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믿고픈 잔혹함 속 희망의 싹
2025-08-23 07:26:06
일진이 사나워 좀 마음을 달랠 책이 필요했는데, 어째 고른 건 전혀 그렇지 않은 한 권이니 잠재의식 속에 대체 뭐가 있는지 궁금. 여튼 도입부부터 치솟는 스트레스 참아가며 버텼다. 중간중간 범인 시점 파트가 요새 날씨마냥 짜증과 분노에 불을 붙이니, 이렇게 참고 보는데 해결 안 나면 가만 두지 않겠다(...무엇을?)는 기세로 읽어내림.
과학수사의 기술이 부족했던 시기의 범죄이긴 해도, 이를 다루는 사람의 실수는 이제 없다고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씁쓸하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고뇌의 근원인 가족 문제들도 조금씩은 다 공감이 가고, 이야기에 설정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뉴스에 나지 않으면 장애에 대한 정보가 별로 널리 보급된 느낌이 들지 않으니 입 안이 점점 텁텁해지네. 그래도 페이지 계속 넘기는 것은 처음에는 기술 담당 사이드킥이라고만 생각한 아사히와 데쓰 덕. 데쓰가 그 두 사람은 나라고 말할 때부터 왜 이리 속이 시린지...사건 해결도 중요하지만 데쓰의 처지가 과연 어찌될지 두근두근했다. 데쓰처럼 어린 가공의 인물에 감정 이입하면 큰일날 나이가 되었지만, 서글픈 자기 인식이나 외로움 속에서 느끼는 한계가 왜 이리 가슴 아픈지. 마지막에 아사히가, 너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라는 게 비로소 입증되었다고 말할 때 울컥. 아아, 친구라는 존재의 소중함이여! 아가들이 행복하니 어른이도 행복해...아흐흐흐...
상당히 기분 나쁜 묘사들을 참은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데 바로 에필로그가 찬물 끼얹어서 식껍. 왜 이러십니까 정말! 그래도 세이지와 아사히의 이미지가 삽입되는 것을 보니, 인간의 악도 반복되지만 이를 추궁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다시 나타날 거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라 마음대로 해석하고 싶다. 그렇게 안 믿으면 이 더운 날 버틸 방법이 읎어...
"물론 이 세상에는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중에서도 비겁한 인간이야.
공명정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
보통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고 강한 사람이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곧잘 거짓말을 하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