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한 묵직함이 있던 책 뒤의 이야기들
2025-10-04 07:56:54
궁금해서 집었으면서도, 표지만 봤을 땐 울적하거나 좀 어려운 내용일지도 모른다 예상했었다. 출판사도 회사니까 경영이 쉬울 리가 없고, 거론되는 작가들도 유머 감각으로 유명한 사람들 아니니까. 하지만 1978년에 쓰여진 책인데도 시작부터 의외의 재미가 있다. 이 시대에 이미 텔레비전과 비디오 테이프의 존재에 출판사들이 위협을 느끼고, 스마트폰의 존재를 대략적으로 예상하며 그땐 종이책 싹 망할 거라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그 이전에 책이 망할 거라는 얘기가 필경사들이 책 만들던 시대부터 나왔다는 데서 웃음 터짐 책이 망할 일 없겠다는 자신감(?)이 갑자기 솟아 오른다. 이 정도면 '말세다' 드립이랑 생명력이 비등한 것 아닐까?
헤세가 집필만이 아니라 계약과 계산에도 이렇게 깐깐한 줄 몰랐으니, sns의 시대를 사셨다면 개인사는 절대 읊조리지 않아도 계약이랑 정산 얘기는 반드시 썼겠구나 예상해본다. 계약, 수익 문제를 넘어 글자 폰트까지 파워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작가가 과연 지금 자본주의 세상에 몇이나 될려나. 이어지는 브레히트 파트에선 전집 출판의 어려움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된다. 남의 고생에 함부로 가벼운 평을 해서는 안 되지만 진짜 신기했음. 역시 전문직의 세계는 신비혀...
그러나 읽기 전 예상이 백 프로 빗나간 것은 아니니, 릴케도 그렇지만 발저 파트 내용 참 대단해서 거의 한 페이지마다 한 번 한숨 쉰다. 그렇게 긴 분량이 아니고, 전체적 생애보다는 출판사와의 관계 중심으로 다룬 것인데도, 더럽게 운 없는 모양 자체도 괴롭고 '대부분의 사람은 궁해지면 성격이 안 좋아진다'는 개인적 믿음을(역경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시거나, 혹은 더 성숙해지는 분들을 너무나 존경하는 것은 그게 엄청나게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강화시키는 내용들에 입맛 쓰다. 그리고 뒷맛도 안 좋은 것이, 저자분이 발저의 위기 원인 5개를 지적했는데 '출판'과 '작가'를 다른 단어로 바꾸면 별로 먼 얘기가 아니다. 발저는 재능도 재능에다 출판사에 원고 건네며 8천 마르크 달라고 하는 패기라도 있었으니(당장 앞뒤에 언급된 금액들과도 차원이 달라서, 얼마인가 역사 환율 계산기에 넣어보니 1907년대 8천 마르크 = 1.026 million dollars라고 나온다. 이 정도면 용자...), 감히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울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음. 마지막 챕터가 훈훈해서 그래도 씁쓸함이 많이 가신다. 뭐, 독자가 처음 이런 사정을 들으면서 '다들 훌륭하구나!' 생각하는 것이니, 실제로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면 '이제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내용이지만...이 많은 과제들을 수행하며 글과 독자를 연결해주는 분들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열심히 세상에 필요한 글들을 전달하려는 그 수고에 비해, 현재의 나는 "모든 단어에 책임과 양심이 충분히 생생히 담겨 있는지" 묻는 양식 있는 독자가 아니라 좀 죄송함. 노력해야 하는 건 알지만, 읽으려던 책 놔두고 엉뚱한 책 표지에 홀랑 낚이는 게 일상인 사람에겐 필독도서 건드리는 게 참 어려움...어쨌든 책을 세상에 전달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