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옵션일 수 없음을
2026-04-11 07:14:01
안 그래도 외관에서 우울함이 풍기는 책인데, 한국어판 서문부터 씁쓸한 놀라움이 날아온다. 체제가 바뀌었어도 미묘하게 바뀌어 남아있는 법들이 있다는 걸 외국인 책을 보고 알게 되다니. 기본은 표지에 쓰인 대로 '판사들은 왜 불의와 타협하는가'에 대한 연구이지만, 결국 모든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라 마음이 무겁다. 도덕의 위기를 직업상 수시로 만나느냐, 살다가 가끔 만나느냐 차이가 있을 뿐 이런 고민을 한 번도 할 일 없는 성인은 없으니까...룰은 룰이니까 그 안에서 행동한 내 책임이 아니고, 연계된 사람들도 잘못 있으니 나한테 따지면 안 되고, 나부터 구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적용하면 판사가 아니어도 세상에 책임 있는 사람 아무도 없겠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타인의 권리를 실질적이고 명백하게 침해하는 중대한 행위를 하는 것은 절대 허용돼서는 안 된다. 심각한 신변 위험은 형량을 줄이는 참작사유로 고려할 수 있지만 무죄판결의 사유가 될 수는 없다." 매우 맞는 말인데, 진짜 위기 앞에서 이 문장 떠올리며 이 악물 수 있는가..."판사들이 억압적인 정권 아래에서 경력이나 직업을 잃거나 심지어 개인의 안전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처럼 행동했다는 말은 정당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스스로가 이 멀쩡한 말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해줄 수 있는 어른인가 확신이 안 서서 두렵다. 도덕적 실명이나 차악 선택 설명 전체가 충격과 공포. 특히나 국제법 로마 규정 설명을 보면, 이 내용 대부분이 제대로 현재 진행 중이고 도덕적 실명의 새로운 예시를 따로 찾을 필요도 없다는 것에 숨 쉬기가 힘들다.
사법 면책이나 상원 하원 관계, 사법부 전체의 권익 등 일반인이 알기 힘든 부분들의 설명도 들어볼 수 있었으니 분명 유익했다. 항상 그렇듯이 이런 류의 책은 정답 없는 문제집이라 슬퍼지지만...어쨌든 여러 사람 목을 꺾을 수 있는 직업 종사자라면 말할 것도 없고, 행사할 파워나 뿌릴 돈 없는 일반인도 스스로의 책임을 계속 물어야한다는 것은 확실히 각인했다. 나쁜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최소한 나중에 딴소리는 하지 않아야겠지. 물론 악에 저항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으나...모르겠다. 좋은 책 읽고 우울해하는 스스로를 답답해하며 감상 종료.
"모든 사람은 항상 선택을 하며,
권위주의적 통치자는 결국
그들이 지배하는 사람들의 선택에 힘입어
권력을 행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