느꼈다.
-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책의 뒤표지에 적힌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자신만의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라는 문장에서 ‘슬픔과 고독’이 이런 스토너의 단조로운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타라나 싱클레어의 성장보다 훨씬 더 고된 성장이었을 것 같다는 예상으로 스토너의 다음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
- 이디스를 자신의 사랑으로 알아보고 사랑에 빠졌음을 느끼고 청혼을 하고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에서도 한 번의 혼란도 겪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 반면 이디스에 관한 묘사에서 스토너의 이야기를 들을 때 초점없이 허공을 보는듯 했던 몇 장면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모습들 때문에 이디스의 내면세계에 더 큰 호기심이 든다.
- 책의 남은 장에서 이디스와 스토너가 꾸린 둘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어떤 절망과 고난으로 전개될까. 다른 소설을 읽을 때와 다르게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것도 지금까지의 스토너 삶의 단조로움이 나에겐 더 큰 비극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