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스타트렉 쉴드가 아직 없는 핵폭탄의 시대에는 어려운 발상이나, 사극에서나 가능한 낭만이라고 간단히 말하자니 딱히 논리는 없는데 재미있게 읽은 내 기분이 편치 않다. 전쟁이란 것이 없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절대 방어인지 절대 무기인지 생각하는 과정을 생활의 달인 역사 스페셜 같은 깨알재미와 함께 잘 보았음. 초반만 해도 교스케한테 몰입 중이라 타임머신과 아기 히틀러 죽이기 마냥 '저놈을 지금 죽이면...'하는 장면에서는 '어이구, 지금 못 죽여서 나중에 비참한 결말이 오겠구나!'고 탄식했는데, 계속 읽다보니 겐쿠로도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아니며 나름 생각하는 바가 있으니 여기서 또 재미가 있었고.
죽음의 던전 만들기나 포탄 튕기기, 특히나 마지막 돌담 리셋 쇼는 읽으면서 이거 다 재미있으라고 써놓은 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해설에 '기존에 있던 건축술을 구사한 것'이라니 화들짝. 요새 벽돌도 아니고 짱돌들을 가지고, 언제 뭘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진짜 이게 되는 건가? 해자에 물 채우는 방식은 다시 읽어도 이해가 잘 안 가서, '채웠으면 됐다...'하고 포기하긴 했다만, 새삼스럽지만 국경 관계없이 옛날 기술이 절대 무시할 것 아니어라.
이러나 저러나 사람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참으로 당연한 결론도, 계속 숨가쁘게 읽다가 따악 마주하니 난리통 끝에 광명 비추는 임팩트가 있었다. 결말도 예상처럼 싸늘하지 않아 마음도 놓이고, 한마음 아노슈 멤버들('상사와 나와 동료와 후배들까지 절대신뢰로 묶인 회사'라니 이게 진정 환타지여...)이 주는 보온 효과가 장대해 여러모로 배부르게 잘 보았다. 훗훗.


당장 내일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마음 속에 있다. 각종 질병, 모든 불행의 악마의 치트키 교통사고 외 각종 인재, 개인차가 꽤 큰 지옥의 러시안 룰렛 노화...책 좀 찾아본다고 실제 일 닥쳤을 때 의연할 가능성은 바닥이다만, 그래도 안 보는 것보다야 낫겄지.
저자가 걸린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환에 시작부터 화들짝이다. 시력만 저하되는 게 아니라 시야의 각도가 계속 좁아진다는 건 생각도 못 해본 공포. 도마 위에 놓은 칼을 잠깐 시야에서 놓쳐서 식껍하는 부분은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침. 그 와중에 어쨌든 정면이 약간은 보이니까, 지팡이 들고 다닐 때 사정 모르는 이들이 사기꾼 취급할 것까지 걱정해야하니 이런 ○●○...그리고 옆집 '잘생기고 해로운 아빠', 보행 중 벼락이나 맞으셨음 좋겠네요. 시각 장애인들이 생활의 불편 이전에 이런 황당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에 입은 있으나 할 말이 없다.
분명 일정한 도움은 필요하나, 무능력한 사람, 취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심적인 이야기부터, 실업률, 시각장애인들이 뿌리를 만든 각종 첨단 기술(과학 교과서에 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장애를 가진 이들 사이의 인종과 젠더 차별 등등 모르던 이야기들 정말 많았다. 그리고 과연 나는 그런 적이 없는가 생각하게 되는 '사랑에서 비롯된 차별'도. 슬쩍 검색해본 점자정보단말기의 가격에 기함한 것은 덤이다. 평균 600만원! 지원사업도 하는 모양이지만 신청하는 모두가 받지는 못하는 것 같으니, 녹음해서 변환하는 방법이 있다해도 '조용히 타이핑하고 저장하는 행위'를 당연하게 할 수 없다는 건...아아...
좋은 책들이 다 그렇지만, 기억이 닿는 한 계속 생각해야하는 내용들이다. 시각장애에 관한 이야기지만, 언제든 어떠한 기준으로든 차별하고 차별 받을 수 있는 인간 사회의 이야기였으니까. '서로 양보하고, 내어주고, 공유하는 사회'는 참으로 멀다 생각하지만, 최소한 내 행동이라도 조심하며 타인의 말을 더 구할 수는 있겠지.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 메모.
"그날은 내 시각장애에도 아랑곳없이 멋졌던 날이라거나, 내 시각장애 덕분에 멋졌던 날이 아니었다. 다만, 내 시각장애와 함께 멋진 날이었다."


명상록 내용도, 언제 읽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고대 꼰대의 말이라고 콧김 뿜던 울분 가득하고 뭣모르던 나의 모습...시간이 흘러 든든한 가이드(눈부신 경력 이전에, 희랍어를 배워 명상록 본문을 번역하는 덕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의 안내로 들여다보니 많이도 다르더라. 당장 명상록이 남을 가르치려는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점검하는 용도의 노트였으니 옛적 나의 비난은 매우 부당하였다. 쏘리 아우렐리우스...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아들러 해석과 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글이 남긴 영향이 장대한 것인지 그냥 사람은 다 비슷한 생각을 하게 마련인 것인지 신기하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구분하고, '타자는 내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고, 괴로워서 몸부림은 치더라도 그 고통이 하늘 아래 내가 처음 겪는 고통이 아니며 백 퍼센트까지는 아니지만 유사 이래 수많은 이들이 극복했으니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안다는 것.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시간 지나 좀 아프면 깨끗하게 싸아악 까먹는 것들을 다시 복기했다. 조금 편안하면서도, 내가 지금 이 삶 속에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니 혼란스럽기도 한다. "이 고달픈 삶에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그때그때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으로 넘기려 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실제로는 자기 권한 내에 있는 일인데도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게 포기하지는 않았는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손놓고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멈추어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도는 해보는데 정말 모르겠다. 해야하고 할 수 있는 노력의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도 멘탈 부실의 원인 중 하나일까.
저자의 모든 말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죽음 파트에서는 다 쓰다간 날 샐 잡생각이 수두룩한데도, 읽고나니 마음이 좀 평온하다. 당장 명상록 슈퍼 오덕인 선생 본인도 아우렐리우스의 말에 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모든 것에 동의하지 못해도 좋아할 수 있고,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쫄지 말자. 생각도 해보고 모르겠으면 또 읽자.


가볍게 보려고 1권 집었다 코 꿰여서 주르륵 다 봤다. 그리고 밀 려오는 후회 아닌 후회에 몸부림치는 중이니 이게 뭔 일. 제목이 뭔가 상큼 발랄한 것에 비해 1권도 쪼까 결말이 무겁긴 했다. 그래도 2권까지는 괜찮았는데 3권이...으윽.
초장부터 핍 행동에 갑갑해서 책장 넘길 때마다 한숨. 하긴, 일반적인 고등학생이 살인이란 걸 접하면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긴 할 거야...나는 그정도 싸악 극복했다는 건 코난이랑 김전일이나 가능한 일인거고, 힘든 걸 부모한테 털어놓기 까다로운 나이인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압력밥솥 안 고구마마냥 이래도 되는 겁니까 작가님?
그렇게 스트레스가 누적되다 드디어 중반에 일이 제대로 터지니 잠깐 책 덮었다. 그렇다고 관두면 찝찝함만 남지 죽도 밥도 안 되니까 어쨌든 다 봤는데...하아...1권 덮을 때만 해도 드라마 예고편도 검색하며 흐뭇해 했는데, 다 읽고 샤방샤방 배우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씁쓸함만 따불. 마지막 페이지의 내용은 과연 행복의 가능성인가 집행유예인가. DC 히어로들처럼 대놓고 악당 잡을 때는 오히려 생각하지 못했지만, 정의 구현은 역시 방식도 중요하더라. 그리고 읽다 마음에 못이 좀 박히긴 했으나, 잭슨 씨 다음 책도 안 보기는 어려울 듯...낚였어 하아...


세상 모든 것이 파고들면 간단한 것이 없지만, 내가 사는 곳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었는가 처음 생각해 본다. 표지에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봤을 땐 좀 과장이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었음. 당장 한국과 일본 챕터에 나오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들이 많아 민망하기도 하고...원서 출간된 게 2020년이니 좀 묵은 지식들인데도, 인천에 사파이어로나 루비로가 있다던가, 애초에 한국 주소 방식은 어땠는가도 몰랐으니 내 과연 아는 게 있는가 잠시 좌절. 사첩실 이야기같은 재미난 이야기도 있지만, 남아공 파트처럼 예상 못한 충격들이 머리를 때리기도 한다. 미국도 그렇다지만 주소와 인종, 언어 문제가 얽힌 현재진행형의 지옥도에 쓸 수 있는 말을 결국 찾지 못했다. 책만 보는 외부인인 내 짧은 감상이 먼지처럼 느껴져...
말이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주소 이름을 주민들이 바꾸고 싶어 한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이름과 번지수가 부동산 가격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해봤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부자가 아닌가보이. 하지만 딱히 부자가 아니더라도, 마지막 노숙자들의 곤경을 보면 현대사회에서 기재할 주소가 있는 입장이라는 것에 감사의 마음 우러나옴.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기방기한 what3words 서비스나, 공사는 아직 안 들어간 것 같으나 사람들의 웃음과 모금 상황을 볼 수 있는 사랑의 거리 홈페이지를 보면 좋은 변화도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주소의 은혜로움을 조금이나마 알았으니, 택배 받을 때나 길 찾을 때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 과연 기억력 얼마나 갈 것인가...끄응...


찐한 분홍색 표지, 귀여운 사이즈, 제목도 희망적이고 우연이지만 읽는 시기도 적절했다. 기대하던 초강력 꽃바람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살랑살랑 훈풍은 넣어주었으니 오케이.
초반 안스나 귀부인의 대사에 이 엄숙한 주제로 무슨 소리를 하나 어리둥절하다, 곧 박사의 친절한 설명에 ("여기는 망설이는 사람들만 옵니다. 불행하게도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은 어디서든 자살을 합니다.") 바로 납득. 이런 설정이면 마음의 경계를 풀지 못한 이들이 조용히 지낼 것 같은데, 인물들이 말이 없으면 이야기가 안 굴러간다는 걸 감안해도 다들 생각보다 격정적이다. 이것이 스페인식 열정...?
폴리안나 급의 긍정 대사를 뿌리던 촐레가 충격 한 방에 갑자기 무너지는 심각한 전개 속에서도, 예상 외로 상상 연인의 포지티브한 결말에 웃음 풉 나오기도 하니 긴장했다 안 했다 읽는 사람도 바쁘다. 막판 세 사람 옥신각신에, 이거 설마 누구 죽고 초반의 '봄에 왜 자살하는가' 얘기가 다시 나오는 건가 조마조마. 난 희망을 원한다고 흑...어쨌든 잘(?) 끝나서 다행이고, 처음에는 주인공일 거라고 짐작했던 알리시아가 희망 대사도 던져주고 후안 손도 잡아주니 안도감에 몸의 힘 풀림. 해설에 '아름다운 거짓말 같은 이야기'라는 언급이 있는데, 좌절은 좌절할 때 오면 하면 되고 꽃 피는 계절엔 역시 숨 쉴 여유가 필요해유.
연극을 잘 모르다보니, 수많은 극단들이 수시로 공연하는 작품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최근 공연이 불과 지난 달이니 이런 아까운 것. 후안의 절규는 무대에서 보면 더 울적할 것 같아 겁나지만, 사람들이 떠나는 장면들이나 알리시아의 모습은 어떨까 두근두근. 부디 무사히 일 년 보내고 내년에는 대학로에서 감상할 수 있기를...
1권 독일 제국에서 점프해 2권은 동독으로 왔다. 제대로 아는 건 없으면서 동독과 베를린 장벽이란 단어만 황당하게 친숙한 세대에 속하다보니 시작부터 잡생각이 한도 끝도 없다. 나이 들고 보니 밀정의 송강호 마냥 넌 이 나라가 통일이 될 것 같냐 생각하게 된다만, 주입식 교육 혹은 세뇌의 힘인가, 아니면 그냥 저자의 말발에 홀린 건가 이 사라진 나라의 이야기를 알아야겠다는 요상한 의무감이 짧은 프롤로그 읽는 동안 솟구쳐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된다.
독소 양쪽에서 숙청된 공산주의자들 이야기부터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우울감의 펀치에 속수무책이다. 설마 마지막까지 다 이런 내용이냐고 하늘 보고 싶어질 때쯤 스탈린이 사망하고 시민들 이야기의 내용에 밝은 부분들이 섞여 읽는 사람 숨통 트인다. 구조가 삐걱댈지라도, 당시 서독뿐 아니라 현재 선진국들의 뺨도 후려치는 수준의 여성 사회진출이나 보육 시스템, 안정된 주거, 커피 한 잔의 위안이 있었다. 청바지를 입는 청춘들과 록밴드들이 나올 때는 슬쩍 웃음도 나오고. 관료들의 억압에 타협한 것이 오히려 국외까지 히트하는 개성적인 독일어 음악 창작으로 이어진 밴드 푸디스 이야기에 잠시 눈 껌벅. 되도록 시민들 이야기를 담는 방향이다보니, 슈타지 분량이 꽤 되면서도 명망(?) 있는 동독 스파이들에 대해선 언급이 매우 짤막한 것은 살짝 아쉽긴 하다.
국제 관계부터 시민들의 삶까지, 전부 연동된 문제들이긴 하지만 하나라도 일어난 시기가 달랐다면 독일민주공화국은 지금도 지도에 있었을지 모르니, 세상 일은 역시 타이밍...시간도 상당히 흘렀으며 메르켈이 장기집권했어도 여전히 시민들 사이의 차별이 있고, 동독 사람들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할 거라는 편견까지 있다는 건 인간 세상에서 참으로 흔한 모습이라 씁쓸하다. 그래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닮았지만 닮지 않은 분단국가의 시민에게도...저자는 '이 책이 집단 노력의 산물인 것이 내심 뿌듯하다'고 했는데, 그 산물을 공유받아 나도 좀 뿌듯하다. 그래서 마지막 권은 언제 나옵니까 선생님.
"...동서독의 통일은 역사의 끝이 아니었다. 독일 통일은 단발적 사건 하나로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통일을 벤더(전환점)라고 말하며 역동적인 과정의 출발이라고 본 동독인들의 접근방식이 차라리 더 건설적인 듯하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 국가, 더는 극복해야 할 적이 아닌, 국가에 대한 유동적이고 개방적이며 변화무쌍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독일민주공화국을 있는 그대로, 장벽 너머, 독일 역사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할 때다."


독일 과자나 축제 음식 얘기 읽으며 힐링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쓴 맛 나는 책이었다. 역사 속 기근은 그래도 먼 옛날이지만, 국가 장려까지 받아 대량 미국 이민까지 이어진 식량 부족은 호랑이 담배 필 적 얘기가 아니니 울적하다. 그러나 양 세계대전들을 낀 식량 통제 이야기들에 비하면 이것도 양반. 특히나 2차 대전 총 사망 사인 1위가 폭격이 아니라 아사라는 게 진정 충격이다. 나치가 온 유럽을 깔아뭉개기만 한 게 아니고 식량을 있는대로 쪽쪽 빨아댄 걸 정작 독일인들은 패전 후에도 거의 모르고, '주둔군들 때문에 자신들이 비참해졌다고 믿었다'는 데서 머리 띵. 그러나 이것도 못 들어본 소리 아니니, 세상은 역시 히스토리 리피팅...그 와중에 모자란 배급품으로 용써서 맛있는 요리를 가족들에게 해준 여성들이 이기적이라고 비난 받았다는 블랙 코메디에 머리가 띵하다. "요리는 애국적 요구에 따라야 했으며 즐거움과 탐닉을 피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냥 나치 단백질 바 공장이나 세워서 돌리지, 굳이 식재료를 주면서 이건 뭔 쉰소리래.
복장 터지는 파트가 길다만 신기한 이야기들 매우 많다. 매대에서 식재료로 파는 토종닭 크기의 달팽이를 손님이 양손으로 잡으려는 중세 그림에 빵 터짐. 얼마나 맛있게 먹었길래 저런 사심 있는 사이즈로 그렸대. 무려 중세에 시도한 지방흡입술(!), 아동용 요리책, 식품과학과 공장 식품 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대규모 포장음식 판매, 현대적 빌트인 주방, 국제 음식박람회, 지금 환경 보호 운동과 꽤 가까운 내용의 채식주의까지 독일이 선두한 부문이 꽤나 많아 소소한 놀라움은 계속된다. 그리고 책 전체에 뿌려진 고기 사랑...최근의 독일은 채식주의 선진국이지만, 근대 초기에 1인당 연간 100킬로그램 먹었으면 그냥 주식이 고기였던 걸로...당장 국민주방 음식 목록도 돼지고기랑 소고기로 가득해서 슬쩍 봤다간 실수로 중복 인쇄된 줄 알 듯. 빵 값 올랐을 때도 참다가, 육류 가격 오르니 주부들이 도축업자들을 폭행했다(...)는 데서 건드릴 수 없는 고기의 신성함이 느껴진다. 2007년 기준 독일인들이 먹는 가장 인기 있는 음식 목록도 절반이 고기 메뉴. 그래 사랑이 어떻게 변하겠어, 양을 줄일 뿐이지...'독일인은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먹는다든지, 이웃인 프랑스와는 달리 음식을 진정으로 음미하지 못한다든지 하는 진부한 생각'이라는 말에 마지막으로 낄낄. 독일인들이 스스로에게 가진 편견은 이런 거군요. 힐링은 못했지만 잡생각 많이 하면서 잘 보았다. 읽고 나니 두툼한 삼겹살이 생각나는 건 부작용...인가?


시리즈 번역이 계속 나온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한 500pt로 ‘감동 - 끝’이라고 기록 마쳐도 될 것 같다. 그런 것 치고는 출간되자마자 읽지도 않았지만(백설공주가 드라마까지 만들어진 걸 보고 안심감이 과했던 듯...) 뭔가 힐링이 필요한 시간 재미있게 읽었다. 시간이 지나 피아도 나이 들고 상황이 바뀌었지만, 그 성질 죽지 않았음이 흐뭇하다. 남들은 이미 다 읽고도 남았을 시기에, 혼자 카트린의 본색에 놀라고 그때부터 없는 기억력 총동원해서 이전에 이런 기미가 있었는지 생각해보지만 헛된 노력이었다. 세부 사항은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소설이나 영화에서 인터넷 속 마녀사냥이나 자경단 문제가 다뤄지는 게 이제는 일상인데,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피로하다. 댓글이나 메일은 쓰기 너무 쉬운 탓에 문제가 생기지만, 내가 피해자를 알지도 못하는데 직접 의심 가는 상대를 찾아가서 물리적으로 괴롭힌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DC 히어로들이 악당 잡는 이야기는 좋아하지만, 수사 도중인 사람 집에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번갈아 와서 문 두들기는 광경은 뱃속을 싸늘하게 한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그렇게 많을까? 세상물정이란 단어를 쓰기도 민망한 나이에, 내가 너무 모르고 있는 걸까.
처음 시리즈 접할 때만 해도, ‘독일 사람도 다혈질인 사람은 있구나(...)’라는, 세계화 시대에는 걸맞지 않은 감상을 가지고 읽었는데...역시 시간이 지나고 계속 읽으면 엄청난 팬까지는 아니어도 정이 든다. 이게 사람인가 싶던 헤닝까지 이젠 그렇게 싫지 않음. 주변 사람 다 깔보는 성질의 인물이 소설도 쓰고 피아한테 정말 신경도 쓰는 모습을 보면 진짜 현실이나 비현실이나 사람은 어찌 변할지 알 수 없음. 읽다 그만 뒀으면 몰랐을 이런 맛이 있기 때문에 시리즈물은 역시 끝까지 봐야한다고, 다음 권이 나오면 늑장 부리지 말고 싸게 싸게 보자 오늘도 다짐한다!
![[세트] 몬스터 1~2 세트 - 전2권](https://image.aladin.co.kr/product/34874/58/cover150/k222933051_1.jpg)
![[세트] 몬스터 1~2 세트 - 전2권](https://image.aladin.co.kr/product/34874/58/cover150/k222933051_1.jpg)
붉은 박물관보다는 범인 찾기 약간 난이도가 내려가 기쁘면서도, 내 타율은 역시나 그닥이었다. 첫 에피소드의 범인을 소가 뒷걸음치다 쥐잡듯 맞추어 의기 양양했던 것도 한순간이고, 추리엔 소질 없다는 것만 재확인. '죽음을 10으로 나눈다'는 동기까지 합해서 그냥 벙...모든 동기의 만능 열쇠는 사랑이더라. 책 제목이기도 한 '기억 속의 유괴'가 장편이 아닌 게 아쉽지만 이야기를 못 읽는 것보다야 단편이라도 나오면 감사해야지 어쩌겠는가. 장편이었으면 광기의 친모 파트가 길고 끔찍했을테니 이정도인 게 적당한 것이겠지.
늦게 읽은 덕에 크게 기다릴 필요 없이 두 권을 연이어 즐겼으니 이것도 운이다. 일단 시리즈가 계속 연재 중인 걸 보니 정말 운 좋으면 3권을 금년 안에 본다던가...하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이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