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를 빙자한 눈물의 임종기 성장담
2025-12-22 07:11:54
핍 시리즈에서 은근한 무자비를 보여준 작가의 작품이니 예상은 했지만...설정부터 이미 자비라곤 없고, '한 줄기 희망이 남은' 결말이 아니라 '희망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라 기분을 업시킬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고 읽은 걸 후회하는 건 아니고, 다음 작품도 필독 예정!
초단기 시한부 설정 빼도 젯을 짓누르는 문제 너무 많아서 이렇게 가여울 수가 없다. 그나마 아버지랑 빌리가 있어 다행이지, 뭔 동네가 이런 사람들로 꽉 차 있대. 발굴되는 문제들이 점입가경이라, 편지 쓰는 장면 전후로는 보다가 홧병나는 줄 알았음. 이제 다 끝난 줄 알았을 때, 지옥에 떨어져도 할 말 없는 인물들이 양심 있는 마냥 대사 치는 데선 할 말을 잃었다. 이왕 사필귀정이면 읽는 사람 속 좀 시원하게 해주시지 그랬어요 작가님. 하긴, 대부분의 세상사가 그렇게 굴러가지 않고, 홀리 잭슨은 리 차일드가 아니니 어쩔 수 없나...
수사 과정 전체가 흥미롭지만,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젯이 성장하는 모습에 빨려 들어간다. 급 해탈하지도 않고 평소처럼 화도 내고, 비꼬기도 하고 실망도 하지만, 멈추거나 상황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마지막엔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하게 되는 여정이 참 서럽고 눈부시다. 빌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완전히 넉다운. 정신적인 성장 기간은 사고 기능이나 호흡이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라는, 당연하지만 자주 잊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본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고, 더 나아진 자신에게 만족하며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자기계발서에서 봤으면 바로 포기하고 싶겠지. 하지만 만들어진 이야기라도, 완벽하지 않은 청년의 변화를 보니 조금이라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결과가 1미터가 아니고 1센티미터가 될지라도, 전진은 가능하다고.
라스트 신의 모래 씹는 기분 때문에 감동이 좀 사그라들긴 했으나, 젯이 전하고자 했던 것들은 확실히 빌리의 안에 남아있었으니 만족한다. 문제는 이 메세지를 내 안에도 오래 새겨 둘 수 있는가인데 과연...
"나는 엄마가 평생 다른 사람을 원망하며 살았다고 생각해요. 삶이 힘들거나 불공평할 때면 다른 사람에게서 책임을 돌렸죠. 기분은 나아졌을 거예요. 나도 시간이 충분하다고, '나중에' 하면 된다고 말할 때 기분이 나아졌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건 그런 믿음일 때도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