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자기 파괴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지만, 그렇다고 익숙해지는 법이 없으며 볼 때마다 괴롭다. 눈뜬 시간 내내 아드레날린 분비하며 자신을 학대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본의는 아니어도 주변까지 끌어들이는 이 재앙 같은 모습...슬픔과 분노를 극복하고, '당 신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런 걸 세상에 더 알리고 싶으니까 배우가 읽자마자 판권을 덥석 산 것이기도 하겠지만...
글로나마 그 폭풍 속을 같이 지나가며 나는 과연 희망을 얻었는지 확신을 못하겠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거듭된 시도들이 목숨을 앗아갈 정도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도 다치게 하고, 음주운전으로 자칫하면 임산부를 죽일 뻔 했다는 것을 뭐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내가 지금 괜찮으니' 다 괜찮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래도 도저히 사라질 것 같지 않는 자기 안의 분노와 마주보는 것이 가능하고, 더 이상 어디에서도 온기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을 때조차 아직 수많은 위로의 글들이 남아있다 생각하면 창밖의 풍경이 좀 더 밝아보인다. 리디아가 언어를 찾는 그런 순간을 기대하기엔 너무 나이를 먹었지만, 적어도 책은 계속 읽을 수 있어...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미생물로 쓴 소설들』에서 소개된 걸 보고 집었다. 작가 이름부터 이미 공인된 작품이니...단지, 마지막으로 파묵 선생 작품 읽고서 강산이 변할 시간이 지난 탓에 잊고 있었다. 한 방의 펀치보다 가벼운 잽을 무한대로 날리던 그 패턴을...아오!
살짝 대체역사물에 가깝지만 읽다보면 이거 다큐인가 헷갈릴 지경이다. 악몽같은 거리 두기 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이 생생함...게다가 시대와 상황 설정상 속터짐은 뒤로 갈수록 배가 된다. 방역에 정치와 종교가 얽히면 그냥도 좋을 일이 없는데, 거기에 민족, 토착민과 외부인, 언어, 본토와 지방 관계, 외세에 대한 반감까지 어우러지니 답답 지수는 그저 치솟을 뿐. 중간중간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가...'하면서 멍때리게 된다. 왜 전염병으로 죽었는데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살해당했는데 살해당했다고 말하지 못하니...'맞는 말이라도 네가 하면 믿지 않겠다'는 태도는 왜 소설이고 현실이고 상관없이 영원불멸인 거여...
이런 스트레스가 좀 풀리려면 고난 속의 감동적인 인류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별로 없어서 뭉친 응어리가 내려갈 틈이 없다. 겨우 선의가 언급되어서 안도하려는 찰나, 그 선의 때문에 질병 더 퍼지는 것 보고 완전히 망연자실. 클라이막스의 종교시설 대개방에 이를 때는 거의 희망을 버렸는데, 그래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희생자가 생기고 나면 다들 정신을 안 차릴 수 없다는 걸 보여주니 다행...아니지, 이게 다행인가?
화자의 입을 빌려 파묵 선생이 까메오 출연하는 소소한 재미와, 오늘날 민족주의란 말이 얼마나 공허한가 생각하게 하는 결말까지 여러모로 대단한 한 권이었다. 아무리 많은 다큐멘터리, 논픽션과 소설들이 있어도 미래의 팬데믹 때 일어나는 일은 똑같으리란 상상에 마음이 무겁지만...에잇, 살 사람은 살겠지. 스스로가 미래의 가능성을 믿는지 안 믿는지 헷갈리는 가운데 오늘 감상 종료.
"일상에서 거짓말과 징조들을 읽는 것으로 충분한 희망을 찾지 못하면 깊은 '체념'의 감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내와 논쟁한 적이 있는 이 정신 상태에 대해 누리는 '운명주의'와 비슷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우리 생각에 '운명주의'는 아니다. 왜냐하면 운명주의를 믿는 사람은 위험을 알지만 신에게 자신을 맡겼기 때문에 조치를 하지 않는다. '체념에 휩싸인 절망'인 경우 위험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누구에게도 자신을 맡기지 않으며 믿지 않는다. 부마 의사는 때로 총독이 하루의 업무를 마친 다음 '이제 우리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았다. 혹은 항상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지만 인력 혹은 여력이 모자라거나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시간에 잠시의 행복과 위안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이성적인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희미한 어둠 속에서 서로를 안는 것임을 총독 파샤나 콜아아스나 누리나 이제는 다 알고 있었다."


"클라우드 농노: 그 어떤 기업에도 속해 있지 않은 (즉 노동자가 아닌) 사람이면서도, 오랜 시간, 종종 고된 노동을 공짜로 하며 클라우드 자본의 상품 재고, 즉 블로그 포스트나 비디오, 사진, 리뷰, 그 외 디지털 플랫폼을 다른 이들에게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게 해줄 수많은 것을 생산하고 클릭하는 사람."
자칭 '자유지상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의 저작이니, 애초에 손도 대지 않을 이들도 많을 책이다. 그래도 클라우드 자본의 현황을 들여다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에 유용한 한 권임은 틀림없다. 친근한 태도로, 자본주의의 용어들부터 차근차근 시작하고 마지막에 학습지 요약처럼 복기까지 해주니 읽기도 편하다. 내용이 불편해서 그렇지...'유쾌한 역설' 같은 언급에 유쾌는 커녕 한숨만 팍팍 나고, 분명 시민들에게 있는 가능성을 믿고 던지는 긍정적 멘트에도 개인적으로 마음이 답답하다. 모르겠다. 세상이 긍정적으로 굴러갈 여지가 충분한데, 내가 너무 비관적이고 때묻어 이런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인지...
우리가 대형 플랫폼의 노예란 건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단순히 '지금이 sns의 시대니까'라고 넘어가기엔 참 기괴한 성장 방식을 보니 슬쩍 오한이 온다. 돈을 갈쿠리로 모으는데 서류상 이윤이 0이 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흑마술이 아닌가. 틱톡이나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도 제시된 관점에서 보니 새롭기도 하고 좀 더 이해가 간다. 단지...어설프게라도 알고 나니까, 일련의 이런저런 사태들은 이제 악화될 일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만 든다. 전세계의 노동자가 대동단결을 열댓 번을 한들 해결할 수 있을까?
이상을 가지는 것도 좋고, 특히나 정치에서는 목표치를 좀 높게 잡아야 반박하는 쪽과 타협하고 절충할 때 그나마 중간치 결과는 낸다고 생각하지만, 권말에 그려지는 이상 세계 플랜을 보며 괴로움이 정점에 달한다. 자꾸 돌림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이 스스로 괴롭지만, 내가 왜곡된 세계관과 경제관을 가져서 진보의 희망을 못 가지는 것인가 고민하게 되고 점점 뭐가 뭔지 모르겠음. 대기업 주식 배분 얘기엔 차라리 좀비 아포칼립스가 오는 게 더 빠르다는 생각이 들고, 가상의 부동산 제도는 인구를 거의 반토막을 낼 유혈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할 듯. 국회 통과는 커녕, 저런 제도 발의하는 의원은 그 다음 날 암살되지 않을까.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옥 같은 수용소를 살았던 아버지보다 주저해야 할 이유는 없을테니까요." 라고, 눈을 뜨라고 외치는 넘치는 활기를 어떻게 기억할지 고민하며, 오늘 감상 종료.


희망 넘치는 치료 후기를 내심 기대했는데 좀 달랐다. 물론, 밝은 이야기들도 있고 생각 이상의 감동도 있었지만, ○●□, 되면 좋은 일이고 안 될 때는 안 된다는 팩트는 막힌 가슴을 뚫어주지 않는다. 하긴, 언제 사실이 니 좋으라고 있더냐...
초반부터 환청 이야기에 전기 충격이 온다. 제발 꿈에서라도 보았으면 하는 대상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온다면, 그 소리가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는 걸 머리로 알아도, 들리지 않도록 치료를 받고 앞만 보며 살 용기와 정신력이 과연 나에겐 있을까? "환청은 그들 삶 속의 심심풀이 취미이고, 소중한 만남이고, 순수한 애정이고, 강렬한 열정이고, 때로는 고통이고 때로는 희망이다." 환청이란 현상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 이전에 정신질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잘못되었는지도. 환자들이 토로하는 문장들이 가끔 스스로의 생각과 너무나 똑같아 공감과 함께 소름이 돋는다. 저런 생각들이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선을 넘는 순간은 언제든 올 수 있으니, 긍정적 해답 찾기보다 미래의 진료비 저축에 집중하는 게 여러모로 나을지도 모르겠다.
환자에게 공격받는 걸 걱정해야 하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에 침통해지기도 하지만, 호전된 환자들의 이야기나 따뜻한 유머에 웃기도 했다. 특히 임영웅 이펙트 얘기에는 공감 백 배. 집안 어르신들께 선사한 큰웃음 생각하면 님 계신 방향에 매일 큰절해도 모자란다. '정신과 의사 백 명의 역할보다 더 큰 역할'이라는 말도 과장이 아님. 음울한 친지 만 명보다도 나을 거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환경, 회복되지 못하는 중병도 있지만, 치료받고 나아질 수 있는 증세들도 그만큼 많다는 것, 오늘 하루를 잘 버티고 작은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즐길 수 있는 정신 남아있을 때 한 글자라도 더 읽어야 한다는 것도...
"그래, 너도 환자, 나도 환자, 우리 모두 환자다. 때로 내가 더 힘들고 때로 네가 더 힘들고 할 뿐이다. 그러니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힘든 세상 함께 헤쳐 나가는 거지."


안 그래도 영국 뇌수막염 뉴스에 불안한데, 이 책을 보는 게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가 잠깐 생각했지만 그냥 집었다. 표지를 안 봤으면 모르겠지만, 이미 낚여서 궁금해...그 와중에 서문에 바로 뇌수막염 나와서 움찔. 작가님 예지 능력 있으신가요.
페스트부터 코로나19까지, 질병들과 관련 작품들을 이렇게 보니 착잡한 한편 정말 놀랍다. 이런 치명적인 팬데믹에 계속 습격을 당하면서도 대항해서 살아남은 인류의 끈질김이...그나마 규모별로 엄선된 게 이 정도니, 치명적이지만 다행스럽게 전염성이 좀 낮은 바이러스나 세균을 합치면 우리는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매일 죽을 고비를 스쳐간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일이 안 풀리는 것 같다고 끙끙대는 사이 이미 백만 번은 살아남은 셈이니 앞으로 잘 기억해둬야겠다.
읽어본 작품들 돌아보며 추억 여행도 하고(지식이 없을 때도 우울한 장면들이지만, 의학적 설명을 들으니 어째 더 슬프다...), 바이러스의 침투 과정도 살피고, 읽어 보지 못한 명작들도 위시리스트에 올려서 매우 알찬 시간이었다. 기분이 업되는 내용은 확실히 아니고, 개인적인 광견병 소설 넘버원 쿠조가 없다는 게 약간 충격이지만...권말 저자분의 진심 어린 신신당부와 이야기 속 슬픔들을 잘 기억하면서 예방에 힘써야겠다. 걸려서 내가 골로 가는 일도, 만에 하나 옮겨서 여러 사람 학살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코로나19 이전에 경고도 있었다.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고,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 소설 속 팬데믹이 단지 소설이기만을 바란다."


믿고 보는 괴물 이야기, 게다가 이 표지의 뽀대에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일단 이 흉흉한 시기, 마음에 설렘을 좀 보충하고 싶었는데...생각과는 다른 내용에 당황. 책 뒤표지의 찬사처럼 '괴물학의 걸작'이라는 말에 마음 깊이 동의하지만, 문제는 이 책의 강세는 '괴물'이 아니라 '사기극'에 있다는 것. 읽다보면 점점 비관적인 생각이 머리속을 빙빙 돈다.
- 나는 인간이다. 그것도 그릇이 작은.
- 인간은 사실이 아니라 믿고 싶은 걸 믿는다.
- 인간은 돈, 명예, 우월감 표시를 위해 정말 별짓을 다 할 수 있다. 심지어 그 방법은 가끔 천재적이다.(그 천재성은 일반 생활에선 발휘되지 않는다...)
- 나는 인간이다...아오 ○●...
물론, 단순히 연구 중 실수로 판명나고 학자 본인들이 정정한 경우도 있고, 매 챕터마다 이 사기들을 밝혀낸 사람들 이야기가 있으니 희망을 가질 여지는 있다. 굳이 과학까지 안 따져도, 요상한 이야기 들으면 '술 마셨냐?'고 질문할 일반인들이 더 많을 세상이라고도 생각하고. 하지만,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믿기를 거부하고, 단순히 괴물의 존재가 아니라 그 바탕의 왜곡된 사상까지 기꺼이 이어받은 이들이 지금도 있다는 것에 베개 밑에 폭탄 깔아둔 것 같은 불안이 밀려온다. 네시 티셔츠를 색깔별로 갖고 싶고, 언젠가 모스맨 축제도 가면 좋겠다 생각하는 가벼운 독자는 그저 웁니다. 하지만, 괴물 이야기의 근본에 깔린 무언가는 역시 생각하고 고민해야할 주제가 맞으니, 좋은 가르침을 얻은 것에 감사하며 오늘 감상 종료.
"우리는 다만 필트다운인 사건의 진짜 범인에 대해 잊지 말아야 할 뿐이다. 한낱 오랑우탄의 턱뼈조차 위대한 영국인의 유골로 뒤바꿔 놓을 수 있는 명예욕과 애국심의 힘에 대해, 제아무리 뻔한 거짓말조차 믿고 싶다면 수십 년 동안이나 굳게 믿어버릴 만큼 나약한 만물의 영장 인류의 본성에 대해."


책 읽기 전에 이미 놀란다. 문화재급 고서나 초판본이야 당연히 이런저런 작업을 하겠지만, 일반 도서도 맡겨서 고칠 수 있다니. 지금도 파는 책이라면 다시 사는 것이 더 쌀 수도 있지만, 본문에서 언급된 책들처럼 돈으로 환산 불가능한 추억을 붙들 수 있다면 돈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여러 형태의 사랑을 보존해요" 이 문장이 책수선의 핵심이 아닐까. 기억들과 함께 보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책이, 앞으로도 새로운 추억을 함께 만들 수 있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왜 이리 흐뭇한지...
각종 얼룩들을 지우고 찢어진 부분까지 연결하는 기술에 놀라고, 반가운 옛 책 사진에 웃음 짓다가, 길고 긴 개인사업자 업무 리스트를 보며 현실의 짠함에 한숨 짓는다. 요리책 복원기 뒤에 살짝 실린 스크램블드에그 레시피의 '냠냠'에 풉 하고 웃기도 하고, '책은 소모품인가, 아니면 비품인가'하는 질문에 한참 이런저런 생각들도 해보고...한 권 안에 참 많은 즐거움이 있었다. 아끼는 책은 상하지 않도록 돌보는 게 우선이겠지만, 어딘가 문제가 생겨도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 OK. 잠시라도 세간의 흉흉함을 잊게 해준 따스함에 감사하며, 오늘의 감상은 여기서 종료.
"평생을 함께하고 아낄 책이라면,
비록 반려동물처럼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아니어도
사람과 책 역시 그에 못지않게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수 있다.
만약 그 관계 안에서 서로가 닮아가게 된다면,
책 수선을 통해 그렇게 된다면,
꽤 멋진 일이지 않을까?"


큰 재미를 기대하며 열었는데, 재미로만 넘길 수 없는 내용이 가득해서 마음이 좀 무겁다. 분명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데도...한국어판 서문의 말처럼 온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쓰는 작은 물건들 하나하나가 온 세상에 퍼질 때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한지. 특히 가격대가 저렴해질 때, 반드시 특정 집단이 피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씁쓸하기 그지없다. 따져보면 모두 알고는 있지만, 안다고 뭘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잊고 지내는 것뿐인가.
다른 의미로 사람 놀라게 하는 아이템들이나 설명도 꽤 있었다. 로인클로스나 쿠피야는 사용 인구를 생각하면 소개되어 이상할 일은 없고, 세계의 3분의 1 정도에 대해 이토록 아는 게 없는 자신에게 놀라서 반성 또 반성. 하지만 프리메이슨 앞치마도 그렇고(80억 인구 중에 이걸 소유한 사람 비율이 대체 얼마나 될까...) 테이블 터닝이 왜 실렸는지는 몇 번 더 생각해도 모르겠다. 절찬 성행 중인 오컬트 사업을 죄다 열거할 수 없으니 하나만 꼽았나 추측하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영매 이야기를 하지 굳이 유행도 지났고 아시아권에는 익숙하지도 않은 테이블 터닝이라니...
어쨌든 사람 숙연하게 만드는 틈새 지식들을 접하고, 중간중간 재미(콘솔 게임기 만만세!)도 느꼈으니 좋은 시간이었다. 아무리 저렴한 물건이라도 그 뒤의 이야기는 엄청나게 무거우니 귀하게 써야겠다 생각하며 오늘의 감상 종료.


'설마 표지의 이 4층 건물 전체가 상담소인가, 임대인가 자산인가'라는 매우 상관없는 상상을 하면서 펼쳤다. 시작하자마자 "책 한 권 읽는다고 치유되는 것 아니고 시간도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지극히 당연하면서 전혀 반갑지 않은 소리에 설렘이 반감되지만, 어쨌든 뭔가를 개선할 참고가 된다면 읽어볼 수밖에.
이 분야의 다른 책들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더 스트레스 받는 자가점검 질문들도 있고, 문제에 대한 다른 관점도 있어 열심히 읽게 된다. 스스로 나잇값을 못한다는 증거라고 생각한 것이 반대로 정서적 성숙이라는 말에는 안도하면서도 반신반의. 성격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장애 증상에 언급될 때는 상당히 속이 쓰리다. 책에 나온 모든 걸 맹신할 이유는 없으나, 경험 풍부한 전문가의 견해를 무시하기엔 내 귀가 너무 얇다는 거...그래도, 이런 시도들을 통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보살피듯 자신을 보살피자'라는 한 마디에 마음이 좀 편안해진다.
권두뿐 아니라 권말에서도 못 박은 대로 마음의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 갑갑하다. 그러나 분명히 있기는 있고 이런 가이드북들도 있으니 걸어는 봐야지. 중간에 힘들면 주저앉기도 하고, 책도 들춰보고 하다 보면 지금보단 나으리라 믿으며 오늘의 감상 종료.
"우리는 하룻밤 사이에 나아지지 않는다. 모든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불안이 갑자기 사라지 는 깨달음의 순간 같은 건 없다. 치유의 과정은 마치 어느 날은 날씨가 화창하다가 또 어느 날은 궂은날이 이어지고, 또 그러다 다시 좋은 날이 오고, 그러다 문득 공황 발작이나 불안 증상을 겪은 지가 꽤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식이다."


권두의 정대건 작가님 추천사가 너무 근사해서 책 열자마자 놀란다. 이런 추천사면 백만 부 팔려야할 것 같은데 세상은 정말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본문도 편지부터 건물, 전설부터 실화까지 김밥천국 수준으로 없는 게 없고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다. 어이없는 대목들도 있긴 하지만, 실제로 사랑이란 감정도 그런 부분을 빼놓을 수 없으니 어찌하리오. 숨이 멈추고 육신이 썩어 뼈만 남았어도 서로를 끌어안고 있던 이들과, 상대방을 죽이겠다고 무기 들고 결투한 부부들이 같은 책에 실리는 것에선 무상함도 느낀다.
나이 들어 이리 훑어보니 예전과는 다른 부분에서 놀라게 된다. 뭘로 기록하든 노력과 상대적 자본이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많이 들던 시기에, 생식 욕구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든 남기고야마는 이 열정이 유물들보다 더 낯설고 신기하다. 시대 차이보다 이 온도 차이를 따라갈 수가 없는 자신을 슬퍼해야 하는가...
누군가를 향한 열망이란 아름다울 때보다 해괴할 때가 많다고 마음 속으로 거의 결론을 낼 무렵, 대단원을 장식하는 앤 드루얀의 글이 주는 감동에 다시 반성한다. 이래서 별의별 못 볼 꼴의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감정이 칭송받는 것이겠지. 곁에 있는 존재를 인생의 기적이고 행복이라 여기는 이들이 있어서 아직 세상이 망하지 않고 버티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또 내가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돌보고 또 가족을 돌봤는지, 그 기억은 내가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 나는 칼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를 봤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봤다. 이 우주에서 서로를 만난 것은 아주 멋진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