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사를 이해한 적이 있었을까...?
2025-10-09 07:10:27
무려 개정판인데, 예전에 나왔던 것도 몰랐기 때문에 '대체 뭘 알고 사는가' 한숨 작게 쉬고 시작. 얇은 책이지만 내용이 던지는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기억은 공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이런 관점들로 돌아본 적이 없으니, 읽으며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피해자가 이야기할 때 '용기 있는 사람이다'라고 평가할 뿐, 그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고통을 반복해서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야만 한다는 것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는 점도 정신을 멍하게 한다.
그리고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대한 오래된 의문 - 한 집의 비극의 최대화를 막기 위해, 다른 수많은 집들이 초상을 치러야만 하는가 - 에 대해 드디어 일종의 해답을 보니 시원한 게 아니라 헉 소리가 난다. 이런 주제의 영화나, 어두운 시절에 대한 개인의 증언들이 전혀 다른 방향의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데서도 한 방 제대로 먹은 느낌. 잠깐이지만 더 충격적인 내용이 나올까봐, 소화할 수 없을까봐 머뭇거렸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더니 정말 그랬고, 해설들만으로도 정신에 한계가 온다. 하지만 매일 아침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뉴스들이 터져나오는 지금, 스스로의 무심함을 돌아볼 계기를 만났다는 건 운이 좋은 것일게다. 비록 그 과정이 마음 편치 않다해도.
얼마 전에 참가한 그믐의 '여성과 전쟁' 모임을 생각했다. 아멜리니의 글을 읽을 때, 나에게 여기서 지적된 문제들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이전에는 과연 어땠던가.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하는 날이 올지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래도 알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면, '목격자'의 태도를 한 번에 버릴 수는 없더라도 함께 '증인'이 되려고 용쓰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는 그와 같은 사명 따위란 없다고 말한다. 살아남은 사람이 사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한다면 죽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사명이 없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 되며, 따라서 그들은 죽어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죽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죽은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며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이므로 살아남은 것에는 어떤 이유나 사명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처럼 자신이 살아남게 되었다는 사건의 폭력을 자기 자신에게 합리화함으로써 간신히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것도 베텔하임이 보기에는 배척되어야만 하는 자기기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