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멀고도 험한, 마음으로 가는 길
2026-06-07 07:28:48
나온 지 꽤 지난 책이지만, 정신적 고통이란 것에는 동서고금이 없는데다 아직도 경계성 인격장애에 대한 정보가 세상에 많이 도는 편이 아니니 여러모로 가르침을 주는 책이었다. 당장 시작에 언급되는 미국 정신의학회 가이드 내용이 탄식을 부른다. "실제 혹은 상상 속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아아, 이게 무슨 일이야!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육체적인 아픔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받기를 원하거나, 힘들 때 누군가의 지지를 간절히 바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그것이 어느 순간 궤도를 벗어나고, 그렇게 된 것에 대해 자기를 탓하는 일이 반복되며 이런 고통의 롤러코스터를 타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 미국에서조차 2000년대 초엔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의사들마저도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내리기를 꺼리는 모습이 상당히 놀랍기도 하고. 미국이 이 정도였다면 세상의 많은 환자들은 대체 어떻게 버텨낸 것일까.
병의 기본이 되는 감정들 자체는 참으로 보편적이기에, 의료진들의 말과 저자의 깨달음이 가슴에 훅 파고든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이해 못 하는 것이고, 기대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들은 그들대로 살게 내버려 두고 일단 나를 내가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대다수에게 어려운 목표가 아닌가...). 그리고 질환은 질환일 뿐, 부정하거나 자신과 동일시할 이유도 없다는 것. 뿌리 깊은 병에 힘들어한 사람이, 타인에게 말하기 어려운 기억까지 내보이며 삶의 가능성을 전달해 주는 것이 참 고맙고 짠하다. 종종 멈추거나 지지부진할 때는 있더라도, 보다 편안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 더 많은 사례들로 증명되기를 그저 조용히 바랄 뿐이다.
"하지만 길가의 꽃들처럼
어쨌든 성장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최대한 따뜻한 기운을 향해 발돋움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