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은 없는데 왜 눈물이 날라캐...
2025-08-15 07:26:34
시간대를 넘나드는 SF이고 따져보면 미스터리기도 한데, 신기할 정도로 차분하다. 인물들이 마냥 감정 누르는 타입들도 아니고, 승질 낼 때 내고 울고 싶으면 우는 장면들도 있는데 어째서일까. 미래에 대한 상상도 딱히 급진적인 면이 없어 오히려 좀 신선하다. 인류가 우주에 거주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한 상태인데도, 사회적인 편견이나 어울리는 모양새는 지금과 전혀 다를 게 없고 의학적인 부분은 완전 제자리(격리 기간이 백 일이나 되는 걸 보면 퇴화한 건지도...)라, '기술 좀 좋아져도 사람 사는 건 똑같다니깐'라는 말이 이야기 뒤에서 들리는 것 같음.
마지막 장의 "그래서 어쩌라고"에서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놀라고(처음 몇 장 보는 시점에서 그런 기대 접어놓은 상태), 다 읽고 나서 첫 장의 에드윈 이야기를 다시 보며 갑자기 울컥하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물론 첫 인상도 살짝 안쓰럽긴 했는데, 고향에 이미 자리가 없는 청년(개인적 기준에서는 아직 소년)의 마지막에 개스퍼리가 준 변화를 생각하니 증말...주책맞긴 한데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우아하게 독서했던 적 없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거대한 흐름이나 숫자로 따지는 기준에서는 '의미 없는 일'이겠으나, 몇 시간, 몇 일 차이일지라도 인생의 어떤 순간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면 충분히 엄청난 일이 아닌가. 사람이 누군가를 몇 초 웃기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누가 '그래서 이 책이 뭔 내용이었냐' 물으면 당황해서 어버어버하겠지만, 흐리고 비오는 날 사람 코풀게 하는 은은한 따스함이 있다는 건 확실했으니 읽어 좋았다.
"그때 올리브가 알게 된 사실은,
딸에게 마주 미소 지어 주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팬데믹 시대의 삶이 주는 이상한 교훈이었다. 삶은 죽음의 면전에서도 고요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