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범죄 세계의 특수 청소부라니, 자동으로 존 윅 시리즈나 SP가 떠오르고 이미 머릿속은 미친 액션의 꿈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과도한 지레짐작이 보답 받는 일 따윈 없었고...청소만 잘 하지, 사격은 커녕 소지한 무기도 없고, 이런 작품에서 꼭 필요한 해커 친구도 없는 고독하고 예민한 주인공에 한숨 팍. 그러나 이 설정이 무슨 죄가 있겠나, 애초에 표지부터가 액션 소설이랑 거리가 있는 프랑스 소설 집으면서 망상의 날개를 못 접은 게 잘못이지...
첫 페이지부터 나오는 운동 부족 문제도 그렇고, 직업 빼면 특수한 게 없으니 사체 운반하면서 낑낑대고, 맞고 한 방에 쓰러지기도 하니 보면서 갑갑한 장면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래도 흐름이 골 때리고, 의문이 꼬리를 물면서 사건의 진상이 점점 더 궁금해지니 페이지는 잘 넘어감. 개인적으로는 결말에 완전히 기대를 못 버려서 - 첨부파일에 핵폭탄급 비밀이 있을 줄 알았음 - 다시 한 번 김은 샜지만 어쨌든 납득은 간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상황 파악 다 했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작살날 수 있다는 교훈도 와닿으니 어쨌든 잘 읽은 걸로. 요상한 기대가 없었으면 더 몰입해서 보았을 수도 있을텐데, 제 버릇 어디 못 주는 게 인생이니 어쩌리오...


나이만 든 게 아니라 감성도 삭았는지, 연애와 이별이 가져오는 감정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젠 죽음이 아닌 이유로 헤어졌다면 족한 것 아닌가 하며 지내는 사람임에도, 책을 펼치니 마음이 괜히 요상하다.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고 이 뭔 조악한 글이냐만;;
시 같은 구절들에 좀 취하다가도, 아름다운지 집요한지 모를 부분에서는 자다깬 사람 마냥 꿈뻑꿈뻑. 글들이 종이 속에서 몸부림을 치는 와중 베르테르 언급까지 나올 땐 마음이 무겁다.(개인적으로는 베르테르란 인물이 꽤 오싹하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왜 감성을 감성으로 받지 못하노...) 사유와는 거리가 먼 독자에게도 잠시나마 동질감을 주는 '유치함' 파트마저도 '이 부분 제 마음 같습니다'라는 말은 못하겠다. 제대로 자기 감정에 쩔어서 퇴행할 때 원래도 부족한 문장력을 아예 상실하는 독자는, 그런 순간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랄 뿐. 주책맞은 나에게 섬세한 글들이 어울리지 않게 느껴져 살짝 움츠러들지만, 안 어울리는 말들을 곰씹는 것도 가끔은 괜찮겠지.


화집이지만 어쨌든 해설도 있고 재미지니 독후감을 써도 괜찮겠...지? 미술 지식이 별로 없으니, 이 장르가 현대미술에도 애용된다는 것부터 놀라고 들어간다. 신화나 마녀같은 주제면 모를까, 4대 원소나 연금술을 지금도 그리고 있다는 건 완전히 예상 밖. 해설 없으면 몇 백년 전 작품이라 착각할 것 같은 그림도 있고, 완전히 추상화라 해설이 없으면 오컬트고 자시고 아예 뭔지 모르겠는 그림도 있고. 솔직히 파울 클레가 그린 마녀 그림은 초심자에게는 그냥 졸라맨이니, 해설이란 정말 중요허다...
그 와중에 영매나 예언자(...), 신지학자가 부업(아니, 그쪽이 본업인가?)인 화가들 왜 이리 많노. 교과서에 실린 작품만 생각해보면 도저히 그런 상상을 할 수 없는 몬드리안이 신지학 협회 네덜란드 지부 회원이라는 글에선 눈만 껌뻑.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염사라고 주장하는 작품들은 이런 책 아니면 볼 기회가 아예 없었을 것 같고, 여러모로 희한한 경험 선사하는 한 권이었다. 개중에 멋있는 그림들은 또 엄청 멋있으니 한동안 구글링할 거리들 떨어질 일은 없을 듯. 파도 파도 신기한 게 계속 나오는 놀라운 세상 만세다.


웃음이 간절해서 명랑하고 귀여운 표지의 책을 집었는데, 도중에 머리가 아파 잠시 눈을 감는다. 분명히 밀리 의 행동에 유머가 있기는 있는데...갈수록 웃음은 안 나오고, 이야기가 굴러갈수록 스트레스만 야금야금 계속 상승. 어느 정도 넘어가면서 정이 붙게 되는 에이딘까지 고난을 겪고, 초반의 은행 심부름부터 설마설마했던 게 역시나가 되니 이게 뭐냐는 소리가 안 나올 수가 없음. 이 표지와 흐름이면 어떻게든 마지막은 해피엔딩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속이 왜 부글부글하노. 밀리의 탈출극은 또 어찌 이리 꼬이는지, 읽으면서 웃어야 되나 울어야 되냐 모를 지경. 짜증을 누르고 또 누르며 겨우 모두가 활짝 웃는 결말을 맞이하니, 진부하고 뭐고 다 상관없고 역시 해피엔딩이 최고다 만세다...아우 피곤해...


책 표지의 저자명은 '현장 과학수사관 28명'이고 각 챕터에도 글쓴이의 이름이 없다. 맨 뒤에 작은 글자로 명단이 쭉 실려있기는 하지만, 사람이 고생을 이야기할 때는 누가 좀 알아줬으면 할텐데 오히려 뒤로 한 발짝 가는 모습에 살짝 놀란다. 대형 스타들이 써준 추천사가 앞표지에 뻘건 대형폰트로 찍히지 않은 것에 괜히 아쉬운데(뒷표지에는 너무 작게 박혀있고, 본문에서도 맨 처음 페이지가 아니라 제일 마지막...), 생각해보면 일개 독자가 생각하는 걸 전문가들이 모를 리 없으니 그냥 내시는 분들께서 '책을 남겼다는 게 중요하지 판매는 중요하지 않다'는 마음이셨을 수 있겠다. 많이 많이 파셨으면 하는 건 그냥 독자 1의 속된 생각...여러모로 이 미친 자기 PR의 시대에 참 보기 드문 일이다.
이미 시작에 '전국 1832명 과학 수사관을 대표하여'라고 적힌 데서 세상에 잠 잘 시간은 있는가 깜놀. 시나 도가 아니고 전국에 1832명이라니 뭐 인간 문화재냐. 이거는 일을 때려치거나 보살이 되거나 할 수 밖에 없겠구나 짐작했는데 역시다. 안 그래도 정신적인 압박이 있는 작업이 양까지 많으니, 어지간하면 불평 한 두 마디라도 나올 것 같은데 짜증은 커녕 본인들의 마음가짐을 반성하는 문장들이 더 많으니 참...고생담도 '내가 이렇게 고생했다'가 아니라 억울한 사람이나 가족들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이니 작업에도 마음가짐에도 고개 숙일 뿐이다. 인간에게 제일 실망할 수도 있는 자리에서 희망을 찾는 1832명의 보살님들, 이 글을 보실 리 없겠지만, 그래도 감사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이 비극은 과연 막을 수 없었을까?...우리가 진실을 찾아 내는 이유는 단지 사건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만이 아니다...사라진 생명들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교훈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그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책임감이자,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할 사명이리라."


마지막 시간에 쓰여진 글들을 읽을 땐 묘한 불안이 있다. 사생활에 파고드는 것 같아서? 죽음이 가깝게 느껴져서? 내 차례가 되면 저렇게 의연하지 못할 것 같아서? 머리 굴려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저런 품위를 못 지킬 거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왜 이런 책을 읽는 것일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렸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도저히 헤아릴 수 없다. 열심히 무언가를 해냈고, 마음 다해 주변인들을 대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겠지. 감동하면서도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지고 두렵다. 언제 자기 차례가 될지 모르는데, 해낸 것도 없고 주변인들에게 제대로 해준 것도 없으니...
흔들릴 때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모습, 문학과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에서 얻는 위안, 가장 사적인 기록을 힘들어하는 타인들을 위해 남긴 사랑까지 모든 것이 놀랍다. 읽을수록 나의 작은 그릇이 부끄럽고, 잔잔함에 또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스스로를 추스리기도 벅찬 시간에 주변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란 멀게 느껴지지만, 하염없이 바라보고픈 문장들을 가능한 한 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돌아보면 살아온 일들이 꿈만 같아서 모두가 고맙다. 나는 평생 누군가의 덕분으로 살았지 나 자신의 능력과 수고로 살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안다. 갚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가진 것들이 있다면 그건 모두가 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이다. 이별의 행복, 그건 빈손의 행복이 아닌가."


책은 얇으나 자아비판 타임은 끝이 없다. 생각만 잔뜩하다 답을 못 내는 스스로에게 피로해질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책에서 이런 문제에 정답도 없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시작하자마자 놀란다. 나의 정의로 남을 비난할 때도 도파민이 나온다는 건 금시초문. 정의 중독이란 게 임팩트 있으라고 붙인 제목이 아니라 진짜였네...스스로를 정의의 수호자라고 느끼면서 만족한다는 건 뭔가 두렵다. 안 좋은 뉴스를 볼 때 화가 났던 기억들을 더듬어본다. 그 상황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저 인간은 나와 달리 정의롭지 못하니 욕해도 된다는 생각이었다면? 이럴 때 나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그러지를 못하네 ○●□...
일본의 사회적 상황 설명을 보면서, 까라면 까는 사람을 선호하는 집단이나 토론은 없고 설전만 있는 상황은 여기도 다른 것 같지 않아 한숨. 하지만 남의 일마냥 한숨 쉴 일이 전혀 아니니, 토론할 일이 생기면 저런 패턴에 빠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도 없다. 생각 길게 안 하고 '원래 저런 사람'하고 넘긴 적이 대체 몇 번일까. 시사 문제로 남이랑 삿대질하는 일 없이 이날까지 온 건 그냥 운이 좋아서일 뿐.
MRI로 전두전야 두께를 찍어볼 돈도 배짱도 없지만(찍었는데 의사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라고 말하면 무슨 개망신일까...), 어쨌든 마음과 뇌가 동시에 퇴보하는 무서운 말년을 피하려면 제시된 가이드를 열심히 실행해야겠다. 모르던 길도 걸어보고, 관심 없던 분야 책도 좀 찾아 보고, 오메가 3도 많이 먹고, 무엇보다 뭔가를 부정하기 전에 왜 그런 일이 생겼는가 1분이라도 생각해보기. 할 수 있다! 있...겠지?


시작부터 주인공이 상당히 위태로워 보이고, 이야기의 발단이 된 사건의 전모도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에, 미 스터리도 아닌데 시작부터 좀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상실뿐 아니라 그 이전의 과거와도 싸워야 하는 루카스도, 옆자리를 지키는 질도 안쓰러워 불안을 잊고 있었는데...사건의 개요가 전부 맞춰지고 정말 해결해야 할 폭탄은 따로 있었다는 데서 움찔. 편지 전달할 때마다 보이던 집착에 느꼈던 약간의 공포까지 순식간에 안타까움이 되니, 아아 루카스여...
그래도, 만들어진 이야기라 가능한 것인지 진짜 인간에게 희망이 있어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지만, 따스함이 책에서 넘친다. 루카스를 친구들이 돕고, 루카스가 앨리를 돕고 앨리의 작품이 동네 사람들의 힘이 되고...말 그대로 내 코가 석자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순간순간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것, 내가 나눠준 정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돌려준다는 것은 현실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면서도 감히 기대하지 못하는 꿈이 아닌가. 마지막에 루카스가 칼이 사랑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는 장면을 읽고, 다시 첫 편지의 맺음말을 보니 가슴이 찌릿하다. 픽션은 픽션일 뿐이지만, 이런 애정의 순환을 꿈꾸는 게 죄는 아니겠지.


현대 출판업계 사정도 모르는 독자지만, 지금까지도 유명한 소설들이 우글우글 나오던 시절 중국의 출판 문화라니 괜히 구미가 당긴다. 지도책도 아닌데 사이즈가 커서 불편하지만 궁금한 놈이 참아야지 어쩌리요. 애초에 논문집은 고정독자들이 중요하지 이걸 볼까 저걸 볼까 고민하는 신규독자들 모집하는 책이 아닌 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메인 독자도 노려야 하고 틈새시장도 생각해야 하고, 어려운 버전 쉬운 버전도 고려해야 하고 책 만드는 사람들 할 일 참 많기도 하다. 예상 외로 일찍 나오는 저작권 개념이나, 글 쓰는 사람 말고도 그림 작업이나 활자 작업하는 사람들까지 서문에 언급해주는 경우를 보니 이런 긍정적인 문화는 왜 수입이 안 되었을까 궁금하고. 송대까지 엄청 비쌌던 종이 값(학자조차 돈이 없어 책을 못 봤다는 언급이 너무 슬프다...)이 내려가고, 제본이 편히 넘겨보게 바뀌어 꽤 많은 이들(현대에 비하면 훨씬 낮은 비율일지라도 이 책에 접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지금처럼 독서하기 편한 시절이 없구나 감사가 절로 나온다. 제일 웃겼던 건 어디 서생도 아닌 원굉도 선생의 솔직 고백. "나는 심삼경 또는 이십일사를 볼 때마다 책을 펼치면 어느덧 졸음이 왔다." 뭡니까 이 인간미.
여러모로 잘 봤고, 본문에 나온 표현마냥 '우부우부'인 내가 궁금한 건 들춰볼 수 있는 세상에 산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 밀려온다. 과거에 어떤 진기한 일들이 있었다 해도, 책덕에게 제일 좋은 시절은 바로 지금!


뭔 내용이라 이리 두꺼운가 했는데, 생각보다 이야기의 흐름이 빨라서 책장 넘어가는 거 금방이다. 진범인이 이미 스물스물 사람 기분 잡치게 하는 스타일이고, 모방살인의 윤곽이 잡히면서 배신당한 기분까지 더해지니 뒤로 갈수록 마음이 안 좋다. 사람에게 흑백을 가리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말을 할 때는 흑백이 마블링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거의 시꺼매서 눈 나쁜 사람한테는 그냥 흑이나 다름없는 수준. 아 힘들어...
살인자들만 기분 나쁜 게 아니라, 그나마 양심형사인 두청의 예전 동료들도 스트레스 피칭 머신들이다. 수사 드라마나 소설에서 보통 경찰 주조연이 뭘 숨길 때는, 분명 범인이 한 거 백 프로인데 뭔가 검거하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일탈수사를 하거나(보통은 원만하게 덮고 감), 아예 시원하게 악역 부패경찰이니(결말에서 백퍼 처단) 웬만하면 끙끙댈 일이 없는데, 과거의 사건은 그렇다치고 나름 정의감이 있다는 사람들의 대처 방안이 참 끝내준다. 두청만 놀란 게 아니니, 이쪽도 읽다 순간적으로 쌍욕 흘림. 작가님 이런 상황은 대체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도 이야기의 희망이자 독자의 정신줄 안전핀 역할인 두 젊은이들이 있고, 나름 결말은 밝았으니 멘탈 바스라지지 않고 책을 덮었다. 진짜 웨이중 없었으면 어쩔 뻔...다음 책은 어떨까 궁금한데 심리죄 시리즈조차 완역이 안 된 걸 보니 과연 확인할 날은 오...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