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2026-06-17 07:19:40
'교수'와 '학술대회'란 단어들이 가져다주는, '예리한 지식인들의 열띤 발표와 토론, 지식 공유'라는 이미지를 아주 박살을 내주는 한 권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학술회의 증후군' 이야기부터 제대로 깨고, 학술회의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음식과 숙박 시설이라는 드립부터 학문에 정말 관심이 있기는 한지 의문인 교수진들의 태도까지 미치지 않은 대목이 없음. 풍자소설을 접하는 모범적인 태도란, 현실 속 문제를 얼마나 뒤틀린 유머와 잘 섞어 보여주는가에 집중하고 즐기면서 '이런 문제들의 원인은 무엇인가, 해법이 있는가' 등등을 생각하는 것이겠지. 그러나 망가진 인간들만 줄이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시작했음에도, 뒤로 갈수록 소소한 혐오스러움이 쌓여서 '이 인간 안 죽나...' 생각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타깃이 한 명이었지만 뒤로 가면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니 죽을 맛이다. "맞아, 그 ○● 죽어버리는 걸로 해버려."라는 대사 나올 때는 공감과 함께 '이쪽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리 사람이란 존재가 털면 찌질한 부분이 나오기 마련이라지만, 이렇게 찌질함의 순도가 높은 인물상들이 떼로 나오니 숨이 막힌다. 비교적 순수한 인물 설정이 붙은 퍼스조차, 개인적으론 다른 장르의 소설이었으면 정신병원이나 철창행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생각한다. 낭만 두 번 찾다간 사람 잡겠다 생각했는데, 어디 밈처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니 소름. 그냥 결말이 이 정도로 마무리되어 다행이다. 머리 지끈거리는 환상과 스토킹 안 봐도 돼서...
소설 장르와 80년대라는 발간 시기를 생각하면 구석구석 나오는 편견 섞인 발언과 장면들은 별로 놀랍지 않다. 설정으로 넣었다면 그뿐이고. 하지만 상당히 놀라운 건, 그 당시 컴퓨터 기술 수준을 가지고도 지금 일어나는 AI와의 대화 문제와 비슷한 중간 삽화를 쓴 상상력이다. 풍자 개그는 소화 용량을 좀 넘어서서 힘들었으나, 이런 부분은 신기하고 즐거웠음. 어쨌든, 왜 에코 선생이 뒤표지 가득한 찬사를 썼는가 이해는 가는(공감은 크게 가지 않지만...) 대단한 한 권이었다. 부조리한 세상을 논할 때 우리에겐 정말 유머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오늘의 잡상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