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혀 있으므로 존재하는 지금의 우리
2025-10-01 07:40:23
"주지하다시피 '기억의 장소'란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에 의해 제안된 개념으로, 그에 따르면 '기억의 장소'는 국가의 기억이 농축되어 국가를 체계화하고, 결정화하는 장소이다."
음, 들어본 적이 없어 창피하지만, 늦게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막연히 알함브라를 떠올리며 열어본 책은 예상 외의 이야기들로 터져 나간다. 런던이나 파리에 역사적인 대형 모스크가 있다는 얘기도 금시초문에(나만 몰랐나?;;) 요새 같은 시기에도 무슬림 노예 동상이 당당하게 이탈리아 도시에 버팅기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플라멩코처럼 섹시한 춤에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있다니 동공 작아질 시간이 없음. 하긴, 같은 종교여도 그룹에 따라 세부 규제 차이도 클 테고,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동네에 춤과 사랑의 시가 없을 리가 없는데...이놈의 무지와 편견을 우찌할꼬 쩝.
읽으면서 한국 쪽 사정도 궁금해지는 건 '스페인어 속의 아랍어' 챕터. 직접적으로 아랍어가 들어온 경우뿐 아니라, 다른 외래어가 아랍어를 쿠션 삼아 스페인어에 들어오는 신기방기한 이야기를 보니 감탄사 절로 나온다. 언뜻 떠오르는 건 일본 쪽 번역을 거쳐 들어온 단어들이나 범어들 정도지만, 분명 찾으면 '이 단어가 그렇게 멀리서 왔어?' 하는 단어가 있을 것 같은데...아 궁금혀...
"에스닉 푸드가 유행한다고 에스닉 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 울적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으나(음식이 애정을 만들 수 있다면 인종주의나 차별이란 단어들은 죄다 사어가 되었겠지...), 자본을 통해서든 폭력을 통해서든 결국 이렇게 뒤엉켜있는 게 이슬람과 유럽뿐 아니라 온 세계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만 인정하더라도, 화합이나 대통합까지는 무리라도 일단 서로 줘패지 않는 상태는 좀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단절의 결과는 폭망이라는 조상님들의 대교훈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날 어휘 체계를 토박이 낱말로만 구성한
인간언어가 과연 지구상에 존재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모든 자연언어는
토박이 낱말만으로 어휘 체계를 구성하지 않으며,
구성할 수도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인간언어는
타 언어(들)에 뿌리를 둔 차용어의 도움 없이
고유어로만 어휘 체계를 유지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오직 토박이 낱말로만 이루어진
인간언어를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는 비단 '현재'라는 공시적 단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의 공시적 단면에도 그랬고,
미래의 공시적 단면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