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만난 당혹스런 이상
2025-12-28 07:23:06
제목만 보고 집었다가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3부작의 마지막 권이라는 것을 모르고 집어들었기도 하고, 화폐 제도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나 반정체성주의를 2025년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사회주의든 반자본이든 당연히 연구가 계속 이루어지는 분야니까 잘 아시는 분들이 보면 초짜의 당황에 헛웃음 지으실 수도 있겠지. 그러나 자본론은 출간된 지 백 년이 넘은 고전이고 이 책은 신간이니, '지금' 이런 꿈을 꾼다는 것에 대해 뭐라고 생각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게다가, 저자 본인이 희망은 수동적인 '희망' 이 아니라 '희망에 대해 생각하기'가 필요하다고 계속 말해서 읽는 사람 끙끙대게 해놓고, 마지막에 '답은 없고 나는 모름' 이러면 아오....! 된소리를 목 안에서 삭히며 생각해보니 자본론도 화폐가 없을 때 경제를 굴리는 방법 얘기는 없었던 것 같으니 똑같은가. 아닌가, 읽은지 너무 오래 되어서 내가 기억을 다시 쓰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지금 자본론을 다시 읽고 확인할 기력과 의욕은 없고요...
드높은 이상을 가지고 등장한 비트코인조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테크 수단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 현실에, 대안 없는 '나빠요'가 정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인가? 화폐 없는 세상보다 환경오염이 없어지는 세상이 더 빨리 올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너무 꼬인 탓일까. 당장 예시로 든 사빠띠스타나 로자바도 현재 경제 면이든 사회 분위기 면이든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개개인이 그냥 마음을 여는 게 아니라 집단으로 반정체성을 노래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 생각은 아예 안 든다. 인간처럼 정체성에 목을 매는 동물이 그걸 포기할 수 있을까? 국가나 인종을 초월하는 것도 힘든데, 성 정체성이나 직업 등 수많은 요소들을 다 버린다라...좋은 정체성은 없다고 말하지만, 애초에 정체성이 좋고 나쁘고로 평가할 수 있는 그런 것인가? 모르겠다. 한없이 갑갑해지고 질문만 나오는 것은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일까. 이런 문제들은 분명 생각해볼 가치들이 있지만, 하다못해 작은 실마리라도 주어져야지, 화폐 경제가 붕괴되면서 극단적으로 나빠지는 사례만 넘쳐나는 가운데 '알아서 생각하라'는 말은 어딘가 가혹하게 느껴진다. 나중에라도 앞의 두 권을 읽으면, 약간이라도 정리된 답을 생각할 수 있을까.
+ 본편 다 끝나고 약간 가라앉은 마음으로 옮긴이 후기를 읽다가, 2002년도의 붉은악마가 '세계인과의 연대'라는 얘기에 놀라서 눈 돌아갈 뻔. 짧은 시간이지만 단군 이래 한반도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제일 많았던 시기라고 알고 있는데, 축구 게시물만 들여다봐서 내가 왜곡된 현실관을 갖고 있던 것인가? 모르겠다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