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가 사람 잡네......
2026-08-01 07:16:43
어쩌다 후편을 먼저 봤으니, 내용 기억하고 있을 때 전편을 봐야 한다는 마음에 집었는데 진짜 죽을 맛이다. 속 터지는 내용에 맞는 계절 같은 것은 없으나, 안 그래도 힘든 더운 날 읽기엔 진심으로 안 좋았다. 잠시 심호흡이 필요한 순간이 대체 몇 번인지. 사람이 모여 살면 지방이고 도시고 다 지옥이라고 발자크 선생이 도장을 매 페이지 꽝꽝 찍어대니 정신이 없다. 읽으면서 책 제목 너무나도 잘 지었다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허영에 찬 미래도 사람에 대한 믿음도 심지어 신앙심도 죄다 가루가 되어 남아나는 게 없네.
시대상 어쩔 수 없는 불쾌한 편견들까지 논하자면 끝이 없으니 넘어가고, 당장 뤼시앵의 행보가 너무 어처구니없어 별로 들지도 않던 공감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사라진다. 이거 고리오 영감에서도 봤던 행태긴 한데 너무 심하잖아. 같은 문제로 사람 빡치게 했던 외젠이 똑같은 처지의 뤼시앵에게 동족 혐오하는 모습엔 실소가 터진다. 상대를 과시하지 못하게 될 때 차갑게 식는 보여주기 연애, '팔아먹는다'가 완전 1순위가 될 때 대중 매체가 발휘하는 공포스런 파괴력, 발 들이는 순간 끝인 도박 중독, '내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무한히 악독해질 수 있는 인간의 태도 등등 역시 우울한 요소들엔 동서고금이 없다. 가족 친지들의 고혈을 빠는 그 순간만 감사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사람이 널린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양심적인 인물들이 아예 안 나오면 모르겠으나, 세상이 이들을 경시하고 뜯어먹을 도구로 생각하는 상황이 지옥도의 레벨을 더욱 올린다. 희망은 어디에.
앞부분도 충분히 머리 아프지만, 클라이맥스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정말 말로 못한다. 아무리 돈이 최고라지만, 조용히 사는 부부를 두고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담. 파리는 대도시라 그렇다 치고, 이 시골에 왜 이렇게 악마가 많이 사냐? 악역은 못된 짓 하는 게 역할이다만, 뤼시앵 너는 또 이 마당에 뭔 짓을 하는 거야. 차라리 그대로 사라졌으면 안타까움이라도 남을 것을, 금화에 넘어가 부활하는 모양새를 읽고 있자니 입맛이 몇 배로 쓰다. 한편으로 황당한 것은, 아무리 전후편 사이 시간 공백이 있다고 해도 전편에 에스테르 이름이 한마디도 안 나온다는 것에 대충격. 아니, 이렇게 중요한 히로인의 등장이, 진짜 후편의 권두 해설이 다란 말인가? 목숨 거는 연애를 이런 식으로 열어도 되는 겁니까? 사랑하면 다 용서되나요?
결말까지 참 여러모로 속이 타는 작품이었다. 일단 이 많은 인물들이 한 세계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은 기가 막히니 역시 고전문학도 발자크도 대단한 건 맞았음. 그러나 역시, '대단한 작품'은 '읽어서 즐거운 작품'과 동의어가 아니니 다음 고전은 좀 쉬었다 읽는 걸로...... 지쳤어.......
"우리는 모두 무죄예요.
어떤 파렴치한 짓을 해도 우리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은 도덕적이든 비도덕적이든
그런 현상의 이유를
자신이 국민공회를 연구하며 얻은
다음과 같은 숭고한 한마디 말로 요약했답니다.
공동의 범죄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