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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맛이 더 무서운 방역 지옥 군상극

by 꼬모2026-03-29 07:41:20
페스트의 밤페스트의 밤

『미생물로 쓴 소설들』에서 소개된 걸 보고 집었다. 작가 이름부터 이미 공인된 작품이니...단지, 마지막으로 파묵 선생 작품 읽고서 강산이 변할 시간이 지난 탓에 잊고 있었다. 한 방의 펀치보다 가벼운 잽을 무한대로 날리던 그 패턴을...아오!

살짝 대체역사물에 가깝지만 읽다보면 이거 다큐인가 헷갈릴 지경이다. 악몽같은 거리 두기 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이 생생함...게다가 시대와 상황 설정상 속터짐은 뒤로 갈수록 배가 된다. 방역에 정치와 종교가 얽히면 그냥도 좋을 일이 없는데, 거기에 민족, 토착민과 외부인, 언어, 본토와 지방 관계, 외세에 대한 반감까지 어우러지니 답답 지수는 그저 치솟을 뿐. 중간중간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가...'하면서 멍때리게 된다. 왜 전염병으로 죽었는데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살해당했는데 살해당했다고 말하지 못하니...'맞는 말이라도 네가 하면 믿지 않겠다'는 태도는 왜 소설이고 현실이고 상관없이 영원불멸인 거여...

이런 스트레스가 좀 풀리려면 고난 속의 감동적인 인류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별로 없어서 뭉친 응어리가 내려갈 틈이 없다. 겨우 선의가 언급되어서 안도하려는 찰나, 그 선의 때문에 질병 더 퍼지는 것 보고 완전히 망연자실. 클라이막스의 종교시설 대개방에 이를 때는 거의 희망을 버렸는데, 그래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희생자가 생기고 나면 다들 정신을 안 차릴 수 없다는 걸 보여주니 다행...아니지, 이게 다행인가?

화자의 입을 빌려 파묵 선생이 까메오 출연하는 소소한 재미와, 오늘날 민족주의란 말이 얼마나 공허한가 생각하게 하는 결말까지 여러모로 대단한 한 권이었다. 아무리 많은 다큐멘터리, 논픽션과 소설들이 있어도 미래의 팬데믹 때 일어나는 일은 똑같으리란 상상에 마음이 무겁지만...에잇, 살 사람은 살겠지. 스스로가 미래의 가능성을 믿는지 안 믿는지 헷갈리는 가운데 오늘 감상 종료.



"일상에서 거짓말과 징조들을 읽는 것으로 충분한 희망을 찾지 못하면 깊은 '체념'의 감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내와 논쟁한 적이 있는 이 정신 상태에 대해 누리는 '운명주의'와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우리 생각에 '운명주의'는 아니다. 왜냐하면 운명주의를 믿는 사람은 위험을 알지만 신에게 자신을 맡겼기 때문에 조치를 하지 않는다. '체념에 휩싸인 절망'인 경우 위험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누구에게도 자신을 맡기지 않으며 믿지 않는다. 부마 의사는 때로 총독이 하루의 업무를 마친 다음 '이제 우리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았다. 혹은 항상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만 인력 혹은 여력이 모자라거나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시간에 잠시의 행복과 위안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이성적인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희미한 어둠 속에서 서로를 안는 것임을 총독 파샤나 콜아아스나 누리나 이제는 다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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