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제목과 표지 정말 끝내준다.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SF인가 싶어 집었는데 아니어서 쪼금 유감스러우나, 재미있게 읽었으니 OK. 그나저나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니 스티븐 킹 언급은 무슨 이유로 들었는가 궁금하다. 비꼬는 게 아니고 진짜 모르겠어서...
현실도 가상도 세상이란 묘한 것이, 과거 때문에 엘린이 끙끙대고 버벅대는 상황이 재미와 복장 터짐을 동시에 안겨준다. 과거에 친 사고를 반성하면서도 학습이 전혀 안 된 수사 행동의 이 욕 나오는 매력. 조금이라도 속이 시원해지려면 빨리 읽는 것만이 답이다. 아이작이 변모하는 모습도 의외의 재미가 있고, '속편 있지롱!'의 결말을 보니 엘린의 수사를 더 볼 수 있다는 마음에 흐뭇. 속편의 번역 가능성을 따져보니 업된 기분 다시 내려가지만, 희망을 가지는 게 범죄는 아니니까.
일단 모든 사건의 근원에겐 동정 제로. 그리고 먹고 죽어도 될 만큼 돈이 많으면 변호사랑 홍보 회사에나 돈 팍팍 쓰지 요상한 일은 왜 벌리는겨. 최종 빌런의 원통함은 알겠으나, 어디 피해자 보호 단체에 도움을 청해보거나 최후의 수단인 유튜브 폭로까지 해본 것도 아니고 이 과격한 싹쓸이는 뭣이래. 하긴 악역이 괜히 악역이 아니지...사실 독자1에게 필요한 것은 한 발이 어긋나 화를 입은 조연들을 보고 교훈을 얻는 일이겠지. 넘지 말아야 할 선 넘는 순간, 인생의 오점만 생기는 게 아니라 진짜 칼 맞고 골로 가게 되니 꿈도 꾸지 말라고.


예전에 케테 콜비츠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던 책에는 그의 작품 분량이나 소개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 몇 장만으로도 그 한 권을 다 채우고도 남는 어두운 충격이 있어, 작품을 찾아보는 게 진지하게 두려웠다. 그런데도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읽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 든 건 왜일까.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 때문인지, 약간은 용기가 생긴 것인지...이미 권두의 작품 사진들 보는 시점에서, 숨소리도 내면 안 되는 미술관에 들어선 듯 긴장이 시작된다. 그림들과 어우러지는 개인사를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가 내 얼굴을 들어올리며 똑바로 봐야 한다고 압박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으니 얇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쉽지 않았음.
가족이 함께 책 낭독하던 습관이 있었다는 게 슬쩍 부러우면서도, 우물쭈물한 어린이가 자랄 수 없는 가정 환경에 움찔한다. 신조 때문에 무려 법관을 때려치고 미장이로 전직한 아버지라니. 한편 자기 주장이 이렇게 뚜렷한 사람이, 이미 어린 시절부터 불안과 죽음에 관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당황스럽다. 그런 요인을 가지고 뭉크 같은 사람이 아니라 돌직구 사회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환경이 전부가 아니라는 증거일까. 화가에게 감탄하면서도, 투지는 성격이 아니라 선택인 것인가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리고 전쟁...가버린 아이를 위해 작품을 만들었으나 결국 부숴버렸다고 적은 일기에 몸이 저릿하다. 상실과 온몸으로 나눈 대화가 그 조각이라면, 다 끝났으니까 부숴야한다는 선택이 맞겠지. 너무나 개인적인 환상의 작품을 궁금해하는 대신, 묵직한 문장들에 집중하려 애쓴다. "그렇지만 도대체 윤리적으로 고양되는 한편, 동시에 독일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 증오. 거짓, 적대감을 키워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는 마치 가족끼리 사랑하면서도 밖으로는 모든 문을 닫아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 사랑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스케치는 거의 식스센스급 충격. 부분적으로 웃는 얼굴이 들어간 다른 작품도 있기는 했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은 사랑의 함박 미소에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놀라움이 가라앉은 뒤엔 서글픈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메울 수 없는 상실 뒤, 시간이 흘러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만큼 회복했지만, 끝에는 또 다른 슬픔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참...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작품들처럼, 선명하고 일절의 흐리멍텅함이 없는 길을 간 사람을 위해 책상 앞에서나마 묵념한다.
"망아지처럼 바깥 구경을 하고 싶어 하는 베를린의 소년들을 한 여인이 저지한다. 이 늙은 여인은 자신의 외투 속에 이 소년들을 숨기고서 그 위로 팔을 힘있게 뻗쳐 올리고 있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이 요구는 '전쟁은 이제 그만!'에서처럼 막연한 소원이 아니라 명령이다. 요구다. (일기, 1941년)"


남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방치된 일기였다고는 하나, 저자와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 약간은 꺼림직하다. (어릴 적엔 안네의 일기든 뭐든 잘도 봤으면서 어째서냐) 발췌된 일기의 내용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이런 감정에 속쓰림을 더한다. 실컷 일기들을 신나게 읽은 저자도 "일기는 우리에게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벅찬 행위인지 가르쳐준다. 그곳은 끔찍한 장소다." 라고 쓰는 걸 보니 내가 딱히 유별난 것이 아니란 사실에 안심이 되면서도 어째 기쁘지가 않군 ●□■...
유머가 많이 섞여있고, 황당한 키 계산에 잠깐 벙 쪘다가 컥컥대며 웃기도 했지만 중간중간 저자가 쓰는 평가들은 꽤 아프다. "품었던 소망을 결국 단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사람", "비참한 생각들을 없애려고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바람에 도리어 그 노력이 인생을 없애고 있다." 등등. 실패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일기를 쓰는 사람 쪽에서 감정이입을 하게 되니 더더욱 그렇다. 근래 들어서 겨우 논의되는 성인 발달장애가 상당히 의심되는 상황이나, 사랑하지 않는 게 좋았을 이와의 관계가 세상과의 소통을 더 악화시킨 걸 보면 그저 안타까울 뿐.
일기의 주인을 미지의 인물로 남겨두고 싶다는 중간의 언급 탓에, '그래서 제목이 이렇게 비참하구나' 생각하다 결말에 정말 놀랐다. 쓴 사람을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는 별 사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과하게 안도했는지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살벌하게 찬 비바람 맞고 귀가해서 난방 막 틀었다가, 확 나오는 뜨거운 공기에 잠깐 이리 뛰고 저리 뛸 때처럼. 후회해봤자 의미 없다고, 이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이가 해주는 말에 구원을 얻는다. 아아, 다행이다.
일기의 내용과 함께 위축되던 마음이 급격하게 녹은 뒤 천천히 생각하니, 행복의 기준도 천차만별이지만 인생의 예측은 불가능하구나 새삼 와닿음. 본인 입장만 쓰고 서러워한 젊은 날 일기만 봐도 가사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아보이는데, 이게 최장기 밥줄이 되다니...어쨌든, 감동을 원하면서 읽기 시작했고, 우울과 서글픔에 한숨 쉬며 희망을 버렸다가, 막판에 거의 울 뻔한 한 권이 끝났다. 자 얼른 다음 책으로...
내 죄는, 꿈의 꼭두각시로,
세상에 가치 있는 이가 되기를 꾀했던 것.


읽기 전에는 식민지 검열에 걸린 유명한 책들의 소개려나 했는데, 이야기는 점점 복잡하게 돌아가고 뒤로 갈수록 세상의 구조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생각하며 울적해진다. 순수한 선의만으로는 출판을 할 돈이 나오지 않으니, 선전을 해야하고 물주를 찾아야 하지만 그 과정이 출판물 자체의 목적과 어긋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식민지인 입장에서 보면 이게 선의가 맞는가 싶은 의도로 출발했더라도, 거둔 결과가 괞찮으면 좋은 게 다 좋은 건가. 노동자들 단결하라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집을 낸다는 사회주의 출판사들끼리 우리 전집이 더 낫네 선전 경쟁한다는 건 어디 블랙 유머인가. 읽고 싶다는 마음은 간절한데, 손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책들이 제국주의 문학이면 읽는 걸 포기해야 했을까. 답이 없는 질문들은 늘어나 착잡함만 더한다.
이름만 언뜻 들었던 노구치 미노루가 애초에 조선 사람이었고, 간략한 행적만 봐도 춘원의 행적보다 강도가 더한데도 악명이 남는 게 아니라 마치 없었던 사람마냥 이름 들을 일이 없다는 것에서도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모르겠음. 그리고 지나가는 부분이긴 해도, 1939년 처음 조선을 방문한 일본 사람도 경악할 정도로 조선 내 군국주의적 분위기가 살벌했다는 게 거의 백 년 뒤에 읽어도 너무 슬프다.
읽어서 마음이 후련한 책은 아니었지만, 널리 알려져야 하는 일들은 원래 다 그런 것이겠지. 아는 사람 맘 편하라고 존재하는 사실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무려 개정판인데, 예전에 나왔던 것도 몰랐기 때문에 '대체 뭘 알고 사는가' 한숨 작게 쉬고 시작. 얇은 책이지만 내용이 던지는 중압감이 장난이 아니라 머리가 지끈거린다. 기억은 공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이런 관점들로 돌아본 적이 없으니, 읽으며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피해자가 이야기할 때 '용기 있는 사람이다'라고 평가할 뿐, 그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고통을 반복해서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야만 한다는 것을 떠올린 적이 없었다는 점도 정신을 멍하게 한다.
그리고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대한 오래된 의문 - 한 집의 비극의 최대화를 막기 위해, 다른 수많은 집들이 초상을 치러야만 하는가 - 에 대해 드디어 일종의 해답을 보니 시원한 게 아니라 헉 소리가 난다. 이런 주제의 영화나, 어두운 시절에 대한 개인의 증언들이 전혀 다른 방향의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데서도 한 방 제대로 먹은 느낌. 잠깐이지만 더 충격적인 내용이 나올까봐, 소화할 수 없을까봐 머뭇거렸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더니 정말 그랬고, 해설들만으로도 정신에 한계가 온다. 하지만 매일 아침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뉴스들이 터져나오는 지금, 스스로의 무심함을 돌아볼 계기를 만났다는 건 운이 좋은 것일게다. 비록 그 과정이 마음 편치 않다해도.
얼마 전에 참가한 그믐의 '여성과 전쟁' 모임을 생각했다. 아멜리니의 글을 읽을 때, 나에게 여기서 지적된 문제들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이전에는 과연 어땠던가.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하는 날이 올지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래도 알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면, '목격자'의 태도를 한 번에 버릴 수는 없더라도 함께 '증인'이 되려고 용쓰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는 그와 같은 사명 따위란 없다고 말한다. 살아남은 사람이 사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라고 한다면 죽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사명이 없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 되며, 따라서 그들은 죽어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죽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죽은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며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이므로 살아남은 것에는 어떤 이유나 사명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처럼 자신이 살아남게 되었다는 사건의 폭력을 자기 자신에게 합리화함으로써 간신히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것도 베텔하임이 보기에는 배척되어야만 하는 자기기만이었다."


미스터리에서 서신 주고 받는 설정 나오니 이미 좋은 일 없겠다 감이 온다. 감만 올 뿐, 세세한 예상은 죄다 빗나갔지만. 여튼. 메일 내용과 책 속 책의 내용이 맞물려 돌아가는 재미가 있어 책 장 훅훅 넘어감. 메일의 전개 양상을 생각하면 프레디가 겁을 상실한 행동을 너무 하는 것 같지만, 근래 읽은 책들을 생각하면 주인공이 무모한 행동을 좀 해주는 게 내가 몰랐던 일종의 법칙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페이지에선 엉? 어엉? 이러면서 파본 아닌가 확인하는 사태가 있었으나, 여튼 재밌었으니 OK.
좀 뭐한 감상이긴 하지만, 내향인에게는 새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공포에 못을 박는 내용이다. 편견의 극복을 위해서라도 인류애가 넘치는 작품을 봐야겠다 잠시 생각하다 포기. 성격 변하려면 임사체험 정도는 해야지 책 가지곤 안 돼...


항상 잘 보면서도 이상하게 뜨문뜨문 읽게 되는 코벤 슨생의 책. 뒤를 펼치니 나온지 벌써 일 년이 다 되가네, 어이쿠. 어쨌든 신나게 잘 읽었고, 오랜만에 TV서 추석 특집 영화 볼 때의 기분도 맛보 았다. 맥스와 세라 콤비가 참 강렬해서, 왜 이 둘이 주인공인 시리즈물이 아닌가 한탄하지만 어쩌겠노. 얘기 끝났으니 아쉬워도 빠이빠이다 흑.
범인 동기가 황당하긴 한데, 도입부 설정이 워낙 보통이 아니니 흔한 얘기로는 이걸 커버할 방법이 없었을 듯. 그리고 어느 정도 아버지 덕을 봤더라도, 친구들이 주저없이 도와주는 모습에 인덕의 중요성을 느끼며 한숨 쉰다. 쌓고 싶다고 쌓을 수 있는 덕목이 아니니, 도움을 청할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보험 갱신에나 힘쓰자...


보전생물학 분야가 따로 있다는 것도, 한반도에 표범도 살았다는 것도 처음 알아 부끄러움과 놀라움이 밀려온다. 아쉬운 어조의 호랑이 이야기는 그나마 들을 일이 있으나 표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은, 나의 무지 탓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선호도와도 관련이 있는가 싶어 씁쓸. 어쨌든 호랑이를 비롯한 동물들의 위기, 드라마틱한 저자분의 경력, '자연보호해야지~'라는 막연한 마음이 아니라 당장 야생동물들이 사는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과의 현실적인 딜의 중요성 등을 지루할 틈 없이 잘 보았다. 일반인이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긴 해도, 적어도 서울에서 산양 마주쳤을 때 호들갑 떨지 않고 그들의 자리를 존중하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니 읽어서 정말 다행...
개인적으로는 최선을 다하면 안 될 일 없다는 말은 전혀 믿지 않지만, 주민들에게 거절당하거나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기관 내 정치질에 시달리고, 현실적인 연구비와 생활비 걱정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도 현지 기본 편의시설이 없는 것도 감수하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과 야생동물 본인들의 감사도 받지 못하는 자리에서 이 정도로 노력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 그지없다. 이런 분들의 분골쇄신을 생각하면 낯선 FSC 인증마크 확인하며 장 보는 정도가 별 일이겠는가. 산에서의 소음 문제를 보니 평소에도 하지 않는 등산이 역시 할 필요 없다는 믿음도 굳어진다. 역시 연휴엔 실내에서 책이랑 뜨끈한 차 한 대접이 최고여. 호랑이와 표범이 돌아오는 날을 상상해보며, 얼른 다음 책으로 고고다.


궁금해서 집었으면서도, 표지만 봤을 땐 울적하거나 좀 어려운 내용일지도 모른다 예상했었다. 출판사도 회사니까 경영이 쉬울 리가 없고, 거론되는 작가들도 유머 감각으로 유명한 사람들 아니니까. 하지만 1978년에 쓰여진 책인데도 시작부터 의외의 재미가 있다. 이 시대에 이미 텔레비전과 비디오 테이프의 존재에 출판사들이 위협을 느끼고, 스마트폰의 존재를 대략적으로 예상하며 그땐 종이책 싹 망할 거라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그 이전에 책이 망할 거라는 얘기가 필경사들이 책 만들던 시대부터 나왔다는 데서 웃음 터짐 책이 망할 일 없겠다는 자신감(?)이 갑자기 솟아 오른다. 이 정도면 '말세다' 드립이랑 생명력이 비등한 것 아닐까?
헤세가 집필만이 아니라 계약과 계산에도 이렇게 깐깐한 줄 몰랐으니, sns의 시대를 사셨다면 개인사는 절대 읊조리지 않아도 계약이랑 정산 얘기는 반드시 썼겠구나 예상해본다. 계약, 수익 문제를 넘어 글자 폰트까지 파워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작가가 과연 지금 자본주의 세상에 몇이나 될려나. 이어지는 브레히트 파트에선 전집 출판의 어려움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된다. 남의 고생에 함부로 가벼운 평을 해서는 안 되지만 진짜 신기했음. 역시 전문직의 세계는 신비혀...
그러나 읽기 전 예상이 백 프로 빗나간 것은 아니니, 릴케도 그렇지만 발저 파트 내용 참 대단해서 거의 한 페이지마다 한 번 한숨 쉰다. 그렇게 긴 분량이 아니고, 전체적 생애보다는 출판사와의 관계 중심으로 다룬 것인데도, 더럽게 운 없는 모양 자체도 괴롭고 '대부분의 사람은 궁해지면 성격이 안 좋아진다'는 개인적 믿음을(역경 앞에서 흔들리지 않으시거나, 혹은 더 성숙해지는 분들을 너무나 존경하는 것은 그게 엄청나게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강화시키는 내용들에 입맛 쓰다. 그리고 뒷맛도 안 좋은 것이, 저자분이 발저의 위기 원인 5개를 지적했는데 '출판'과 '작가'를 다른 단어로 바꾸면 별로 먼 얘기가 아니다. 발저는 재능도 재능에다 출판사에 원고 건네며 8천 마르크 달라고 하는 패기라도 있었으니(당장 앞뒤에 언급된 금액들과도 차원이 달라서, 얼마인가 역사 환율 계산기에 넣어보니 1907년대 8천 마르크 = 1.026 million dollars라고 나온다. 이 정도면 용자...), 감히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울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음. 마지막 챕터가 훈훈해서 그래도 씁쓸함이 많이 가신다. 뭐, 독자가 처음 이런 사정을 들으면서 '다들 훌륭하구나!' 생각하는 것이니, 실제로 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보면 '이제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내용이지만...이 많은 과제들을 수행하며 글과 독자를 연결해주는 분들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열심히 세상에 필요한 글들을 전달하려는 그 수고에 비해, 현재의 나는 "모든 단어에 책임과 양심이 충분히 생생히 담겨 있는지" 묻는 양식 있는 독자가 아니라 좀 죄송함. 노력해야 하는 건 알지만, 읽으려던 책 놔두고 엉뚱한 책 표지에 홀랑 낚이는 게 일상인 사람에겐 필독도서 건드리는 게 참 어려움...어쨌든 책을 세상에 전달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금 감사를.


처음에 창문 아래 꽃 이야기 나올 때는 오메 이 섬뜩한 거 뭐냐고 흥분했는데, 전체적으로 범인 찾기보다는 인물들의 고뇌가 더 중요한 이야기였다. '이게 범인인가. 아냐, 저게 범인인가!'하는 스릴이 없다보니 반전은 있는데 크게 놀랍지는 않음. 그러나 미스터리라는 게 꼭 범인과 맞장떠야만 재미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세상이 내 개인정보를 헤집겠다는 상황도 받아들이고, 옳은 일을 하고 싶어하고, 용감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테시를 점점 주먹 쥐고 응원하게 된다. 물론 보안과 백만 광년 떨어진 나홀로 땅파기는 절대 반대다만...슬쩍슬쩍 보이는 텍사스라는 지방의 특수성이 재미있기도 하고('총에 항상 실탄이 있음' 안내문에 빵 터짐), 더없이 진지한 빌과 조애나를 통해서 사형제도와 법의학의 역할을 또 곰씹어보기도 하고, 실제로 주변에 있으면 좀 두려울 것 같은 에피를 보며 이제는 포기하고 사는 이웃사촌의 중요성도 생각하고...결말에 공개되는 환장의 커플의 쿵짝에는 절로 이마에 손이 올라가지만, 진실이 언제나 홀가분할 수만은 없으니 어쩌노. 어쨌든 침 삼키며 즐거운 시간 보냈으니 박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