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책이 워낙 얇고 작아서, (심지어 표지 참으로 상큼) '모차르트는 길 떠나네 우후~' 이런 풍의 시집이려나 했는데 소설이었다. 원래도 낮은 예상 적중률이 바닥치네...
작품 발표가 1850년이라니 지금보다 야 훨씬 모차르트가 가깝게 느껴지는 시기이기도 했겠다만, 어느 기준으로 봐도 팬심 한 가득이다. 영화 아마데우스 이미지에 가까우면서도 굉장히 자세하고 혹은 시시콜콜한 모차르트의 수다 한 마디 한 마디의 이 정성. 자신의 아이돌의 한 순간을 써보는 기쁨(...이겠지?)이란 참 신기하면서도 상상하기 어렵다. 어쨌든, 지출은 경솔하나 심성은 아름답고, 호기심에 소동도 일으키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유쾌하며, 자신을 무한지지하면서 어떻게든 집안 재정을 관리해나가는 부인까지 둔 모차르트에서 작가의 희망사항도 살짝 느껴짐.
그런 작품치고는 살짝 불길하게 시작되다가, 잊어버릴 때쯤 다시 같은 분위기로 마무리되니 이런 부분 때문에 먼 나라까지 번역이 되었나보다 짐작. 뒤에 하나 더 실린 단편(전래동화 스타일이고 개인적으론 이게 더 신기방기 재미있...)까지 합쳐도 120쪽이니 부담 없는 책이다. 작품의 여운이 남아있을 때(...정확하게는 아직 기억하고 있을 때...) 부분부분만 좀 줏어본 것이 다인 돈 조반니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봐야 쓰겄다.


정보가 '국민시인' 한 단어뿐인 상태에서 읽는데 시작부터 놀란다. 그냥 시인이 아니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 번역자분이 우크라이나의 역사 상황과 타라스 셰브첸코의 인생을 간략히 실어놓은 글의 서두도 심상치않다. 굉장히 전투적이고, 유대인 비판 표현도 한국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라 마음에 걸린다고...어지간한 민족 서사시는 악독한 외적의 모가지가 한두번은 날아가는 법이고, 격정이라면 국어 교과서 작품들만으로도 한국 독자들은 기본 단련이 되어있다 생각하는데 크게 걱정할 일이려나? 유대인 이야기도 뭐, 베니스의 상인도 잘만 보는데 하면서 본편을 보는데...아...이래서 쓰신 말이구나 가슴에 강펀치 빠박. 내딴에 머리굴려 표현을 찾아보자면 '격정'이란 한 단어가 한 권이 된 것 같은 시들이고, 한 마디로 하면 불타오른다! 이 활활타는 글들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마주하던 핍박과 부조리를 연료로 했다는 걸 생각하면 착잡하다...
저항정신 참으로 어마무시하다. 독립운동 시기 기개 넘치는 시 쓰신 분들 한국도 많지만, 방향성이 다른 것이...소개글에서, 러시아 황실을 조롱하는 대목을 시에 써서 긴 유배를 가게 되었다는 대목을 보고 '아마 러시아 황실을 상징하는 뭔가를 우스꽝스럽게 썼겠지?' 했는데...
'훌쩍하니 키가 큰 황제 자신이 노기등등하니
나타나더군. 그 옆에 따라붙어 걸어오는 건
재수없게 생겨먹은 황후마마이셨네.
시들어빠진 버섯처럼
비쩍하니 마른데다 껑충한 다리를 하고
거드름을 피면서
고개를 건들거리더군.'
비유가 아니잖아! '꿈'이라는 시에서 이 조롱은 서두일 뿐이니, 식민지 농노 출신 시인이 이런 시를 몰래도 아니고 그냥 출판해서 총살을 안 당한 게 놀랍다...
세부사항은 달라도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그닥 오래 안 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강력하게 와닿는 대목도 많고, (외국인도 순간 울컥하는 부분이 있으니, 이 시국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겐 와닿는다 수준이 아니겠지...) 폭력의 허무함이나 어머니의 사랑, 종교적인 사람 아니어도 상당히 놀라운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시도 있으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이 책 말고 한 권 더 국내번역이 있어서 찾아보니, 절판에 근처 도서관에도 없고 그나마 별로 없는 중고가 사오만원대. 일단은 이마에 땀 좀 맺혀도 다른 시는 인터넷의 영번역을 보는 걸로...


그냥도 제목이 의문문이면 신경이 쓰이는 마당에, 무엇을 구매했길래 이런 제목인지 궁금해서 읽었다. 법으로 금지된 품목이면 책으로 낼 수 없을테니, 주술도구 풀세트라던가 한옥 대들보(집만 넓다면 하나 세워놓으면 매우 폼나지 않을...까?) 같은 걸 상상했는데 그런 방향은 아니었다. 표지도 귀엽고, 다뤄지는 대부분의 것들은 생활용품부터 수강료까지 흔하게 들려오는 것들이다. 금년 읽은 기후 관련 책들을 떠올리면 가볍게 지름신 이야기를 즐겨도 될까 죄책감이 든다만, 일단 책을 들었으면 읽어야하니 별 수 없다.
인터넷에서 상품 후기 찾을 때는 이거저거 따지느라 긴장도가 매우 높은데, 속편히 들여다볼 때 남의 쇼핑후기는 재미있는 것이구나...길냥이와의 컨택을 위해 츄르를 구매해 휴대한다는 발상은 아예 해본 적이 없어 대단히 신선. 접근하려면 이정도 사전준비가 필요한가! 개인적으로 학습이나 문화체험에 들인 돈은 충동구매라던가 망한 소비로 안 치기도 하고(정말 하고 싶은지 혹은 내가 그걸 더럽게 못하는지 해보지 않으면 알 길이 없으니까) 이분들의 성공적 학습 사례들을 보니 접어두었던 '언젠가 배워보고 싶은 것들' 리스트를 다시 꺼내고 싶다. '피아노가 가지고 싶어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구절에서는 그냥 박장대소. 알콜 스왑은 나도 쓰고 있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며, 책선물 이야기에서는 '아무리 생각해서 사준 책이어도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 없을 때도 있음' 대목에 옛기억 소환하며 과몰입. 읽기 전부터 기합이 너무 들어가서 그렇지, 웃을 부분도 많고 나름 유용 아이템 정보들도 얻었다. 과도한 지름은 환경 문제와 생활고를 초래할 수 있다만, '가성비 넘치게 행복을 추구하는 소비' '뽕을 뽑는 소비'를 할 수 있다면 생활의 질도 높아지지 않을까. 일단은 있는 물건들 부지런히 써서 한계까지 본전을 뽑는 걸로!


교통수단 납치극은 꽤 흔하지만, 주먹질 형사나 스티븐 시걸이 아니라 직원들이 힘을 모아 극복하는 작품은 처음이다. 초반부터 외부의 조력이 있긴 하지만, '절대 등돌리지 않는' 또 하나의 가족들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며 힘내는 모습 굿. 이 끈끈함부터 인물들 모델이 다 근무경험과 실제 동료들에게서 나왔다는 작가의 말에 부러움이 밀려온다...'항공사에서는 동료가 가족'이라고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니. 하긴, 인간 관계는 주고 받는 거니 작가가 좋은 동료여서 그런 인연이 있었던 거겠지. 부러우면 도를 닦어야지...
한편으로 악역들의 동기가 울적하여, 뒷맛이 썩 씨원하지는 않음. 그래도 달려가는 주인공들 쫓아가며 잘 보았으니, 작가 다른 책도 구해봐야지.


좌절하고 일어선 이후 인생의 가능성에서 어른과 청소년의 차이는 참 크니, 이제 와서 성장소설을 들여다보기보다 현실 적응이나 잘 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좌절이 크면 어찌할 바 모르다가, 가끔은 무식하게 고집 부리며 바보짓하는 건 애나 어른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날개 꺾인 꿈나무가 넘어지고 일어서는 모습에 과도하게 공감했다가 웃음도 지어보고 '아 제발...' 이러기도 하면서 잘 읽었다. 본인이 마르팡 증후군 진단을 받고 이 책을 쓰기까지 짤막한 경로를 밝힌 작가의 말을 보고 또 찡해지고...
마지막에 자기가 가진 유일한 '멍청이같은' 원피스를 입고 레아가 하는 말에 실수투성이 이력의 어른은 참 많은 생각을 한다. 꿈을 이룰 수 없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보냈던 시간들이 행복이고 별들을 스치는 행운이라는 말...이 삭막한 세상에 무슨 꿈같은 소리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아 일어날 수 없는 경우도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런 세상이니 어른들이 더 많이 젊은 미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도, 가버린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살았던 것이, 실패한 그 시간들이 별들을 스치는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라...
오늘 날씨 때문인가 과몰입 때문인가 별소리를 다 한다. 나중에 이불킥할까 싶어 이런 잡문은 스킵할까 했다가, 어차피 블로그 올린 글들 다 거기서 거긴데 못 올릴 건 또 뭐야. 이 글이 잡스러워 그렇지 좋은 책 잘 읽었는데 뭐...


읽기는 읽었는데 당장 누가 물어본다해도 줄거리 설명도 못하겠다. 제목만 보면 인간드라마가 쫙 펼쳐진 뒤에 클라이막스나 마지막에 주인공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우리는 종이같은 존재들이야..."할 것 같았는데 그런 책 아니었음. 저어언혀.
시작이 진짜 '종이로 만들어진' 여인이 떠나는 장면인데, 이 인물은 수많은 인물들 중 하나일 뿐이며 마지막에 언급되는 다른 사람까지 합쳐야 전체 책에 종이 인간 두 명임. 제목이 왜 복수형인거냐...리타 헤이워드는 거의 무덤에서 뛰쳐나오지 않을까 싶은 취급을 당하고, 아기 노스트라다무스는 소설 중간에 마지막 문장을 스포(...)하질 않나. 그리고 인포그래픽이나 팝업책 말고, 내용 때문에 책에 잘려나간 구멍이 있는 소설책은 인생 처음이다! 검은 칠(이것도 본문에 있다!)도 아니고 이름이 잘려나간 네모칸이라니...그 와중에 작가 본인 캐릭터의 머리 싸매고 싶은 찌질함 무엇인가. 책 뒤에 작가 김연수 씨의 글처럼 좀 고상한 소리 쓰고 싶은데 독자1에게는 매우 무리하다.
- 끝까지 예측불가다 : 어디로 굴러갈지 전혀 모르겠으니 맞는 말인데...특히 꼬마 메르세드의 후반부 행적을 보면 머릿속에 물음표밖에 안 떠오름. 그러나 이건 스릴러물 상투 문구 아니던가...
- 매지컬 리얼리즘 : 동화같은 말투로 지옥같은 현실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종이로 만든 사람 나오고 기계거북이 알 낳는 시점에서 미묘...현실이 그렇다고 안 나오는 건 아닌데...
- 판타지 : 단어 뜻만 보자면 그 분류다만, 반지의 제왕이나 판타지 영어덜트 소설하고 백만년은 거리 있고 모험과 용기 이런 거 없음.
- sf : ...토성도 나오고...'창조주와의 전쟁'이라는 키워드도 나오는데...과학적 고찰이나 상상력 찾으려면 이 책 보면 안 된다.
- 사랑에 관한 소설 : 분명 사랑이 중요한 키워드인데...연인들도 나오고 정사 장면들도 있는데 낭만의 찌꺼기도 못 느끼겠음. 후회나 이별의 찌질함은 꽤 나온다만 그게 메인도 아니고...
- 어른을 위한 동화 : ...이런 건 좀 마음을 따숩게 해주는 장르여야 하지 않는가?
전혀 정리가 안 되는 와중에 중간중간 우와...하는 문장들이 있으니 여러모로 기막힌다. 적절한 표현이 언젠가 생각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골때렸다는 정도로 끝내고 다음 책을 보며 좀 진정해야겠음...


절제의 미덕과 음미할 능력이 있다면 한 잔 술이 다양한 기쁨을 줄 수 있다만, 그렇게 일이 굴러가기 어려운 게 현실 아니던가. 그 와중에 술을 대하는 태도부터 술맛 이야기, 그리고 술과 관련한 추억들까지 곱디 고우니 진짜 놀랄 노자다. 부코스키가 아니라 한 잔 술을 경애하고 감사하는 술잔 든 선녀처럼 사는 것도 옵션이 될 수 있는 것이던가?
양조장 소개나 술 맛 소개들이 모두 한 편의 시다. 향 뒤로 피어오르는 미소같은 술을 마시며 은하수가 흐르고, 꽃을 건네는 수줍은 손길이 떠오르는 향기와 빗방울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맛...그냥 들이붓는 사람은 평생 모를 감동이니 글로 보는 것도 운이 좋은 거겠지.
'술과 문학과 친구의 향기로운 사귐이 있으니 인생에 부러울 것이 없다' 내 입에서 나올 일 없어 참으로 부러운 문장이다...(경험 이전에 작문의 수준차이가 있어 이미 무리다만;) 일단 언급된 몇몇 제품들을 선물용으로 재빨리 찜해놓고, 마실 일도 없으며 어차피 후각도 형편없는 나는 마성의 술의 맛을 상상하면서 진짜 오랜만에 교과서 나왔던 시들이나 다시 찾는다.


바닐라님의 글 덕분에 감사히 보게 된 책이다. 내용 전체가 중요하지만 그림이기 때문에 더 강력하게 와닿는 부분들이 있다. 기후 변화에 관련한 책들은 모두 죄책감을 자극한다만, 이 책은 대기업이나 시스템 문제와 더불어 개인의 생활 태도에 대한 질문도 크게 던지기 때문에 현대적인 생활을 영유하는 죄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다. 당장 며칠 전에 위성으로 본 뉴스에서, 끔찍한 홍수 속 피난 중인 파키스탄 사람의 말이 생각난다. 당신네 잘 사는 나라 사람들 때문에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
책이 나온 지가 십 년인데, 그동안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책에 나온 질문들은 더 무거워진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책임이 있는 이들의 각오와 수습 능력 둘 다 중요한데 둘 다 깜깜하게 느껴진다. 애초에 절약할 거리가 존재하지 않고 생존 자원부터가 부족한 곳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깐 놈의 절제의 미덕을 익히지 못하다니 그 사람들이 들으면 총이라도 쏘고 싶을 소리다만. 책에서 나온 인터뷰대로 선진국들 내부에서도, 세계적으로도 경제적인 불평등이 같이 해소되어야 하는데 냉난방비 걱정 안 하는 사람들은 아직 지구가 튀겨지는 맛을 못 느끼는 모양이고, 일반 시민은 여기서 어떻게 더 쥐어짜야 하느냐 생각을 안 하는 게 힘드니 정말 자원이 고갈되거나 산소통 없이 호흡할 수 없는 때에나 바뀔 수 있을까...'시민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변화는 성공한 적이 없다'라는 말은, 시민들이 모두가 힘을 합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작가의 말처럼 '질문을 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라고 생각해야 할까? 나의 질문과 미미한 행동이 도움이 될까? 답은 없지만 뭘 비틀어 짜서라도 지금보다 노력을 해야겠지...
그리고 까먹을까 봐, 나중에 다시 검색해봐야 할 것 같아 찾은 것들 메모.
- 인터뷰에서 '20~30년 후엔 무조건 1도가 오르고...'라는 언급이 있는데, IPCC 검색하니 지금 이미 1도 넘게 오름.
-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이 물 부족 상황을 겪고 있다' > 현재 물 부족한 이들 세계 인구 55%. 금세기 말 66%까지 올라갈 거라 추정.
- '킬리만자로 만년설 33퍼센트 소실' > 2024년 현재 70퍼센트 소실.
- 당연히 뭔가 터지고 불타는 전장에서 온실가스가 안 나올 리가 없으니까 검색. 강대국들이 정확한 정보 토설을 거부해서 그나마 추정한 게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5퍼센트(저거 두 배는 되면 몰라도 낮을 리는 없을 것이다...)가 군사 행동에서 배출'이고 '우크라이나 전쟁 1년간 발생한 온실가스가 싱가포르·스위스·시리아의 연간 배출량을 합친 것과 맞먹음'이라는데 2년 넘어가고 지금 중동까지 불타고 있으니...
- 2023년 기준 한반도 이산화탄소 농도 역대 최대
- 2023년 전 세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한국 세계 6위(12.9t). 책에 옮긴이 주석으로 달렸던 2010년 11.4톤보다 더 높음. 중국(10.1t)보다 높음.


책 등만 보고 뽑는 찰나의 순간, 루 리드가 병나발을 불면서 크흐 사랑했다...이러면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랑 러브 스토리가 믹스가 되다(그런 내용이면 커버가 날주황색일리가...) 뽑고 나니 뒷표지가 침넘어가는 단어들로 꽉 차 있다. 1830년 웨스트포인트(맙소사 잭 리처의 주먹을 가진 뒤팽 나오나요), 은퇴 경찰, 애드거 앨런 포, 에드거상 대거상 노미네이트...상상과 달라도 잘 뽑았으니 로또 맞은 기분으로 읽었다.
시작이 포의 시 레노어라 시 모르는 독자도 제목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알게 된다. 마지막까지 다 읽고 다시 시를 보면 기분이 꽤 묘해지는데 일단 넘어가고...포가 명탐정 앨런을 찍는가 싶어서 두근두근 기다렸는데 덕력도 자아도취도 어마어마한 인물로 나와서 참...(중간중간 오글거린다)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안 좋은 꼴을 중간에 당해도 별로 안타깝지 않았으나, 클라이막스에서 디스 아닌 디스(...한 번도 아니고 그 다음 챕터 머리부분까지 확인 사살을...)를 당할 때는 안타까움과 헛웃음이 갑자기 올라와서 개인적으론 순간 긴장도가 쫙 내려감. 결말도 우와 반전! 이런 느낌이 아니라, 분명히 반전인데 이상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날 풀리면서 흙이랑 같이 녹은 눈이 졸졸 흘러가는 느낌이랄까...책 뒤에 한 줄 평들은 소름, 통쾌, 충격을 이야기하지만, 잃어버린 존재들을 끼고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 그저 내내 안쓰럽다. 결국 모든 것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일들이었으니, 낙엽 시즌에 읽었으면 더 센치해져서 무슨 글을 썼을지 모르겠음. 이미 넷플릭스 영화가 있다길래 트레일러 찾아봤다가 진짜 놀람. 세상에 나의 여신 질리언 앤더슨이 마퀴스 부인이라구? 인간 버전 애나벨 아니셨나요? 갑자기 머릿속에서 소설 내용이 바뀜.
마퀴스 부인 : 랜도 씨가 이 학교에 오셔서 은밀한 관계에 휘말리지 않은 게 놀라울 따름이에요.
랜도 : 저는 부인과 은밀한 관계에 휘말리고 싶습니다
마퀴스 선생 : 여보 날 버리지마!
마퀴스 부인 : (샴페인잔 들면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은 없어요.
망상은 그만 두고 다음 책이나 읽자.


단순하게 살고 싶은 단순한 독자 1에게 가을맞이 감동과 절망을 안겨준 책이다. 시작부터 슬픈 내용이 나온다만, 역시 애정과 지식을 어울러 가진 이가 보여주는 숲은 한 줄 한 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혼자 마음대로 과학계의 윤동주라 생각하는 발비 선생도 있다만, 읽다보니 맙소사 영쿡 과학계에 김영랑이 있네...(누구 맘대로...) 놀라서 다시 저자 약력을 보니 애초에 과학 전공도 문학 전공도 아닌데 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늘은 공평하지 않다. 아름다운 글이란 건 번역자분의 공도 당연히 크겠으니 어이구 감사합니다 하면서 옮긴이의 말을 읽는데 심지어 이 글도 아름답다. 정말 하늘은 공평하지 않아...
죽어가는 것을 아름답게 말할 때는 그냥도 괴로움이 배가 되는데, 무슨 대비 효과마냥 큼직하고 호러스러운 팩트 폭탄이 투척되니 아름다운 글을 읽으면서 끔찍한 현실에 안 아름다운 욕이 나온다. 지금 아는 어줍잖은 지식만으로도 지구 가열이 끔찍스러워 죽겠는데 이 흉악함이란. 순록과 사미족의 너무나 아름다운 관계를 말하다가 몇 페이지 지났다고 '툰드라 녹아서, 이산화탄소보다 온난화효과 85배인 메탄(오늘 챙겨봤던 다른 나라 클립에서는 28배라고 나왔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 다시 찾아봐야겠다만 28배도 충분히 끔찍하다...) 절찬 방출 중!', 고결한 기운의 잎갈나무 이야기하다가 '시베리아 동토대 바닥 지금 붕괴 중이라 도시들 다 바닥에 꺼지는 중!' 이러면 심장이 뛴다...그 와중에 빨리 화성에 기지 건설해서 지구 탈출해야 한다는 러시아 과학자씨...선생님 과학적인 희망을 좀 줘요...'잠수병 걸리듯이' 죽어가는 나무들(모자란 과학 지식 때문에 압력과 물관부 공동화가 언뜻 이해가 안 가다가, 이 한 마디에 눈이 번쩍 떠짐), 이 와중에 정치질이랑 인종 차별(언제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인류의 존망을 논하는 시기엔 정신질환이 아닌가...), 이 중요한 지대를 끼고 있는 강대국 정부들의 태도(할 말은 많지만 굳이 나의 무지성을 대방출할 필요도 없으리라...)에 그냥 책 덮고 자면서 현실을 잊고 싶다. 그래도 계속 본다...
신기했던 건 다이애나 베레스퍼드크루거(...발음만 어려운게 아니라 타자로 한 번에 치기도 어렵다...)가 언급된 부분인데, 전에 오메오메 하면서 읽었던 '오버스토리' 주인공 중 한 명의 실제 모델이래서 깜짝! 선생의 약력에 맙소사 사랑에 빠질 것 같아...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산소 농도와 동물 전체의 존속에 대한 공포특급! 지구가 튀겨지면서 대기 중 산소 감소 > 영유아 노약자 부터 심정지 > 산소 부족으로 태아 유산..."제 생전이 아니더라도 당신 생전에는 틀림없이 보게 될 거예요." 공포에 떨면서도 선생님의 책을 장바구니에 클릭클릭...
이런 거대한 변화 속에 소시민은 무력할 뿐이지만, 벤 롤런스 선생(경건하게 불러야 할 것 같다...)의 말에 조금 용기를 얻는다.
"콩고, 수단, 우간다, 소말리아의 폐허와 난민 수용소에서 내가 배운 것은 희망이 분투를 낳는 것이 아니라 분투가 희망을 낳는다는 것이다. 희망은 가만히 누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불활성 귀금속이 아니다. 달라지는 상황에 비추어 하루하루 제작되고 재정의되어야 하는 무언가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절망이 회복을 향한 첫걸음이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