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얆고 작아도 임팩트는 강했다. 역시 뭐든 겉보기로 판단할 수 없어...이름도 발음하기 힘든 작가의 작품 중, 아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카르멘 하나인 상태에서 오픈. 정말 세상은 넓고 격한 작품은 많구나. 카르멘도 주인공들 다 뭘 먹고 이렇게 기운이 넘치는가 생각했는데 이번에 만나는 인물들도 비슷했다. 시대의 탓인가 작가의 성격 때문인가. 당장 30페이지도 안 되는 표제작에서 머리 띵. 코르시카인들의 심성을 날카롭게 표현했다고 해설에 나와있기도 하고, 대부 시리즈도 생각나니 그 동네의 논리가 뭔지는 알겠지만 수용은 불가하다. 자식을 용서할 수 없는 상황 물론 세상에 많은데, 열 살 짜리가 실수했다고 조직의 논리를 들이대면 세계 인구가 지금 80억이 아니라 8만도 안 될 걸...
뭔가 전설의 고향 삘도 느끼고, 짤막한 이야기 속에서 대체 몇 명이 죽는 것인가 놀라서 다시 세어보고 경악도 하고, 급반전으로 순간 벙 찌고 여튼 모두 대단했다. 사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소설이니 이렇게 가벼운 말투로 감상도 쓰지, 코르시카 스타일의 응징도, 관련된 모든 것이 악마적인 노예 무역의 현실도, 명예를 잃는 의미가 지금의 백 배는 되던 상황도 깊게 파고 들면 생각하는 사람의 영혼을 잠식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오래 살아 남고 전세계 번역도 되는 거겠지만...뭐, 잘 읽었고 유튜브에 영화 버전도 좀 있으니, 당분간 뒷맛 즐기면서 메리메 선생에게 마음속 손공수를 올리자. 끝.


태평양 건너 미국 사정보다 가까운 중앙아시아의 사정이 낯선 것이 좀 뭐하긴 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라고 변명하며 읽어보았다. 영웅 서사시라는 게 굵은 흐름은 어디나 비슷하니 큰 기대는 없었는데, 세부사항에 신기한 것이 많아 즐거웠다. 유목민족이라고 해도 중국이나 몽골 쪽이랑은 다른 맛이 있고, 생각보다 주인공도 완벽한 성격이 아니라 실수도 하고 욕도 먹고...
당장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았는데, 돈 문제 걸리면 형제 사이도 별 수 없다는 큰 교훈이 등장하며(7살 아이의 말을 자기 마음대로 곡해한 결론을 바탕으로 동생한테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어떻게 우두머리가 되었는지가 수수께끼...), 1만 가구나 되는 부족들을 다스리는 부족장도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수는 없으며 밑의 사람들도 하고 싶은 말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들이 신선. 해설을 보니 학자들마다 쓰여진 시기를 10세기부터 16세기까지 다양하게 추측하는 모양인데, 어느 시기로 놓고 봐도 대단하다. 대단한 모양새는 주종관계만으로 끝나지 않았음. 동서고금 관계 없이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현대 소설들까지 다 돌이켜봐도 이렇게 부모가 애정을 열심히 노래하는 책 별로 기억 안 난다. 당장 딸이 노래를 한 장 반이라 부르며 반항하는데 (조선이었으면 그날로 무당을 부르거나 다리를 분질렀겠지) 엄마는 뭐든 필요한 건 다 말하라는 둥 세상 모든 가축을 다 가져와도 우리 딸 데려갈 지참금으로 모자란다는 둥 달래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작별할 때 아가야 슬퍼마라, 네가 내 눈의 눈동자다 줄줄 노래하는 걸 보며 수백 년 전의 자식 사랑에 예기치 못한 감동. 그 와중에 자기 엄마한테 대놓고 '이제 죽음도 목전인데 나쁜 짓 좀 하지 마라'고 퉁퉁거리는 카라잔도 있다만. 한 장면 뿐이지만 장정도 메다꽂는 히로인의 액션, 어머니들 사이 주먹질(....), 대포와 소총의 존재, 주인공의 영웅답지 못한 고민에 대한 누나의 욕설, 갑자기 튀어나왔다 아웃하는 대마초 중독자 등등 헐 소리 절로 나오는 얘기들 다양했다. 이상적인 무기로 후반 짧게 등장하는 다이아몬드 칼에 잠시 상상력도 불탐. 분명 게임 아이템들 중에 있을 것 같아서 검색했더니, 멋지구리한 일러스트도 없진 않으나 제일 많이 나오는 건 마인크래프트의 퍼런 픽셀 칼(...). 부풀던 기대감에 바로 큰 구멍이...
사실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는 알파미시가 아니라 카이쿠바트였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현실의 출세란 건 이런 거지. 어쨌든 영웅의 결혼과 가족 구출 모험기는 흥미진진했다. 유튜브에 한 30년 정도 묵어보이는 실사랑 애니메이션 올라온 걸 찾았으나 둘 다 자막이 없네 이런 ○●□....
"칠 년 동안 낯선 땅을 헤맨 사람은
가족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아네.
그들의 모든 울분이 연기처럼 녹아 사라졌네."


추천사에 '무시무시한 상상력'이라 적혀있는데 정말 그랬다. 읽으면서 다 주워섬길 수도 없을 만큼 섬뜩한 부분들이 많은데, 어디 르포에 갖다 붙여도 어색할 일 없는 현실의 미친 고단함들이 그 안에 있어 슬퍼진다. 그리고 '강-강!-강!!'으로 쭉 가다가 갑자기 한 두 페이지 '...약' 되면 괜히 감수성 과다 분비되는 성격상, 별로 감정 이입도 안 되던 인물들의 결말에 혼자 아흐흐. 무서워하다가 씨익 웃었다가 홀로 난리 부르스인 나를, 전철 속에서 쳐다본 사람이 없었기를 바랄 뿐이다.
분위기 차이는 있지만 결국 랩에 묶인 대학원생과 농장 노예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데서는 웃픔도 소름도 맥스. 마지막 작품' 제니의 역'이 개인적으로는 표제작보다 더 피부로도 다가오고 속상하기도 하고 안쓰러움. 언어의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되더라도, 이주 여성들의 곤란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상상은 전혀 상상이라 생각할 수 없어 뒷맛 쓰다. 그러나 분명 이야기 속 제니2뿐 아니라 곧 등장할 미래의 비슷한 존재들도, 만든 사람의 의도대로만은 돌아갈 일은 없으리.
읽은 뒤 저자분 이력을 다시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제약으로 인해 기사로 전달할 수 없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소설의 방식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세상을 상당히 사랑하지 않으면 힘들겠지. 납량특집에 가까운 내용이면서도, 닫을 때 소금기 밴 따스함을 느끼는 건 그런 연유려나. 써놓고도 뭔 소린지 모르겠네. 어쨌든 좋았다는 것은 분명!


러시아 수용소 소설인데 꿈과 희망 따위 있을 리가 없지. 그러나 이 정도 마음의 준비로는 택도 없는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짤막한 첫 챕터에서 흠칫함. 아니 이거 뭐야. 오늘 아침 메뉴 얘기 마냥 담담한 말투로 이런 이야기 해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읽으면서도 눈을 못 믿겠다. '1분 1초가 독이 되지 않는 시간이 없는' 생활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가는 것에, 오랜만에 전율이란 단어를 생각했음. 혹한 속 배고픔은 또 어찌나 실감나는지. 당분간은 뭘 먹어도 불평할 일 없을 것 같다. 입에 뭐 들어가면 감지덕지다.
키 180cm인 남성이 48킬로그램이 되어도, 툭하면 두들겨맞고 다리가 상해가면서도 살아있으면서 '인간은 육체적으로 그 어떤 동물보다도 인내력이 강하다'라고 하니 설득력도 엄청나면서 공포스럽다. 이런 내용들만 쭉 나오다가 갑자기 무슨 시처럼 누운잣나무 이야기하니, 엄청난 내용도 아닌데 갑자기 눈물날 것 같음. 아직도 어딘가에 이런 곳들이 있을 거라 추측하지만, 그저 80억 인구의 대부분은 그 존재를 용납하고 싶지 않을 거라 믿고 싶다. 인간의 악이야 소멸 불가능하지만, 작가가 십 년 넘게 버티고 살아남아서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 의미가 있다고.
"어쩌면 인간은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인간에겐 어떤 희망도 없지 않은가. 인간이 바보가 아니라면 어떤 희망으로도 살아갈 수 없다. 때문에 그토록 많은 자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위본능, 삶에 대한 집착, 의식마저 종속되는 바로 그 육체적 집착으로 인간은 구원받는다. 인간은 돌, 나무, 새, 개가 살듯 그렇게 산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보다 강하게 생명에 집착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 인내력이 강하다."


제목이 참 매력적인데, 아쉽게도 유럽발 연쇄살인마 소설이 아닌데다 이름만 봐도 두려움을 주는 저자니 읽을까 말까 한동안 고민은 했다. 결국 어차피 볼 거면 그냥 빨리 보라는 매번 하는 생각만 다시 하게 되었음.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것도 재확인...
평범한 사람들의 기분 나쁨을 어쩜 이렇게 꼼꼼하고 실감나고 다양하게 눌러담았는지 초반에서 이미 속병이 날 것 같다. 그나마 약간이나마 진정되는 건 에쓰코 파트인데, 그 대신 에쓰코의 독백들은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의욕을 꺼뜨린다. 작가님 대체 무슨 흉한 꼴을 얼마나 보셨길래 이런 글 쓰시나요? 가쓰키도 양심 캐릭터이긴 하지만, 중간에 회상하는 미와코의 묘한 대사 때문에 '어이고, 이 양반은 독을 차곡차곡 모았다가 뒤에 한 번에 터뜨리겠구나!' 하고 불안해져서 속 졸이느라 편하게 보질 못함...
좋게 생각하면 온갖 증오, 혐오, 남탓 속에서도 사랑이 있어 사람들은 버틴다고 생각하고 싶은데...당장은 '인간은 애정에도 불구하고 남탓하고 끌어내리려고 발버둥치는 불행한 존재', '그런 감정을 좀 벗은 인간도 불행한 건 마찬가지'로 해석이 기울어지는 건 읽으면서 너무 지친 탓인가. 세상에는 이유 없는 나쁜 일 많고, 정의 구현도 잘 안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그래도 에츠코 말처럼 '자신이 한 행동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 생각하고 좀 노력은 하고 살고 싶다. 24시간 미움의 아우라를 뿜고 다닐 만큼 에너지 넘치는 사람도 지구에 많지 않으리라 믿고 싶고...다 읽었는데도 샤워 한 두 번으로는 떨구지도 못할 찜찜함에 죽을 맛이나, 어느 정도 예상했으면서 읽어버린 내 잘못이지 어쩌리. 하이고...


한동안 입에 대지 않았지만 어쨌든 꼭 한 병은 쟁여두는 활명수의 역사를 간략히 보았다. 읽기 쉽고, 당시 정서나 잡학이 다양하게 섟여 있는 것이 재미있는데....국제시장 이후 동화약품의 행보의 분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2프로 덜한 느낌. 한국전쟁 이전의 역대 사장들의 독립운동이나 사회 참여 이야기가 많은데 비해, 그 뒤의 회사 경영과 굴곡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활명수가 낀' 생활상에 집중하는 느낌이 살짝 의아함. 예를 들면 새마을운동 챕터에서 동화약품이 새마을운동에서 어떤 모습이었느냐는 한 마디도 없고, 어머니회 회원들이 활명수병까지 수집해서 기금 모았다는 이야기만 나오니...시대가 시대니 뭔가 뒷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나의 지나친 추측인가.
활명수에 불어넣을 다양한 전략이나 가치를 내가 생각해야 하는가 의문이 드는 마지막 챕터도 이게 뭔가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 글인데도 '...불만인가?' 의문이 들긴 하나, 딱히 그렇지는 않음. 내 집에 상비된 제품이 살아있는 역사라고 실감하게 하는 이야기들 잘 들었으니 OK.
책이 2015년 발매라, 동화약품 홈페이지서 다시 점검하니 활명수의 현재 나이 128살, 누적 판매 85억 병이다. 본문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들은 '맵고 짠 음식 중독에다가 급하게 많이 먹고 술도 좋아하던' 조상님들의 자손이자 그 성향을 강력한 의지(담백하게 덜 먹자는 방향으로는 절대 가지 않는 의지...) ㅡ로 이어가는 중이니, 한반도가 증발하지 않는 한 100억 병 혹은 그 이상도 얼마든지 팔리겠지. 만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식량 부족 때문에 배 부르게 먹는다는 개념이 사라진다면 활명수도 위기를 맞겠지만, 그땐 인류 전체가 망할 테니까 별 일 아닌 걸로...


살면서 매우 드물게, 주변에서 추천뿐 아니라 같이 읽자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책 들기 전부터 기본 호감도 왕창 높은 상태에서 시작. 에어컨 바람 쐬며 읽고 있으니 마음만은 나도 물 건너 식도락 여행 중이다. 아, 재미있고 상쾌하여라.
각 메뉴의 이름의 유래, 역사 뿐 아니라 주문 팁 등 실용적인 정보들에 엄지 척이다. 개인적으로는 입력하느라 골치 꽤 썩은 기억이 있는 생선 한자들 보니까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생각해본 적 없는 프렌치 레스토랑까지 훑어보았으니 이제 여행만 가면 되는데...으으음. 어쨌든 마음 속에 좋아요 도장 꾹꾹. 그리고 한결같이 음식에 진심인 작가분의 태도가 존경스럽다.
'부드러운 식감의 히레, 육즙 풍부하고 고소한 로스, 둘 중 어떤 메뉴를 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저는 한 번도 안 해봤습니다. 둘 다 주문하니까요.'
이것이 어른의 플렉스, 어른의 패기! 이 외에도 미식의 추구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명언들이 곳곳에 박혀있다. 할 수 있다면 선생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이 성격으로는 다시 태어나기 전엔 무리겠지만...크흑.
개인적으로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중화요리 편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전작이 2018년 출간이었으니 설마 2032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왕좌의 게임 마냥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신났다가 갑자기 김새기는 하는데...아쉬운 놈이 기다려야지 어쩌노. 그때 무사히 읽으려면 눈 건강 관리나 열심히 해야지...
"부먹/찍먹은 사장님 마음이니 주는 대로 먹든지, 미리 정중하게 요청하면 좋겠습니다."


시작부에 나오는, 레트리버를 소형견처럼 보이게 하는 검은 늑대 사진에 감탄한다. 이 늠름한 뽀대 보소....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의 로미오의 친화성과 군데군데 늑대 트리비아에 감탄하면서도, 꾸준하게 나오는 인간들의 공포에 결말에 대한 불안이 더한다. 언급되는 위협들 속에서 7년이나 버틴 로미오가 너무 용함. 굳이 어린애까지 데리고 늑대 사진 찍으러 접근하는 사람들이, 무슨 일 생기면 늑대 죽이겠다고 펄펄 뛰는 심리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반대로 늑대와 친해지고 싶어서, 우정을 얻으려고 애쓰는 경우도 착잡하기는 매한가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야생동물과 접촉하지 않을 의학적 이유가 한 다스는 될텐데. 이유는 천차만별일지언정, 어쨌든 인간이란 자연을 그대로 두는 법을 모르는 존재구나...
계속되는 불길한 예고들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천조국의 법률도 야생동물 파트에선 그닥 우수하지 않다는 걸(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비슷하거나 더 나쁘겠지...) 보여주는 마지막 파트 굉장히 씁쓸하다. 반려동물은 분명히 아니지만, 동네의 공동 반려동물에 준하는 포지션인데다 허가받지 않은 계획 밀렵의 희생자였는데도 야생동물은 그저 야생동물일 뿐. 범인이 사실상 법정 출두만 했고 휴지조각 수준인 판결만 받고 끝났다는 것에 화가 나지만, 사람도 정의를 대접받기 힘든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인가. 그래도 로미오가 만들어준 동네 사람들 간의 우정은 남았고, 지역 센터에 로미오에 대한 전시 코너도 있는 모양이니 한 늑대가 남긴 유산이 꽤나 크다. 인간이 잠식한 면적이 너무 크다보니 어떤 종과 어떤 조우를 할지 알 수 없는 세상, 로미오가 안타깝지만 남의 나라 얘기라고 넘길 게 아니라 혹시라도 생활권에서 이런 만남이 생긴다면 어떨지 생각해야겠다. 비록 저자 말처럼, 법정에서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은 별로 존재감이 없'더라도...
"나는 아무도 깨우고 싶지 않아서 소리 죽여 울려고 애쓴다. 나를 위해 우는 것도 아니고, 그 검은 늑대를 위해 우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점점 공허해지는 세상을 표류하는 우리를 위해서다. 어떤 희망을 품어야 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또 다른 면이 있다. 희미하게 명멸하는 불빛 같은, 어두는 하늘에서 고동치며 넘실대는 오로라 같은 다른 면이. 그 무엇도 로미오라는 기적을, 녀석과 함께 보낸 우리의 시간은 앗아가지 못한다. 우리가 짊어질 짐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다."


광고라는 개념이 생긴지도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이니 이런저런 해프닝과 웃음을 기대하며 펼쳤는데 예상과 좀 다르다.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고, 사기나 과장 광고가 없던 시기는 없다는 사실도 재확인했지만...꿈을 직접 제공하던 공간인 경성 백화점 이야기와는 또 다른 광고 뒤 생활상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그 시절의 도덕적 엄격함이란 게 체감온도로 치면 지금의 100배는 될 것이고, 당장 본문에 나오는 각종 모던 걸들과 여배우들 까는 얘기만 봐도 머리가 아픈데 광고들은 그렇지 않으니 대체 그 잣대란 건 뭐였던가. 여성 나체 일러스트를 마구잡이로 광고에 넣고, 유흥업소, 포르노 서적, 성 기능 증진제와 성병 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광고하고 사람들이 구매하는 세상에서 카페 웨이트리스를 비판하는 논리는 평생 생각해도 모를 듯. 그 와중에 서비스료를 광고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기생 권번조합 여성들의 상도덕에 에 박수. 그러나 바로 뒷 페이지가 추노 마냥 도망간 기생 잡는 현상금 광고라 밀려오는 안타까움이 두 배...
살찌는 약, 의친왕 마케팅, 총포상, 아편, 책 검열 등등 슬퍼지는 이야기들 가득하다. 배 가득 채우기도 힘들고, 지금은 고칠 수 있는 병들에 고통 받고, 파리 모기 때문에 목숨을 잃으면서 식민지인이란 서러움도 삼켜야 하는 시절. 광고 속 사람의 욕망에는 큰 변화가 없으나,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한들 지금 좋은 시절을 살고 있다는 데 감사해야겠다. 고난길을 버텨내셨던 서바이버인 조상님들께도...


사실 남의 나라 역사니까 고대만 삼천 년인데도 부담 없이 즐기는 것이지, 시험이라도 친다면 입에 거품 물 이집트의 역사. 그 긴 기간 중에서 콕 집어 기원전 1400년 1년 간의 모습을 일상물 웹툰 보는 기분으로 신나게 감상했다.
아주 밥맛 없는 캐릭터로 설정된 투트모스 4세(선물 뭐 가져왔냐고 보채는 게 살아있는 신이라니 하이고...) 빼면, 농부부터 대신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흐뭇하다. 술 원산지 위조나 양조장에서 술 슬쩍 훔쳐마시기 등(전혀 고대의 일이라 느껴지지 않는 단어들...)은 어디까지가 사료 근거인지는 알 수 없는데도 분명 건수가 많았으리란 확신이 솟구침. 의사 파트가 꽤 분량이 있는데도, 당시 의과 대학에서 뭘 가르쳤는지 설명이 별로 없는 것은 좀 아쉽다. 일단 이야기 속에 나오는 외과 시술, 대머리 치료(이때 만약 치료에 성공했으면, 이집트는 고대 문명보다 탈모 치료 종주국으로 더 유명했겠지. 그것도 나름 괜찮았을텐데...), 주문 외우기는 교과목에 있었으리라 추측하지만 나머지 과목들은 뭐였을까. 그나저나 맹수의 지방을 획득해서 머리에 바르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을텐데, 모발 획득을 위한 사람의 욕망이란 그토록 큰 것인가...
열심히 일하고, 욕하면서 세금 내고 부역도 하고, 축제 때는 열과 성을 다해 먹고 마시는 모습은 고대 이집트나 지금 세상이나 똑같으니, 사람의 기본적인 모습은 시공간과 관계없구나 재차 생각한 시간이었다. 다 읽고 나니 , 표지 아래 적힌 '내 평범한 하루도 역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글이 실감나면서 슬쩍 소름. 만의 하나라도 미래의 사람들이 나의 하루를 통해 2025년 일반인의 모습을 공부하리라 생각하면...노오오오오 어우 끔찍해! 제발 후대의 사람들이 참고하는 데이터는 나머지 인구 80억의 것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