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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이를 압도하는 한 소녀의 전쟁

by 꼬모2026-01-17 08:15:14
그림자 왕그림자 왕

표지가 대단히 매력적인데도, 부끄럽게도 에티오피아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으니 읽어도 이해가 잘 될까 걱정되어 좀 미뤄 두었다 집은 책이다. 사전지식이 더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없어도 이 강렬한 이야기를 읽는 데는 별 문제 없었으며 읽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분풀이용 독서로는 절대 추천할 수 없는 책이나, 세상에 말랑한 행복 말고도 중요한 게 많다는 걸 상기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프롤로그에서 히루트가 죽은 이들을 생각할 때부터 웃음기 따윈 없으리라 예상 가능하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홀린 듯이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은, 히루트와 아스테르, 피피 등 초강렬한 여성들의 에너지 때문. 일단 모든 인물들이 선악이 마블링되어 구별하기 힘든 면을 가졌다는 점도 어느 정도는 매력이기는 하지만...왜 하필 그 어두운 면 중 하나가 상습 성폭행이어야만 하는지, 반복될 때마다 빡이 치니 매력이면서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라고 하는 게 맞겠지.

같은 시기 식민지였던 땅의 후손이니 이런 주제에 기본적인 공감이 있기도 하지만, 이 역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먼 나라의 아픔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막판에 아스테르가 던지는 격려는 그 자체로 꽤 무게가 있지만, 마지막에 히루트가 편지 돌려주는 장면에서 다시 생각하면 코가 시큰하다. '일반적'인 흐름을 생각하면 여기서 밀려오는 여러 감정에 히루트가 눈물을 흘려야할 것 같은데, 단지 마음이 강해서만이 아니라 눈물을 흘릴 방법을 잊은 것 같은 모습이 왜 이리 쓰린지. 많은 이름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밖에 없으나, 에티오피아에 수많은 히루트와 아스테르들이 있었다는 것, 모든 핍박받은 나라들에 각각의 히루트들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며 책을 덮는다.


"과거는 없고, '일어난 일'도 없고,

한순간이 모든 것을 끌고서

끝없이 새로워지며

다음 순간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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