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도서관이란 처음부터 계획대로 건물 짓고 사용하는 거라고 막연히 생각한데다, 여기저기 나오니까 약간 주워들은 정독도서관의 배경 외엔 아는 게 전혀 없던 상태에서 읽고 여러모로 충격 받았다. 다른 데도 아니고 어린이도서관이 위장건물이었다는 것도 그렇고,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의 관장들 중 사서 출신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과 배경도 그렇고...정보가 가득한 공간이 정치 상황와 깊은 관련이 없을 리가 없는데,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스스로가 답답할 뿐이다.
대체 왜 몇몇 도서관들은 산에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풀렸으나, 답을 알아도 기쁘지가 않다. '재미난 도서관 잡학'과는 꽤 거리가 있는 무거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기억해야할 일들이니 그저 열심히 봐야지 별 수 있나. 도서관에서 투쟁한 학생들이나 동농 선생 이야기처럼 숙연한 기록은 당연한 일이고, 국회도서관의 문제점도 도서관 예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았다면 이리 짜증나는 상황까지 이르지 않았을테니 그간 몰랐던 n분의 1의 책임을 불편해도 알아야지. 하아...어쨌든 각종 수난과 푸대접을 거쳐오면서도, 지금까지 남아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이 나라의 도서관들에 목례.
"대다수 시민이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도서관은 제대로 성장하고 기능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말을 살짝 바꾸면, 이런 말이 된다. '모든 시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도서관을 갖는다.'" 스스로가 지금의 만족스럽고 감사한 도서관 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시민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있어 참 섬찟한 말이지만, 그래서 남들보다 더 신경써서 기억해야겠다.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


영화판이 있다는 건 알았고 언젠가는 보겠지 하고 지나갔는데, 어느새 영화 개봉도 20년이 넘었다는 데서 쇳소리 나올 뻔 했다. 뭐, 명작은 언제 손에 쥐더라도 늦는 법이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읽기 시작. 사람이란 참으로 사랑스러운 면과 보는 사람 복장 터지는 면을 동시에 가지는 존재라는 걸 아주 차고 넘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많은 등장인물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그런 요소를 심어줄 수 있다니 이건 무슨 초능력이여. 다른 장르였다면 그냥 잔인한 빌런으로 나와 철퇴 맞고 사라졌을 수도 있는 인물조차 단순히 욕하고 넘어가지 못하겠으니...인간이란 다 그런 존재임을 머리로는 알지만, 세상이 시끄러워지니 점점 이분법으로 생각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여러모로 독보적인 캐릭터 멜로니에게도 그저 감탄. 그냥 빌런인 줄 알았다가, 벨트 휘두를 때는 '이제 살육극이 시작되고 미쿡식 죄와 벌로 흘러가지 않을까' 기대 아닌 기대(?)도 심어주고, 호머 찾기 여정도 참 희한하게 흘러가니 다른 인물들과는 다른 의미로 마지막까지 예측불가였다. 이 작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멜로니를 까먹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시술에 관해서도 뉴스나 인터뷰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거리들이 날아오니 머릿속이 바쁘다. 닥터 라치도 호머도 시술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기본으로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보여주니, 이 문제를 처음 생각해본 옛시절로 타임슬립해 '나는 어땠던가' 자문한다.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도 삶을 귀하게 여긴다고, 정말 이해하려고 했었는지. 두터운 책 두께만큼 대단한 이야기였으니 존 어빙 만세다. 그나저나 책을 다 보고 영화 정보를 찾으니, 샤를리즈 테론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볼 마음이 뚝 떨어짐. 뭐여 멜로니 왜 안 나오는겨!


해설도 명랑한데 일단 일러스트가 참으로 큐트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순간 내용을 잊고 넋을 잃기도. 파셀 군 굿즈를 좀 팔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출판사님. 포스터를 벽에 붙여놓고 싶어요!
구름에 한정된 입문서인데도 모르던 사실이 너무나도 많아, 대체 기상학이란 얼마나 광범위한 학문인가 뒤늦게 숙연해진다. 우주에도 가는 이 시대, 구름 속 벌레까지 감지해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해명되지 않은 요소들이 있다는 것에도 놀라고. 그리고 아무리 도시인이라지만, 하늘을 거의 쳐다보는 일이 없는 나의 생활 패턴도 좀 돌아보았다. 꼭 하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더라도, 언급된 대로 적란운이나 선반구름 등을 알아볼 수 있다면 비나 번개에 좀 더 빠르게 대처할 수 있고, 저자가 염려하는 단정적이고 정확하지 않은 예보들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니. 어쨌든 최종적으로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하니께...
소개된 구름들이 굉장히 많아서 죄다 기억하는 건 무리지만, 최다빈도로 나온 사랑스런 적란운의 자태는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굿즈 안 되면 폰 대기화면이라도 어뜨케 안 되나요 아흑) 관측은 육체 노동이라는 저자의 웃픈 넋두리도. 앞으론 뉴스 보면서 강수 확률 30퍼센트라는 말에 '이게 비가 온다는 거여 아니여...'라는 생각하지 말고, 구라치지 않는 성실한 예보임에 감사해야겄다. 그리고 파셀 군 굿즈, 혹시 모르니까 계속 찾아봐야지...


가독성이 좋은데도 금방 읽기 힘들었다. 중간중간 숙연해지는 내용들이 있었기도 하지만, 점점 시력이 약화되는데(이제 스포츠 중계 때 화면 구석의 국기들 보는 것도 힘겹다) 무슨 월리를 찾아라 보듯이 봐야 하는 그림들이 많아 몇 번씩 다시 보거나 책에 코를 들이대고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진 탓. 국기들의 상관관계(좌우반전, 상하반전 등)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땡큐이나 한 방 식별은 라식수술 받기 전에는 무리일 듯. 모국의 깃발이 헷갈릴 일 없는 디자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처음 생각했다 휴...
일단 이 험난한 시기에 우크라이나의 저자가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문이 있고, 과거의 제국주의나 현재 러시아가 남긴 문제점들, 태극기와 일제의 탄압까지 괴롭고 중요한 일들도 두루 들어있다. 국기조차 자유롭게 흔들 수 없는 억압을 바로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이 겪고 있다는 것이, 언급이 짤막해서 더 슬프다. 프리덤 블루가 그 의미를 찾는 날은 대체 언제 오는가...
전혀 생각 못한 그리스 깃발의 뿌리나, 동인도회사 깃발과 성조기 비교 등등 급체할 것 같은 내용 중에 나바호 - 아일랜드 관계나 부르키나파소 이야기를 보니 뭉클함 두 배. 정직한 지도자와 '정직한 사람들의 땅'이라...정직한 지도자의 삶이 너무 짧았지만, 국기가 전해지는 한 그 이상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언제나 있겠지.
국기란 것이 사람이 만드는 만큼, 논란의 여지도 있을 수 있고 마냥 존경의 눈길로만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깔 때 까더라도, 그 뒤에 숨은 것들을 충분히 들여다보라는 불타는 깃발 사랑 속 외침을 웃다가 시무룩하다 하면서 잘 들었다. 감동의 크기와 식별 능력의 향상은 별개지만, 뭐 새삼스럽게...
"주민들은 러시아 점령기에 몰래 숨겨둔 푸른색과 노란색의 깃발을 꺼내 들고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맞이했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나 역시 다른 수백만 우크라이나인처럼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내 조국의 국기를 바라보게 된다. 평화로웠던 시기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감정이다."


그믐에서 책 소식을 보았을 때부터 읽어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전혀 의도하지 않게 필요한 시기에 읽게 되었다. 갑작스런 일이 잠자던 깜깜한 감정들을 한꺼번에 두들겨 깨운 탓에, 이 감정들이 어쨌든 사라지긴 한다는 걸 알면서도(나이 들어가며 생긴 유일한 좋은 점) 머릿 속 지진이 쉽게 멈추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든 몇 퍼센트라도 희석을 시켜야하고, 아는 방법은 읽는 것 뿐. 얇은 책인데도 읽으면서 생각하고, 멈추고, 또 생각하느라 손에 쥐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차오른 감정이 책 한 권에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읽기 전보다는 좀 진정이 되니 따스한 책 한 권의 존재에 감사할 뿐이다.
중간까지는 책의 취지에 무색하게 점점 움츠러들었는데, 인터뷰하신 분들이 만난 어려움의 여러 원인 중에 무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다 대단해,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또 시작할 수 있었던 거야...내가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겠어? 하지만 다정한 말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천천히 생겨난다.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모두가 다른 위치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말을 믿어도 될까. 그럴 자격이 있을까? "꽃을 피우려다 여력이 없어 꽃잎을 떨궈도, 꽃이 아니어도 내 존재를 구기거나 학대하지 않고 지켜준 것만으로도 칭찬하고 싶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져서 얼마나 멈추고 있었나 모르겠다. 심정으로야 여기서 더 구겨질 것도 없는 것 같아 속상하지만, 뉴스 기사 작성하듯 간결하게 쓰면 세상 흔한 사건에 나는 자신을 더 비하하려 하는가...이 나이에 꽃이 피기를 기다려도 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말하기 쉽지 않은 아픈 일들까지 공개하며 세상에 힘을 나눠주려는 분들이 주는 응원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고 벼락맞지는 않겠지. 갑자기 없던 능력이 생겨 인정을 받고 삶이 트일 리는 없으나, 응원을 잘 간직하고 버텨서 좋은 꼴을 뭐라도 보고 싶다. 인간은 미래를 모르니 벼락처럼 떨어지는 일을 피할 수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 몸부림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티끌만한 아이디어도 없다. 그래도 이렇게 응원이라는 것을 받았고, 읽을 책들도 많다. 떨리는 다리를 주무르고, 일단 오늘을 버티자.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무엇을 하든, 어떤 자리에 있든 그의 일이, 그의 하루하루를 더 의미 있게 만들 것이라는 것. 그 시간이 쌓여 언젠가는 자신을, 혹은 또 다른 누군가를 살며시 구원하리라는 것이다."


제목을 보며 저도 모르게 불룩한 배를 어루만지게 된다. 음, 봐야겠군. 군살과 식비를 축소할 새 과학적 힌트가 있을 것인가. 읽을 시간에 등산이라도 가는 게 지방 연소에 도움이 되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알려진 정보들 정리에 가까운 부분들도 있지만, 어 그런 건가? 하는 부분들도 있어 재미있었다. 뇌와 신경의 유무에 따라 동물들의 먹잇감 획득 방법이 다르다거나, 음식 사진 보면서 먹는 상상을 많이 하는 것이 배부름을 유발할 수 있다던가(대기화면들을 다 스테이크 사진으로 바꿔야겠다). 빈부격차로 인한, 특히 어린이들 비만에 대한 짧은 언급에선 마음이 무겁다. 그냥도 식사환경이 어려운 어린이들이, 식량 부족의 불안 때문에 음식 중독도 더 심하게 올 수 있다는 이 답답함 아오...
최신 대사 조절 약물들 소개에선 감탄사가 나오면서도 혼란스럽다. 살 빼기보다 지금 이상의 수명 연장이 훨씬 어려운 연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수명 연장이 식욕 정복보다 더 빨리 이뤄지는 걸까? 식욕이란 대체 얼마나 무섭고 미스터리한 것인가?
미존공간이나 사냥터 개척 부분에서는 이게 식욕이랑 어떻게 연결되는가 의아했는데, 마지막 챕터에서 '인간다움'으로 연결되어 납득. 개인들이 각자 목표에 집중하는 가운데, 사회 속 극심한 경쟁이나 빈곤이 줄어들면 섭식장애 외 갖가지 중독들도 다 같이 줄어들테니...너무 이상적이라 불가능해보이긴 해도,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서 발버둥치면 중간치까지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뭐, 희망은 미래에 있고 당장 몸에 허리를 위해 떨궈야할 지방이 있으니, 더워도 좀 더 몸부림쳐보자.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피로한 건 왜일까 하아...


일진이 사나워 좀 마음을 달랠 책이 필요했는데, 어째 고른 건 전혀 그렇지 않은 한 권이니 잠재의식 속에 대체 뭐가 있는지 궁금. 여튼 도입부부터 치솟는 스트레스 참아가며 버텼다. 중간중간 범인 시점 파트가 요새 날씨마냥 짜증과 분노에 불을 붙이니, 이렇게 참고 보는데 해결 안 나면 가만 두지 않겠다(...무엇을?)는 기세로 읽어내림.
과학수사의 기술이 부족했던 시기의 범죄이긴 해도, 이를 다루는 사람의 실수는 이제 없다고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씁쓸하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고뇌의 근원인 가족 문제들도 조금씩은 다 공감이 가고, 이야기에 설정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뉴스에 나지 않으면 장애에 대한 정보가 별로 널리 보급된 느낌이 들지 않으니 입 안이 점점 텁텁해지네. 그래도 페이지 계속 넘기는 것은 처음에는 기술 담당 사이드킥이라고만 생각한 아사히와 데쓰 덕. 데쓰가 그 두 사람은 나라고 말할 때부터 왜 이리 속이 시린지...사건 해결도 중요하지만 데쓰의 처지가 과연 어찌될지 두근두근했다. 데쓰처럼 어린 가공의 인물에 감정 이입하면 큰일날 나이가 되었지만, 서글픈 자기 인식이나 외로움 속에서 느끼는 한계가 왜 이리 가슴 아픈지. 마지막에 아사히가, 너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라는 게 비로소 입증되었다고 말할 때 울컥. 아아, 친구라는 존재의 소중함이여! 아가들이 행복하니 어른이도 행복해...아흐흐흐...
상당히 기분 나쁜 묘사들을 참은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데 바로 에필로그가 찬물 끼얹어서 식껍. 왜 이러십니까 정말! 그래도 세이지와 아사히의 이미지가 삽입되는 것을 보니, 인간의 악도 반복되지만 이를 추궁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다시 나타날 거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라 마음대로 해석하고 싶다. 그렇게 안 믿으면 이 더운 날 버틸 방법이 읎어...
"물론 이 세상에는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중에서도 비겁한 인간이야.
공명정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
보통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고 강한 사람이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곧잘 거짓말을 하곤 해."


한 오덕의 완전 개인적인 척도지만,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슴 미어지기로는 원탑이다. 통곡이나 저주를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울지도 기대지도 않는 인물들의 모습을 계속 보는 것이 참 괴로운데, 힘들다고 중간에 덮어버리기엔 더치스와 이야기의 마력이 너무 강력해서 무리였다.
이렇게 가족을 사랑하는 아이에게 너무 시련이 많은 것 아닙니까. 더치스와 로빈만 고생하는 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아픔이 끝이 없으니, 속을 쑤시는데도 눈을 돌릴 수가 없는 이야기를 쓴 작가님을 찬양할 것인지 왜 이렇게 사람 슬프게 하냐고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음.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희생이 원하지 않는 결과와 슬픔을 불러온다는 것이 참...주책맞게 너무 몰입했는가 서러워지기까지 할 무렵, 네가 나를 짊어지게 하지 않겠다는 그 말에 야이 바보야 소리와 함께 누적된 내 감정들까지 폭발. 빈센트 이 바보자식아!
마지막 챕터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심장을 연타당해 호흡곤란 올 뻔 했는데, 뒤이은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말에 결국 곡소리가 나옴. 이 글이 권두에 있었으면 큰 생각하고 읽지 않았을텐데, 내향형 인간조차도 다가가 와락 끌어안고 싶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보니 제대로 마지막 싸다구였다. 글로 아픔 속에서 일어난 사람이, 칼바람 속에서도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
사람 슬프게 한다고 꿍시렁거리긴 했으나, 독자가 이 이야기를 읽는 것이 본인에게 큰 의미라 말한 당신에게 나도 말하고 싶다. 읽은 저에게도 의미가 크다고, 실수하고 아직도 인생이 서툰 사람에게 당신이 생각하지 못할 만큼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고.
"미래는 두려운 것이었지만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오랜 세월 해적왕이 되려는 일행을 마음으로 응원 중이나, 실제 해적 생활에 낭만이 있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마지막 저서인데다 바다의 유토피아라는 글까지 박혀있으니 의심은 뒤로 하고 무조건 내용부터 확인하기로.
"역사, 특히 급진적 역사가 일종의 도덕 게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역사의 위인들의 (명백히 실제로 존재했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배외주의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루소를 비판하는 사백 쪽의 책이 여전히 루소에 관한 사백 쪽의 책이라는 사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예상 못한 팩폭의 어퍼컷에 쿨럭. 눈물을 훔치며 다시 마다가스카르와 해적에 집중한다. 왕국인데 무슨 민주주의인가 처음엔 물음표가 뜨지만, 대형 로펌과 조세 피난처가 없던 시절 해적들의 선택 + 현지 여성들의 적극적 삶 + 기존 제도가 합쳐져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주는 뭔가를 만들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모든 건 뒤집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전체 내용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살인강도로 얻은 보물들을 외딴 섬에 숨겨놓는 건 대형 금고 대용이 아니라 정부 몰래 그 많은 것들을 돈으로 바꿀 수단이 없어서라는 데서 무릎 탁.
온 국민이 아니라 '나름 대다수'의 참여로 이루어지고 애초에 사람들이 모여 섞이게 된 이유가 뜨악하지만, 그 당시 세상을 생각하면 확실히 열려있고 유연했던 공동체나 그에 대한 해석(슨생님도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덧붙이긴 했지만)이나 질문은 꽤나 신기방기했다. 본문 언급대로 "우리는 그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나, 어딘가에서 더 많은 기록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노릇이니 미래의 교과서에 베치미사라카가 등장할 수도 있겠지. 존재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도 기록이 적다는 것도 유감이지만, 확실히 존재했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만족!


표지나 제목에서, 잔잔하게 인생의 마무리를 논하겠구나 예상했는데 방향이 좀 달랐다. 읽으면서 분명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지는 부분들이 있는데도, 황당하기도 하고 순간 화가 치밀기도 하니 목사의 과거만큼이나 읽는 마음도 복잡해진다.
잘못을 포장하거나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용기 없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고, 죄인들이 죄를 인정하고 마지막 순간에 평화를 얻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인종차별 같은 건 없으며 흑인 범죄율이 높은 건 본인들이 선택지를 활용하지 못해서라는 당당 발언이나,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된 것이 실수라고 생각하는 이유에서는 이 사람이 정말 봉사하려는 사람이 맞는가 생각을 누르기가 힘들다. 용서라는 건 본인들이 그럴 마음이 들 때 하는 것이지, 옆에서 왜 신에게 마음을 왜 열지 않냐고 코멘트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충분히 좌절감이 드는 상황이긴 하고, 직업이 성직이니 "내가 신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었다"라는 성취감도 중요하리라고 짐작하지만...끙끙대며 책장을 계속 넘기다보면, 어쨌든 누군가의 극단적 마지막을 계속 지켜주었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런 경험 뒤 나오는 말들은 다 공감할 수는 없긴 해도 묵직하다. 사람이 자신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건 결국 이런 모습이려나.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목사님, 잘하셨어요'라고 박수를 보낼 순 없겠지만, 그중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거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기립박수는 못 하겠고 삶이 바뀔 만큼 놀라지는 않았으나(그런 가공할 파워를 가진 위험한 책이 정말 있나?) 오래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 책이었다. 잘 읽었다...
"나는 아직 그가 살아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그에게 전했다.
짐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이 죽어도 좋은 날이겠지만
살기에는 더 좋은 날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