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바람구름님의 글 덕분에 알게 되어 읽어 본 책이다. 참...쓰렸다.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 하지만 감사한 마음이 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한 구간 한 구간이 무겁다. 그림체가 담백해서 감정이 더 자극되는 장면들도 있고... 성격에 대한 비난을 떠올리며, '누군가의 성격을 싫어한다는 건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라는 선영의 대사에 섬찟하면서 속이 아리다. 눈물을 펑펑 쏟지도 않고, 느낌표도 없이, 그저 조금 슬픈 눈으로 앉아 있을 뿐인 그 모습에...
역에서 내리며 던지는 선영의 수많은 질문들이 어렵다. 정해진 게 없다는 것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느껴야 할지, 아니면 낡은 상처 위에 자잘한 새 상처들이 더 생길 뿐이라고 슬퍼해야 할지 생각해도 모르겠고. '엄마'라는 참으로 특수한 존재를 다른 관계들과 섣불리 바꿔 생각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이가 좋은 사람이어도 공감과 위로를 줄 능력은 없을 수 있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감정은 그렇게 정리할 수 없다는 것에 괜히 한숨이 나온다. 그저 세상의 수많은 선영들이 자책하지 않기를, 힘들 때 감싸 안아주는 각자의 경훈과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접할 기회가 있던 책들 중에서, 주인공이 장수하면서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는' 이야기들 읽으며 그 사랑에 공감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었다. 오히려 둘 다 비호감이거나, 주역들 수명 분량만큼 길고 파란만장한 역사 해설에 그냥 묻어가는가 싶을 때도 있고. 그래서 성장, 파도치는 이탈리아 역사, 장애를 보는 시각, 양심과 가족에 대한 질문까지 두루 갖추었으며 '그녀와 그'의 매력과 공감도까지 높은 책과 만났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인데...이미 도입부에서 노년의 미모가 처한 환경을 보며, 예정된 슬픔이 결말에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읽는 내내 마음이 복잡하다. 그 불행을 알고 싶지는 않은데, 홀린 듯이 계속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으니.
죽은 사람이 뭐가 무섭냐던 순간부터 사람 빠져들게 만드는 비올라에게, 그런 비올라를 따라가는 미모에게 완전 빠져든다. 짓눌릴 것 같은 환경에도 꿋꿋한 두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인간들이 어찌나 미운지...치오 알베르토 나올 때마다 제발 비참하게 죽으라고 이를 갈게 된다. '이 ○●도 사람이긴 하구나' 싶은 묘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로는 용서 불가! 파티 중 비올라가 옥상에서 등장하는 순간에는 속에서 비명이 절로 나온다. 반짝이는 꿈이, 어린 시절이 이렇게 사라진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세파에 찌들며 변해가는 모습에 대한 애잔함도 그만큼 커진다. 너, 날 배신했지라고 어둠 속에서 비올라가 속삭일 때는 읽는 사람 마음도 방황한다. '어떻게 이런 짓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미모가 던지는 변명들이 틀린 말도 아니니까. 아마 세상에도, 작정하고 등돌리는 일보다는 이런 식의 파탄이 더 많지 않을까. '너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생각으로 한 행동이, 대놓고 하는 반대보다 더 큰 아픔을 주는 경우가.
그래도, 고집 세고, 서툴고, 잘못된 선택도 하고, 때로는 일부러 사람을 상처입히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스스로를 되찾고 일어서는 두 사람의 모습에 가슴이 벅차다. 아아 비올라, 미모, 활자로밖에 만나지 못하는 너희들을, 짧은 시간이지만 사랑했다...
어디 정치 스릴러 주인공 같은 프란체스코를 비롯해 비안카, 비토리오, 비차로 남매, 어머니, 저주스러운 캄파나까지 모두가 아직도 생생하다. 마지막에 성모와 예수의 모델이 누구인지 미모가 밝혔을 때의 찌릿한 전율도. 이야기가 끝난 것이 너무나도 아쉽지만, 모든 이야기는 끝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중얼거리며 감상을 마친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만약 전부 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겠지, 미모.
네가 단 한 번도 틀리는 법 없이
처음부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넌 신인 거야.
네게 품은 그 모든 사랑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아들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나조차 신을 낳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죽고 못 살 것처럼 친한 사이도 여행 가서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무슨 싸움이 날지 모르는데, 서로에게 짜증내면서 국내도 아니고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추리가 아니라 어떤 장르라도 불행의 씨앗이다. 게다가 딱 봐도 수상한 사람이랑 독한 술을 마시기까지 하니 불행해지고 싶다고 굿판을 벌이는 수준. 해결할 사건이 있어야만 하는 픽션의 세계이니 어쩔 수 없지만, 시작부터 참 많은 교훈 준다...어쨌든, 『얼마나 천사 같은가』보다 훨씬 전에 번역된 걸 이제야 겨우, 상당히 즐겁게 읽었다.
해결사 도드가 주인공도 아니면서 등장도 빠른 편이 아니라 아쉽지만, 이쪽도 말발 대단하면서 은근슬쩍 인간미 자랑하니 만족스럽다. 언동 하나하나가 읽는 사람 속 터지게 하는 버턴 양이나, 막장 드라마 속 시어머니 기질이 넘치는 길(요새 미드라면 제일 먼저 살해당하고, '이 사람 죽일 이유가 없는 사람이 없다'고 경찰들 쌩고생시킬 상...) 같은 인물들과의 대화마저도 센스 넘치니 술 안 마시고도 '크으~' 소리가 절로 나옴. 이런 캐릭터를 일회용으로 쓴다는 건 '이 정도 매력적인 탐정은 또 만들어낼 수 있어'라는 자신감에서 나온 게 아닐까. 역시 천재의 발상이란 멋지면서도 두려운 것...
클라이맥스의 재현 쇼는 약간 미묘한 면이 있지만, 전화 교환수라는 직업이 있던 시대면 이런 압박이 아직은 먹혔을 수 있다 생각하고 넘어간다. 마지막 한 줄까지 재미있었고, 사람 대할 때 친절할 필요까진 없어도 어느 정도 마지노선은 가져야 서로 살기 편하다는 가르침도 얻었으니 굿. 유작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유감이지만, 속이 갑갑해질 때 집어들 수 있는 밀러 선생님의 작품들이 있다는 것에 두 손 모아 감사하며 감상 종료.
"당신 생각은 어떤데요?"
"내가 생각한다고 누가 돈 주나.”


이름 뒤에 본인 잘생겼다고 덧붙이는 엮은이 덕에 일단 웃고 시작한다. 외견에 대한 분석들이 체중, 장애나 문신, 현대 미술까지 다양하게 펼쳐져 맛볼 것들이 웬만한 뷔페 수준. 여러모로 흥미로우면서도, 착잡함을 안겨주는 분석들이 눈에 띈다. 많이 보면 정든다는 건 어지간히 경험 쌓여야 깨닫는 것이고, 당장 외모에 대해 강박을 가진 사람에게 이 글들 보여준다고 생각이 바뀔 건 아니니까. ''같은 정신병을 앓아도 못생길수록 독한 처방을 받고 입원도 오래 한다. 반면 매력적으로 생길수록 빨리 퇴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재판에서도 원고의 외모가 멋질수록 피고가 불리한 판결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대목 읽으면 강박이 몇 배는 심해지는 거 아닌가. "의사들은 뚱뚱한 환자는 어차피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니 괜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려고 조언은 간단히 대충한다고 대답했다." 같은 구절 보면 그냥도 한숨 한 바가지 나온다. 아플 때 의사가 날 홀대할까 두려워 살을 빼야 하는 건가, 속 편하게 살기가 뭐 이렇게 힘들어.
자기연출이나 괴물의 개념처럼, 새삼 뜯어보니 아리송한 기분이 드는 부분도 있다. 필터를 거친 세팅 사진들이 물질적인 면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SNS 회사들의 가이드에 복속되고 있다는 증거물인 건가...사진 업로드를 하며 '노출 본능'을 채우는 게 아니라, 노출 본능을 미끼로 기업들에게 낚시를 당하는가? 이제는 의미의 범위가 좁아져 큰 생각 없이 사용하는 '괴물'이라는 단어에, 이렇게 부도덕한 의미를 담았던 과거가 있다는 사실에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쨌든 현재 통용되는 의미로 앞으로도 사용하게 되겠지만, 이렇게 한 번 쌔한 기분 들고나니 비유로 편하게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괜찮아, 세상은 넓고 단어는 많아...
잘생기면 유리한 세상 구조가 변하지는 않겠지만, 시각적인 면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완전히 주관적이니 역시 신경 끄고 사는 게 최고인지도 모른다. 청결이나 장소에 맞는 복장 관리면 모를까, 타고난 내 얼굴을 마주치는 이들 한 명 한 명의 기준에 맞춰 조정할 도리는 없으니까. 예술 감상도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신경생물학자의 단언을 접하고 나니, 그 정도까지는 원하지 않지만 역시 자주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렵게 느껴지는 신체 예술도, 자주 보고 친근해지면 뭔가 촉이 올지도 모르니까. '알게 되면 보인다'는 한세월 전의 유행 문장도 있지 않았나... 이런저런 잡생각들 실컷 하며 오늘의 감상 종료.
"결국 진짜로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한 면만 보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에 전반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볼줄 아는 사람은 한 번 본 것으로
대상을 전부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자각 없이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은
대상을 모욕하는 일이다.
진정으로 한 사람을 볼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상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그 존재를 존중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한때 나의 심장을 지배했던 이코 우웨이스의 나라임에도 아는 것이 많지 않으니, 마주친 김에 조금이나마 지식을 보충하자는 마음에 집어 들었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그런 마음으로 읽기에는 내용이 속을 짓누를 듯이 무겁다는 걸 알게 되지만...
피비린내 나는 반공 우방 건설의 과정에 몸을 떨다가, 공포의 수위가 어느 순간 한계를 넘고 감정이 마비되기 시작한다. 잔인한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지만, 뚜껑 열어보면 또 새로운 요소가 드러난다는 것이 너무나도 괴롭다... 한 도시의 이름이 지구 저편에서 도살 작전의 대명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일그러진 일인가. 복종, 혹은 수십 만의 피가 흐른 뒤의 복종이라는 지옥의 양자택일이 현실 문제라는 걸 그 시절의 사람들이 몰랐다는 걸 순진하다 말할 수는 없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말이 안 되니까. 말도 안 되는 것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은 꿈이 아니라 돈과 폭력이라는 걸 지금의 우리들이 명확하게 아는 것은, 당신들이 그렇게 죽고 다쳤기 때문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현재의 모습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다고 머리로는 생각해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세상과 특정 국가에 대한 신뢰가 점점 더 낮아지는 허약한 내가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회초리를 날리는 것도, 그 학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복수를 바라지도 않으며 조국이 역사와 화해하기를 바랄 뿐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세상의 한 줄기 희망인지도...그러니까 '어차피 난 힘이 없다', '모르면 편하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아직은 정보의 충격을 소화하는 것도 벅차다...
세계로 가지치며 뻗어 나간 이 학살의 연쇄가 과연 끊길 수 있을까. 냉전은 끝났어도, 미국의 근본적인 태도가 너무나 일관적이라는 점에서 변화의 가능성이 과연 있을까. "미국인이 보는 세계의 풍경에는 회색지대가 없다. 선하거나 악하거나, 옳거나 그르거나, 영웅 아니면 악당만 있을 뿐이다."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 이 세계관이 뿌리를 박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선 제일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일들을 있는 그대로 공유한다는 것조차 제대로 될지 의문스럽고,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의 울림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역자 후기의 말처럼, "과거를 직시하는 것만이 현재를 구할 수 있다"고, 대화가 막히면 상대편을 전부 죽여 버리면 된다는 사고의 확산만이라도 다 함께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믿음이 허망하게 끝나는 경우는 세상에 널렸지만, 믿을 수 있을 때 믿어보는 것이 죄는 아니겠지.
"나는 많은 나라에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역사가 너무나 중요하며
미국인들은 이 사건들과 그 나라들을
다 잊었을지 몰라도,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망각이라는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읽으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정돈이 유난히 어렵다. 읽기 시작할 때 느낀 감정은 '신선하다'인데, 생각해 보니 그냥 내가 중동 지역 작가들을 잘 모르고 그 관점에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다. 중간중간 인용되는 엄청나게 멋진 시들, 아랍어권과 동유럽권의 문인들의 이름도 잘 모르고...그러나 사전 지식이 모자라다고 마음에 와닿는 게 줄어드는 류의 책은 아니었다. 일단 여행 스타일이나 과정이 참으로 남다른 것... 현지 분위기를 느끼는 것에 중점을 둔 여행기는 많지만,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가 시인이고 "태양이 사라졌으니 술에 취하지 않는다면 무얼 하겠느냐"는 자작시를 읊어주는 식의 인연이 여정 내내 생기는 경우는 세상에 별로 없으리. 파묵 비평하다 진짜 파묵 만나는 이 흐름은 무엇인가. 작가 혹은 마주친 이들이 도시에 던지는 평가들도 꽤 읽는 이를 홀려 방문 욕구를 자극한다. 미의 기준은 제각각이니 "여기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말을 듣는 도시는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이 도시를 느껴보지 않고는 시인이 될 수 없다", "이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아" 같은 평가를 받는 도시는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중 한 곳에 지금 폭탄이 빗발친다는 사실에, 20년 전 작가를 안내해준 시인과 운동회에서 만난 시민들, 머리에 오렌지색 꽃을 꽂았던 소녀가 주는 두근거림이 우울로 바뀌지만...
생각거리를 던지는 비평과 토막 지식들이 전체에 가득하고, 알제리와 부록의 고향 이야기에선 가슴 언저리가 묵직하다. 상처 입은 땅의 긴 슬픔은 모른 채, 영향력이 큰 승자의 관점을 별 생각 없이 수용했던 것이 아닌가 돌이켜보며 마음이 불편해진다.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된 망명자에게 고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듣는 건 슬픔이고...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평범한 오덕이 이런 시선으로 언제 생각해 보겠는가. 이 책과 만나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할 수밖에.
명소나 음식에 대한 화려한 이야기 없이도 한 장소의 복잡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이 한 권을, 언젠가 여행길에 들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비합리적인 바람이라는 걸 알지만, 인간사의 풍파에도 살아남은 이 도시들이 지금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버티고 일어설 힘을 주고 있기를, 그리고 언젠가 그들과 만날 수 있기를...
"진짜 여행은 자신이 변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재미있게 보았는데도 뭔가 억울하다. 표지 일러스트나 색감도 그렇고, 배경은 대학에 심지어 도입부 배경이 학교 축제 기간인데도 상큼 발랄은 약에 쓰려고 해도 없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첫 에피소드부터 내용도 법률 설명도 무겁다. 살아남으려는 몸부림도 법이라는 것도 본디 그런 것이 맞으니 어쩔 수 없나...
속에 먹구름이 끼지 않는 에피소드가 없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머리 띵했던 건 안락의자 변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이런 판단하는 변호사에게 제대로 망신을 주는 상황에 익숙하다 보니 여러모로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것도 분명히 일리가 있고, 원고에겐 당장 치료가 절실한 것도 맞지 않나. 그렇다고 순순히 받아들이기엔 챕터 마지막 세자키의 대사가 대단히 쓴맛이라 다시 끙끙댄다. 마지막 시험 문제 사건마저도,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했지만 과연 '부정의 연쇄는 끊어졌을까'라는 식이니 이거 참.
"잘 읽었으면 고민 많이많이 하세요"라는 목소리가 어디서 들리는 것 같다. 추리의 짜릿함이 아니라 생각하기 숙제만 한 다발이라니, 힘들어요 작가님... 그래도 집행하는 사람뿐 아니라, 상담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여러 방면에서 끙끙대는 게 중요하니 법조인이 이런 소설도 쓰는 것이겠지. 정말 세상에 무 자르듯 되는 일은 없구나 중얼대며 오늘 감상 종료.
"그렇게 느끼는 것도 네 자유란다.
어쩌면 나도 같은 의견일 수도 있고.
하지만 자신의 느낌이 반드시 맞는다고
확신해도 되는 건, 전지전능한 신뿐이야.
아쉽게도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라서
그의 주장이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단다."


이미 표지에서 컬트 집단의 존재는 확정이니, 어느 정도 질척하고 끈적한 얘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좋은 의미로 예상을 벗어났다. 시작하고 열 페이지도 안 된 시점에서 주인공의 설정과 성질머리에 "왔구나!"하며 입꼬리 급상승. 이제는 점점 멸종해가는, '대체로 주머니가 빠듯하나 입은 아주 제대로 살아있고, 언뜻 보면 제멋대로이나 중요할 때는 인간적인 탐정'을 다시 접하니 감동이 파도치고...누구를 상대해도 이빨로는 안 털리는 이 모습, 나이스!
작은 마을과 소규모 단체 안의 신경전도 흥미진진. 개인적으론 최근 이런 소재가 다뤄지는 작품들보다 가학적이거나 인간 밑바닥을 보는 장면들의 수위가 좀 낮아서 정신적 부담도 덜한 점도 만족스럽다. 취향에 따라선 '역시 옛날 작품은 자극이 적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선 넘어가면 전체 이야기가 재미있어도 읽고 나서 멘탈 고갈되는 사람에겐 이 정도가 딱.
다들 어느 정도 문제가 있고 자기 합리화도 하지만, 대화들이 진전될수록 드러나는 '이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라는 꽤나 보편적인 바탕에 납득되는 부분도 생긴다. 이런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별로 기분이 좋진 않지만...하아. 공감 가는 대사들, 혹은 공감은 안 가도 왜 저런 소리 하는지는 알 것 같은 대사들도 넘치고 여러모로 빠져든다. 역시 고전이란 훌륭해!
시리즈물이 아니라 조 퀸의 입질과 추리가 여기서 끝난다는 게 슬프다...3부작 정도는 남겨주시지 그랬습니까 밀러 선생님.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 구시렁대봤자 소용없는 일이고, 어설픈 속편 없이 끝나는 게 최고일 수도 있으나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음. 어딘가에서 또 멋진 탐정을 만나길 바라며 오늘 잡담 종료.
"오고먼이 낯선 남자에게 접근했다고 해서, 당신의 삶이 달빛과 장미가 가득하던 아름다운 시간에서 쓰레기로 바뀌어버리는 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삶이 그렇듯이, 어떨 땐 달빛도 내리고, 어떨 땐 장미도 피지만, 어떨 땐 쓰레기도 있는 인생인 거죠. 당신은 특별한 영광과 특별한 재난을 위해 선발된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고, 오고먼은 영웅도 악인도 아니라 그저 재수가 없던 남자일 뿐입니다."


가볍게 책장 넘길 수 있는 이야기인데도, 현실에서 익숙한 언동들이 많이도 나와서 꿉꿉한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인터넷 덕에 무슨 일이 터지면 즉결심판도 빛의 속도인 시대, 스스로는 타인을 판단하는 데 과연 얼마나 시간을 들이는지...한 사람의 성격을 어디까지 보고 정의하는지, 어떤 행동을 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증거는 없을 때 판단을 어떻게 하는지, 생각해보니 마음이 가시방석이다. 인물들이 몇 시간도 안 되는 사이 의견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열 올리는 모습을 '소설이니까~'라고 웃을 수 없는 이 슬픔... 누굴 비난하면서, 몹쓸 나 자신은 저 정도 몹쓸 인간은 아니라 생각하는 안심감이 언급될 때는 일시정지 후 한숨만 대량배출.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죄송하다고 해야할 것 같다...
머리로야 아무리 알아도,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잠깐만!' 하면서 이성적으로 고민한다는 게 그리 잘될 리가 없지. 그래도 최소한 이런저런 변덕을 입 밖에 내지는 않도록 용을 써봐야겠다. 상쾌한 추리타임은 없었지만, 반성도 기회 있을 때 하는 거라 생각하며 감상 종료.


이대로면 인류 멸망 위기를 조만간 보겠다 싶은 불안에, 나름 고전인 책에서 가르침을 받고 싶었는데 완전히 잘못 짚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완벽할 수 없다는 점과, 1987년이라는 발간 시기를 고려해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도입부에 생각할 거리를 주는 문장들이 확실히 있지만, 책장 넘길수록 미묘해지면서 어느 정도 지나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저 유럽이 최고고 나머지는 안타깝게 유럽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생각을 참 명백하고 고상하게도 써놨으니... 확 덮어버리려다, '과연 얼마나 더 가나 한 번 보자'고 이 악물고 다 봤다. 이게 과연 보람이 있는 행위인가는 의문이지만.
불쾌한 문장들 발췌 다 하려면 끝도 없지만, "화학자이자 중국학자 조지프 니덤은 그 점을 명료하게 말했다. '유럽은 그냥 과학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세계 과학을 창조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유럽 홀로 한 일이다."에선 그냥 껄껄 웃게 된다. 이것이 존경받는 역사가의 해석이라니 참 끝내주기도 하지. 이 대단한 관점을 2026년 현재 인도와 중국이 아주 작살을 내고 있다는 걸 저세상에 있는 저자에게 알릴 수 없음이 아쉽다. 인도가 몇 년 전부터 댁의 조국보다 잘 산다고, 영국 빈곤율이 쭉쭉 올라가는 걸 뭐라고 해석할 거냐고... 미국에 대한 긍정 분석은 요새 뉴스들 보면 무리가 있으나, 이 분위기가 일시적일지 정권 따라 바뀔지는 더 봐야 알겠지. 어쨌든 읽었으면 활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기억에 남겨야 하는데, 열 냈더니 피곤해서 의욕이 안 난다.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국제 정세 속에서, 지금 잘 나가니까 영원히 잘 나갈 거라고, 따져보면 원래부터 남보다 잘났었다는 식의 생각 따윈 안 하는 것이 좋다고 거듭 생각할 뿐. 꿉꿉한 이 마음을 빨리 추리소설로 달래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