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소장품 옥션이나 전기 영화들 개봉했던 시기가 벌써 한참 지난 지금(시간의 빠름이 놀랍고도 슬프다. 심지어 그새 울리엘도 떠났으니...), 남은 반려가 쓴 편지를 읽으며 감상에 빠진다. 아름다운 시절 뒤의 변한 모습까지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사랑해야할까. 그리고, 50년 간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도 '생의 한 장이 끝났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건 말년의 성숙함 외에 얼마나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할 것인지. 편지를 써도 누그러지지 않는 고통과 사랑은, 세상을 떠날 때 다 내려두고 갔을까...


빌린 책이 그믐의 새모임 소식에 올라온 건 신기한 우연이다만, 출간된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찾아보는 중요한 책이라는 이야기겠지. 발단이 되는 게오르기오스 씨 사건이 제일 이해가 안 간다만(통역까지 질문할 정도면, 그냥 그 동네 괴퍅한 노인이 아니라는 근거가 있는가?) 덕분에 이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니 넘어가고...사실 농경사회의 올드딜은 지금도 남아있고 (나만 그렇게 느끼는가?), 시대의 필요가 생각을 정한다는 것과 여러 해석들이 맞다고 수긍하면서도 고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8장 코스가드의 주장이 제일 어려우면서도(비슷한 단어가 반복이 되니 정신 바짝 차려야한다...피곤했다...) 공감이 간다. 10장에서 나의 견해는 언제나 옳다고 저자는 반박하지만 이해력 문제인지 편견 때문인지 납득이 잘 안 된다. 하지만 책 내용대로 연구자는 본질주의를 깔고 갈 수 밖에 없고, 어쨌든 다양한 사료들과 해석, 반박과 반박의 반박까지 읽는 재미는 충분했다. 내년 이맘 때 내가 이걸 다 기억하고 있어야할텐데...


위스키를 찾는 사람들, 만드는 사람의 입장과 위스키 용어들, 브랜드와 맛 소개 등 많은 것들이 어우러진 작은 휴식같은 책이다. 작가분이 전문가니 부록으로 본문에 나온 위스키 칵 테일들 레시피랑 테이스팅 노트까지 있다. 알콜소비대국에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아니라니, 소주가 아니라서 그런가...
온더락의 얼음에 그런 숨은 고충이 있는지 몰라서 좀 숙연해지기도 하고, 피곤할 때 나도 저런 가게에 갔었다면 생각도 해본다. 술은 끊었어도, 조용한 분위기에서 한 잔이 주는 평화를 기억할 때가 있어서 오랜만에 활자와 상상으로나마 그런 시간을 맛보았다. "조용한 도서관 안 먼지가 잔뜩 붙은 책표지"의 이미지라는 글렌피딕의 소개에, 조용한 바 구석에서 책 보면서 한 모금 하는 상상을 해본다.


저자가 헐리우드 영화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는 만큼, 이야기가 빠르다. 생각할 틈을 안 줄 정도고 언제 다 읽 었는지 모르겠으니 재미있는 것은 분명한데...나름 군상극인데 정붙일 인물들이 하나도 없다. 아니, 예전의 희생자 한 명뿐인가...주인공이 정의를 위해 분투하긴 한다만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기보다 갑갑함이 올라온다.
제목도 참...책 프롤로그나 결말을 생각하면 원제를 쓰는 게 독자한테 생각할 여지나 놀라움을 주었겠다만, 그렇다고 원제를 고대로 한글 번역했으면 이게 무슨 책인지 감을 못 잡는 이들이 더 많았겠지. 다시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주인공이 이야기할 때, 사건이 종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씁쓸하던지...어쨌든 헐리우드식으로 잘 끝났다고 책 덮을 수도 있겠다만, 도감을 든 소녀와 이기적인 어른들이 대비되어 약간 쓴 맛이 남는다. 일단 쫙 읽어내리는 맛에 작가를 검색하니 가을 중에 신작이 나오는 모양. 다른 책들 읽다보면 가을 금방 오겠지...


식욕 조절을 해야하는데 먹는 책만 주구장창 보고 있는 나는 모순으로 가득 찬 나약한 사람이다. 어쨌든 음식 이야기도 좋은데 먹거리 그림, 먹는 그림, 먹는 거 만드는 그림과 기타등등 실컷 봤으니 행복하다. 중간에 얼마 전에 본 맛의 천재도 언급되고 겹쳐지는 부분도 있어 더 반갑기도 하고. 아일랜드 기근처럼, 책 안에 작게 인쇄된 것만 보아도 좀 숙연해지는 그림들부터, 요리 노동의 파워가 엿보이는 그림들, 음식 정물화들까지 정말 다양하게 나오니 이걸 다 모은 작가분한테 감탄...노동자나 공산주의 논하는 책들 표지해도 될 것 같은 그림도 많고, 두 개의 부엌 챕터가 꽤 인상깊은 것이, 나의 착각이 아니라 뒤로 갈수록 그림 속 여인들의 팔이 얇아진다. <화덕 앞에 있는 요리사>의 공사장 철근같은 꼬챙이에 고기 꿰는 우람한 팔뚝과, 거의 400년 뒤 마겟슨의 <주부>가 예쁜 부엌(그릇 콜렉션 수준을 보건대 꽤 사는 집 부엌이다)에서 샐러드 섞는 갸냘픈 팔뚝 이 차이 뭡니까...관련 정보도 그림도 온통 기괴한 죄의 식탁이나, 마리아를 위해 산후조리 요리하는(!) 요셉이라던가, 달력처럼 매일 한 장씩 넘겨서 다시 보고 싶은 내용들로 꽉 차 있다. 일단은 재미있게 읽었으면 그걸로 만족하고, 괜히 냉장고 열지 말자...책에도 인용되지 않았는가. "술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해질 것이요..." ...이미 늦은 감이 없지는 않다만...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어느 새 완전히 잊고 있다가 이제서야 본 책이다. 재미있다! 왜 번역작이 적은지 이해가 안 간다. 분위기나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도덕 상실증인 건 몰타의 매를 방불케한다만, 주인공이 좀 쫄보에 속물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양심이 있어서 시작은 편했는데...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때까지 양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궁지에 몰린 적이 없던 것뿐인가 싶어 주인공에게 좀 실망하기도. 하긴, 역자 해설에 나온 것처럼 주인공마저도 작가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이라면 어쩔 수 없지...디미트리오스도 나쁜 놈이다만, 신의 섭리가 어쩌고 떠들면서도 어차피 내가 안 해도 딴 놈이 할 거니까 나쁜 짓 한다는 피터스의 캐릭터도 그렇고 조연들의 비호감 스타일도 참 다채롭기도 하다. 당시 입장에서의 국제 관계 설명도 참 씁쓰무리하고...1939년 소설인데 2편이 69년에 나왔다니 주인공은 대체 어떻게 변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알려면 원서 구해야지 뭐...


블러디 프로젝트도 흐린 날 가랑비에 젖어드는 축축함이 있었는데, 이쪽은 습기는 덜하지만 참 읽기 힘들었다. 그렇게 두껍지도 않고 글자 사이즈가 적은데 갑갑해서 중간에 다른 책들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지금 나의 모습이 정말 나인지, 내가 연기하고 싶은 모습인지를 이런 식으로 피로하게 생각하게 될 줄은...(그냥 없는 지식 가지고 머리를 굴리려니 피곤한 거 아니냐고 한다면...부정할 건덕지가 없다만) 읽으면서 정말 불쾌하지 않은 부분이 단 하나도 없는 브레이스웨이트 - 설마 이런 불쾌한 인물의 실존 모델이 있는 것인가 싶어 검색했는데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 의 말들이 목에 걸린 생선 가시같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안 그래도 스물스물 뭐가 올라오는 기분이, 대사가 한 마디씩 더해질수록 점점 가라앉는다.
"내가 벗어나려다 실패한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로 불안의 돌더미가 우르르 무너질 때, 안도하면서도 왜 애초에 발언들을 보면서 그리 끙끙대었는가 생각해보는데 내 생각을 나도 모르겠다. 비망록 파트의 마지막도 소름끼치고 마지막에 작가가 만나는 인물을 보면서 이거 아주 조금만 틀었으면 공포 소설이 되었을텐데. 개인적으론 그쪽이 더 재미있었겠지만 내가 문학의 무엇을 알리...아직 나오지도 않았지만 저자의 다음 작품을 집을 용기가 지금은 없다.


끝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코로나가 유행하는 와중에 들춰본 가족 시트콤이다. 2080년 주인공 마티아가 과거 회상을 하면서 시작되는데, 미래 아이들이 판데믹이 시시한 상상이라 여긴다는 대목이 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간에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거나, 일이 끊기면서 정말 굶게 되는 사람, 간호사 집에 붙여진 혐오 메모 등 심각한 이야기도 나온다만 서로 한 마디도 안 지는 가족들의 티키타카와 사람 사는 이야기로(격리생활도 사람의 성질머리를 죽이지는 못하니까) 책장 술술 넘어간다. 같은 건물에 사는 많은 이웃들이 등장하니 귀여운 인물들도 나온다만 비호감도 득시글. 특히 마티아의 아빠...명랑한 톤의 책에선 항상 이런 타입의 인물이 최종승리한다만 한 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다. 덕분에 캔식혜 마시듯이 읽는 책 중간중간에 마시다 목에 쌀알 걸리는 느낌을 자꾸 받는데다 거의 막판의 정신 나간 행각에는 거하게 사레 들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승리...그나마 이번엔 주인공의 행복이 이 인간의 만회 여부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인다.
"세상은 '현재' 안에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현재를 사는 동안 그 현재는 언제나 이전의 모든 현재들보다 훨씬 나빠 보였다. 그렇지만 몇 년 뒤 사람들은 왜곡된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 시간을 그리워했다.
우리가 수천 년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회상을 할 날이 얼른 오기를 바라며, 휴일 독서 마무리.


제목 보고 마음대로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내용이었다만, 두둥실 흘러가는 느낌으로 편하게 보았다. 기분에 따라 차를 고르고, 차나 간 식의 느낌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떠올리고. 편안하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중국차들의 맛 이야기에 솔깃해지기도 하고. 우릴 때부터 향이 퍼지고 한 모금 마시면 사랑하는 사람과 걷는 중임을 알게 되는 맛, 불 기운이 느껴지는 맛, 중성적인 맛...좋아하기만 할 뿐 지식은 별로 없는 찻잎 소비자에게는 상상하기도 어렵고 참으로 궁금해지는 맛이다. 차 한 잔 두고 즐기는 여유가 중요한 것일텐데 한 두어통 지를까 마음이 동해 검색에 열올리는 본말전도인 나의 모습이 참...아니야 일단 쟁여놓는 것 중요해...차가 있어야 차를 마시지...


사람은 뭔가를 싫은 척, 좋은 척 할 수 있는 존재다만, 그게 굉장히 어려운 분야가 있다면 먹는 게 아닐까. 먹을 거 이야기하면서 진심이 아닌 사람을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음식이 싫은 이유를 댈 때도 진심이고, 써서 책까지 낼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박찬일 셰프의 추천사부터 이미 쪽수가 모자라지 않은가 싶다.
유명한 17가지 품목이 뽑혀서 역사부터 평가, 출간 당시 판매 정보 등등이 나와있는데 흥미진진하다. 원서가 2014년에 나왔으니 찾으면 이후 변한 것들이 있다만(누텔라가 빵 없는 중국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적혀있다만, 찾아보니 그 이후 누텔라는 항저우에 공장 세워서 2022년 한 해만 중국인들에게 6억 유로어치 누텔라를 팔았다...역시 마성의 음식!) 읽다보면 역사도 중요하지만 그냥 먹고 싶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물소 고기나 25년 묵은 발사믹 식초 같은 것들을 구하기엔 능력이 안 되고, 이 더위에도 식욕만 돋아서 다른 걸 더 먹었다. 책이 날 살찌게 하네...
읽다보니 여행기나 영상에서 자주 보이는 이탈리아 커피 부심이 좀 이해도 되고, 모짜렐라나 티라미스 파트는 할 수만 있으면 암송하고 싶다. 그나마 좀 심드렁해지는 것이 와인들 파트인데, 내 인생 전체 알콜 섭취 비율을 대충 계산해도 와인은 전체 열 병이 안 될 마당이니 각종 평가들이 와닿는 것이 없다. 마시면 채찍으로 한 대 맞는 기분이라는 페르네트 브란카가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만 SM은 땡기지 않는고로 마시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반주 문화가 알콜 소비에 큰 영향을 주는구나 새삼 느낀다. 전체 와인이 아니고 DOC 프로세코 와인만 1년 약 2억 5천만 병 만들어서 3분의 1이 국내 소비라는 게 대체...인구 1억도 안 되는 곳 맞나요...
어쨌든 재미있게 읽었고, 무더위 속 식욕증진은 덤이다. 먹는 얘기 만만세!

