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같은 우리들의 위대한 얼굴
2026-03-08 07:16:15
표지가 상당히 의미심장해 보여서 읽었는데, 간만에 수험생 시절 생각날 정도로 빡셌다. 재미가 있긴 한데, 얼굴이란 부위를 설명하는데 이렇게 많은 지식이 필요한 줄 몰랐다. 현재 얼굴이 가진 기능을 알기 위해 세포와 유전자, 태아의 신체 형성, 생명의 발생부터 호모 사피엔스 발생까지의 과정, 뇌, 인류 이주의 역사까지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눈이 빠질 듯. 이 기회에 거의 다 까먹은 용어들(정확한 뜻과 기능이 아니라 '이거 봤는데'가 기억나니 참담하다...)을 일부 점검한 건 좋은 일이지만, 과장 빼고 신경능선세포나 상측두 이랑 같은 용어를 내년 이맘 때 기억할 확률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무리! 게다가 가설들(상당수는 정설이라고 생각했던)은 왜 이리 많은지. "이 시나리오를 직접 입증할 방법은 없다." 과학에서조차 '가능성은 높은데 아직 증거는 없구요'라는 뜨뜻미지근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착잡하다. 세상 참 편하게 가는 일이 없어..."인간은 본능적으로 원인을 설명하는 하나의 간단한 답을 바란다." 프로펙서 엑스 수준의 독심술 구사하는 선생님...무섭습니다.
이런 궁시렁들을 다 감안해도 읽어 좋은 점들이 차고 넘친다. 사람 신체가 다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얽히는 요소가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이 무사히 얼굴이 형성되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게 기적이라 경탄을 금할 수가 없음. 게다가 뇌가 커지면서 풍부한 감정 표현과 사회성이 생겨난 게 아니라, 이 모든 게 얽혀 지금에 이르렀다는 데서 벼락 같은 충격. 사람에 비할 수준은 아니라해도, 벌이나 양의 얼굴 식별 능력에 또 놀라고, 인류의 자기 길들이기 가능성(고려해볼 가치가 있으나 현재 입증할 수는 없는)에 헉 소리 내고...어렵다고 우는 소리 냈다가 신기해서 오메오메 하기를 반복하느라 피곤했으나, 지금의 과학 기술로도 다 증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얼굴의 이모저모를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었으니 보람차다. 분석 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새로운 화석들이 발굴될 가능성이 있으니 운이 좋으면 시간이 지나 가설이 입증되거나 폐기되는 과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오늘 감상 종료.
"진화는 오직 미래에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속성들을 계통들에 제공하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작동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