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읽기 전에는 식민지 검열에 걸린 유명한 책들의 소개려나 했는데, 이야기는 점점 복잡하게 돌아가고 뒤로 갈수록 세상의 구조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생각하며 울적해진다. 순수한 선의만으로는 출판을 할 돈이 나오지 않으니, 선전을 해야하고 물주를 찾아야 하지만 그 과정이 출판물 자체의 목적과 어긋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식민지인 입장에서 보면 이게 선의가 맞는가 싶은 의도로 출발했더라도, 거둔 결과가 괞찮으면 좋은 게 다 좋은 건가. 노동자들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집을 낸다는 사회주의 출판사들끼리 우리 전집이 더 낫네 선전 경쟁한다는 건 어디 블랙 유머인가. 읽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한데, 손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책들이 제국주의 문학이면 읽는 걸 포기해야 했을까. 답이 없는 질문들은 늘어나 착잡함만 더한다.
이름만 언뜻 들었던 노구치 미노루가 애초에 조선 사람이었고, 간략한 행적만 봐도 춘원의 행적보다 강도가 더한데도 악명이 남는 게 아니라 마치 없었던 사람마냥 이름 들을 일이 없다는 것에서도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모르겠음. 그리고 지나가는 부분이긴 해도, 1939년 처음 조선을 방문한 일본 사람도 경악할 정도로 조선 내 군국주의적 분위기가 살벌했다는 게 거의 백 년 뒤에 읽어도 너무 슬프다.
읽어서 마음이 후련한 책은 아니었지만, 널리 알려져야 하는 일들은 원래 다 그런 것이겠지. 아는 사람 맘 편하라고 존재하는 사실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무려 개정판인데, 예전에 나왔던 것도 몰랐기 때문에 '대체 뭘 알고 사는가' 한숨 작게 쉬고 시작. 얇은 책이지만 내용이 던지는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기억은 공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이런 관점들로 돌아본 적이 없으니, 읽으며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피해자가 이야기할 때 '용기 있는 사람이다'라고 평가할 뿐, 그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고통을 반복해서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야만 한다는 것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는 점도 정신을 멍하게 한다.
그리고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대한 오래된 의문 - 한 집의 비극의 최대화를 막기 위해, 다른 수많은 집들이 초상을 치러야만 하는가 - 에 대해 드디어 일종의 해답을 보니 시원한 게 아니라 헉 소리가 난다. 이런 주제의 영화나, 어두운 시절에 대한 개인의 증언들이 전혀 다른 방향의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데서도 한 방 제대로 먹은 느낌. 잠깐이지만 더 충격적인 내용이 나올까봐, 소화할 수 없을까봐 머뭇거렸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더니 정말 그랬고, 해설들만으로도 정신에 한계가 온다. 하지만 매일 아침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뉴스들이 터져나오는 지금, 스스로의 무심함을 돌아볼 계기를 만났다는 건 운이 좋은 것일게다. 비록 그 과정이 마음 편치 않다해도.
얼마 전에 참가한 그믐의 '여성과 전쟁' 모임을 생각했다. 아멜리니의 글을 읽을 때, 나에게 여기서 지적된 문제들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이전에는 과연 어땠던가.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하는 날이 올지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래도 알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면, '목격자'의 태도를 한 번에 버릴 수는 없더라도 함께 '증인'이 되려고 용쓰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는 그와 같은 사명 따위란 없다고 말한다. 살아남은 사람이 사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한다면 죽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사명이 없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 되며, 따라서 그들은 죽어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죽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죽은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며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이므로 살아남은 것에는 어떤 이유나 사명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처럼 자신이 살아남게 되었다는 사건의 폭력을 자기 자신에게 합리화함으로써 간신히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것도 베텔하임이 보기에는 배척되어야만 하는 자기기만이었다."


미스터리에서 서신 주고 받는 설정 나오니 이미 좋은 일 없겠다 감이 온다. 감만 올 뿐, 세세한 예상은 죄다 빗나갔지만. 여튼. 메일 내용과 책 속 책의 내용이 맞물려 돌아가는 재미가 있어 책 장 훅훅 넘어감. 메일의 전개 양상을 생각하면 프레디가 겁을 상실한 행동을 너무 하는 것 같지만, 근래 읽은 책들을 생각하면 주인공이 무모한 행동을 좀 해주는 게 내가 몰랐던 일종의 법칙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페이지에선 엉? 어엉? 이러면서 파본 아닌가 확인하는 사태가 있었으나, 여튼 재밌었으니 OK.
좀 뭐한 감상이긴 하지만, 내향인에게는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공포에 못을 박는 내용이다. 편견의 극복을 위해서라도 인류애가 넘치는 작품을 봐야겠다 잠시 생각하다 포기. 성격 변하려면 임사체험 정도는 해야지 책 가지곤 안 돼...


항상 잘 보면서도 이상하게 뜨문뜨문 읽게 되는 코벤 슨생의 책. 뒤를 펼치니 나온지 벌써 일 년이 다 되가네, 어이쿠. 어쨌든 신나게 잘 읽었고, 오랜만에 TV서 추석 특집 영화 볼 때의 기분도 맛보 았다. 맥스와 세라 콤비가 참 강렬해서, 왜 이 둘이 주인공인 시리즈물이 아닌가 한탄하지만 어쩌겠노. 얘기 끝났으니 아쉬워도 빠이빠이다 흑.
범인 동기가 황당하긴 한데, 도입부 설정이 워낙 보통이 아니니 흔한 얘기로는 이걸 커버할 방법이 없었을 듯. 그리고 어느 정도 아버지 덕을 봤더라도, 친구들이 주저없이 도와주는 모습에 인덕의 중요성을 느끼며 한숨 쉰다. 쌓고 싶다고 쌓을 수 있는 덕목이 아니니, 도움을 청할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보험 갱신에나 힘쓰자...


보전생물학 분야가 따로 있다는 것도, 한반도에 표범도 살았다는 것도 처음 알아 부끄러움과 놀라움이 밀려온다. 아쉬운 어조의 호랑이 이야기는 그나마 들을 일이 있으나 표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은, 나의 무지 탓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선호도와도 관련이 있는가 싶어 씁쓸. 어쨌든 호랑이를 비롯한 동물들의 위기, 드라마틱한 저자분의 경력, '자연보호해야지~'라는 막연한 마음이 아니라 당장 야생동물들이 사는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과의 현실적인 딜의 중요성 등을 지루할 틈 없이 잘 보았다. 일반인이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긴 해도, 적어도 서울에서 산양 마주쳤을 때 호들갑 떨지 않고 그들의 자리를 존중하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니 읽어서 정말 다행...
개인적으로는 최선을 다하면 안 될 일 없다는 말은 전혀 믿지 않지만, 주민들에게 거절당하거나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기관 내 정치질에 시달리고, 현실적인 연구비와 생활비 걱정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도 현지 기본 편의시설이 없는 것도 감수하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과 야생동물 본인들의 감사도 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 정도로 노력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 그지없다. 이런 분들의 분골쇄신을 생각하면 낯선 FSC 인증마크 확인하며 장 보는 정도가 별 일이겠는가. 산에서의 소음 문제를 보니 평소에도 하지 않는 등산이 역시 할 필요 없다는 믿음도 굳어진다. 역시 연휴엔 실내에서 책이랑 뜨끈한 차 한 대접이 최고여. 호랑이와 표범이 돌아오는 날을 상상해보며, 얼른 다음 책으로 고고다.


궁금해서 집었으면서도, 표지만 봤을 땐 울적하거나 좀 어려운 내용일지도 모른다 예상했었다. 출판사도 회사니까 경영이 쉬울 리가 없고, 거론되는 작가들도 유머 감각으로 유명한 사람들 아니니까. 하지만 1978년에 쓰여진 책인데도 시작부터 의외의 재미가 있다. 이 시대에 이미 텔레비전과 비디오 테이프의 존재에 출판사들이 위협을 느끼고, 스마트폰의 존재를 대략적으로 예상하며 그땐 종이책 싹 망할 거라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그 이전에 책이 망할 거라는 얘기가 필경사들이 책 만들던 시대부터 나왔다는 데서 웃음 터짐 책이 망할 일 없겠다는 자신감(?)이 갑자기 솟아 오른다. 이 정도면 '말세다' 드립이랑 생명력이 비등한 것 아닐까?
헤세가 집필만이 아니라 계약과 계산에도 이렇게 깐깐한 줄 몰랐으니, sns의 시대를 사셨다면 개인사는 절대 읊조리지 않아도 계약이랑 정산 얘기는 반드시 썼겠구나 예상해본다. 계약, 수익 문제를 넘어 글자 폰트까지 파워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작가가 과연 지금 자본주의 세상에 몇이나 될려나. 이어지는 브레히트 파트에선 전집 출판의 어려움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된다. 남의 고생에 함부로 가벼운 평을 해서는 안 되지만 진짜 신기했음. 역시 전문직의 세계는 신비혀...
그러나 읽기 전 예상이 백 프로 빗나간 것은 아니니, 릴케도 그렇지만 발저 파트 내용 참 대단해서 거의 한 페이지마다 한 번 한숨 쉰다. 그렇게 긴 분량이 아니고, 전체적 생애보다는 출판사와의 관계 중심으로 다룬 것인데도, 더럽게 운 없는 모양 자체도 괴롭고 '대부분의 사람은 궁해지면 성격이 안 좋아진다'는 개인적 믿음을(역경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시거나, 혹은 더 성숙해지는 분들을 너무나 존경하는 것은 그게 엄청나게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강화시키는 내용들에 입맛 쓰다. 그리고 뒷맛도 안 좋은 것이, 저자분이 발저의 위기 원인 5개를 지적했는데 '출판'과 '작가'를 다른 단어로 바꾸면 별로 먼 얘기가 아니다. 발저는 재능도 재능에다 출판사에 원고 건네며 8천 마르크 달라고 하는 패기라도 있었으니(당장 앞뒤에 언급된 금액들과도 차원이 달라서, 얼마인가 역사 환율 계산기에 넣어보니 1907년대 8천 마르크 = 1.026 million dollars라고 나온다. 이 정도면 용자...), 감히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울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음. 마지막 챕터가 훈훈해서 그래도 씁쓸함이 많이 가신다. 뭐, 독자가 처음 이런 사정을 들으면서 '다들 훌륭하구나!' 생각하는 것이니, 실제로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면 '이제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내용이지만...이 많은 과제들을 수행하며 글과 독자를 연결해주는 분들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열심히 세상에 필요한 글들을 전달하려는 그 수고에 비해, 현재의 나는 "모든 단어에 책임과 양심이 충분히 생생히 담겨 있는지" 묻는 양식 있는 독자가 아니라 좀 죄송함. 노력해야 하는 건 알지만, 읽으려던 책 놔두고 엉뚱한 책 표지에 홀랑 낚이는 게 일상인 사람에겐 필독도서 건드리는 게 참 어려움...어쨌든 책을 세상에 전달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를.


처음에 창문 아래 꽃 이야기 나올 때는 오메 이 섬뜩한 거 뭐냐고 흥분했는데, 전체적으로 범인 찾기보다는 인물들의 고뇌가 더 중요한 이야기였다. '이게 범인인가. 아냐, 저게 범인인가!'하는 스릴이 없다보니 반전은 있는데 크게 놀랍지는 않음. 그러나 미스터리라는 게 꼭 범인과 맞장떠야만 재미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세상이 내 개인정보를 헤집겠다는 상황도 받아들이고, 옳은 일을 하고 싶어하고, 용감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테시를 점점 주먹 쥐고 응원하게 된다. 물론 보안과 백만 광년 떨어진 나홀로 땅파기는 절대 반대다만...슬쩍슬쩍 보이는 텍사스라는 지방의 특수성이 재미있기도 하고('총에 항상 실탄이 있음' 안내문에 빵 터짐), 더없이 진지한 빌과 조애나를 통해서 사형제도와 법의학의 역할을 또 곰씹어보기도 하고, 실제로 주변에 있으면 좀 두려울 것 같은 에피를 보며 이제는 포기하고 사는 이웃사촌의 중요성도 생각하고...결말에 공개되는 환장의 커플의 쿵짝에는 절로 이마에 손이 올라가지만, 진실이 언제나 홀가분할 수만은 없으니 어쩌노. 어쨌든 침 삼키며 즐거운 시간 보냈으니 박수.


"주지하다시피 '기억의 장소'란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에 의해 제안된 개념으로, 그에 따르면 '기억의 장소'는 국가의 기억이 농축되어 국가를 체계화하고, 결정화하는 장소이다."
음, 들어본 적이 없어 창피하지만, 늦게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막연히 알함브라를 떠올리며 열어본 책은 예상 외의 이야기들로 터져 나간다. 런던이나 파리에 역사적인 대형 모스크가 있다는 얘기도 금시초문에(나만 몰랐나?;;) 요새 같은 시기에도 무슬림 노예 동상이 당당하게 이탈리아 도시에 버팅기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플라멩코처럼 섹시한 춤에도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있다니 동공 작아질 시간이 없음. 하긴, 같은 종교여도 그룹에 따라 세부 규제 차이도 클 테고, 기본적으로 사람 사는 동네에 춤과 사랑의 시가 없을 리가 없는데...이놈의 무지와 편견을 우찌할꼬 쩝.
읽으면서 한국 쪽 사정도 궁금해지는 건 '스페인어 속의 아랍어' 챕터. 직접적으로 아랍어가 들어온 경우뿐 아니라, 다른 외래어가 아랍어를 쿠션 삼아 스페인어에 들어오는 신기방기한 이야기를 보니 감탄사 절로 나온다. 언뜻 떠오르는 건 일본 쪽 번역을 거쳐 들어온 단어들이나 범어들 정도지만, 분명 찾으면 '이 단어가 그렇게 멀리서 왔어?' 하는 단어가 있을 것 같은데...아 궁금혀...
"에스닉 푸드가 유행한다고 에스닉 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 울적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으나(음식이 애정을 만들 수 있다면 인종주의나 차별이란 단어들은 죄다 사어가 되었겠지...), 자본을 통해서든 폭력을 통해서든 결국 이렇게 뒤엉켜있는 게 이슬람과 유럽뿐 아니라 온 세계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만 인정하더라도, 화합이나 대통합까지는 무리라도 일단 서로 줘패지 않는 상태는 좀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단절의 결과는 폭망이라는 조상님들의 대교훈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날 어휘 체계를 토박이 낱말로만 구성한
인간언어가 과연 지구상에 존재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모든 자연언어는
토박이 낱말만으로 어휘 체계를 구성하지 않으며,
구성할 수도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인간언어는
타 언어(들)에 뿌리를 둔 차용어의 도움 없이
고유어로만 어휘 체계를 유지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오직 토박이 낱말로만 이루어진
인간언어를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다.
이는 비단 '현재'라는 공시적 단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의 공시적 단면에도 그랬고,
미래의 공시적 단면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든 살인자라니 이 무슨 신기한 소재인가. 시원하게 낚이고 재미있게 읽었으나, 정보를 참 감질나게 던져주기 때문에 성질 조금만 더 급했음 숨 넘어갈 뻔. 보통은 이렇게 쪼금씩 단서 흘리는 작품도 반전 시작되면 봇물 터지는데, 이번엔 클라이막스까지 무슨 다 쓴 치약 쥐어짜는 리듬이다보니 진상을 알아가는데 도 닦는 기분이다. 진정 이야기를 즐기려면 참을성이 있어야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요새 스트레스가 쌓인 탓인가 조마조마한 박자를 즐기기가 약간 힘들었다. 그리고 벤의 과도한 열정에 이게 뭔 일인가 싶음. 아무리 치료가 간절하다 해도, 정신과 의사가 환자 치료할 때마다 현장 실습(?) 해야한다면 치료 끝나기 전에 의사가 환자 되겄네.
여튼...과거 극복은 애꿎은 사람들 끌어들이고 사람 잡으면서 하는 게 아니라 의학적 도움을 받으면서 하는 게 좋고, 목적이 '나의 만족' 뿐이라면 남의 과거 함부로 파는 거 아니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음. 그리고 와다다다 굴러가는 이야기 없나 좀 찾아봐야겄다...


'인공지능 윤리', 전부 아는 단어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는 머릿속에서 아직도 애매하니 일단 읽는다. 첫 질문인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면도 있음. 최근 챗GPT의 답변 능력에 놀라 숨이 막힐 뻔한 일이 몇 번 있다보니,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거나 변화에 취약하다고 이 정도로 단정지어도 되는지 의문이다. 단기간 이용해본 일반인과 전문가의 입장이 같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 능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윤리적인 면을 책을 낼 정도로 염려하는 것이 아닌가?
이어지는 여섯 가지 질문들, 분명 모르면 안 되는 이야기들인데 아는 게 병이라고 이 뒷맛 어쩌노. 환경 문제 도서들 볼 때랑 비슷한데, 어떻게 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이 분명한데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다 같이 고쳐가는 데는 시간이 너무 걸리며 기업의 이해상충을 따지면 환경 문제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는 과제들 산더미. 존재도 몰랐던 황당한 앱 딥누드처럼 도덕 따위 안 따지는 개발자들의 상품들이 널렸고,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는 상황을 더 이용하고 싶어할 회사들도 많겠지. 게다가 노동법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도 의문인 인공지능 개발회사들이 개발팀에 윤리 담당자를 일부러 고용한다는 게 가능할까. 저자들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행동 촉구 제언을 다섯 개나 제시해주지만 마음은 가벼워질 줄 모른다. 도덕적인 면의 피드백을 받는 게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회사가 판단하지 않으면, AI 시민 참여가 과연 작동할 수 있을까?
읽으면서 쓰잘 데 없는 질문이 가장 많이 떠오른 챕터는 '인공지능은 공정할 수 있을까?'. 이제 판사가 참고한 인공지능 자체를 문제 삼거나, 반대로 인공지능의 의견을 판사가 무시했다고 항소하는 일도 생기는 건가? 부정적 편향을 주는 정보를 무시하는 알고리즘을 쓴다는 건 좋지만, 정상참작이 필요한 사건에서 그 배경이 되는 사항들을 다 지워버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한다고 답이 나올 리도 없고, 당장 우리나라는 어떤가 검색하니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와 재판지원 AI 계획이 시작된 게 올해였다. 피할 수 없는 수순이고 오히려 늦은 감도 있지만 참 불안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인공지능이 완전히 도입된 이후에 일부러 공정하지 않은 알고리즘을 누가 삽입한다면...그런 일이 없도록 함께 생각하고 노력하자고 이런 책이 나온 것이겠지. 더 읽고 인공지능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도가 높아지면 불안이 줄어들고 용기가 생길까? 여러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어도 분명 좋은 쪽으로 굴러갈 기술에 대해 내가 너무 믿음이 없는 걸까? 물음은 끝날 줄 모른다.
"정리하자면, AI에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무시하거나 AI 의 부정적 영향은 필연적인 결과이므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자포자기할 유인이 많다.
우리는 결코 이런 생각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부도덕적이라고 예측되는 행동을 피함으로써 스스로 도덕적인 규제를 가하는 AI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심과 헌신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규제, 조직 관행, 교육 자원, 민주적인 기술을 설계함으로써 AI가 해롭고 부도덕한 방식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낮출 수도 있다. 이러한 일을 최선의 방식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AI 시스템 작동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의 수준을 높이고 인류에게 해악이 아닌 이득을 가져다주는 방법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도 있다. 이는 AI 시스템의 범위를 확장하고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일과는 다르지만, 역시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과학적 탐구다. 심지어 인간의 지능과 의식에 대한 오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통찰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