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권두의 사건 현장 미니어처에서 이미 넋이 좀 나간 상태서 읽기 시작하는데, 내용에도 놀랄 포인트가 한 두개가 아니다. 일단 세간에 매우 드문, 부와 열정과 능력 발휘가 세트가 되는 경우를 보는 건 좋은 놀라움이고, 시대가 시대니 유명인들의 까메오 출연(?)이 상당한 것도 괜찮은 놀라움이다.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 당시 이집트의 법의학 수준 설명을 보며 '분명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집트 소설이 있을텐데!'라며 접근 방법이 없는 걸 억울해하기도 하고...
그러나 과학수사가 걸음마하던 시절, 경찰들의 개판 수사와 완전 합법적 엽기 범죄자들 집단이었던 코로너들 행각에는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고 몸이 움찔한다 ○●...제발 이런 또라이같은 작태가 천조국에만 있었다고 누가 얘기해줬으면 좋겠는데, 확인했다가 그게 아님 어떡하나. 괜히 안 좋은 쪽으로 불안해지기까지 하니 이미 세상에 없는 물건너 ■□들에 대한 원망은 더욱 커진다. 생각보다 은혜를 빠진 눈썹털마냥 하찮게 여기던 하버드 대학도 깝깝하기로는 비슷하니, 프랜시스가 그 많은 돈으로 킬러들을 고용하지 않고 꽤 유연하게 떡고물 뿌려가며 정치했다는 게 존경스럽기까지 함. 미니어처 사진 보며 왕년의 CSI 에피소드부터 떠올린 탓인가, 논픽션 읽으면서 '이놈도 제거하고 저놈도 제거하고...' 꿍얼꿍얼하는 황당한 독자가 여기 있다 쩝...
어쨌거나 프랜시스와 매그래스가 안 만났으면, 매그래스 걱정대로 법의학의 맥이 끊기고 이미 고전이 된 본즈나 스카페타 시리즈는 아직 출간도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사고를 당하면 진실 규명은 커녕 시신 담보로 담당자가 뭔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했겠지. 명석함과 손재주와 상황 파악 능력, 미친 재력까지 골고루 가진 말도 안 되는 사람이지만 이정도로 후대에 남긴 게 많으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이야기 꺼낼 기분은 들지 않는다. 이제 없으면 큰일나는 법의학의 발전을 위해 할 만큼 했고, 직접 가서 보지는 못하더라도 유튜브로 엿볼 수 있는 끝내주는 디오라마들도 남긴 프랜시스 경감님에게 큰 박수 짝짝짝.
"내 목표는 사법 행정을 개선하고, 기법을 표준화하고, 기존의 도구를 벼리고, 경찰관들이 '제대로' 일을 해내며 대중에게 '공평한 대우'를 해주도록 돕는 것뿐입니다. ... 아무튼,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디 모든 것이 침체되고 사라지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표지의 선전문구에는 의구심이 좀 생긴다만, 근사한 표지에 홀려 일단 오픈. 단어들 설명 보며, 크게 생각하지 않고 매일 사용하는 말들이야말로 일종의 마법인가 새삼스럽게 생각해봤다. 의미들을 바꾸어가면서 천 년 이상, 짧아도 몇 백 년 이상 살아서 역할을 다 하는 무언가라니. 그렇게 따지면 한 마디 한 마디 경건하게 써야하는데, 잡생각 과다 보유자에겐 좀 무리...
정착된 단어이고 딱히 대체할 말도 없는데 괜히 어원을 보니 찝찝한 단어(때로는 몰라서 속편한 일들이 있지...), 생각보다 역사가 짧아서 놀라게 되는 단어들, 처음 생겼을 때는 꽤나 심오한 뜻이 있던 단어들 등등을 감탄했다가 정색했다가 하면서 잘 보았다. 사용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어쩌다 마주칠 때는 개화기 때 들어온 단어려나 추측했던 ‘젬병’이 ‘전병 망친 것’이라는 이야기가 개인적 깜놀 1위. 그리고 뭐 이런 엄청난 사람이 다 있는가 싶은 이선란 선생 오오. 검색하니 짧은 소개문만으로도 경력 참으로 화려하시다. 한 사람의 불타는 수학 사랑에 이 많은 용어들을 빚졌다니 놀라울 뿐. 학생 시절 종료되자마자 수학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면 아마 감사함이 더했겠으나, 일단 지금은 감탄만...
어쨌든 오래 버팅긴 단어들은 유래만 재미있는 게 아니라 그 적절함이 세대를 아우른 다수에게 인정받은 것이니, 인류의 발명품이 인류 이상으로 대단한지도 모르겠다. 시간 지나 이 책을 봤다는 것도 까먹을지라도, 며칠 정도는 존경심을 담아 단어를 구사하려 애써봐야지. 그리고 젬병이란 단어를 언급해본 인생 첫 글이자 아마도 마지막 글일테니 나름 기념비적(?) 독후감이다 허허허.
“연극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연극이나 영화에서 쓰는 '주인공(主人公)'이라는 말도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불교에서는 '선을 수행하다가 득도를 한 사람'을 '주인공'이라 했다. 득도가 목적인 곳에서 하기 힘든 득도를 했으니 그 안에서 으뜸인 사람임이 분명하다. 모든 무대에서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 있으니 그이의 이야기가 바로 연극이나 영화 또는 소설에서 중심이 되어 서사가 진행된다. 우리도 인생이란 무대에서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고 있다.”


표지나 권두에 사진 자료들을 보고, 폐허 속 회복하는 자연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예상했고 저자도 ‘복원이 아닌 구원’을 얘기했는데...일이 그렇게 쉽고 행복하게 굴러갈 리는 없지. 이미 몰락하고 시간이 지난 지역들 이야기도 어두운데 현재진행형인 경우는 속에 고구마가 꽉 들어찬다. 게다가 인간이 얼마나 파괴적인 일을 다양한 방법으로 하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익숙하다 못해 심드렁해질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새로운 놀라움이 있어 황당함.
버려진 곳들에 자연 풍경이 돌아온다고는 해도, ‘어머 깨끗한 자연이 돌아왔네 박수!’가 아니라 사람들이 괴롭히지 않는 장소에서 생물들이 모여 각종 오염물질에 버팅기며 살아남으려고 기를 쓰는 것이니...자연의 위대한 적응력은 실감했지만, 여기에 모든 걸 맡기기엔 인간이 벌여놓은 게 너무 많으니 좋아할 기분이 안 든다.그리고 후반부에 언급된 옐로스톤국립공원 분화가 일어나는 날엔 이런 생각할 틈도 없이 동사 아님 아사하겠지. (쪄죽을 것만 걱정했지 이 경우는 몰랐네...) 이런 정보들을 보고 있자니 개인이 환경을 걱정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맥이 풀린다. 메리 셸리 작품들이 불안한 독서 경험을 안긴다고 플린 선생은 말하지만, 선생님, 이 책이 저에게 불안한 독서 경험을 안겨주는뎁쇼. “이 장소, 이 메데이아적 풍경을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한 장면이자 경고로, 그 전조로 바라보지 않기란 어렵다. 세상의 종말, 먼지의 시대가 시작될 조짐이다.” 아아...
그렇다고 ‘우린 다 망할 거야 예이!’하고 포기하고 다리 펴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플린 선생 말대로 허무주의를 피하면서 자제하는 법을 찾아야하긴 하는데...(자다 소한테 밟혀죽을 수 있는 곳까지 혈혈단신 다녀온 이의 말이 가진 설득력은 장대허다) 일상 속 사소한 노력 말고, 정말 인류가 한 발 물러서는 데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 진짜 찾을 수 있으려나. 땅이라도 사서 자연 보호하려면 제프 베조스 결혼식 비용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니 또 허무해지려 한다. 안 돼, 안 돼...
“삼림 재성장이 우리에게 안기는 것은 빚을 갚고 과거의 죄를 속죄할 기회다. 사면이 아니라 유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팬은 아니지만 또 나오면 꼬박꼬박 본다. 읽은 후 찝찝한 여운이 남고, 시기가 시기다보니 참기 힘든 관념들도 많은데(아예 수백 년 전이면 심드렁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데, 어정쩡한 옛날이라 그런가 힘들다...), 궁금함을 있는대로 유발하는 초반 설정들, 마지막 와다다다 진상 터질 때의 '우와~'하는 느낌에 꾸준히 낚이는 듯. 뭐, 세상에 요코미조 세이시 팬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팬이냐 아니냐가 대수겠어...
이름부터 보통이 아닌 미소년 + 살인마라니, 비에른 안드레센 같은 악역이 세뇌 플레이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내용 아니었다 쩝. 화려한 두뇌가 아니라 특이한 먹성부터 소개된다는 데서 예측했어야 하는데...물론 식성과 행각엔 연관이 없지만, ‘존엄하리만치 우월한 미모’라고 하니까 괜히 모 박사처럼 클래식 틀어놓고 코스 요리 만들어 먹을 것 같잖아...그리고 게다가 독자 시점을 대변해주는 일반인인 줄 알았던 주인공도 중간중간 돌발행동으로 '이건 뭐여' 타임 선사한다. 그 와중에 살인사건 목격한 사람한테 ‘독신이니 그런 곳에 냉큼 갔다가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한 거다’는 형수의 대사에서 비틀. 애초에 등장인물이 적으니까 소거법 쓰면 이유까진 몰라도 범인은 짐작이 가지만,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역시 씁쓸. 본인은 엄청 애절한 줄 알지만 따져보면 나와 님만 중요하고 다른 이들은 소모품인 영 기분 별로인 사랑...
개인적으로는 추리물도 아니며 분량도 적지만 병풍 얘기가 더 재미있었다. 시대도 변했고 내 마음도 메마른 탓인가, 마지막으로 언제 봤는지도 모르겠는 '운명이 점지한 짝' 이야기가 신선. ‘옛날 옛적에’ 스타일이야말로 생명력 발군이고 가끔은 그 약발도 필요한 것 아닌가 홀로 중얼중얼. 등골은 그렇게 써늘하지 않았으나, 90년 전의 사랑 이야기들도 여름에 읽는 맛이 괜찮았다.


제목을 보자마자 뭣 모르던 시절의 생각이 떠올라(나이만 들면 간달프 되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다. 심지어 영화판 간달프는 체력도 어마무시했는데...) 집었다. 원서가 발매된 2014년에서 또 강산이 변할만큼 시간이 지났으나, 중년의 고민들 카테고리는 그닥 변한 게 없어보이며 개그 코드도 맞는 편이라 쿡쿡대며 감상.
초장부터 "이제는 빌어먹을 아랫도리까지 영원히 스물두살처럼 보여야 하는 거냐고? 도대체 끝이 어디야?"라는 진실한 외침에 웃픔이 밀려온다. 사투에 가까운 머리 손질, '나이에 맞는 패션'(나이 들었으니 익숙하던 옷들 입으면 안 되고, 추해서 남에게 보이면 안 되는 부분을 다 가려야 한다면 저자 말마따나 부르카를 입던지, 의료방호복 장만해야지 뭐 ○●□. 아니 아예 밖에 나가면 안 되는 것 아님?), 심금을 울리는 11번째 챕터 제목 '비상금이고 뭐고, 내 장례식 비용이나 댈 수 있었으면', 수면 문제 등등 뭔 소린지 알겠어서 웃다가 탄식하는 내용들 넘친다. 미경험 고민도 있지만, 이것들도 주변에서 언급된 적은 있는 것들이라 '그렇구나, 이런 상황인가...'하고 고개 끄덕끄덕. 조금이라도 기억해두면 입 잘못 놀렸다가 분위기 작살 내는 일은 피할 수 있으리.
시간이 더 지나도 간달프가 되는 것은 무리일 것이고, 나이 들어 생긴 고민들 중 상당 부분은 파워업할 일밖에 없으니 나중에 분명 "그땐 지금의 10분의 1도 심각하지 않았는데 난리를 떨었구만." 소리를 하겠지. 그렇다면 쪼까 서글프지만 최대한 웃으면서 늙어가는 자신과 딜하고, 내 발로 정류장에 걸어가서 버스 탈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하고, 좋아하는 일에나 집중하는 게 최고일 것이다. 기력이 넘쳐본 일도 없으며 툭하면 우는 소리 하는 물 건너 독자에게, 체념이 좀 섞이긴 했지만 웃는 시간 선사해준 제니 매카시 선생에게 감사 감사 대감사.
"그리고 생각해보면 인생은 원래 웃긴 것이다.
상황이 끔찍하고 비참할 때조차도 말이다.
사실 인생은 상황이 끔찍하고
비참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웃길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삶의 재미를 느끼려면
끔찍한 상황 앞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 있어야 한다."


표지가 근사하고, 거울 속 외딴 성 생각도 나서 바로 낚였으나 시작부터 움찔. 등장인물 중에 '엄청난 재능의 시인이나 소설가'가 있고, 그 인물의 작품이 길게 직접 본문에 제시되는 소설이 드물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때마다 당혹스럽다. 결국 작가가 쓴 글인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음. 하물며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추앙받는다는 설정의 무로미 쿄코의 글이 몇 페이지가 아니고 이 책 거의 대부분이니까...책 속 책의 일러두기에 아마추어 시절의 글이라고 해명이 있긴 하고, 답도 없는 주제로 고민해도 시간만 지나가니 싸게싸게 책장 넘김.
진상을 찾아가는 길에 쭉 깔려있는 외모 관련 문제들은 하나도 새삼스럽지가 않다. 왜 좋은 일들은 만국 공통이 별로 없는데 암울한 문제들은 국경이 없을까. 왜 들이대서 서로 비참해지기만 하는 잣대를 모두가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게다가 신체이형장애는 말 그대로 질환인데, 치료받는 걸 숨겨야하는 분위기 속에서 커밍아웃 고민도 해야하고 세상 참...하지만 나도 이 문제를 극복한 사람이 아니라 시원하게 비판할 수가 없다. 컴플렉스는 그대로인데, 나이 들고 에너지가 모자라게 되니 시급한 문제 순위에서 외모가 점점 밀려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시간이 줄었을 뿐. 그래도 이 정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오다의 대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언젠가는 잃게 되는 것, 언젠가는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에 결코 자신의 가장 큰 가치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솔직히 "독후감이 180도 바뀌는 감동"을 대단원에서 얻지는 못했으나,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후련함이 있었다. 2063년까지는 무리라고 느껴지지만, 히비키 말처럼 루키즘의 시대는 떠나보내야 하며 언젠가 그날이 올거라 믿고싶음. 그 이전에 지구가 열사의 지옥 되면 외모 따질 여유도 없겠지만 쩝...


닐스의 모험를 쓴 작가의 작품이란 말에도 마음이 동하고, 뒷표지의 현란한 설명에 홀랑 낚여서 책을 펼쳤는데 초장부터 깜놀. 반지의 제왕이 아니라 판타지 버전 페르 귄트인가요? 놀라서 정신 못차리는 와중 이어지는 기사들과 동네 사람들의 일 년 이야기가 참....읽다가 드러눕고 싶은 장면이 한 둘이 아니다. 일단 예스타 베를링 너무나 마음에 안 들고요. 로맨스물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연애 이야기라 할 때 떠오르는 주인공의 모습보다는 주인공 커플을 괴롭히는 찌질한 역할에 가까운 성질머리 무엇. 게다가 상대 여인네들도 황당해해야 하는지 신기해해야 하는지 모를 분들. 질투와 집착을 참 신박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안나도 그렇고, 현대 소설이라면 매우 드라마틱한 정신과 상담을 거쳤을 백작부인도 그렇고...살짝 정신적인 문제가 있던 빗자루 장수 아가씨에 대한 예스타 베를링의 생각에는 된소리가 확 튀어나올 정도로 화가 났는데(아직 절반도 안 읽었는데, 이런 인간이 나오는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게 맞는가 잠깐 고민하는 순간...), 그에 대해 백작부인이 갑자기 너무 맞는 소리해서 또 왜 이리 멀쩡한가 놀라고, 바로 이어지는 심리 묘사와 행적에 '이거는 이해하려고 하면 읽을 수 없다'고 깨닫고...정신 차릴 틈 왜 이리 안 주는 거야 아악.
대부분의 주역들이 기사들과 귀족들인데도, 멋짐보다는 무능함 자랑하는 파트가 더 많음. 공산주의적 해석을 누가 달아주면 꽤 재미날 것 같은데...당장 소령 부인이 영지 주민들한테 확인할 때도, 생각없고 사치스러운 기사들을 모든 이들이 '극악무도하다'고 생각하고, 에케뷔 산 철 챕터에서는 정말 주민들에게 곡괭이로 맞아도 할 말 없는 직무태만 + '나름 반성은 하나 제대로 된 계획도 없는 상태의 대찬 실패'까지 읽다가 질린다. 에케뷔 시민혁명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으면 참 속이 시원했겠지. 그러나 등장인물 수도 엄청 많은 이 책에서, 확실한 악역 포지션인 신트람 외 모두가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골고루 갖고 있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들마저 감탄하게 되거나 측은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하다못해 브루뷔의 목사까지도(생각해보면 두 성직자가 모두 엉망이니, 성직자 비판까지 포함하는 작품인가?), 갑자기 톨스토이가 강림한 듯한 짧은 드라마를 선사할 때 급 숙연. 이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늦게나마 스스로를 바꾸려 해야하는지는 나름 세간에 모범 답안이 있다고 해도 찾아올 때마다 언짢고 고통스런 선택이니 목사만 끙끙대는 게 아니라 나도 힘드네...
모두가 나름의 깨달음과 심판을 얻는 결말에서, 끝나버린 플렉스 타임과 '고독 속에서 시들어갈' 운명도 받아들이는 '온갖 산전수전에 단련된 천하태평의 기사들'을 보니 중간중간 빡치던 기억도 누그러진다. 예스타 베를링이 말한 수수께끼도, 해답을 찾은 건 주인공들인데 괜히 나까지 뭘 찾은 기분.(어디까지나 '기분만'인게 문제지만...살면서 답안 작성 못한 질문은 이것 말고도 많으니 넘어가자...)
"인생은 고되고 자연은 가차 없다.
그러나 둘 다 혹독함의 대가로
기쁨과 용기를 선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누가 그 둘을 견딜 수 있으랴."


귀욤귀욤한 표지에 헌책방 이야기라니 읽기 전부터 호감도 급상승. 창업부터 스쳐가는 사람들과 책들, 아마추어 이끼 연구자 경력과 서점의 문화 살롱화 등등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조용하고 따뜻하니 만족도는 MAX를 찍었다. 편안하게 써서 그렇지, 저자 본인이 나중에 일기를 다시 읽으며 놀랄 정도로 맨땅에 헤딩이 많아서 내향인이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함. 게다가 별의별 고객들을 상대하면서(뭘 생각해야 애를 봐달라고 서점에 올 수 있는지 모르겠다...) 각종 관리 문제를 걱정하면서도 20년이 넘게 사랑받는 서점(검색하니 현재도 운영 중이라, 30주년이 넘었다) 운영에 성공까지 하니 오오 소리 절로 난다.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손 닿는 대로 해보았을 뿐’이라고 쓰여있지만, 운이나 인연만으로 가능한 결과가 아니니까.
어릴 적부터 알던 서점 주인분과 업계 선후배이자 동네 친구로 계속 지내고, 정든 손님이 생기는 장면들이 참 훈훈하고 부럽다. '가게를 마음껏 열어 둘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마음과 배려심이 어울려 생기는 일이니 부러워하기만 하지말고 시도를 해야하는데 그게 참...겸손하면서도 “잘하든 못하든 제가 하는 이 일이 다른 누구도 똑같이 흉내 낼 수 없는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완전히 체념하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있습니다.”라는 말이 참으로 근사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언젠가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내가 내 몫을 할 수 있는 일이면서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이란 건 참 유혹적이고 사람 절망시키기 좋은 주제다. 현재의 내가, 지금이라도 그런 일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정신 나간 소리겠지. 그래도 누군가 오래 버티고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흐뭇했다. 도쿄도 아니고 오카야마니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나, 정성과 애정이 가득한 작은 서점이 오래오래 번창하기를.
"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잘 못하니까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더위를 버티려면 냉방을 쐬어야지 빙산 방문하는 글 백날 읽어야 소용없긴 하다. 그래도 시원한 데서 자연을 노래하는 글을 보면 기분 전환하면서 죽어가는 감수성을 좀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헛된 기대를 못 버리고 픽. 그냥도 늘씬한 책이고 해설이랑 연보 빼면 더 얇으니 부담도 없다.
기본 톤이 진지하고 웃을 건덕지가 없으나, 기대와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물론 풍광 묘사부터 한 편의 시 같고, 문학과 과학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람은 이렇구나 생각하게 되는 내용들도 멋있는데...조용한 문장들 아래 시종일관 "난 이 풍경들을 사랑해! 사랑한다고!" 가 깔려있어서 놀람. 영화나 여행 클립들 속 풍경에 감탄은 하지만 미쿡의 대자연을 직접 보고싶다는 마음은 별로 없었는데, 대체 이정도로 상사병 나게 하는 풍경이란 뭘까 한 번 보고싶다. 그렇다고 저자처럼 일기예보도 남의 주의도 무시하고 나홀로 산을 탈 생각은 없지만. 굉장한 경험과 스킬이 있다해도, 아무리 봐도 종이 한 장 차이로 죽음의 위기를 넘긴 순간들이 누적되며 이 분의 간을 배밖에 내보낸 것 같다. 보통 사람이면 사망했을 일화들을 별 일 아니라는 듯 몇 줄 적고 바로 넘어가는 모습에 황당...막판에는 감기 걸렸는데 약 먹고 쉬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들은 이런 데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빙하로 등산 가고 냉수 목욕하는 것을 보니 이 분이 사고사 하지 않고 칠순 넘기신 게 아메리칸 미라클이다.
이력에서 독서량이 상당하지 않았을까 추측되는데도, 책을 경시하는 편이라는 말과 더불어 '산에서 보낸 하루가 몇 수레의 책보다 낫다'는 호언장담은 좀 착잡하다. 대자연을 목격한다는 것이 물론 대단하지만...아름다운 산들은 굳이 사람이 드나들지 않을 때 더 무사할 것이고, 아무리 보통 사람도 세계일주 하는 시대라도 모든 걸 다 가서 경험할 순 없잖아유. 당장 본문에도 '등산객들이 늘어나면 산 표면이 캔과 병으로 뒤덮일 것'이라 쓰지 않으셨습니까 선생님? 책상에서 간접체험하는 것이 어쨌든 죄도 아니고...
오래된 흑백 사진에서도 꽤 박력있는 시에라돔의 모습과 더불어, 깊은 건지 무모한 건지 모르겠는 뮤어 씨의 사랑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나중에 세부사항은 다 까먹고 '산맥 상사병' 만 생각나지는..않겠지...?
"시에라. 시나이 산처럼 거룩한 산.
난 이보다 매혹적인 산을 알지 못한다.
이처럼 넉넉하고 친절하고
부드럽고 감격적인 산은 없다.
모든 사람이 시에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시에라는 복음처럼 우리에게 주어졌다.
아무런 대가도, 돈도 요구하지 않은 채,
'이는 우리가 값없이 받은 천국이리니.......'"


이번에 참여했던 그믐 모임에서 편집자님이 추천해주신 책이다. 평소에 속풀이 용으로 비슷한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데스노스처럼 마구 쓰던 터라 이렇게 방향이 제시되는 책을 보니 기대감 상승. 노래 가사마냥 내 마음 내가 모르겠는 상황이 허다하며, 가끔 명상에 도전하면 잠이 오는 사람도 쓰면서 뭔가 발견할 수 있을까.
솔직히 '쓰고 있는 자신을 신뢰하라'는 건 무리인데(아무리 읽을 사람이 없다 해도, 이런 막글이 완벽한 글이라 말하기엔 나도 양심이 있다...) '논리적 사고는 쓰레기통에 처박고'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쓰고 쓰고 또 썼다. 버리려고 뜯어내는데 글자는 또 어찌나 엉망인지, 못볼 것 본 기분으로 후딱 처분. 자기 내면을 알아차린다는 글쓰기 명상의 목적 달성은 아직 멀지만, 며칠 간 쉽게 떨치지 못한 꿉꿉한 기분은 확실히 많이 가셨다. 애초에 명상은 다이어트 마냥 꾸준히 하는 거고, 며칠 글 써봤다고 자아발견 가능할 정도로 나의 사유 레벨이 높지도 않으니 첫 시도에 이 정도면 선방이라고 혼자 끄덕끄덕.
이 글쓰기가 지속될 거라고 가정했을 때, 답변 다 쓰는 데 몇 년 걸릴 질문은 "자신이 내린 좋은 결정 100가지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기". 시간 들여 생각했는데도 다섯 개를 쓰지 못했다. 누가 검열하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점심 메뉴라도 잘 골랐다고 쓰면 되는데 이게 왜 이리 안 되는지. 뭐, 일단 칼은 뽑았고, 단기 체험으로 끝날지 일과 중에 명상도 있다고 어디가서 말할 수 있게 될지는 내년 이맘 때쯤 보자.
"다섯째, 자신은 천하 최악의 글쓰기를 할 권리를 타고났음을 기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