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속에서 '인간'으로 버틴다는 것
2026-01-02 07:52:40
너무 편견이 쌓였는가, 소련 시절의 소설은 집기 전부터 한기가 느껴지고 첫 페이지에서 이미 최악의 상황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날 읽어야 해!'라고 부르짖는 듯한 제목에 상당히 각오하고 픽업. 일단은 예상보다 훨씬 마일드한(?) 분위기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읽기만 해도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 묘사도 없고, 배고픔이나 복장 얘기는 수용소 소설들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 그러나 흐루시초프까지 나서서 깠던 작품에는 이유가 있으니, 구성이 4부인데 이미 2부 끝나기도 전에 부조리함이 소화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갔다. '새해 벽두부터 이런 속터짐에 몸을 맡겨야 하는가?' '어차피 읽을 거면 후딱 읽어!' 나 홀로 고뇌하다, 이대로 중단하면 오히려 없는 속터짐까지 상상할 수도 있어 더 위험하니 그냥 GO.
능력 있는 신인을 견제하거나 착취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이야 어느 나라나 존재하지만, 불곰국, 아니 쏘-련의 이 모양새는 역시 한 차원 다르다. 다른 나라 소설에서 이런 회의 장면 나오면 '이 책의 장르는 블랙 코메디구나!' 생각했을 텐데, 이 책에선 그게 아니니 죽을 맛. 그리고 뭔가를 바꾸고 싶다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게 맞는데도, 힘내라고 주먹을 불끈 쥐는 게 아니라 '이렇게까지 버텨야 하는가' 라고 한숨 쉬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예전에 브레흐만 책에서 까던 비겁한 시민의 사고가 내 머리 속에 있는가...
로빠뜨낀의 성격과 권두 해설에 나온 작가가 겹쳐보이는 것도 착각이 아니리라. 예상보다 매우 긍정적인 결말에 박수가 절로 나오면서도, 차라리 배드엔딩으로 끝났으면 오히려 두딘체프 씨는 윗전의 노여움을 덜 샀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울적해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는 어디서 배웠나 싶은 기득권의 바보짓을,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텨서 '멀쩡한' 주인공이 이겨낸 것에 '이것들이 우릴 이겨먹을 거라 생각하고 있네! 아주 꿈도 못 꾸게 해줘야지'라고 분노한 것이 아니려나.
어쨌든, 부조리 고발에 그치지 않고, 그걸 이길 미덕과 희망이 소시민들 속에 있다는 걸 새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읽은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어가야 할텐데...자신도 없고 불안하지만, 조금은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 싶다. 새해니까...
"이제 전쟁은 끝나고 그는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자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축배를 올린다. 그러나 전쟁은 또한 승리자에게 깊은 상처를 가져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