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가독성이 좋은데도 금방 읽기 힘들었다. 중간중간 숙연해지는 내용들이 있었기도 하지만, 점점 시력이 약화되는데(이제 스포츠 중계 때 화면 구석의 국기들 보는 것도 힘겹다) 무슨 월리를 찾아라 보듯이 봐야 하는 그림들이 많아 몇 번씩 다시 보거나 책에 코를 들이대고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진 탓. 국기들의 상관관계(좌우반전, 상하반전 등)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땡큐이나 한 방 식별은 라식수술 받기 전에는 무리일 듯. 모국의 깃발이 헷갈릴 일 없는 디자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처음 생각했다 휴...
일단 이 험난한 시기에 우크라이나의 저자가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서문이 있고, 과거의 제국주의나 현재 러시아가 남긴 문제점들, 태극기와 일제의 탄압까지 괴롭고 중요한 일들도 두루 들어있다. 국기조차 자유롭게 흔들 수 없는 억압을 바로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이 겪고 있다는 것이, 언급이 짤막해서 더 슬프다. 프리덤 블루가 그 의미를 찾는 날은 대체 언제 오는가...
전혀 생각 못한 그리스 깃발의 뿌리나, 동인도회사 깃발과 성조기 비교 등등 급체할 것 같은 내용 중에 나바호 - 아일랜드 관계나 부르키나파소 이야기를 보니 뭉클함 두 배. 정직한 지도자와 '정직한 사람들의 땅'이라...정직한 지도자의 삶이 너무 짧았지만, 국기가 전해지는 한 그 이상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언제나 있겠지.
국기란 것이 사람이 만드는 만큼, 논란의 여지도 있을 수 있고 마냥 존경의 눈길로만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깔 때 까더라도, 그 뒤에 숨은 것들을 충분히 들여다보라는 불타는 깃발 사랑 속 외침을 웃다가 시무룩하다 하면서 잘 들었다. 감동의 크기와 식별 능력의 향상은 별개지만, 뭐 새삼스럽게...
"주민들은 러시아 점령기에 몰래 숨겨둔 푸른색과 노란색의 깃발을 꺼내 들고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맞이했다.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나 역시 다른 수백만 우크라이나인처럼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내 조국의 국기를 바라보게 된다. 평화로웠던 시기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감정이다."


그믐에서 책 소식을 보았을 때부터 읽어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전혀 의도하지 않게 필요한 시기에 읽게 되었다. 갑작스런 일이 잠자던 깜깜한 감정들을 한꺼번에 두들겨 깨운 탓에, 이 감정들이 어쨌든 사라지긴 한다는 걸 알면서도(나이 들어가며 생긴 유일한 좋은 점) 머릿 속 지진이 쉽게 멈추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든 몇 퍼센트라도 희석을 시켜야하고, 아는 방법은 읽는 것 뿐. 얇은 책인데도 읽으면서 생각하고, 멈추고, 또 생각하느라 손에 쥐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차오른 감정이 책 한 권에 갑자기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읽기 전보다는 좀 진정이 되니 따스한 책 한 권의 존재에 감사할 뿐이다.
중간까지는 책의 취지에 무색하게 점점 움츠러들었는데, 인터뷰하신 분들이 만난 어려움의 여러 원인 중에 무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이분들은 다 대단해,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또 시작할 수 있었던 거야...내가 나를 어떻게 도울 수 있겠어? 하지만 다정한 말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천천히 생겨난다.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모두가 다른 위치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말을 믿어도 될까. 그럴 자격이 있을까? "꽃을 피우려다 여력이 없어 꽃잎을 떨궈도, 꽃이 아니어도 내 존재를 구기거나 학대하지 않고 지켜준 것만으로도 칭찬하고 싶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져서 얼마나 멈추고 있었나 모르겠다. 심정으로야 여기서 더 구겨질 것도 없는 것 같아 속상하지만, 뉴스 기사 작성하듯 간결하게 쓰면 세상 흔한 사건에 나는 자신을 더 비하하려 하는가...이 나이에 꽃이 피기를 기다려도 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말하기 쉽지 않은 아픈 일들까지 공개하며 세상에 힘을 나눠주려는 분들이 주는 응원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고 벼락맞지는 않겠지. 갑자기 없던 능력이 생겨 인정을 받고 삶이 트일 리는 없으나, 응원을 잘 간직하고 버텨서 좋은 꼴을 뭐라도 보고 싶다. 인간은 미래를 모르니 벼락처럼 떨어지는 일을 피할 수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 몸부림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티끌만한 아이디어도 없다. 그래도 이렇게 응원이라는 것을 받았고, 읽을 책들도 많다. 떨리는 다리를 주무르고, 일단 오늘을 버티자.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무엇을 하든, 어떤 자리에 있든 그의 일이, 그의 하루하루를 더 의미 있게 만들 것이라는 것. 그 시간이 쌓여 언젠가는 자신을, 혹은 또 다른 누군가를 살며시 구원하리라는 것이다."


제목을 보며 저도 모르게 불룩한 배를 어루만지게 된다. 음, 봐야겠군. 군살과 식비를 축소할 새 과학적 힌트가 있을 것인가. 읽을 시간에 등산이라도 가는 게 지방 연소에 도움이 되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알려진 정보들 정리에 가까운 부분들도 있지만, 어 그런 건가? 하는 부분들도 있어 재미있었다. 뇌와 신경의 유무에 따라 동물들의 먹잇감 획득 방법이 다르다거나, 음식 사진 보면서 먹는 상상을 많이 하는 것이 배부름을 유발할 수 있다던가(대기화면들을 다 스테이크 사진으로 바꿔야겠다). 빈부격차로 인한, 특히 어린이들 비만에 대한 짧은 언급에선 마음이 무겁다. 그냥도 식사환경이 어려운 어린이들이, 식량 부족의 불안 때문에 음식 중독도 더 심하게 올 수 있다는 이 답답함 아오...
최신 대사 조절 약물들 소개에선 감탄사가 나오면서도 혼란스럽다. 살 빼기보다 지금 이상의 수명 연장이 훨씬 어려운 연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수명 연장이 식욕 정복보다 더 빨리 이뤄지는 걸까? 식욕이란 대체 얼마나 무섭고 미스터리한 것인가?
미존공간이나 사냥터 개척 부분에서는 이게 식욕이랑 어떻게 연결되는가 의아했는데, 마지막 챕터에서 '인간다움'으로 연결되어 납득. 개인들이 각자 목표에 집중하는 가운데, 사회 속 극심한 경쟁이나 빈곤이 줄어들면 섭식장애 외 갖가지 중독들도 다 같이 줄어들테니...너무 이상적이라 불가능해보이긴 해도, 이상적인 목표를 향해서 발버둥치면 중간치까지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뭐, 희망은 미래에 있고 당장 몸에 허리를 위해 떨궈야할 지방이 있으니, 더워도 좀 더 몸부림쳐보자.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피로한 건 왜일까 하아...


일진이 사나워 좀 마음을 달랠 책이 필요했는데, 어째 고른 건 전혀 그렇지 않은 한 권이니 잠재의식 속에 대체 뭐가 있는지 궁금. 여튼 도입부부터 치솟는 스트레스 참아가며 버텼다. 중간중간 범인 시점 파트가 요새 날씨마냥 짜증과 분노에 불을 붙이니, 이렇게 참고 보는데 해결 안 나면 가만 두지 않겠다(...무엇을?)는 기세로 읽어내림.
과학수사의 기술이 부족했던 시기의 범죄이긴 해도, 이를 다루는 사람의 실수는 이제 없다고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게 씁쓸하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고뇌의 근원인 가족 문제들도 조금씩은 다 공감이 가고, 이야기에 설정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뉴스에 나지 않으면 장애에 대한 정보가 별로 널리 보급된 느낌이 들지 않으니 입 안이 점점 텁텁해지네. 그래도 페이지 계속 넘기는 것은 처음에는 기술 담당 사이드킥이라고만 생각한 아사히와 데쓰 덕. 데쓰가 그 두 사람은 나라고 말할 때부터 왜 이리 속이 시린지...사건 해결도 중요하지만 데쓰의 처지가 과연 어찌될지 두근두근했다. 데쓰처럼 어린 가공의 인물에 감정 이입하면 큰일날 나이가 되었지만, 서글픈 자기 인식이나 외로움 속에서 느끼는 한계가 왜 이리 가슴 아픈지. 마지막에 아사히가, 너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라는 게 비로소 입증되었다고 말할 때 울컥. 아아, 친구라는 존재의 소중함이여! 아가들이 행복하니 어른이도 행복해...아흐흐흐...
상당히 기분 나쁜 묘사들을 참은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데 바로 에필로그가 찬물 끼얹어서 식껍. 왜 이러십니까 정말! 그래도 세이지와 아사히의 이미지가 삽입되는 것을 보니, 인간의 악도 반복되지만 이를 추궁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다시 나타날 거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라 마음대로 해석하고 싶다. 그렇게 안 믿으면 이 더운 날 버틸 방법이 읎어...
"물론 이 세상에는
완벽한 선인도, 악인도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중에서도 비겁한 인간이야.
공명정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
보통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고 강한 사람이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곧잘 거짓말을 하곤 해."


한 오덕의 완전 개인적인 척도지만,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슴 미어지기로는 원탑이다. 통곡이나 저주를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울지도 기대지도 않는 인물들의 모습을 계속 보는 것이 참 괴로운데, 힘들다고 중간에 덮어버리기엔 더치스와 이야기의 마력이 너무 강력해서 무리였다.
이렇게 가족을 사랑하는 아이에게 너무 시련이 많은 것 아닙니까. 더치스와 로빈만 고생하는 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아픔이 끝이 없으니, 속을 쑤시는데도 눈을 돌릴 수가 없는 이야기를 쓴 작가님을 찬양할 것인지 왜 이렇게 사람 슬프게 하냐고 화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음.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희생이 원하지 않는 결과와 슬픔을 불러온다는 것이 참...주책맞게 너무 몰입했는가 서러워지기까지 할 무렵, 네가 나를 짊어지게 하지 않겠다는 그 말에 야이 바보야 소리와 함께 누적된 내 감정들까지 폭발. 빈센트 이 바보자식아!
마지막 챕터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심장을 연타당해 호흡곤란 올 뻔 했는데, 뒤이은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말에 결국 곡소리가 나옴. 이 글이 권두에 있었으면 큰 생각하고 읽지 않았을텐데, 내향형 인간조차도 다가가 와락 끌어안고 싶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보니 제대로 마지막 싸다구였다. 글로 아픔 속에서 일어난 사람이, 칼바람 속에서도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
사람 슬프게 한다고 꿍시렁거리긴 했으나, 독자가 이 이야기를 읽는 것이 본인에게 큰 의미라 말한 당신에게 나도 말하고 싶다. 읽은 저에게도 의미가 크다고, 실수하고 아직도 인생이 서툰 사람에게 당신이 생각하지 못할 만큼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고.
"미래는 두려운 것이었지만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오랜 세월 해적왕이 되려는 일행을 마음으로 응원 중이나, 실제 해적 생활에 낭만이 있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마지막 저서인데다 바다의 유토피아라는 글까지 박혀있으니 의심은 뒤로 하고 무조건 내용부터 확인하기로.
"역사, 특히 급진적 역사가 일종의 도덕 게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역사의 위인들의 (명백히 실제로 존재했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배외주의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루소를 비판하는 사백 쪽의 책이 여전히 루소에 관한 사백 쪽의 책이라는 사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예상 못한 팩폭의 어퍼컷에 쿨럭. 눈물을 훔치며 다시 마다가스카르와 해적에 집중한다. 왕국인데 무슨 민주주의인가 처음엔 물음표가 뜨지만, 대형 로펌과 조세 피난처가 없던 시절 해적들의 선택 + 현지 여성들의 적극적 삶 + 기존 제도가 합쳐져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심어주는 뭔가를 만들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모든 건 뒤집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 전체 내용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살인강도로 얻은 보물들을 외딴 섬에 숨겨놓는 건 대형 금고 대용이 아니라 정부 몰래 그 많은 것들을 돈으로 바꿀 수단이 없어서라는 데서 무릎 탁.
온 국민이 아니라 '나름 대다수'의 참여로 이루어지고 애초에 사람들이 모여 섞이게 된 이유가 뜨악하지만, 그 당시 세상을 생각하면 확실히 열려있고 유연했던 공동체나 그에 대한 해석(슨생님도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덧붙이긴 했지만)이나 질문은 꽤나 신기방기했다. 본문 언급대로 "우리는 그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나, 어딘가에서 더 많은 기록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노릇이니 미래의 교과서에 베치미사라카가 등장할 수도 있겠지. 존재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도 기록이 적다는 것도 유감이지만, 확실히 존재했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만족!


표지나 제목에서, 잔잔하게 인생의 마무리를 논하겠구나 예상했는데 방향이 좀 달랐다. 읽으면서 분명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지는 부분들이 있는데도, 황당하기도 하고 순간 화가 치밀기도 하니 목사의 과거만큼이나 읽는 마음도 복잡해진다.
잘못을 포장하거나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용기 없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고, 죄인들이 죄를 인정하고 마지막 순간에 평화를 얻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인종차별 같은 건 없으며 흑인 범죄율이 높은 건 본인들이 선택지를 활용하지 못해서라는 당당 발언이나,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일하게 된 것이 실수라고 생각하는 이유에서는 이 사람이 정말 봉사하려는 사람이 맞는가 생각을 누르기가 힘들다. 용서라는 건 본인들이 그럴 마음이 들 때 하는 것이지, 옆에서 왜 신에게 마음을 왜 열지 않냐고 코멘트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충분히 좌절감이 드는 상황이긴 하고, 직업이 성직이니 "내가 신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었다"라는 성취감도 중요하리라고 짐작하지만...끙끙대며 책장을 계속 넘기다보면, 어쨌든 누군가의 극단적 마지막을 계속 지켜주었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런 경험 뒤 나오는 말들은 다 공감할 수는 없긴 해도 묵직하다. 사람이 자신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건 결국 이런 모습이려나.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목사님, 잘하셨어요'라고 박수를 보낼 순 없겠지만, 그중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지혜를 얻을 거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기립박수는 못 하겠고 삶이 바뀔 만큼 놀라지는 않았으나(그런 가공할 파워를 가진 위험한 책이 정말 있나?) 오래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 책이었다. 잘 읽었다...
"나는 아직 그가 살아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그에게 전했다.
짐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이 죽어도 좋은 날이겠지만
살기에는 더 좋은 날이라고."


아편 전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작하자마자 그런 안이한 생각이 박살났다. 중국사 쪽에서만 좀 찾아봤지, 중국에 수출된 그 많은 아편들을 재배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사람들에 대해 질문해본 적이 없는 보통 독자의 한계를 다시금 자각함. 나름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자 노력은 하지만, 결국 나는 먼 나라의 고통에 무지한 소시민에 불과하다는 걸. 정치가도 부자도 아닌 하루살이 오덕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와 능력, 정신적 용량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렇게 씁쓸한 건 그걸 매끄럽게 해내지 못하는 미성숙함 때문이겠지.
인도의 도시들과 광동, 영국과 미국까지 이어지는 아편 자본의 흐름을 보며 처음엔 분노하다 점점 낯설지 않은 패턴들과 정보에 지쳐간다. 원흉은 확실하고 욕하는 건 쉽지만, 그 때 만들어진 광범위하고 복잡한 사슬 관계가 앞으로도 사라질 일 없이 남으리란 게 참...아편 때문에 일그러진 구조가 정착된 지역을 갑자기 다 뜯어고칠 방법도 없고, 아편 수익으로 아이비 리그가 만들어졌다고 학생들이 학업을 그만둘 수도 없고 기업에 채용된 직원들은 일해서 먹고 살아야할 뿐.
언급되는 재벌들의 행태와, 이 시기를 지배한 자유 무역 교리의 도덕적 충격이 나아지기는 커녕 심화일변도인 모양새를 보면 내가 지금 묵시록을 읽고 있는 것인가 탄식이 나온다. 그래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느끼는 건, 현재의 중국과 인도 관계에도 불구하고 아편 무역 속 인도의 역할이나 한 세기 넘게 지속된 피해들이 지금 중국의 정책들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저자의 태도 덕이다. 이 미친 무역을 진심으로 반대했던 매우 드문 서양인들, 영국이 후드려 패는데 무슨 방법이 있었겠냐고 입 씻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 해악의 일각을 담당한 걸 부끄러워했던 인도인들, 아편의 연쇄를 막을 방법을 궁리하고, 포기하지 않고 뭉쳐서 성과를 거두었던 풀뿌리 운동 연합의 이야기들도 뭉클하고...인간이 아편으로 행한 악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더 알려져야 하는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겠지.
상당히 쓰라리지만 안도할 수 있는 숨구멍도 있는 감동(너무 직접적이고 짧은 단어지만, 진짜인데 어쩌겠는가)의 한 권이었다. 중간중간 언급된 트릴로지도 꼭 읽어야하니, 독서 리스트에서 빠진 건 한 권인데 세 권이 추가된다 크흑. 재미있는 책이 많은 건 행복한 일인데 왜 눈물이...


모험과 추리의 냄새가 동시에 풍기는 제목에 확 이끌리기도 하고, 일본 사람이 쓴 영국 역사 소설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해서 픽. 시작부터 강제 징병 나오니 모험에 대한 기대는 바로 버린다 쩝. 징병을 하는 쪽이면 모르지만 당하는 쪽이면 로망 그런 거 있을 리가...버넌을 주인공으로 범선 위의 명탐정 찍지 않고 네빌을 사건에 휩쓸리게 만든 건 그 시절 수병의 쌩고생을 고발(?)하고 싶어서였을까. 선상 생활 적응부터 전투와 상실까지, 납치된 초짜의 괴로움이 풀 세트로 전개되니 어느 순간부터는 범인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안 쓰고(어차피 누가 범인이어도 놀랄 상황 아님) 네빌의 상황이 여기서 더 나빠지는가에 신경이 곤두선다. 이런 가족 설정 붙여놓고 배드엔딩일 리 없다고 어설프게 짐작하면서도, 뭔 반전이 나와서 설마가 사람 잡을지 모르는 노릇이니...
어쨌든 역자 후기까지 잘 보고 저자 유튜브 채널도 구경해보니, 완전히 게임이 메인이라 추가 잡학이나 집필 뒤의 이야기들 듣기는 글렀다 에효! 그래도 그새 신작이 떡 출간된 걸 보면 취미와 노동의 밸런스가 적절하신 모양. 일도 멋지게 하고 덕질도 열정적이라니 이 무슨 부러운 일. 뭐, 이런 분들 덕에 세상에 인정 받을 일 없는 소시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니, 그저 감사하고 얼른 다음 책으로 넘어가자.


시간대를 넘나드는 SF이고 따져보면 미스터리기도 한데, 신기할 정도로 차분하다. 인물들이 마냥 감정 누르는 타입들도 아니고, 승질 낼 때 내고 울고 싶으면 우는 장면들도 있는데 어째서일까. 미래에 대한 상상도 딱히 급진적인 면이 없어 오히려 좀 신선하다. 인류가 우주에 거주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한 상태인데도, 사회적인 편견이나 어울리는 모양새는 지금과 전혀 다를 게 없고 의학적인 부분은 완전 제자리(격리 기간이 백 일이나 되는 걸 보면 퇴화한 건지도...)라, '기술 좀 좋아져도 사람 사는 건 똑같다니깐'라는 말이 이야기 뒤에서 들리는 것 같음.
마지막 장의 "그래서 어쩌라고"에서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놀라고(처음 몇 장 보는 시점에서 그런 기대 접어놓은 상태), 다 읽고 나서 첫 장의 에드윈 이야기를 다시 보며 갑자기 울컥하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물론 첫 인상도 살짝 안쓰럽긴 했는데, 고향에 이미 자리가 없는 청년(개인적 기준에서는 아직 소년)의 마지막에 개스퍼리가 준 변화를 생각하니 증말...주책맞긴 한데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우아하게 독서했던 적 없으면서 뭘 새삼스럽게...
거대한 흐름이나 숫자로 따지는 기준에서는 '의미 없는 일'이겠으나, 몇 시간, 몇 일 차이일지라도 인생의 어떤 순간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면 충분히 엄청난 일이 아닌가. 사람이 누군가를 몇 초 웃기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누가 '그래서 이 책이 뭔 내용이었냐' 물으면 당황해서 어버어버하겠지만, 흐리고 비오는 날 사람 코풀게 하는 은은한 따스함이 있다는 건 확실했으니 읽어 좋았다.
"그때 올리브가 알게 된 사실은,
딸에게 마주 미소 지어 주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팬데믹 시대의 삶이 주는 이상한 교훈이었다. 삶은 죽음의 면전에서도 고요할 수 있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