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자의 눈에 담긴 도시들의 상처와 낭만
2026-04-23 07:49:13
읽으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돈이 유난히 어렵다. 읽기 시작할 때 느낀 감정은 '신선하다'인데, 생각해 보니 그냥 내가 중동 지역 작가들을 잘 모르고 그 관점에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다. 중간중간 인용되는 엄청나게 멋진 시들, 아랍어권과 동유럽권의 문인들의 이름도 잘 모르고...그러나 사전 지식이 모자라다고 마음에 와닿는 게 줄어드는 류의 책은 아니었다. 일단 여행 스타일이나 과정이 참으로 남다른 것... 현지 분위기를 느끼는 것에 중점을 둔 여행기는 많지만,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가 시인이고 "태양이 사라졌으니 술에 취하지 않는다면 무얼 하겠느냐"는 자작시를 읊어주는 식의 인연이 여정 내내 생기는 경우는 세상에 별로 없으리. 파묵 비평하다 진짜 파묵 만나는 이 흐름은 무엇인가. 작가 혹은 마주친 이들이 도시에 던지는 평가들도 꽤 읽는 이를 홀려 방문 욕구를 자극한다. 미의 기준은 제각각이니 "여기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말을 듣는 도시는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이 도시를 느껴보지 않고는 시인이 될 수 없다", "이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아" 같은 평가를 받는 도시는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중 한 곳에 지금 폭탄이 빗발친다는 사실에, 20년 전 작가를 안내해준 시인과 운동회에서 만난 시민들, 머리에 오렌지색 꽃을 꽂았던 소녀가 주는 두근거림이 우울로 바뀌지만...
생각거리를 던지는 비평과 토막 지식들이 전체에 가득하고, 알제리와 부록의 고향 이야기에선 가슴 언저리가 묵직하다. 상처 입은 땅의 긴 슬픔은 모른 채, 영향력이 큰 승자의 관점을 별 생각 없이 수용했던 것이 아닌가 돌이켜보며 마음이 불편해진다.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된 망명자에게 고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듣는 건 슬픔이고...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평범한 오덕이 이런 시선으로 언제 생각해 보겠는가. 이 책과 만나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할 수밖에.
명소나 음식에 대한 화려한 이야기 없이도 한 장소의 복잡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이 한 권을, 언젠가 여행길에 들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비합리적인 바람이라는 걸 알지만, 인간사의 풍파에도 살아남은 이 도시들이 지금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버티고 일어설 힘을 주고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그들과 만날 수 있기를...
"진짜 여행은 자신이 변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