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거대 행성 엔진의 신비와 위기
2025-12-30 07:51:02
'머신'이라는 표현에 약간 의아해하면서 집었다. 보통 자연을 다룰 때는 '살아있는' '측정 불가능한' 느낌을 풍기는 단어를 많이 쓰니까. 서문을 읽으면서 이 비유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책을 읽고 나서는 '우리는 심해보다 달과 화성에 관해 아는 것이 더 많다'라는 개념에 대해 저자가 조용하지만 아주 확실한 분노를 보이는 이유도 약간이나마 피부에 와닿는다. 거대한 지층이나 고래들부터,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균과 플랑크톤이 촘촘하게 연결된 시스템의 설명이 여러모로 놀랍다. 그리고, 한두 군데에 문제가 생겼다고 멈추지 않을 정교한 엔진을 불과 두세기 정도의 시간 동안 작살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인가 새삼스레 전율. 안 돼, 생각해도 답도 없고 남는 건 된소리뿐이야, 생각하지 마....그러나 토머스 미즐리 이야기를 읽으면 이런 생각을 도저히 떨굴 수가 없다. 지구를 작살내는 기술을 두 개나 만들어낸 건 미즐리 한 사람이지만, 그걸 이용한 상품들을 신나게 사용해 댄 건 지구 각지의 소비자들이니...
숫자를 잘못 읽었나 순간 눈을 의심하게 되는 거북이의 눈물이나, 하와이의 전통 양어장, 증기선 이후의 항해가 가지는 의미나 고래들과 재순환 시스템 전체의 위기 등 재미있지만 마냥 재미있게 볼 수 없는 이야기들 정말 많다. 그나마 전문가가 추려서 설명해준 게 이 정도니, '숨겨진 신비가 더 많을 거야!'라고 좋아해야 할지 '숨겨진 우리들의 악행이 더 많을 거야...'라고 눈물을 흘려야할지 모르겠음. 그래도 체르스키 선생은 참여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고 격려해주시니 다행이긴 하다. 나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그리고 학창시절 이후 끊은 해수욕은 앞으로도 할 일 없을 것 같다. 아주 꽉 찬 플랑크톤 국물 속에 들어간다는 생각 너무나 안 즐겁고요. 아마 플랑크톤들도 내 몸에 붙은 것들 섭취하는 게 즐겁지 않기는 매한가지일테니, 천상 방에서 조용히 책이나 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