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은 돌지만 사람 행동은 한결 같네유
2025-06-23 07:09:37
백 년 전 백화점의 물품이나 유행이라는 게 당연히 지금과는 다른데, 카테고리와 선전 방식, 유행이 퍼져가는 모습, 그에 대한 반발 등등이 단어만 바꾸면 그냥 지금 얘기다. 평균적으로만 따지면야 백화점 드나들 형편이 안 될 사람들이 더 많았을 시절이지만, 일단 한 번 꽂히는 물건 생기면 다른 지출을 틀어막아서라도 그걸 사고야 마는 사람 심리도 그렇고. 온갖 유행, 특히 젊은이들의 패션에 대한 비평을 넘어선 막말들을 보면 웃긴데 피로하다. 니가 사줬냐...과시성 사치나, 자기 사정에 너무 안 맞는 소비를 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겠지. 그러나 지금보다 제약아 더 많았던 세상에서, 새로운 물건들을 접해보고 소소한 행복을 맛보았을 이들을 어찌 비난하리. 한편으론 이런 비난들에도 불구하고, 사고 싶은 거 사서 입고 먹고 인생의 즐거움을 찾았던 그이들의 강력한 멘탈(혹은 지름 욕구)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당시 의학 수준을 고려하면 쪼까 무서운 다리 지방 제거술 얘기도 있지만...시술 받으신 분들이 별로 없었기를 바랄 뿐이나, 인간 한 번 뭔가에 필사적이 되면 누가 무슨 말 해도 소용없으니 분명 누군가는 큰 낭패를 보았겠지.
지금 봐도 그럴듯한 광고 문구들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맛있게 먹는 것은 사치가 아닙니다. 건강의 열쇠입니다.', '충치가 되면 공부를 잘 못한다'(어머니들이 정말 사력을 다해 치약을 구매하셨을 듯...), '머리치장은 사치가 아니라 예의' 등등. 핸드백 파트의 김기림 작가 수필 인용에서 진짜 빵 터져서, 이거 원문 꼭 봐야 된다 다짐. 그리고 바로 다음 문단의, 소설가 이태준의 '핸드백보다 좋은 책을 든 분이 더 빛나보인다'는 말엔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손에 책 들고 있다가 들어본 소리는 '유난 떤다' 밖에 없는 입장에선, 저런 발상하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할 뿐. 하긴, 나도 누가 손에 책 들고 있으면 '들고 다닐 정도니 겁내 재미있는 책일 것이다' 생각하면서 제목 훔쳐볼 생각만 하지 들고 있는 사람 얼굴 보지 않으니 이래저래 빛나는 모습이랑 거리 너무 멀다.
어쨌든 ●빡센 식민지 치하에서, 소화제를 먹어가면서 전통주와 서양주를 공평하게 많이 들이붓고, 쪼코레트도 씹고, 이도 열심히 닦으시면서 수많은 조상님들은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쓰셨더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뒤에 어떻게든 재미있게 살아야겠다는 욕구도 올라오니, 여러모로 읽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