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이야기가 가득한 고서 너머 풍경
2025-12-26 07:00:03
대단히 눈에 띄는 제본과 더불어, 추리소설 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제목에 혹해서 집었다. 쉽게 쓰인 고서의 이모저모에 추리소설에 버금가는 재미가 있어, 멋진 선택이었다고 혼자 뿌듯하다.
고서라고 하면 박물관이나 연구기관만 떠올렸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오덕이 없는 분야는 없다는 것부터, 학술서적을 넘어 공문서, 일기, 하다못해 찢겨 나간 한 페이지까지 다루어지는 것이 놀랍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이트에 물건 뜨면 구매하려는 쪽이 실록이나 역대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내용을 검증하는 것이 묘하게 웃음이 난다. 모든 문화재 혹은 골동품의 조사나 보존에 최신 기술이 이용되는 건 당연하지만, 극단적인 아날로그 서적들이 세상을 돌기 위해 디지털 기술이 필수가 되다니...
고서 자체의 내용들도 쓴맛 단맛 다양하다. 당장 오프닝 에피소드는 저자분 말씀대로 "가슴이 텁텁"하다. 아무리 실시간 뉴스 피드가 없던 시대라도,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인물들이 옆 나라 소식도 몰랐을 리가 없는데 그런 내용이 동인 시집에 한 구절도 없다니. 그리고 현실 인식이나 돈 버는 감각은 제로인데 책 제본 기술만 일류인 건 대체 뭔가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른 진기한 내용들이 재미있어서 텁텁함이 상쇄되고도 남는다. 다른 의미로 무서워지는 성적표(만의 하나라도 내 성적표가 후대에 고서상 사이트에 올라온다고 생각하면...어우 소름...), 의외의 사실들을 알려주는 족보들과 이혼 문서, 풍류인지 그냥 엉덩이가 무거운 걸 포장한 건지 모르겠는 와유에 국뽕에 합격 기원용 개명에...개인적으로 제일 놀란 것은 퇴계선생 파트. 언해 작업도 그렇지만, 교육용 동요를 만든 사실이야말로 교과서에 실려 마땅한 업적이 아닌가? 교과서나 지갑에서 만날 때마다 감흥 제로였던 자신을 급반성. 선생님 몰라뵈어 죄송했네유 흑.
앞으로도 고서는 박물관에서나 접할 것 같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이 숨어있다 생각하니 이 책의 속편이 간절히 읽고 싶다. 1판이 2019년이면 슬슬 보물탐뎡 2를 내실 때가 된 것 아닌가요 작가님. 개정증보판이라도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