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을 알고자 했던 이들의 열정 엿보기
2025-09-24 07:03:05
해부학만 따로 떼어 본다는 게 처음엔 의아했는데, 읽다보니 색다른 맛도 있고 생각할 일도 많다. 우리 육체 내부에 대한 지식을 아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름 완성된 지식이 자리잡은 지금도 세포 단위로 계속 새로 발견하는 게 있으니 지상 위의 몸이 가진 신비가 우주 못지 않구나. 괜히 사람을 소우주라 한 게 아니구먼...
이름을 들어본 유명인들도 있지만, 저술에 집중했던 이들이나 삽화가들은 이런 책 아니었으면 이름을 볼 일이 없었을 듯. 본인들도 아마 '역사적으로 대접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하지 않았겠지만, 시각적 정보가 굉장히 중요한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한 만큼 교과서에 조금이라도 실려도 좋을텐데...내부 장기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시대가 아직 아니라서 무리인가. 법으로 금지된 상황에서도 목숨 걸고 해부하고(제대로 된 소독이나 환기 시설도 없는 상황에서 시신을 해부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목숨을 건 행위다만...), 열심히 작업해서 지식을 세상에 풀면 동업자가 대놓고 표절해서 돈 버는 것도 감당해야 하는 상황들에서는 지식에 대한 욕구와 도둑놈 심보는 동서고금을 초월하는구나 한숨 절로 나온다.
소소하지만, 그림에 덮개를 만들어 인체 외부랑 내부를 다 볼 수 있게 해놓은 교재를 이미 베살리우스 시절에 만들었다는 게 깜놀. 효율적인 학습 교재의 모습도 21세기에 바로 생긴 것이 아니니, 닫힌 생각을 또 반성한다. 생각보다 긴 그레이 해부학의 역사에, 이 정도면 경전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일반인이 볼 일 없는 책이라곤 해도, 현대에 병원을 드나드는 모두가 저 책에 목숨의 몇 분의 일 정도는 빚지고 있으니까 성스러움은 이미 충분한 듯.
눈이 번쩍하는 이야기들과 도판들에 빠져있다가, '해부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짧지만 묵직한 언급에 고개가 숙여진다. 로키탄스키 씨의 글이 뒷표지에도 적혀있다는 건, 출판사에서도 이런 부분을 읽는 사람이 기억해주길 바랐기 때문이겠지. 알려던 사람들과 자신의 육체를 내주었던 사람들 모두가 있어 의학도 발전하고, 누구나 가볍게 인체 도감이나 미술용 해부도를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