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이란 대체 무얼까
2025-10-12 08:42:55
남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방치된 일기였다고는 하나, 저자와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 약간은 꺼림직하다. (어릴 적엔 안네의 일기든 뭐든 잘도 봤으면서 어째서냐) 발췌된 일기의 내용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이런 감정에 속쓰림을 더한다. 실컷 일기들을 신나게 읽은 저자도 "일기는 우리에게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벅찬 행위인지 가르쳐준다. 그곳은 끔찍한 장소다." 라고 쓰는 걸 보니 내가 딱히 유별난 것이 아니란 사실에 안심이 되면서도 어째 기쁘지가 않군 ●□■...
유머가 많이 섞여있고, 황당한 키 계산에 잠깐 벙 쪘다가 컥컥대며 웃기도 했지만 중간중간 저자가 쓰는 평가들은 꽤 아프다. "품었던 소망을 결국 단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사람", "비참한 생각들을 없애려고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바람에 도리어 그 노력이 인생을 없애고 있다." 등등. 실패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일기를 쓰는 사람 쪽에서 감정이입을 하게 되니 더더욱 그렇다. 근래 들어서 겨우 논의되는 성인 발달장애가 상당히 의심되는 상황이나, 사랑하지 않는 게 좋았을 이와의 관계가 세상과의 소통을 더 악화시킨 걸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
일기의 주인을 미지의 인물로 남겨두고 싶다는 중간의 언급 탓에,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비참하구나' 생각하다 결말에 정말 놀랐다. 쓴 사람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는 별 사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과하게 안도했는지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살벌하게 찬 비바람 맞고 귀가해서 난방 막 틀었다가, 확 나오는 뜨거운 공기에 잠깐 이리 뛰고 저리 뛸 때처럼. 후회해봤자 의미 없다고, 이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이가 해주는 말에 구원을 얻는다. 아아, 다행이다.
일기의 내용과 함께 위축되던 마음이 급격하게 녹은 뒤 천천히 생각하니, 행복의 기준도 천차만별이지만 인생의 예측은 불가능하구나 새삼 와닿음. 본인 입장만 쓰고 서러워한 젊은 날 일기만 봐도 가사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아보이는데, 이게 최장기 밥줄이 되다니...어쨌든, 감동을 원하면서 읽기 시작했고, 우울과 서글픔에 한숨 쉬며 희망을 버렸다가, 막판에 거의 울 뻔한 한 권이 끝났다. 자 얼른 다음 책으로...
내 죄는, 꿈의 꼭두각시로,
세상에 가치 있는 이가 되기를 꾀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